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곱디고운 우리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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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곱디고운 우리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2020-09-07T11:39:14+00:00 2020.08.26|

26개국 <보그>가 희망이라는 주제로 9월호를 꾸밉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했습니다. 순창, 구례, 곡성, 담양에 사시는 100세 전후 할머니들을 담았습니다. 꽃 같은 세월은 아니지만 꽃처럼 피어 계신 할머니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나요?

시작은 비주얼 크리에이터 서영희가 보낸 한 장의 사진이었다. 꽃을 품에 안고 향을 맡는 할머니의 모습은 은발을 질끈 묶고 주름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짓고 계셨다. 이 사진은 ‘희망’과 연결되었다. 전 세계 26개국 <보그>가 ‘Hope’란 주제로 9월호(셉템버 이슈!)를 준비하던 차였고, 우리는 ‘희망은 어떤 모습일지’ 추상적인 이미지부터 구체적인 인물까지 여러 후보를 올리며 몇 달을 보내고 있었다. 내게 희망은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할머니 모델이 아니라 시골에 사시는 100세 전후 할머니를 촬영하기로 했다. 할머니의 시골집에서 고운 한복을 입혀 모양도 내고 꽃과 함께 촬영해 잡지에 싣고 액자로 만들어 기념 선물로 전달하고 싶었다. 할머니 집에는 본인의 예쁜 사진이 별로 없다. 자식 결혼식이나 환갑잔치의 단체 사진 혹은 영정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 전부다. 할머니는 가끔 물으셨다. “우리 같은 늙은이를 왜 찍을라구 그랴.”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할머니 얼굴이 제일 예쁘니까요. 젊은 것들이 할머니 얼굴을 보면요, 마음이 좋아져요.”

93세 하남순

곡성군 석곡면에 사시는 하남순 할머니네는 그야말로 꽃 잔치다. 마당에는 만개한 화분이 그득하고 빨간 고추가 장미처럼 피어 있다. 방에는 손주가 준 카네이션을 말려 걸어두셨고 달력 그림마저 분재다. “할머니는 꽃이 왜 좋으세요?”
“시상에 꽃만큼 좋은 게 워디 있어.” 할머니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끼워드렸더니 헤어질 때까지도 빼지 않으신다. “꽃만큼 좋은 게 또 뭐가 있어요?” “젊은 시절은 다 좋제. 농사짓고 애들 키우는 거 다 좋았어.”

섭외는 장수촌 탐방부터 시작했다.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전남대학교 박상철 연구석좌교수를 보고 연락을 취했다. 노화 연구 학자이기도 한 그가 순창군 건강장수사업소와 연결해준 덕분에 순창, 구례, 곡성, 담양의 100세 전후 할머니 여덟 분이 섭외됐다. 네 지역은 대한민국 10대 장수 군 중 지리산권에 속한다. 일명 ‘구곡순담’ 어벤저스! 서로 연계하여 ‘백세인 축제’를 열고 해외 장수 마을과 협력해 세미나도 개최한다. 장수인이 많다면 그만큼 살기 좋은 고장임을 의미한다.

100세 양분녀

양분녀 할머니는 순창군 인계면에서 100세를 맞으셨다. 호박 넝쿨 마중 문이 있는 집에 들어서면 할머니가 키우는 배추, 고추, 호박이 소담스럽다. 수확하면 꼭 마을 사람들과 나누신다. 고양이 두 마리는 매일 찾아와 할머니에게 밥을 청한다. 1남 7녀 중 막내딸은 어머니의 장수 비결이 따뜻한 마음이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하나를 얻어도 남과 나눌 줄 아셨죠. 그 시절 큰 소리 한번 안 내시고 자식들을 편애 없이 키우셨고요.” 옥색 저고리를 입고 호박꽃과 글라디올러스를 품은 할머니는 딸과 기념 촬영을 하셨다. 기뻐하시는 모습에 비주얼 크리에이터 서영희가 눈물을 삼킨다. “엄마들은 다 똑같은가 봐요.”

지난 7월 첫째 주, <보그>는 할머니의 집을 사전 답사했다. 미리 인사를 드리고 입혀드릴 한복의 치수도 쟀다. 할머니들의 집은 굽이굽이 산골짜기에 자리해 얼마나 아름다운지 촬영 덕분에 이런 곳도 구경한다며 다들 즐거워했다. 할머니들은 평생 일해오신 바지런함 덕분인지 그 연세에도 텃밭을 가꾸고 세간을 쓸고 닦아 소박하지만 정갈한 공간에 머물고 계셨다. 호박, 고추, 복숭아, 포도, 감부터 채송화, 장미, 맨드라미, 토란 등 할머니의 손길을 받은 생명체가 마당에 가득했다. 100세 양분녀 할머니 댁의 호박은 늘 풍년이라 동네 주민들과 나눠 먹고, 97세 신현효 할머니는 다듬던 고구마 줄기를 우리에게 싸주고 싶어 여러 차례 물으셨다. 깨끗한 자연, 부지런함, 따뜻한 마음이 장수 비결이지 싶다.

97세 신현효

“할머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처마 아래서 고구마 줄기를 다듬으시던 신현효 할머니는 “말도 못혀”라며 고개를 저으신다. 곡성군 겸면에 자리한 할머니의 두 칸 한옥은 채송화가 흐드러지고 토란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할머니의 애정을 받은 나팔꽃, 선인장 등 작은 화분은 올망졸망 군락을 이뤘다. 그러고 보니 마루 밑에 놓인 고무신도 꽃신이다. 할머니에게 한복을 입혀드리고 립스틱을 발라드렸다. “오래 상게 오만 거시기 다 하네.” 다음 날 아침 인사차 찾아뵈었을 때 할머니는 혼자 밥을 드시며 TV를 보고 계셨다. “할머니, 저희 이제 서울로 올라가요.” 할머니께서 손녀를 대하듯 우리 손을 꼭 잡으셨다. “고구마 줄기라도 가져가. 커피라도 매시고 가.”

7월 셋째 주, 우리는 약속된 촬영지로 떠나지 못했다. 호남 지역에 세찬 장마가 왔기 때문이다. 할머니들께 전화를 드려 안위를 여쭙고 사정을 설명해도, 혼자 사시는 분이 많으시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셔서 소통에 어려움이 꽤 있었다. 혹시 할머니들이 우리를 기다리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각 지역의 군청과 주민 센터에서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사정을 잘 전달해줬다.

94세 황옥순

황옥순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담양군 무정면으로 시집와 슬하에 3남 4녀를 두셨다. 여수로, 통영으로 대바구니를 팔러 다니며 아들딸 차별 없이 공부를 시키셨다. 이제 60대가 된 셋째 딸도 “우리 어머니의 장수 비결은 꾸준한 걷기와 소식”이라고 전했다. 찾아뵌 날 할머니는 블루베리 한 줌에 반 공기도 안 되는 밥을 드시고 계셨다. 온 사람 모두에게 “이쁘다, 이뻐”라며 감이며 포도며 들고 가라 쥐여주셨다. 할머니가 손수 가꾸신 과일이다. 할머니의 또 다른 취미는 종이접기. 꾹꾹 눌러 접은 작은 왕관이 바랜 성경책과 함께 소반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우리는 으아리꽃으로 장식한 큰 왕관을 씌워드렸다. “젊었을 때 입던 꽃 저고리 같네”라며 웃으셨다.

7월 넷째 주,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으로 올라올 즈음 우리는 구곡순담으로 떠났다.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비가 너무 내려 소형차는 물에 떠다니는 듯 보였다. 16인승 미니버스에 사진 장비와 한복, 꽃을 가득 싣고, 비주얼 크 리에이터 서영희, 플로리스트 유승재, 헤어 아티스트 이영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나겸, 사진가 민현우, 어시스턴트 최다희, 곽미나, 하태민 등 10여 명의 스태프가 빼곡히 앉아 하늘에 기도하며 내려갔다. 다행히 할머니의 동네는 소나기가 간간이 내릴 뿐 촬영에는 무리 없는 날씨였다. 할머니의 촬영 소식에 서울, 경기도, 광주 등에 흩어졌던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주가 한자리에 모인 집도 있었다. 작은 잔치가 벌어진 셈이다. 막내딸은 “우리 엄마 예쁘다”며 팔짱을 꼭 끼고, 손녀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라며 부끄러워했다. 서영희는 할머니의 한복을 입혀드리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어쩌죠, 눈물 나요. 엄마들은 다 똑같은 거 같아요.” 할머니들은 곱게 화장할 때 창피하니 문을 닫으라고 하셨지만, 단장을 하고 꽃 저고리를 입는 과정을 즐기셨다. 색조 화장품을 바구니에 보관하시는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95세 임경남

아들이 가꾼 꽃밭에 앉아 계신 임경남 할머니. 몇 년 전 사냥꾼의 오발로 사고를 당한 다리가 불편하시지만, 손자 같은 촬영 팀 스태프가 업어드리자 기운을 내신다. 붉은 맨드라미와 분홍 벌개미취 사이의 할머니도 꽃 같으시다. “지난주에 손자가 손부를 데리고 왔제. 손부도 이쁘고 지어준 옷도 이쁘고 꽃도 이쁘네.” 할머니에게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는지 여쭸다. “전에는 참 많이도 대녔어. 낙화암도 가고, 설악산도 가고 구경은 잘했제. 그래도 아들 손잡고 여전히 다니고 싶으네.” 평소에 곡성군 죽곡면 동네 사람들과 평상에서 얘기 나누길 좋아하시지만,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창밖을 보는 날이 잦아졌다. 다행히 그날 할머니는 약속이 있으셨다. 갈아입을 속옷과 수건을 분홍 보자기에 싸놓고 목욕차를 기다리신다. 머지않아 할머니의 진짜 소풍이 이뤄지길!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기준이 있었다. 고단한 인생사나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일제강점기 시대극이나 전쟁 장면은 보지 않으신다. 할머니께 좋은 추억을 여쭙고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 혹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정도만 듣고자 했다. 할머니들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고맙다”였다. 저희가 감사드린다고 해도, 할머니께서는 손님들의 방문 자체가 즐거우셨던 것 같다.

젊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도 인상적이다. 106세의 유삼순 할머니는 제주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며 “젊음이 좋으니 여기저기 많이 다니라”고 하셨고, 다른 분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다. 할머니 대부분은 고향을 떠난 적 없거나 시집온 후 평생을 한집에 사셨다. 지금은 거동 또한 불편하시니 아들 손잡고 떠난 여행, 고속버스를 빌려 노인정 식구들과 다녔던 유적지를 향수 어려 하신다.

94세 조옥순

조옥순 할머니는 눈이 허리까지 오는 날에도 건어물 장사를 하러 다니며 2남 7녀를키우셨다. 매 한번 들지 않고 키운 자식들이 서울로 광주로 흩어졌는데, 이날은 딸과 사위, 손녀까지 순창군 인계면에 자리한 할머니의 오랜 한옥으로 모였다. 손녀는 자신의 밥상에 늘 가장 큰 조기를 올려주시던 할머니를 자주 찾아뵈리라 다짐했다. 할머니의 인품처럼 온화한 분홍색 가든 로즈를 선물해드리자 향기부터 맡으셨다. “너무 감사한디, 노래라도 해야 하는디, 이전엔 잘했는디”라며 안타까워하셨다. 할머니에게 노래 대신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 여쭸다. “젊어서 여기저기 다니고 그랴.”

촬영을 준비하면서 연로하신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거동에 일일이 신경을 썼는데, 한 가지 실수를 했다. 102세의 이차순 할머니는 보행기를 끌고 매일 정자로 나가신다. 그곳에서 노인들과 얘기 나누고 떡도 나눠 드시는 것이 주요 일과다. 정자에서 댁까지는 200m 정도. 나는 할머니를 업거나 양쪽에서 부축해드리려는데, 할머니는 보행기를 혼자 끌고 가길 원하셨다. 마루에 오를 때도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시곤 천천히 한 다리씩 올리셨다. 할머니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느릴지라도 자신의 노하우와 규칙으로 일상을 살고 계신데, 함부로 어린아이 대하듯 한 나를 반성했다. 수차례 난리를 겪으시고 자식들과 논밭을 다 일궈낸 분이 아닌가. 할머니는 어디에서든 희망을 찾아내셨고, 지금 꽃 같은 얼굴로 살아가신다.

102세 이차순

낮에 이차순 할머니를 뵈려면 집보다는 마을 정자로 가야 한다. 구례군 광의면 당촌리 입구의 육각형 정자는 사랑방이다. 할머니는 보행기를 끌고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신다. 정자에서도 최고 어르신이다. 두 번 찾아뵀는데, 그때마다 정자의 어르신들께 떡과 과일을 얻어먹었다. 할머니를 댁까지 업으려 하자, 보행기로 쉬엄쉬엄 가기를 원하셨다. 느릴지라도 할머니만의 규칙이 있다. 댁에 도착하자 며느리가 부엌에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반찬인 조기를 굽고, 마당에는 할머니의 수줍음 많은 친구 백구가 졸고 있다. 그 연세에도 할머니가 소일거리로 일구시는 호박과 고추도 널려 있다. 동네에서도 이 댁의 호박이 제일 풍년이라 매년 베푼다. 할머니에게 젊은 시절에 대해 여쭈었다. “밥 먹고 사느라 바빴제!” “이제는 뭐 하느라 바쁘세요?” “하긴 뭘 해, 저기(정자)로 나가봐야제!”

8월 둘째 주, 나는 우리 할머니를 보러 갔다. 90세인 할머니는 시골에서 아들 며느리,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과 함께 사신다. 얼마 전까지 노인정에 나가셨는데, 그곳의 공동체에 문제가 생겼는지 집에만 계신다.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재방송을 매일 보신다. 치킨을 좋아하시고 하루에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는 잡수시는 것 같다. 너무 많이 드시지 말라고 하면 몰래 드신다. 일하는 엄마가 바쁘셔서 할머니가 나를 키우셨다. 고집이 세서 할머니의 파리채로 많이 맞았는데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다 아플 때도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셔서 삼시 세끼 밥을 해주셨다.

106 류삼순 

류삼순 할머니는 노인정으로 가는 일정을 취소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노년이 되고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노인정, 그다음이 병원이다. 요즘엔 오랜 장마로 구례군 마산면의 작은 집 툇마루에 앉아 계시곤 한다. 할머니네 마당에는 우물도 있다. 이제는 말라버렸지만 그 우물에서 물을 긷고 밥을 지어 자식들을 키웠다. 여든이 넘은 아들, 마흔이 넘은 손주가 북적이는 도시로 오라지만 나고 자란 마을을 떠날 생각은 없다. “농사를 제놓으면 일뵌 놈이 뺏어가고 반란군에 쌀도 옷도 다 내줬제. 고상을 많이 했지만 예서 살겄어.” 할머니께서 떠나는 우리를 보고 말씀하셨다. “젊어서 재미있게 살아야 돼. 나 안 가본 디 없이 다 가봤어. 그렇게 살아야제.” 

우리 할머니는 요즘 깜빡깜빡하신다. 이전에 운동장에서 할머니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들었는데 자세히 여쭙지 못해 죄송하다. 할머니의 인생을 아는 것이 무서웠다. 그 아픔과 고난을 내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있기에 내가 있다. 다음엔 우리 할머니 사진도 찍어드리고, 할머니의 과거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

오랜 장마로 순창, 구례, 곡성, 담양 또한 피해를 입었는데, 뵈었던 할머니들 모두 건강하시고 예쁜 시골집 또한 무탈하길 바란다. <보그>에 실린 사진과 여타 가족사진도 액자로 만들어 보내드릴 거다. 할머니의 자그마한 방에 걸어두시고, 당신이 얼마나 예쁘신지 뿌듯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