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에서 기획한 서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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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에서 기획한 서울 전시

2020-06-01T11:46:27+00:00 2020.05.27|

구찌에서 기획한 서울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꿈꾸는 현실 속 유토피아를 구현하며 또 다른 유토피아의 실현을 꿈꾼다.

앤티크 도자기와 함께 포즈를 취한 알레산드로 미켈레.

“내게 예술은 순수한 산소와 같고 나는 그 산소로 인해 살고 있습니다.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를 만나보자는 것입니다. 일종의 연구 조사 같은 작업이며 구찌에서 우리는 늘 다양한 일을 벌이죠.” 서울 대림미술관에서는 4월 17일부터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구찌 문화 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 곳곳에 존재해온 독립 및 대안 예술 공간을 하나의 미술관 건물 안에 모은 ‘다층’ 프로젝트다. 진보적 심미관으로 잘 알려진 미리암 벤 살라(Myriam Ben Salah)가 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사회에 대한 사유에 기반을 두고 기획했다.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소수집단의 정체성과 문화를 탐색하면서 다름과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장소로서 대안 공간을 조명하는 것이다.

“미리암은 내 동료의 친한 친구죠. 몇 년 전에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마음에 들었고, 내가 파리에 있는 동안 함께 점심을 먹곤 했답니다. 이번 전시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었어요.”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5인과 ‘시청각’, ‘합정지구’, ‘통의동 보안여관’, ‘화이트노이즈’ 등 한국 독립 예술 공간 10곳이 참여했으며, 벤 살라는 각각의 팀에서 제안한 프로젝트로 전시를 구성했다. 미켈레는 비교적 덜 알려지거나 비주류로 분류되는 아티스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 대해 <보그>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동시대성이라는 모자이크 작품에 자신만의 타일을 가져다 붙이는, 진짜 사람들을 통해서 브랜드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때로는 카오스처럼 혼란스러운 이 전시를 감상하는 데에는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된다(아주 약간). 헤테로토피아는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푸코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온갖 장소 가운데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에 맞서 그것들을 중화시키거나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반공간”을 뜻한다. 사람들의 이상이 실현된 ‘실존하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도 표현하는데, 그렇기에 기존 공간과 대립을 이룬다. 이 전시 역시 상충된다고 여겨지는 ‘비주류’와 ‘주류’의 예술 공간이 겹쳐지고 공존하며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을 구현한다. 어쨌든 헤테로토피아는 푸코 스스로도 중도에 포기한 난해한 개념이다. “내게는 예술이 수수께끼 같은데요. 예술은 관점이자 접촉, 필요, 저항, 이야기이자 시라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는 예술이 뭔지 모릅니다. 그저 아름다운 무언가라고 인식할 뿐이죠. 하지만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게는 예술이 필요해요.”

구찌는 최근 몇 년간 케어링 그룹에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며 슈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작 미켈레는 구찌에 대해 말할 때 패션을 논하지 않는다. 그는 구찌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려는 욕망과 용기를 얻길 바랄 뿐이다. “나는 개인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기본으로 패션쇼를 만듭니다. 옷을 입는 방식은 그 사람이 삶을 살고, 느끼고, 읽는 방식이자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자기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미켈레는 구찌 데뷔 컬렉션 때부터 다양성과 개인성에 대해 꾸준히 말해왔다. 빈티지와 앤티크에 대한 편향된 취향을 밀어붙였으니 말이다. 더 이상 괴짜 호더라 할 수 없는 심미안은 “과거의 패션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것”이고 “지금의 패션은 과거의 것에 대한 것”이라는 철학이 바탕이다. 결국 그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과거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과거의 산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건축물,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 전부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내 책상에 놓인 보스 스피커와 그리스 시대의 꽃병, 과거는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만질 수 있고 가질 수도 있죠.” 구찌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이자 2013년에 구찌가 인수한 피렌체 도자기 브랜드 리처드 지노리(Richard Ginori)의 아티스틱 디렉터를 겸임하기도 한 미켈레는 앤티크 제품과 주얼리를 좋아한 지 20년이 넘었다. “조지 왕조 시대, 에드워드 시대, 빅토리아 시대, 루이 14세와 루이 16세가 지배하던 프랑스의 웅장했던 시기와 19세기 자연주의를 반영한 디자인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가 주얼리를 착용하는 방식 또한 하나의 의식처럼 엄숙하고 진지하다. 매일 아침 다른 아이템을 골라 하루 동안 ‘대화’를 나눈 뒤 밤에는 보관함에 정성스럽게 고이 넣어둔다. 물건을 관리하는 방식이나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행동에 큰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도 18세기 포르투갈에서 석영과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를 구입했다. 그는 몹시 뿌듯해하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박물관에 전시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답죠!”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끌어 올리듯 과거의 것을 현재의 런웨이로 끌어 올리는 구찌 컬렉션 또한 헤테로토피아라 할 수 있다. 미켈레가 꿈꾸는 이상이 실현되는 공간이며, 쇼에 참석한 이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아주 특별한 차원에 머무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독립 대안 예술 공간의 전시는 낯선 방식의 보기를 제안한다. 달의 땅을 실제로 매입하고 재판매하는 경매 과정(탈영역우정국, 강우혁 작가의 <달나라 부동산>), 예술 작품인지 쓰레기인지 모를 것들에 매겨지는 가격(취미가, <취미관 대림점 – Not for Sale>), 세탁방의 세탁기 밖으로 삐져나온 거대한 인어의 꼬리(올리비아 에르랭어의 <이다, 이다, 이다!>)는 현실과 가상, 예술의 가치, 성별 구분 등 익숙한 것에 새롭고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한다.

“다양성이 없다면 나는 창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다양성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고,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본성에서 가장 위대한 부분입니다.” 거리와 쇼장, 매장에는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서로 다른 얼굴과 몸을 가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대화를 만들어낸다.

미켈레는 다양한 작가와의 협업이 자신의 창의성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타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기분을 갖게 한다고 이메일에 썼다. “우리의 눈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타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걸 즐깁니다.” 이런 방식은 미켈레가 구찌를 이끄는 데 핵심이다. “구찌에 연속성을 부여하고 당대의 세계 안에서 구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나의 역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