충혈된 눈을 구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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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혈된 눈을 구원하라

2020-05-22T08:22:21+00:00 2020.05.22|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알고 보면, 지금 이 기사를 읽는 당신 눈에 ‘적’일 수 있다. 디지털 신인류의 충혈된 눈을 구원할 비전 테라피.

프리즘과 컬러 필름으로 안구 움직임과 시신경 자극을 이끌어내는 비전 테라피. 눈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새로운 운동법이자 약물과 수술 없이 시각 기능을 회복하는 치료법이다.

“미간 주름이 늘었군요. 보톡스로 양미간 찡그리는 습관을 고쳐보는 건 어때요?” 무엇이든 먼저 권하는 법 없던 피부과 원장이 던진 한마디에 나는 즉시 시술을 감행했다. PC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할 때마다 구겨지는 미간이 내내 신경 쓰인 탓이다. ‘사무실 인상파’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포커페이스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실패. 눈가에 잔뜩 힘을 주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덤으로 따라왔을 뿐이다.

보톡스 기운이 잠잠해질 무렵, 집중의 미간을 만든 요인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 서 등장했다. 디지털 난독증(SNS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며 시선을 지그재그 형태로 건너뛰는 것처럼 글을 읽는 21세기판 신종 난독증으로 장문 독해에 취약하다)을 의심하며 찾은 시지각 교정 센터에서였다. 시지각이란 눈을 통해 수집한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뜻한다. “가로와 세로 선이요.” 시력을 검사하듯 나는 양쪽 눈을 번갈아 가리고 화면에 뜬 두 가지 도형이  어떻게 보이는지 답했다. 정답은? 모두 더하기 표시. “한쪽 눈을 감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어요.” 강남아이테라피발달센터 양승룡 원장은 내가 본 가로와 세로 선은 왼쪽 눈에, 나머지 선은 오른쪽 눈에 보이도록 설계한 테스트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눈은 양안을 모두 사용해 입체와 공간을 인지하죠. 하지만 PC와 디지털 기기처럼 2D 화면에 익숙해진 눈을 무의식중에 한쪽만 사용하면 일부 시선이 뇌까지 전달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순간적인 블랙아웃으로 독해 능력이 저하되죠. 지금 보니 안구를 감싸는 근육도 많이 굳어 있어 눈가 가득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는군요. 평소 글을 빨리 읽기 어렵지 않아요?” 나는 10년 전 라섹 수술로 얻은 안구건조증을 제외하면 안과 검진상 별다른 문제가 없고 교정시력도 1.0에 가깝다. 하지만 ‘비전 테라피(Vision Therapy)’를 다루는 시지각 교정 센터에서는 시각 억제와 트래킹 능력 저하 진단이 나왔다. 순간, 그야말로 동공 지진.

비전 테라피는 약물과 수술 없이 안구 운동으로 시각 기능을 회복하는 치료법이다. 안구나 시신경 손상으로 안과적 치료를 받는 경우와 별개로 눈의 구조적 결함은 없으나 원인을 불문하고 시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실시하는 일종의 재활 운동에 가깝다. 물체가 여러 개로 보이는 복시나 시력 보조 기구의 도움을 받아도 교정시력이 나아지지 않는 약시, 수술 후 재발한 사시, 난독증 등이 주요 대상. 독특한 점은 안과 전문의가 아닌 시력, 색맹 여부 등을 측정해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처방하는 검안사로부터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병원 밖에서 전문의 없이 진행하는 치료에 두 눈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대중화된 영역이다. 다양한 분야의 강연을 선보이는 TEDx 무대에서 비전 테라피를 소개한 마운트홀리오크대학 생명과학과 교수 수잔 R. 배리의 영상 조회 수는 14만 회를 넘어섰다. 이러한 성공 배경에는 검안학의 발전이 버티고 있다. 1960년대부터 미국 몇몇 대학은 검안학을 의학 전문 대학원과 동등한 과정으로 승격시켰고 그 대표 주자인 버클리대학, 뉴욕주립대학 등은 꾸준히 검안학 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들이 눈 앞에서 렌즈를 움직여 시각을 자극하고 지속적인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안구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점에 착안, 체계적인 운동법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비전 테라피의 시작이다. 새로운 시각 훈련 치료를 적극 수용한 선진국은 안과 전문의와 검안사가 긴밀히 협업해 약물 치료부터 안과적 수술 이후 물리 치료까지 환자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눈의 필수 덕목은 시력 그 이상이다. 장시간 눈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구력과 자동카메라처럼 자유자재로 초점을 맞추는 포커싱 기능, 시선이 매끄럽게 이어지며 글이나 움직이는 사물을 포착하는 트래킹 능력까지, 학습 시간 대비 최대 효율을 내기 위해선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숨은 기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검안을 받기 전에는 증상 유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이유로 비전 테라피는 집중력 강화 트레이닝이라 불리며 미취학 자녀의 손을 이끄는 부모의 발길이 시지각 교정 센터를 향한다.

최근 국내 검안사들이 비전 테라피 황무지에 시각 훈련 치료를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검안학이 발달한 미국에 비하여 한국은 검안사가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검사 기기가 절반에 채 못 미쳐 정확한 검진은 물론 약물과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적절한 비전 테라피 처치가 어렵다. 국내 1호 검안학 박사 김재도는 제도의 뒷받침을 강조한다. 2014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러한 안경사법 개정안이 심의됐지만 “의료 행위에 포함된 검안 업무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황이라는 것이다. 의료계와 마찰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점차 현대 의학이 인정하는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체학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미국검안의협회(American Optometric Association)를 중심으로 30개국의 검안 단체(6,000여 명 규모의 대한검안사학회도 힘을 보탠다)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와 임상 시험 결과를 쌓아나가고 있으니 국민의 눈 건강을 위협한다는  꼬리표를 달기에는  이르다.

나는 물론이고,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인스타그램과 틱톡으로 하루를 시작해 넷플릭스로 마칠 것이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스마트폰, PC 화면과 밀착 동거 중이다. 블루 라이트 노출은 기본, 근거리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탓에 팽팽하게 늘어난 안구근육과 눈물 한 방울 없이 메마른 두 눈은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피트니스와 필라테스, 수영, 크로스핏 등 각종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듯 건강한 눈 또한 유연한 움직임으로 단련이 필요하다. 비전 테라피가 디지털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이유다.

나는 디지털 난독증 외에도 꽤 많은 시각적 불편까지 안고 살았다. 업무 자료에 오타를 내기 일쑤, 여러 번 읽어도 오자를 찾지 못했다. 또 초점이 맞지 않아 영화관에서는 자막과 배우의 얼굴을 동시에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해외 유명 요기 (Yogi)의 아이 요가와 하루 3분 바라만 보면 눈이 좋아진다는 가보르 패치(Gabor Patch), 눈가 주변을 따뜻한 원석으로 지압하는 스톤 마사지 등을 섭렵하며 눈 건강 회복에  집착했지만 변화의 기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1:1 필라테스 수업하듯 전문가의 지도 아래 맞춤 비전 테라피를 받은 지 3개월, 나의 시지각 애로 사항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와우! 기분 좋은 변화는 더 있다. 눈의 피로가 줄어드니 고질적이던 안구건조증이 사라졌다. 브라보! 진통제를 달고 살 정도로 괴롭히던 두통과의 전쟁도 끝났다. 할렐루야! “얼마 전 프로 축구 선수가 센터를 찾았어요. 눈 앞으로 오는 공이 두 개로 보여 제대로 슈팅을 할 수 없다고요. 시력 교정 안경으로 1차 치료를 한 뒤 꾸준한 안구 운동을 통해 복시 증상을 해결했습니다.” 강남아이테라피발달센터 양승룡 원장은 그가 나와 동일한 증상을 앓고 있었고 그 원인은 여전히 묘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비전 테라피 후 프로 팀에 복귀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것.

빠른 피로 해소와 근육통 완화를 위해 영하 170도까지 내려가는 초저온 냉각기에 몸을 던지는 크라이오테라피(Cryotherapy), 1시간가량 미네랄워터에 둥둥 떠 있으면서 긴장과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플로테이션 테라피(Floatation Therapy) 등 도전 정신 투철한 요즘 여자들이 웰니스 라이프를 영위하는 방법은 이토록 다채롭다. 작은 프리즘 하나로 내 눈에 선사하는 호사. 어지럽고 탁한 세상에서 광명을 되찾는 편‘안(眼)’한 방법이 당신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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