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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솜밤망이의 가벼움

2020.06.09

by VOGUE

    참을 수 없는 솜밤망이의 가벼움

    성범죄보다 절도죄를 무겁게 처벌하는 나라, 참을 수 없는 솜방망이의 가벼움.

    요즘 성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내 큰 눈을 두 번씩 비빈다. 끔찍한 범행 수법을 믿을 수 없어 한 번, 가해자들이 받는 처벌이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두 번. n번방 전 운영자 와치맨은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집단 성폭행 및 불법 촬영 영상 유포로 징역 6년을 받고 항소 중인 정준영은 성매매 혐의로 벌금 100만원형을 받았다.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기자 단톡방 피의자들은 정직 3개월을 받았던가.

    낮은 형량의 파라다이스 한복판에서 주목받는 주인공은 아동 성 착취물  25만 건을 유통한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다. 지난해 아동·음란물 판매 등 혐의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예정대로였다면 4월 27일 출소해 봄나들이라도 떠났겠으나 국제를 무대로 삼았던 범죄에 미국 법무부 역시 손정우를 기소했다. 이중 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미국 법이 그에게 물을 수 있는 죄목은 국제 자금 세탁 혐의 한 가지. 그럼에도 최소 20년형 징역이 예상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미국으로 송환되길 기도하고 있다. 죄를 죄답게 벌하지 않아 외국으로 보내지길 바라는 모습이라니. 이 땅에 사는 게 가해자에게는 행운이고 피해자에게는 지옥이라면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 여성을 둘러싼 범죄에 대한 이 나라의 법은 관대하다는 표현조차 관대하다.

    흔히 우리나라는 교화가 목적인 대륙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낮다고 한다. 죄의 형량을 모두 더하는 영미법처럼 징역 300년 같은 판결이 나올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 차이가 우리가 느끼는 모순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법무법인 원 변호사 최중영은 사건을 뉴스로만 접해서 생기는 온도 차를 말한다. “다른 나라의 법과 비교할 때 한국의 법정형은 절대 낮지 않습니다. 다만 재판을 통해 감형되고 선고형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생기죠. 어떻게 저렇게 심각한 사건에 징역 1년이 선고될까 싶지만 실제로 재판을 거치다 보면 여러 사정이 생깁니다. 그중 양형에 많이 반영되는 것은 피해자와 합의입니다. 상당한 보상을 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할 경우 선고형이 달라집니다.” 합의를 둘러싼 2차 가해도 일어나지만 피해자에게 합의는 중요하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온라인에 남아 있는 흔적을 삭제하는 데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합의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합의 과정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범죄자에게 지우지 않은 죗값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얼마 전 <경향신문>은 성범죄를 대하는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현직 판사들을 익명으로 인터뷰해 성범죄 가해자 위주의 판결이 나오는 절차상 허점을 짚어냈다. 기사에 따르면 판사들에게 사건이 분절되어 오기 때문에 단편적인 기록만으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사건으로만 판결한다는 공정성을 향한 노력이 사건의 심각성을 가리는 것이다. 또한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면 피해자를 법원에 부르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는 절차도 짚었다. 2차 가해를 우려한 배려가 피의자들이 자신을 적극 변호할 기회가 되고 판사들은 피의자의 서사에 더 주목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동안 법원이 피의자들에게 초범이라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서, 심신이 미약해서 같은 세심한 이유로 감형해준 이유가 어느 정도 보이는 셈이다. 판사들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몰이해,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 역시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우리가 품은 의심은 모두 합당했다.

    왜 여성을 둘러싼 성범죄 처벌 수위가 낮을까. 이 질문은 결국 왜 여성을 둘러싼 범죄를 처벌할 법이 없는가로 이어져야 한다. ‘누구 하나 죽어야 법이 생긴다’는 말은 슬픈 표현이지만 법은 그렇게 삶을 반영해왔다. 사건 당사자의 이름을 붙인 법은 고통스러운 환기이자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요즘 가장 심각한 범죄로 여겨지는 스토킹,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가정 폭력 등은 과거에는 범죄로 여겨지지 않았다.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은 너무 사랑해 일어나는 일이었고, 불법 촬영은 한창 자라는 남자들의 호기심으로 여겼다. 그러고 보면 스무 살 때 남자 친구는 내 사진을 온라인 사이트에 올려 품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도, 나도, 사회도 범죄라 부르지 않은 탓이다. 매일 일어나는 여성 관련 범죄에는 여전히 죄목이 없다. 스토킹은 경범죄, 주거침입죄에 머물러 있다. 옆 건물 가스 배관을 타고 샤워하는 모습을 훔쳐봐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집 앞에 서 있어도 벌금 10만원이 부과된다. 강간죄의 경우 폭행 또는 협박을 증명하지 못하면 인정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 역시 특별한 법이 없어 폭력 혹은 성폭력 등 유형별로 접근해야 한다.

    ‘여성을 둘러싼 범죄에 대해 처벌이 약하다’에 우리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건 단순히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상식에 반하기 때문은 아니다. 피해자가 고통을 받았으니 가해자는 더 큰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복수만 의미하지도 않는다. 여자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어떤 행위가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우려다. 그러니까 솜방망이 판결은 성 착취 동영상을 찍어도 된다고, 성매매를 해도 된다고, 매일 전화로 폭언을 해도 된다고, 여자 집을 훔쳐봐도 된다고 여기게 한다. 법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 인식을 지배한다. 무엇을 범죄로 규정하는가는 그래서 중요하다. 친고죄가 폐지된 후로 성폭력 신고가 월등히 증가했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후로 부장님들은 더 이상 여직원 허리에 손을 두르고 블루스를 추지 않는다.

    4월 23일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 촬영물을 소지만 해도 처벌하고 의제 강간 연령을 높이는 등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막기 위한 실질적 방법이 다수 포함됐다. 분명 진일보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인 여성을 위한 대책은 없었다. 이은의법률사무소 이은의 변호사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동, 청소년에 대한 보완은 되었지만 성인 여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책이 없어요. 궁극적으로 n번방 사태는 아동·청소년법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에요. 현행 아동·청소년법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존재는 했습니다. 현재 처리된 법안은 대개 있는 법에 기반해 보완하고 덧댄 것이죠.”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성인 피해자들이 보호받을 길은 요원하다. “성인 여성이 얼마라도 돈을 받고 성 착취 동영상을 촬영한 경우 기존 법률에서는 처벌할 법이 없어요. 대표적으로 양예원 씨 사건이 있어요. 비공개 촬영회는 사진 촬영을 핑계로 여성 모델들에게 원치 않는 포즈와 노출을 요구하고 결국 그런 사진을 유포했지만 사진 유포자 외에는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

    현재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1만5,000건이 넘는다. 여성 관련 법안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보그> 6월호가 발간될 때쯤이면 모두 폐기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은 무엇인가, 시급하게 제정해야 하는 법은 무엇인가 물었을 때 이은의 변호사는 반문했다. “지금 디지털 성범죄가 화제니까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지지만 디지털 성범죄가 여성들을 가장 위험에 처하게 하는 문제인가요? 아니면 여성을 때리는 게 더 문제인가요? 그렇다면 여성을 때리는 게 디지털 성범죄보다 급한 문제인가요? 상황과 경우에 따라 다를 거예요. 더 중요한 문제는 없어요. 덜 중요한 문제도 없습니다. 모두 시급하죠.” 이은의 변호사는 여성을 위한 법의 부재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밝혀진 건 굉장히 많은 성인 여성이 공분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성범죄 사건을 살펴보며 사실 크나큰 무기력을 느꼈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텐데, 모두 잊힐 텐데. 하지만 변화의 꼭짓점마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있었음도 분명히 확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글이 올라오고 동의가 더해지고, 손 팻말 시위도 힘을 보탠다. 트위터에서 해시태그를 달고 퍼져나가는 문구를 떠올린다. 고운 능소화 사진 아래도, 떡볶이 사진 아래도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란다’, ‘#n번방 가입자 전원 처벌’이 달려 있다. 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자들에게 목소리가 닿을 때까지. 지겨워서 진저리 칠 때까지. 우리를 위협하는 행위를 처벌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목소리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왔다. 법은 늘 귀도 입도 없는 철옹성이었다.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권위를 부렸지만 이제 우리는 변화를 위해서는 법을 얘기해야 함을 알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이 사라지길 바란다. 또한 ‘말 그대로’ 솜방망이 처벌이 사라지길 바란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봉에서 유래했는지, 맞아도 아프지 않은 처벌을 비유했는지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표현되는 순간 심각한 범죄가 별것 아닌 일처럼 여겨진다. 불법 촬영인 몰카가 장난으로, 성 착취 동영상인 야동이 취미 생활처럼 느껴지듯 말이다. 언어는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솜방망이는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한 노란색 야생화와 고양이의 앞발에만 허락했으면 한다.

    피처 디렉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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