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들이 이야기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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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들이 이야기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2020-07-01T08:27:37+00:00 2020.07.01|

디자이너들은 늘 동식물계에서 창작의 힌트를 얻어왔다. 패션계에서 지속 가능성을 향한 관심도가 높아지자 그들은 자연에서 보다 실용적이고 원초적인 형태의 영감을 이끌어낸다.

맹렬하게 몰아치는 폭풍 구름과 사나운 바다 그래픽을 상영한 발렌시아가 2020 F/W 컬렉션 무대.

열정적인 환경 운동가, 맨발로 자연을 느끼는 사람, 친환경을 부각시키는 기업광고 마니아, 화산 애호가, 양봉가, 바다와 강 수영을 즐기는 사람, 진흙탕 레슬러 등 한때 별나게 여겨지던 다양한 열정이 이제는 창의적인 작업에 영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지구의 세세한 미생물학적인 것들부터 흥분 넘치는 극단의 것들까지 지구와 우리의 원시적 관계를 분명히 표현하고, 이는 패션계에 스며들고 있다. 식물성 염료가 합성 네온을 대체하고 조이는 끈과 라피아 스티치 장식, 정갈한 솔기보다 들쑥날쑥한 테두리를 선호한다. 아열대 잎사귀, 야생동물 혹은 멸종 위기종을 접목하지 않고서는 컬렉션이 마무리되지 않는 듯하다. 발렌시아가의 코알라,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의 수마트라 호랑이, 발렌티노의 열대식물과 원숭이, 돌체앤가바나의 얼룩말이 그 예다. 생물 다양성 전문가, 탐험가들, 보존 생물학자, 조경 및 야생동물 사진작가들이 이 심오한 변화의 주역이다. 동물학자이자 영화감독인 데이비드 아텐버러(David Attenborough)는 ‘만찬 손님으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 순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연과 그 자연을 추종하는 소비자들(아마도 미우미우의 가장자리를 박음질하지 않은 패치워크 슬립 드레스, 디올의 허수아비 밀짚모자 또는 루이 비통의 레이스업 웰링턴 부츠 같은 것을 착용하고 싶어 할 것이다)은 패션이 환경 보호주의의 힘을 느끼면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관행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데 영감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 탐구’는 솟구치며 흐르는 강, 꽃의 요정, 수양버들 등 낭만적인 분위기로 꾸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가공할 아름다움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존경을 드러낸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4억 톤가량을 배출하고 생태계와 농지를 파괴한 호주 산불은 그 주제를 비극적으로 전면에 끌어올렸다. 사향쥐캥거루와 오리너구리, 잎꼬리도마뱀붙이와 코알라가 곤경에 빠지자 기부금 수백만 달러가 모였다. 특히 포뮬러 원과 프로 테니스 선수들, 패션계와 언론사가 거액을 쾌척했다.

자연에서 사랑을 나눈 것뿐 아니라 자연과 사랑을 나누어본 적 있었나? 오랫동안 성인용품 숍에 빠져 있던 크리스토퍼 케인은 2020년 에코섹슈얼(Eco-sexual) 운동을 구체화했다. 에코섹슈얼은 식물, 토양, 물 등과의 교감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의식에 탐닉하는 대자연 애호가를 뜻한다. 채소밭에서 괭이질하기, 이국적인 꽃 속에서 명상하기, 나무에 매달려 공중 요가하기 등을 비롯한 여러 ‘난해한’ 행위는 추종자들이 찬양하는 몰입형 경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몇 년 전 에코섹슈얼 운동에 관해 읽었죠. 자연에 대한 사랑이 성적 욕망처럼 뿌리 깊고 본질적이라는 생각에 많은 호기심을 느꼈어요.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 테마 ‘자연’과 성적 행위’를 디자인에 응용하면서 에너지가 솟는 게 느껴졌죠.” 케인이 말했다. 과일 프린트가 가미된 옷. 몸통이 드러나는 타바드(Tabard) 스타일의 미드리프 톱 꽃무늬 드레스를 상상해보라. 또는 흐릿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체가 그려진 타조털 장식 시프트 원피스는 어떤가?

기후변화 대응 운동이 지구 전체의 정치·경제적 의제를 장악하는 동안 수많은 디자이너처럼 케인도 영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뒷마당’을 바라보며 그 위기와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낙관적 견해를 제시했다. 데이지꽃과 미나리아재비가 군데군데 피어 있는 봄날의 초원을 담은 밝은 디지털 프린트가 이번 컬렉션의 중심 주제로, 케인의 아트 디렉터가 런던의 복원된 자연을 돌아다니면서 촬영한 것이다.

“종종 자연의 환희와 힘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연 속의 강력한 순간이 필요하죠. 이를테면 일몰 같은 것 말이에요. 저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흔하디흔한 데이지꽃이나 여름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죠.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들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머릿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자연을 얼핏 보기만 하면 정신이 온통 그쪽으로 쏠린다니까요. 바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단순한 대상인 거죠.” 케인은 자신이 얻은 통찰에 대해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화분에 심은 화초를 누군가의 머리에 올려놓으니 간결하면서도 눈부실 정도로 우스꽝스러웠다. 파리 패션 위크에서 느와(Noir)의 케이 니노미야(Kei Ninomiya)는 보태니컬 아티스트이자 식물 조각가 마코토 아주마(Makoto Azuma)와 협업해 이번 시즌 초록빛이 가장 도드라지는 머리 장식을 완성했다. 살아 있는 선인장으로 만든 베레모, 보스턴줄고사리로 만든 모히칸 헤어, 이끼류로 만든 마스크 등을 선보인 것이다. 하나하나 다양한 튤 재질로 성기게 짜서 만든 거대한 드레스를 걸친 모델들은 미래에서 온 이교도 여신처럼 보였다. 특히 이끼 같은 초록색 튤과 울을 사용한 독특한 질감의 후드 트라페즈 코트를 입은 모델은 신록으로 뒤덮인 언덕 같은 모습이었다. 니노미야는 자신의 멘토 레이 가와쿠보처럼 ‘해석’을 기피하지만, 그가 보여준 독특한 아름다움은 원시적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케이트 스페이드 역시 화초를 찬양하는 또 다른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글라스(Nicola Glass)는 모델들에게 새로운 에센셜 아이템으로 숄더백과 함께 실내용 화분(고무나무부터 칼라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했다)을 들게 했다. 갈색 종이로 싼 꽃을 들고 런웨이에 오른 모델들도 있었다. 한편 지암바티스타 발리 패션쇼에서는 모델들의 얼굴을 레이스로 만든 꽃잎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수백 년간 패션에서는 ‘여성의 꽃에 대한 비유’를 활용해왔다. 그리고 20세기 브랜드 혁명 시기에 그 정점을 찍었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카멜리아, 즉 동백꽃을, 크리스찬 디올은 은방울꽃을, 후에 알렉산더 맥퀸은 장미를 품었다. 그렇다면 화초는?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은 19세기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적 풍경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 속 여행가들만큼 나약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극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에코 패션 옹호자 마린 세르는 ‘해양 오염(Marée Noire)’이라 명명한 컬렉션에서 환경적 종말에 대한 악몽 같은 비전을 제시했다. 모델들은 황폐한 야외처럼 꾸며진 런웨이에 업사이클 블랙 테크노 나일론 소재 의상을 입고 등장한 것이다.

맹렬하게 몰아치는 폭풍 구름과 사나운 바다 그래픽을 상영한 발렌시아가 2020 F/W 컬렉션 무대.

하지만 패션은 태생적으로 긍정적이다. “우리 모두 환경 위기가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죠. 그래서 그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판매와 마케팅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되죠.” 리시 헤리브르(Lisi Herrebrugh)가 말했다. 그녀는 루시미 보터(Rushemy Botter)와 함께 니나 리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다. “진솔하게 그 위기에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카리브해에서 자란 우리는 산호초가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상업적 트롤 어선이 해안가 어부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목격했죠.” 보터가 말했다. 이에르 페스티벌 수상작인 그들의 2018 컬렉션에서 모델들은 어망과 고무보트 같은 바다 쓰레기를 몸에 휘감고 있었다. 케인처럼 그들도 ‘설교’하기보다는 시적이고 긍정적인 프레임을 통해 환경을 해석하려고 애썼다. 이번 시즌 그들은 파리 런웨이에 카리브해에 닥친 폭풍우를 연상시키는 폭포 벽을 설치했다. 튤과 오간자 드레스는 적운(積雲)과 닮아 있었고, 자연 분해되는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비치 버킷 모자 위에는 열대 꽃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정서적 반응이에요. 휴가객들은 종종 비를 반가워하지 않죠. 하지만 폭풍이 지나간 뒤 불어오는 신선한 산들바람은 정말 근사해요. 그리고 비 온 뒤 모든 것이 성장하죠.” 루시미가 덧붙였다.

패션을 선도하는 이들 중 일부는 자연 전문가이기도 하다. 크리스챤 디올 남성복 아트 디렉터 킴 존스는 열성 넘치는 야생동물 관찰자다. 스타일리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인 제리 스태포드(Jerry Stafford)는 열정적인 조류학자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아이리스 반 헤르펜은 생태학과 미생물학에 매료되어 자신이 배운 것을 천상의 ‘키네틱’ 드레스로 탄생시켰다. 그녀는 1월에 발표한 오뜨 꾸뛰르 컬렉션 ‘감각의 바다(Sensory Seas)’에서 선보인 수중 유기체의 지속적이고 미세한 움직임을 반영하여 미세하게 진동하는 밀푀유 드레스를 통해 해양 생태학을 탐색했다.

생명공학은 피부 관리, 영양 섭취, 심지어 저녁 모임의 대화 주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적어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가 격리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제는 채집한 버섯 요리를 먹으면서 장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요리가 도디 세이어(Dodie Thayer)가 디자인한 양배추 접시에 담겨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피부(박테리아 보호막) 표면의 미생물을 보호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세다.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 오베다(Orveda)가 이 부문의 선두 주자다. “우리는 플라스틱, 동물 성분, 황산염, 비누, 미네랄 오일, 알코올, 합성색소는 거부해요. 미생물 발효란 자연에서 얻어내기보다 지속 가능한 분자를 만들어내는 거죠.” 로레알 CEO 출신으로 2017년 오베다를 설립한 수 유세프 나비(Sue Youcef Nabi)가 말했다.

천연자원을 파괴하는 대신 자신의 것을 일구는 것이 달성 가능한 목표다. 스텔라 맥카트니를 비롯한 여러 디자이너들은 빠르게 증식하는 곰팡이 균사체, 거미줄, 조류(藻類)와 식물성 물질로 만든 지속 가능한 섬유를 개발하기 위해 대체 물질 연구소 볼트 스레드(Bolt Threads)와 협업한다. 전 세계 방방곡곡에 선구자들이 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에는 부부 오기시(Bubu Ogisi)가 있다. 아이아미시고(Iamisigo)의 디자이너인 그녀는 떨어진 나무껍질을 가공해 독창적인 랩 스커트와 튜닉을 만든다. 일본 디자이너 마이코 구로고우치(Maiko Kurogouchi)의 브랜드 마메 구로고우치(Mame Kurogouchi)는 섬세한 레이어드 드레스로 유명하며, 도쿄 아틀리에에서 직접 누에를 키우기도 한다. 실크 만드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저는 자라면서 패션 잡지나 텔레비전을 많이 보지 않았어요. 자연이 제 선생님이었죠.” 일본 나가노현에서 자란 마이코가 말했다. 이에 어울리게도, 그녀의 애칭은 ‘콩’을 의미하는 ‘마메’다.

윤리적 패션 브랜드 판게아(Pangaia, 판은 포괄적인, 그리고 게아는 대자연을 뜻한다)에서는 전 세계 과학자와 디자이너가 힘을 합쳐 오가닉 코튼 후디, 티셔츠, 트랙 팬츠 등 다양한 옷을 만들었다. 이 제품은 식물과 과일, 채소(음식물 쓰레기) 등 천연자원을 염료로 사용했다. 실제로 이 브랜드의 패딩 재킷은 오리털과 거위털 대신 야생 꽃으로 만든 자연 분해 물질 ‘플라워다운(Flwrdwn)’으로 충전했다. 게다가 제품이 한 벌씩 팔릴 때마다 맹그로브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과 같다.

자연의 잔해물은 어느 때보다 큰 인기다. 라피아 섬유를 사용한 자수, 조개껍데기(나누슈카의 벨트를 장식하고 있다), 밀짚 그리고 밧줄은 여름에 특히 사랑받는 천연 소재다.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크로셰 드레스에 크리스털로 마술을 부렸다.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그녀는 뉴욕 패션쇼에서 다양한 빛깔의 마노로 크로셰 드레스의 목 부분을 장식했다. 최근 패션쇼는 자연을 향한 디자이너들의 사랑이 전혀 식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샤넬은 지난 1월에 열린 오뜨 꾸뛰르 패션쇼를 위해 그랑 팔레 내부에 무성하게 자란 로맨틱한 정원을 조성했다(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도원을 재현한 것이다). 3월에 열린 발렌시아가 2020 F/W 컬렉션 무대는 침수된 듯 물바다가 된 영화 스튜디오에서 열렸는데, 천장에서 맹렬하게 몰아치는 폭풍 구름과 사나운 바다 그래픽을 상영했다.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던 세대가 눈표범 가죽 재킷을 걸치거나 진짜 상아 헤어핀(아시아의 코끼리 상아 거래는 1975년 금지되었다)을 과시하듯 착용하고, 신박함이 사라지자 애완용 악어를 화장실 변기에 내려 버리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듭 공예인 마크라메(Macramé) 화분 걸이(지역 직조공이 만든)와 하바리움(Herbarium) 인테리어, 샐러드로 만들 샘파이어(Samphire)를 따러 다니는 모임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물론 자연이 패션의 대세 모티브지만 사람에 따라 소재도 작품도 달라질 것이다. 원유, 데이지꽃, 선인장 머리 장식, 그 결과물이 무엇이든 대자연이 지금 패션계에서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