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의 제2막

Fashion

프라다의 제2막

2020-08-02T11:14:54+00:00 2020.08.03|

미우치아 프라다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을 창조했다. 이탈리아의 이 독창적 디자이너는 예술적 균형을 이룬 패션을 통해 ‘고상한 취향’이라는 개념과 여성다움의 표현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럭셔리 제품을 생산하는 가족 기업의 행보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토록 지적이고 사려 깊으면서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참여적이며 파급력 있는 재능을 지닌 미우치아 프라다는 타협 없는 자신만의 비전을 구축해왔다. 지난 7월 14일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2021 S/S 컬렉션은 그녀가 단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마지막 쇼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제 라프 시몬스와 함께 걷는다.

2021 S/S 컬렉션을 재해석한 요안나 피오트로프스카(Joanna Piotrowska), 윌리 반데페르(Willy Vanderperre),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 테렌스 낸스(Terence Nance) 작품의 스틸 컷.

본사 4층 사무실 장식은 유행과 상업의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방법을 떠올리게 한다. 벽에는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1967년 작품 ‘Five Doors’ 시리즈의 유화가 걸려 있는데, 이 그림은 열린 다섯 개의 하얀 문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문은 완전히 열려 있고 또 어떤 문은 조금씩 열려 있다. 작품 중에는 커다란 알루미늄 미끄럼틀이 있다. 이것은 독일의 다른 예술가 카르스텐 횔러(Carsten Höller)의 작품인데, 이걸 타면 마당까지 내려갈 수 있다(방문자들은 허락을 받고 탈 수 있지만 직원 한 명이 먼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며 인간 헝겊이 되어 모든 부스러기를 치워야 한다). 프라다 여사는 오른쪽에 있는 진짜 문을 통해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간다. 그녀는 푸른색 면 셔츠와 그와 잘 어울리는 긴바지를 입고 있다. 그 위에 짙은 청색 스웨터를 걸치고 검은색의 낮은 굽 모카신을 신고 있다. 종종 그녀의 지성과 헤아리기 힘든 면모로 신화화되기는 하지만 그녀는 정겨운 모습을 보여주고 간혹 즐거운 공모자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대답은 매우 간결하다. 때때로 질문을 차근차근 이어나가려는 나의 말을 중간에서 자른다. 우리는 임신과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그녀는 동류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경험을 나누려고 애쓰는 여성이 지닌 특별한 상냥함으로 나에게 조언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일은 없어요.” 미우치아는 아들이 둘 있는데 그중 하나인 로렌초 베르텔리는 프라다 그룹 마케팅팀을 관리하기 위한 시범적 교육과정의 이수를 중도에 그만두었다. 남편과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알려진 위험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 작업장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도 두 가지 성을 지배하는 관습을 시험하는 데 열중한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경력은 여성의 일상과 선택에 관한 긴 사유로 점철되어 있다. “제 인생을 통틀어 우리의 지성과 문화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은 3000년이 지나서도 계속 투쟁해야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2018년을 ‘여성의 해’라고 부르지만 여성은 최근에 획득한 권리라고 부적절하게 주장하는 것이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의미가 담긴 것인지 회의하고 있다. “여성의 지위에 대해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신체적 힘을 두려워해야 하는 위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매우 건장한 남자와 대면할 때 그가 우위를 점하는 것을 느낍니다. 신체적 힘은 큰 영향을 미치고 여성에게는 신체적으로 무력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맞을까 봐 두려워하지는 않을지라도 여성은 공격의 위험에 대해 의식하게 됩니다. 본능적 느낌인데 그것은 여성의 DNA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프라다가 나의 셔츠에 대해 칭찬했다. 그 셔츠는 그녀의 창작물이었는데, 등에 달린 단추로 잠그는 옷이었다. 나는 혼자 단추를 잠글 수 있는 한 자주 입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꽉 끼는 어깨와 단추 위치 때문에 도와줄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경우에만 그럴 수 있는 옷이었다. “옛날 여인이 되는 걸 즐기시는군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되는 것을 꽤 좋아해요. 둘이 하는 것은 기분이 좋죠. 매번 살아 있다는 걸 경험할 수 있는 쪽을 택합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변화하는 여성 의류의 미덕에 대해 지적 회의주의를 보여주었다. “힘은 머릿속에 있습니다. 옷에 대해서는 잊으세요. 그건 당신이 즐기고자 원할 때만 당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힘을 갖기를 원한다면, 섹시해지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늘 머릿속에 있습니다. 옷이 아니라요.” 그녀는 말을 멈췄다. “뭐, 좋습니다. 옷에 대한 선택 역시 머릿속에서 행해집니다. 당신의 선택은 당신 개성의 일부분입니다. 당신 생각의 일부고요. 볼품없는 집을 만드는 건축가를 신뢰할 순 없겠지요.” 이 말에 따르면, 아름다운 집을 소유한 건축가, 유행의 창조자인 그녀가 한 모든 일을 굳게 믿어야 한다. 컬렉션의 ‘진실성’이 중요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엄숙하게 동의했다. “한때 저는 컬렉션을 완전히 면직물로 구성한 적 있어요.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면직물을 다룰 수 없었고 그런 사실에 크게 짜증이 났지요. 그런 내 모습을 아무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죠.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무척 속상해했죠. 크게 낙심했습니다.”

‘진정성’은 오늘날의 문화에서 매우 퇴색한 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프라다는 그 말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매사가 매우 진지하거나 정직해야 했다. 그것이 사소한 일일지라도. 경박한 것이 큰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둔갑해서 팔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 프라다의 시각에서 사상은 깊이 있는 생각과 글을 통해 신중하게 숙고된다면 가치가 있다. 하지만 사상은 일시적 기분에 의해, 변화무쌍한 취향의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절대적으로 동기가 부여된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로 가치 있다. “모든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것이 진지하거나 당신에게 진정으로 감흥을 주는 것이라면 말이죠.” 창조를 위한 창조를 추구할수록 프라다의 컬렉션은 모두 의미 있는 개념, 즉 추함이나 품위 같은 유연한 관념을 향한 관심을 가진다. “저는 가끔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혐오하지만 다른 때는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느 한 디자인의 경우 지금 같은 계절에는 인기가 없지만, 다음 계절에는 확실히 인기를 끌 겁니다.” 그녀는 다음 패션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아마 저에게는 20일 정도 시간이 있는 거죠.”

프라다는 컬렉션의 마지막까지 공을 들이고 며칠에 걸쳐 마무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행의 끊임없는 순환은 모든 디자이너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매우 조직적인 곳에 소속된 디자이너라 할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쉼 없이 일한다. 언제부턴가 프라다는 패션 기업을 경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숙고하고 있었다. 예술 작업에서 뭔가 변화의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2016년에 출간된 잡지 <시스템>에도 실린 이야기지만, 미우치아 프라다는 동료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와 대화할 때 박물관 큐레이터처럼 한 시즌 동안 프라다 컬렉션과 계약할 연출 책임자를 초청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저는 만약 미우치아가 한 시즌에 라프 시몬스의 컬렉션을 실행한다면 매우 기뻤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뉴욕의 마크 제이콥스를 위해 한 시즌을 진행할 수도 있고, 마크도 프라다를 위해 맡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관객들이 매우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요.” 시몬스는 <시스템>에 실린 기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완전히 동감합니다!” 프라다가 응답했다. 그때부터 시몬스와 공동으로 작업할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 대상이 프라다 브랜드가 될 거라는 둥 아니면 프라다의 자매 브랜드 미우미우가 될 거라는 둥 이야기가 나돌았다. 프라다는 이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소문이에요, 소문”이라고 대답했다(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 기사가 실린 뒤, 공식 발표가 있었다). 프라다는 패션에서 공동 작업은 숙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공동 작업의 진정한 의미가 뭐죠?’ 하고 빈번히 물었어요.” 만약 프라다가 최근에 아디다스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그 프로젝트가 그녀에게 아메리카 컵에서 사용될 보트용 운동화를 만들 기회를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 작업은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 말이에요.”

그날 밤늦게 나는 런던으로 돌아왔다. 선거 출구 조사는 보리스 존슨과 보수주의자들의 압도적 승리를 예고했다.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과 좌파의 메시지는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배를 예상했다. “좌파는 분열, 분열, 분열할 줄만 알지 자신의 지지 기반을 지킬 줄은 몰라요. 얼마나 어리석은지!” 프라다는 나에게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최악의 시기는 정치에 참여하던 시기라고 털어놓았다. 25~26세 때였다. 굳은 신념이 있었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무력한 존재였다. “내가 누구였는지 몰랐어요.” 남편을 만나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서야 그걸 깨달을 수 있었다. 충만함의 추구는 긴 여정이고, 우리는 그걸 받아들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다음에는 그걸 실행하는 겁니다.” 그녀는 다시 테이블을 두드리며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 아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누구인지는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