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떠나는 베를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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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떠나는 베를리너

2020-09-11T21:14:35+00:00 2020.09.10|

며칠 전 <뉴욕 타임스>에 소개된 한 사진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진 속에선 마스크를 쓴 뉴요커들이 뉴욕 교외의 주택을 보기 위해 긴긴 줄을 늘어서고 있었죠. 기사에 따르면 맨해튼의 아파트는 텅텅 비는 반면 뉴욕 교외 지역의 주택 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에 ‘탈도시화’를 초래했기 때문이죠. 대도시의 삶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언제 또다시 셧다운이 될지 모르는 상황, 홈 오피스와 원격 근무가 익숙해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이 되었습니다. 보다 넓은 공간, 안전하고 평온함을 주는 주변 환경을 찾다 보니 도심을 떠나게 되는 것이죠.

유럽에선 베를린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사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베를리너의 이동이 시작됐죠.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입니다. 더 이상 베를린은 과거의 저렴하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가득한 도시가 아닙니다. 이 도시를 유럽에서 가장 힙한 도시로 만든 예술가와 크리에이터들은 베를린 근교 브란덴부르크의 작은 마을에 새로운 아지트를 꾸리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우커마르크(Uckermark)입니다. 베를린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우커마르크는 브란덴부르크 북동부를 차지하는 농촌입니다. 현재 우커마르크는 베를린의 13번째 지구(베를린은 총 12개 지구로 구성)로 불리며 종종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주말 휴양지 햄프턴과 비견되기도 하죠. 구불구불 이어지는 들판 사이로 넓은 정원을 가진 주택이 들어서 있고, 곳곳에 평온한 풍경을 드리운 호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힙스터들을 우커마르크로 불러들인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롤라 란틀(Lola Randl)입니다. 그녀는 독일 남동부 뮌헨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영화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베를린으로 터전을 옮겼고 베를린의 번화가인 토어 거리 모퉁이에 살다가 10여 년 전 우커마르크의 게르스발데 마을 광장 근처의 낡은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그곳은 과거 왕가의 정원이었습니다. 롤라 란틀은 이곳을 문화 정원 ‘그로서 가르텐(Großer Garten)으로 만들었죠.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요. 화려한 도시 생활 끝에 찾아온 우울감. 그녀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정원을 가꾸며 맛있는 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죠. 장을 보는 것도, 벽에 칠할 페인트를 구하는 것도, 정원을 일구는 것도. 그녀는 자신과 같은 초보 농촌 생활자의 삶을 필름에 담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총 여섯 편으로 제작한 시리즈에서 각기 다른 주인공이 이웃, 지역 주민의 도움을 받아 낚시를 배우고 밀과 보리를 수확하며 염소 치즈를 만듭니다. 그러자 이들의 다정한 시골 이야기를 엿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커마르크로 이사하기 시작했어요. 롤라 란틀은 그녀의 넓은 정원 한쪽을 일본인 요리사, 훈제 생선 장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바텐더, 패션 디자이너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로서 가르텐은 게르스발데의 오랜 주민과 새내기들이 한데 모이는 ‘마을 회관’이자 동네 명소가 되었습니다. 카페와 바, 패션 숍뿐 아니라 요리, 일러스트레이션, 자연 체험, 코칭 등 다양한 주제의 워크숍도 열리고 영화 상영회, 벼룩시장 등도 열립니다. 그로서 가르텐에 들어서면 독일이 아니라 치앙마이나 발리의 어느 동네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독특한 정취, 명성을 듣고 찾는 여행자들이 부쩍 늘어 곧 객실 다섯 개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커마르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죠. 베를린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감독 빔 벤더스가 집을 보기 위해 우커마르크에 들렀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우커마르크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이 불어닥치는 건 아닐까요? 역시 쉽진 않을 거예요. 시골에서의 시간은 정말 천천히 흐르니까요.

 

누구나 시골에 덜컥 집을 구해 살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시골에서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남서쪽,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바트 벨치히(Bad Belzig)란 마을엔 ‘워케이션 리트리트’를 슬로건으로 한 코코낫(Coconat)이 있습니다. 워케이션이란 원하는 장소에서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형태를 뜻하죠. 코코낫은 귀족의 거대한 주택을 개조해 ‘코워킹’과 ‘코리빙’을 결합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합니다. ’리트리트’를 내세운 만큼 하이킹,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는 자연환경, 요가 룸과 스파, 사우나 등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부대시설까지 갖췄습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까지 미리 경험해보는 시골살이를 통해 어떤 삶이 내게 어울릴지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