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사진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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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사진의 미래는?

2020-06-30T07:51:04+00:00 2020.06.30|

카메라와 피사체가 마주할 수 없는 시대에 패션 사진은 어떻게 될까. 바이러스가 바꾼 2020년 패션 이미지를 둘러싼 새로운 프레임.

“이미 모델들에게 프리폴 의상을 DHL로 보냈어요. 지금도 제 아이폰으로 모델이 직접 찍은 이미지를 보내오고 있어요.” “그 사진을 책에 실을 수 있나요? 화질이 걱정되는군요.” “아마 콜라주처럼 작업하거나 새로운 아트 워크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죠.” 지난 4월 전 세계 <보그> 에디터들은 ‘줌(Zoom)’ 화상회의에 참석해 각자 일하는 방식을 공유했다. 주제는 자명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일할 것인가.” 한국과 대만, 홍콩을 제외한 국가의 촬영은 일시 정지 중. 각 나라의 에디터들은 사진가 없이 화보를 찍고, 지면을 채울 이미지 제작 방법을 고민했다. 그중 어느 에디터는 슈퍼 모델들에게 옷을 보내 그들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패션 화보를 대신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지금으로선 우리에게 남은 옵션은 그것밖에 없어요.”

<보그>에 처음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한 1913년부터(이전엔 일러스트레이션이 대신했다) 지금까지 패션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든 사진가와 피사체인 모델이 한 공간에서 교감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 패션 사진. 옷을 입힐 에디터,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아티스트와 어시스턴트 부대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때로 여행도 필수였다. 뉴욕의 모델과 사진가를 위해 서울에 있는 에디터가 날아가거나, 스태프 모두가 뉴질랜드의 끝과 파리 외곽의 농장으로 향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별안간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간의 법칙에 제동을 걸었다. 더 이상 국경을 넘나드는 비행은 불가능했고, 불특정 인원이 한 공간에 모일 수도 없다. 아무리 전용기를 거느린 슈퍼 사진가와 슈퍼 모델, 슈퍼 스타일리스트라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시대가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맨 먼저 비명을 지른 건, 매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야 하는 패션지 관계자들이었다.

백지 커버를 선보인 이탈리아 <보그> 4월호는 기존 콘텐츠를 모두 거뒀다. 대신 지금의 현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보 ‘Far Away So Close’ 역시 급박하게 완성했다. 사진가 브리아나 카포치(Brianna Capozzi)와 스타일리스트 헤일리 울렌스(Haley Wollens)는 페이스타임을 통해 만났다. 피사체는 집에 머물고 있던 벨라 하디드. “촬영 전날 저와 헤일리는 페이스타임을 통해 포즈를 테스트했어요. 이건 평소 과정과 같아요. 단지 휴대전화 액정이라는 한계만 달랐죠.” 사진가인 카포치는 새로운 방식의 촬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전날 피팅과 포즈, 조명 등을 테스트한 이들은 다음 날 촬영을 위해 다시 노트북과 휴대전화 앞에 모였다. 벨라의 친구 로렌 페레즈(Lauren Perez)가 급히 주문한 ‘링 조명’ 앞에서 벨라가 포즈를 취하면 카포치와 울렌스가 디렉팅을 하는 방식. “벨라는 직접 헤어와 메이크업을 완성했고 훌륭했어요. 벨라가 슈퍼 모델로 꼽히는 데엔 다 이유가 있죠!”

스크린을 매개체로 한 촬영은 새로운 매뉴얼이 되었다. <i-D>는 사진가 윌리 반데페르(Willy Vanderperre)가 페이스타임으로 촬영한 톱 모델을 커버로 사용했고, 미국 <GQ>는 할리우드 스타가 직접 집에서 찍은 이미지로 화보를 완성했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위해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죠.” 미국 <GQ> 편집장 윌 웰치(Will Welch)는 <뉴욕 타임스>에 이유를 밝혔다. “격리 중인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새 이미지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미국 <보그>는 전 세계에 자리한 패션 & 문화계 인물로부터 직접 받은 이미지만으로 한 권을 채웠고, 호주 <보그>는 줌을 통해 호주 대륙 반대편에 있는 모델과 화보를 진행했다.

드론이 사진가의 역할을 대신한 경우도 있었다. 거장 사진가와 대형 세트, 영화 조명 등을 사용한 이미지로 유명한 미국 <베니티 페어> 팀의 아이디어였다. LA 저택의 정원에 미리 세팅된 옷을 입고 코미디 배우 캐서린 오하라(Catherine O’Hara)가 서 있으면 거리를 두고 자리한 스태프가 드론을 통해 그녀를 촬영한 것이다. 같은 달 표지를 장식한 자넬 모네이(Janelle Monáe) 이미지는 사진가 콜리어 쇼어(Collier Schorr)가 줌을 통해 촬영한 것이다(이번 달 <보그 코리아>에서 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사진의 진보는 기술과 창의력에 달려 있죠.” <베니티 페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키라 폴락(Kira Pollack)은 6월호 준비 과정에 대해 이렇게 추억했다.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이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변하면서 이제 새로운 문이 열릴 겁니다.”

패션 매거진뿐 아니라 상업 패션 광고를 촬영하는 시스템도 바뀌고 있다. 자라(Zara)는 톱 모델에게 신제품을 보내 직접 이미지를 촬영하도록 유도했고, 그 결과물은 오히려 고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자신의 거실에서 촬영한 프레야와 말고시아 등의 톱 모델은 자연스럽기에 더 근사하다. 미국의 캐주얼 브랜드 버슬(Bustle) 역시 ‘셀카’를 광고로 사용했다. 할리우드 배우 쉐일린 우들리(Shailene Woodley)가 데님 팬츠를 입고 누워 있는 이미지다. 자크무스(Jacquemus) 역시 벨라 하디드를 페이스타임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광고 캠페인으로 활용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도 색다른 촬영에 대한 경험은 늘 있었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유행과 함께 2009년 12월 스티븐 마이젤은 모델들이 직접 찍은 ‘셀카’ 이미지를 이탈리아 <보그> 커버로 사용했다. 최근엔 사진가 머트와 마커스 듀오가 가상의 모델로 화보를 촬영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까지의 도전이 실험에 불과했다는 것. 완벽한 이미지에 익숙해진 ‘오디언스’가 흐릿한 화질의 패션 이미지에 언제까지 만족할지는 모를 일이다.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정교하게 작업을 더하고, 스타일리스트가 재킷 위치를 조절하지 못하는 촬영의 결과물은 결국 비슷할 수밖에 없다. 사진가 카포치 역시 코로나가 사라지면 결국 모두 평소 촬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간의 본성은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죠.”

“줌이나 스카이프를 비롯한 도구를 사용해서도 멋진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선구자에 가까운 사진가 닉 나이트(Nick Knight)는 최근 새로운 이미지를 부탁하는 광고주가 늘었다고 <WWD>에 말했다. “사진의 화질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어떤 것이 인정할 만한 이미지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모델들과 화상 통화를 통해 촬영한 이미지라도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입니다.” 그는 단순히 페이스타임이 아니라, 3-D 스캐닝을 비롯한 신기술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가 패션 사진을 바꿀 것인가”, “페이스타임을 통한 패션 촬영”, “패션 사진가와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맞고 있다”. 최근 패션 전문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기사 제목이다. 패션계 모두가 마주한 이 불확실한 미래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어떤 순간을 기록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