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스티브 J와 요니 P의 키키히어로즈

2023.02.20

by VOGUE

    스티브 J와 요니 P의 키키히어로즈

    서울 대표 디자이너 듀오 스티브 J와 요니 P의 대대적 변신! ‘키키히어로즈(KikiHeroes)’로 우리와 재회할 그들만의 리그.

    30년 된 염색 공장을 개조한 키키히어로즈의 크리에이티브 랩. 자연광이 쏟아지는 1층에서 배승연과 정혁서가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거대한 피규어는 키키히어로즈의 첫 캐릭터 ‘Ape the Great’.

    2011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노란색 띠지를 두른 책을 폈다. 콧수염이 난 남자와 속눈썹이 짙은 여자 드로잉의 표지는 유치원생이 그린 것처럼 삐뚤빼뚤했다. 정형화되지 않은 멋, 분방한 사고,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사진, 디자인 포트폴리오로 편집된 책을 나는 즉석에서 단숨에 읽었다. 그때만 해도 정혁서와 배승연 혹은 스티브 J와 요니 P라는 이름은 서울 패션계에 생소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인 지금. 정반대 상황이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국제적 패션 디자이너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런던으로 유학을 떠난 커플. 졸업 후 2006년 론칭한 브랜드가 탑샵에 진열되면서 런던 패션 위크에 데뷔했고,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수혜자가 되어 조국으로 금의환향한 스토리는 그들의 여러 인터뷰에서 고정 인트로로 쓰일 만큼 솔깃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효리, 윤승아 같은 셀러브리티의 절친이라는 사실도 브랜드의 명성과 대중화에 힘을 보탰다.

    물론 10년간 스티브J&요니P가 특별한 캐릭터로만 잘 알려진 패션 브랜드는 아니다. DDP 개관 후 모든 서울 디자이너들이 그곳에서 패션 위크를 열 때, 그들은 세운 대림상가 옥상에서 패션쇼를 감행했고,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 한남동 플래그십 스토어 한쪽에 보드 숍을 열어 새로운 취미의 확장자를 자처했다. 사실 스티브는 롱보드 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보드에 푹 빠졌는데,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보드는 컬렉션에도 영감을 줬으며 실제 프로 스케이트 선수들이 성수동 창고에 마련된 런웨이를 누빈 적도 있다.

    키키히어로즈는 인형, 러그, 휴대전화 케이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라이프스타일 제품은 물론 의류까지 그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Ape the Great’의 캐릭터 인형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서울 디자이너 브랜드 중 맨 먼저 ‘See Now, Buy Now’를 도입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런웨이 생중계도 누구보다 먼저 시작했다. 2014년엔 합리적인 가격대에 데님 중심의 세컨드 브랜드 SJYP를 론칭해 국내외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SJYP를 위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데님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가로수길에 오픈한 SJYP 플래그십 스토어의 매출은 몇 배로 뛰었다. 여기에 메인 컬렉션 브랜드 스티브J&요니P와 세컨드 브랜드 SJYP를 SK네트웍스가 인수하며 그야말로 서울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렇게 10년간 ‘서울 최고’라는 수식어를 사수해온 듀오가 지난해 자신들의 이름을 딴 브랜드에서 떠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도전’이 절실했다. 오랫동안 그들의 타임라인을 지켜본 팬들은 허탈하기보다, 다만 언제 어떤 모습으로 귀환할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 선언 후 1년이 지난 지금, 듀오를 <보그>가 성수동에서 다시 만났다. 30년 된 염색 공장을 개조해 자연광이 2층 높이 지붕에서 환하게 쏟아지는 거대한 ‘크리에이티브 랩(Creative Lab)’. 그 공간에서 만난 그들은 여전히 밝고 에너지 넘쳤다.

    성수동 키키히어로즈 크리에이티브 랩 내부 전경.

    성수동 키키히어로즈 크리에이티브 랩 내부 전경.

    스티브가 직접 그린 그림이 빼곡한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듀오.

    패션이 아니라 캐릭터 브랜드로 컴백했습니다. 이 ‘리부팅’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요? 2006년 ‘스티브J&요니P’ 론칭 후 처음으로 안식년을 가졌어요. 하와이에서 한 달 휴가를 보내며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가장 행복했고 디자이너로서 성취감을 느꼈는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지 생각했어요.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보니, 우리가 캐릭터를 많이 개발했더군요. 협업의 빈도수만큼 경험도 많이 쌓였죠. 그래서 캐릭터라는 장르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패션 브랜드 경영과 캐릭터 개발을 접목했을 때 어떤 확신이 들었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면 그 자체로 도전이 될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키키히어로즈’라는 이름에 관해 묻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선 ‘키키(Kiki)’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가볍고 밝고. 여기에 영웅을 지칭하는 ‘히어로즈(Heroes)’를 붙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에서 위로를 받곤 하니까요. ‘일상의 영웅’ 같은 느낌? 우리가 공개한 캐릭터 중 가면을 쓴 남녀가 있어요. 노란 머리와 콧수염이 마스크 사이로 살짝 보이죠. 전에는 두 사람의 개성이 드러났다면, 가면을 쓰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모습을 담았어요.

    서핑에 영감을 받은 첫 캐릭터 시리즈 ‘Ape the Great’를 테마로 한 팝업 스토어와 대형 피규어.

    서핑에 영감을 받은 첫 캐릭터 시리즈 ‘Ape the Great’를 테마로 한 팝업 스토어와 대형 피규어.

    4년 전, 둘 사이에서 ‘시안’이가 태어났어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캐릭터 개발에 영향을 줬을 거예요. 아이가 우리 삶과 작업에 영감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뽀로로나 아기 상어를 하루에만 두세 시간씩 볼 정도니까요. 그래서인지 가끔은 ‘알아서 척척’ 캐릭터 공부가 되는구나 생각도 돼요(웃음). 하지만 키키히어로즈의 기본 방향은 스트리트 컬처, 아트의 혼합이에요. 패션과 음악,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브랜드가 될 거예요. 어린이 콘텐츠까지 확장하고요.

    두 사람과 함께할 스태프도 패션 브랜드 운영할 때와 다를 듯해요. 예전에는 디자이너를 먼저 스카우트해 디자인팀을 구성했어요. 이번에는 그래픽 디자인실을 먼저 조직했어요. 스티브가 캐릭터 원본 작업을 마치면 그래픽팀에서 캐릭터로서 그것을 구현하죠. 생산에서는 우리의 노하우를 잇고 싶었어요. 우리와 오래 함께한 제품 디자이너, 머천다이저, 생산팀을 스카우트했죠. 또 기존 패션 브랜드 마케터가 아닌 한국에서 캐릭터 사업을 운영한 인물도 합류했어요. 당대 흐름에 부합하는 3D나 AR도 구현하는 중이에요.

    야외에 설치한 농구 코트.

    야외에 설치한 농구 코트.

    키키히어로즈 건물 외부. 번개를 닮은 KK 로고가 눈에 띈다.

    키키히어로즈 인스타그램을 통해 캐릭터 ‘Ape the Great’를 공개했더군요. 우리 가족의 세계관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예요. 하와이에서 캐릭터 브랜드를 구성해 현지 문화에서 많은 요소를 따왔죠. 서핑을 좋아하는 아빠 파파이(Papai), 자연과 요가를 사랑하는 엄마 훌루이(Hului), 그들 사이에 태어난 네 살짜리 쌍둥이 남매 케오(Keo)와 아누(Anu)가 주인공이죠. 디즈니를 떠올리면, 하나가 아닌 도널드 덕, 미키 마우스 등 여러 캐릭터가 있듯 키키히어로즈 역시 에이프 더 그레이트를 시작으로 여러 캐릭터를 공개할 거예요. 키키히어로즈는 듀오에게 2020년형 새로운 도전입니다. 이에 비견할 만한 각자의 인생에서 중차대한 도전은 언제였죠? 도전을 많이 하다 보니, 딱 하나만 꼽기 어렵군요(웃음). 런던 기반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에서 서울로 돌아오기로 결정한 순간을 꼽고 싶군요. 런던에 머물 때는 오히려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디자이너로 보였겠지만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했죠. 도리어 서울로 돌아오자 더 글로벌한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후배 디자이너들과 해외 진출을 위해 더 힘을 쏟았죠(스티브).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런던으로 떠나던 순간이에요. 경제적으로 빠듯한 상황이었거든요(요니는 자신의 책에서 런던 도착 일주일 만에 식당에서 감자 깎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추억했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했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큰 ‘챌린지’였어요. 뭔가 이루지 못하면 한국에 돌아오지 말자는 심정이었거든요(요니).

    요즘 같은 시대에 브랜드 론칭은 쉽지만, 지속 가능은 쉽지 않죠. 스티브 J와 요니 P라는 인물 자체가 브랜드인데,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판단하나요? 우린 아직도 좋아하는 게 많아요. 가슴 뛰는 일이 많죠. 패션 브랜드를 운영할 때도 아트 바젤 쇼를 관람할 때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다른 방법으로 패션을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이런 가슴 뛰는 호기심이 늘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됐죠. 우리와 10년간 일하던 디자이너를 키키히어로즈 론칭할 때 다시 섭외했어요. “두 분은 아직 힘이 남았어요?”라고 전화로 되묻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기분 좋았어요. 우리를 수식하는 말 중 ‘게임 체인저’를 가장 좋아해요. 코스메틱 브랜드 맥(M·A·C)과 협업할 때 그들이 ‘게임 체인저 스티브 요니’라는 슬로건을 붙여줬죠. 이유를 생각해보니 우리는 10년간 매일 변화를 시도했고 판을 바꾸려고 노력했더군요.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열정이 솟는다는 말을 우리 둘이 자주 나눠요. 잘나가는 브랜드를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할 때 걱정하는 분도 있었죠. 우리가 뭘 하는지 모르는 분도 여전히 많아요. 하지만 우리 방식대로, 행동 그 자체로 스티브 요니의 창의적 비전을 보여드릴게요.

      패션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송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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