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엔 빨간 머리 어때?

Beauty

올여름엔 빨간 머리 어때?

2020-07-08T19:32:46+00:00 2020.07.13|

블랙보다 강한, 블루보다 열정적인, 블론드보다 관능적인! 세대 초월, 붉은 머리의 유혹.

새빨간 드레스와 왼손에 낀 반지는 디올(Dior), 목걸이는 소피 부하이(Sophie Buhai).

지난해 10월 2020 S/S 파리 패션 위크 마지막 날. 루이 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쇼의 오프닝 모델 마리암 드 뱅젤에게 레드 립을 하사했다. 하지만 피날레 행렬이 무대를 떠나는 순간까지(어쩌면 지금까지도) 마리암의 입술보다 더 관심이 뜨거운 건 런웨이 배경인 LED 화면을 가득 채운 프로듀서 겸 DJ 소피 제온의 새빨간 머리였다.

완벽한 레드에 대한 갈망은 어느 날 느닷없이 불쑥 찾아온다.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경우가 그렇다. 완전한 향을 만들고자 했던 주인공 장바티스트가 향수의 마지막 원료로 낙점한 여인 로라는 빨간 머리였다. 장바티스트가 살인죄로 단두대에 섰을 때 로라의 체취를 더해 완성한 향수를 얼굴에 뿌리자, 앞에 있던 군중들은 서로를 애무하며 사랑의 향락을 드러낸다. 금발의 레이첼 허드 우드를 붉게 염색시킨 톰 티크베어 감독은 원초적 유혹이자 사랑, 페로몬이 응축된 빨강의 전말을 꿰뚫어 본 걸까?

그레이스 코딩턴, 카렌 엘슨, 릴리 콜, 막달레나 야섹, 나탈리 웨슬링, 더 거슬러 올라가면 린다 에반젤리스타, 시빌 벅… 시대마다 패션모델과 패션 아이콘들은 관능적이고 천진난만한 붉은 머리로 독보적 분위기를 내뿜었다(용이 입으로 불길을 토해내듯 ‘내뿜었다’는 표현이야말로 빨간 머리 표현에 적절하다). 이 레드 헤어의 매력은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하다. 빨간 머리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모델 정호연의 헤어 스타일리스트 애브뉴준오 김가영 원장을 만났다. “출국 며칠 전 새로운 시도를 원한다고 하기에 우리는 해외 에이전시와 상의도 없이 레드 염색을 감행했어요. 뉴욕에 도착해 현지 에이전트들의 반응을 확인할 때까지 마음 졸였죠. 에이전시 대표가 ‘호연, 너의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천재야!’라고 보낸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그 뒤 과감해져 점점 더 진한 레드로 염색했어요(웃음). 돌이켜보면 호연과 별의별 빨강은 다 시도해본 것 같아요. 아, 오렌지빛 코퍼 레드만 빼고요. 긴 해외 활동 기간에 볼품없는 오렌지색으로 변할까 봐 손댈 수 없더군요.”

뉴욕에서 런던, 밀라노, 파리까지 패션 위크를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동안에도 정호연의 새빨간 머리는 눈에 띄었다. 쉽게 색이 바래는 레드 염색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랜선 염색’이다. “색이 탁해졌을 때, 노란빛이 올라올 때 등등 상황별로 필요한 염색제를 소분해 전해줬어요. 페이스타임으로 자주 헤어 상태를 점검하고 적절한 처치법을 알려주는 일도 제 몫이었죠. 그러면 호연은 샤워할 때 염색제를 샴푸하듯 사용해 스스로 ‘AS’하고요. 지금은 셀프 염색의 귀재가 됐어요!” 자라는 까만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근 쪽은 레드 대신 어두운 컬러로 그러데이션하듯 연결해 자연스러움을 살렸다는 조언부터, 붉은 머리로 변신시켜달라고 찾아온 모델들, 후배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다급하게 전화해 염색약 레시피를 물어봤다는 일화까지. 그야말로 정호연이 쏘아 올린 ‘레드 헤어’ 후일담이 이어졌다.

“얼마 전 검은색으로 셀프 염색했는데, 괜찮을까요?” 이번 기사를 위해 레드 염색을 감행한 모델 선윤미는 미용실에 오자마자 걱정을 토로했다. 뉴욕에서 돌아와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던 시기, 타고난 짙은 갈색 모발을 검게 덮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염색 중 가장 되돌리기 힘든 컬러가 블랙이라는 사실. 심지어 셀프 염색용 버블 염모제는 더 강적이다. “쨍한 레드 염색도 아니고 모발도 가는 편이니 탈색 한 번이면 가능할 것 같아요. 3시간 30분쯤 걸리겠군요.” 아이돌 헤어의 대가 룰루 헤어 & 메이크업 스튜디오 소윤 부원장의 첫마디에 안심했다. 하지만 시술대에 오른 선윤미의 블랙 헤어는 처참했다. 첫 번째 탈색을 마무리했음에도 얼룩덜룩 남아 있는 검은 머리의 공격에 나와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입이 떡 벌어졌다. 탈색제 덧바르기를 수차례, 샴푸하고 처음부터 다시 바르는 것은 물론, 약물 흡수를 높일 따뜻한 스팀까지 가세한 끝에 드디어 라푼젤처럼 유려한 블론드 헤어를 마주했다. 장장 6시간! 여기에 붉은 염모제 처치까지 하고 나서야 고대하던 레드 헤어가 짠 하고 나타났다.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해외 활동 중 염색에 대한 제약이 있어 늘 일자로 자를지, 층을 내어 자를지 고민하는 지루한 과정의 반복이었거든요. 제대로 일탈한 기분이에요.” 정확한 감상평이다. 사실 헤어 변신만큼 기분 전환에 효과적인 것은 없다. 커트나 펌으로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 2%까지 뻥 뚫어주는 통쾌함이란! 거기에 강렬한 레드라니.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두아 리파는 지난달, 한동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금발에서 딸기 셔벗처럼 앙큼한 핑크빛 레드 헤어로 변신했다. 모델 겸 배우 장윤주 역시 이달 초 영화 촬영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머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염색에는 거스를 수 없는 규칙이 있다. ‘아이린=레인보우 헤어’ 공식을 만들어낸 ‘염색의 신’ 우선 헤어 & 메이크업 김선우 원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아이린 헤어는 즉흥적인 색 조합인 것 같지만, 모발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다음 염색 컬러까지 미리 정해놓을 만큼 철저하게 계산된 스타일이에요. 특히 동양인의 검은 모발에는 붉은 색소가 많아서 자칫 레드 염색 후 다른 컬러로 바꾸기 힘들 수 있어요. 불가피한 탈색까지 여러 번 해야 하니 모발 손상도 심해지고요. 레드 염색을 마음먹었다면 다음에는 한 템포 쉬어간다는 마음으로 헤어 컬러를 결정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레드와 애시 컬러는 상극이다. 헤어 스타일리스트에게 붉은빛이 나지 않는 애시 컬러로 염색해달라고 신신당부해도 일주일 뒤 스멀스멀 올라오는 빨간 기운을 경험했다면 단번에 이해할 거다. “아이린이 오랜만에 레드 염색을 했을 때였어요. 며칠 뒤 해외 광고주가 헤어 컬러를 연보라색으로 바꿔달라 요청하더군요. 도대체 탈색을 몇 차례나 했는지 몰라요. 색을 완벽히 맞추기까지 머리가 고생 많이 했죠.” 고원 헤어 스타일리스트 최고는 컬러 선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염색 전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충분히 상의하세요. 피부 톤, 눈동자의 색뿐 아니라 내가 메이크업을 자주 하는 편인지, 옷은 화려하게 입는지 등등. 전체 분위기에 맞춰 컬러를 정하는 노련함이 필요합니다.” 과감한 레드 염색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소윤 부원장은 전체가 아닌 투톤 스타일을 제안한다.

찰나에 사라지는 레드 헤어 염색의 유효기간은 약 2주쯤이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선 찬물 샴푸를 견디고 드라이어의 뜨거운 열기(색이 금세 탁해진다)도 피해야 한다. 같은 이치로 한여름에는 모자를 쓰거나 모발 전용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추천한다. 컬러 코렉팅 샴푸를 사용하되, 그중 애시 염색만 보호하는 샴푸는 레드 헤어에 천적이니 주의해야 한다. 눈썹은 검은 톤만 살짝 없앤 브라운이 딱이다.

레드 헤어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뇌리를 관통하는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붉은 머리는 트렌드, 성별, 연령을 초월하는 마성의 무기다. 개성 만점의 MZ세대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유혹이 또 있을까? 마젠타, 카민, 크림슨, 버건디, 로즈 레드, 카드뮴 레드, 마호가니, 적갈색, 암적색…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레드가 당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