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리빙 트렌드

2023.02.20

by VOGUE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리빙 트렌드

    코로나 바이러스로 바뀌게 될 건축양식. 바야흐로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지내며 일할까?

    핀란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휴고 알바 헨릭 알토(Hugo Alvar Henrik Aalto)는 그의 첫 번째 부인 아이노와 함께 1933년 핀란드 남동부에 있는 결핵 치료 시설인 파이미오 요양소(Paimio Sanatorium)를 설계했다. 완벽하게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한 이 건물은 1920년대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와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에서부터 등장해 오늘날 우리가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이라 말하는 외관을 감싸는 확 트인 창문과 밝은색으로 칠한 방, 유람선에서 볼 법한 난간이 달린 넓은 옥상 테라스 등을 갖추었다.

    하지만 알토가 이 건물에 도입한 디자인과 사용한 재료는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 건축물의 주요 목적은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의료 효과를 지니는 것이었어요”라고 알바 알토는 후에 집필했다. 20세기 초반에는 결핵이 가장 심각한 질병 중 하나였는데 파이미오 요양소의 모든 공간은 결핵 치료에 집중해 설계한 것이었다. “병실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기력이 쇠한 환자에 맞춰 디자인했어요”라고 그는 설명한다. “천장 색은 고요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컬러로 선택했고, 조명은 환자의 시선이 직접 닿지 않는 곳에 배치했어요. 난방은 환자가 발을 따뜻하게 유지하도록 설계했어요.” (고열을 동반한 족냉증이 당시 결핵에 걸린 이들의 증상 중 하나였다.) 태양 빛이 결핵 박테리아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어 햇볕이 창가로 환히 들어올 수 있게 했고 환자들이 잠을 청할 수도 있는 외부 테라스에서의 일광욕 또한 치료의 일환으로 여겼다. 이처럼 이 요양소에서는 건축양식 자체가 환자 치료의 역할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모더니즘 건축은 질병의 두려움에서 온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박테리아가 숨어 있는 어두운 방과 먼지 쌓인 구석을 없애고 싶어 하는 욕망. 르 코르뷔지에는 오염을 피하기 위해 습한 땅에 바닥이 닿지 않도록 공간을 두어 집을 설계했다. 아돌프 로스(Adolf Loos)가 1930년대에 만든 박스 형태의 프라하 뮐러 저택에는 병든 아이들을 격리시킬 수 있는 분리된 공간이 존재했다. 건축가들은 진보적인 의사들과 협업해 유럽 전역에 요양소를 지었다. “결핵이 모더니즘 건축을 현대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라고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베아트리츠 콜로미나(Beatriz Colomina)는 그녀의 저서 <엑스레이 건축(X-Ray Architecture)>에서 말한다.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나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의 산업화된 간소함은 “명백히 병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흰 벽과 바닥, 깔끔한 금속 붙박이 가구는 모두 “말하자면 깔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건축이 극단적인 미학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사람들은 안전하다는 점에서는 안심할 수는 있었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이 1903년에 집필한 중편소설 <트리스탄>에서 한 인물은 폐 환자들을 위한 “길고 흰 직선 모양의” 요양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곳의 밝음과 견고함, 차가움, 극단적인 단순함, 그리고 숨겨두고 있는 듯한 힘이 나의 내면을 정화시키고 날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궁극적인 효과가 있다.” 1921년부터는 결핵 백신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모더니즘과 건강의 상관관계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꾸밈없이 디자인한 요양소를 정신 질환 증상까지도 완화할 수 있는 의료 시설로 마케팅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우리는 또다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공간을 제어하는 새로운 질병과 건축의 시기에 살고 있다. 결핵이 모더니즘의 형성을 도왔던 것과 같이 코로나19의 발발과 실내에서만 몇 달간 머물러야 했던 우리의 집단적 경험이 가까운 미래의 건축양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격리 기간에 “우리는 우리의 작은 감방에서 나오지 말고 지내도록 지시를 받죠”라고 콜로미나는 내가 최근 맨해튼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전화했을 때 말했다. “우리의 적은 거리, 공공장소, 대중교통에 있어요. 반면에 집은 안전지대라고 여겨지죠.” 하지만 문제는 모더니즘 건축미학을 멋스러운 취향과 동의어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웨스트 엘름(West Elm)과 미니멀리스트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들까지 합세해 우리의 집과 사무실을 아무것도 없는 빈 박스처럼 디자인했다. “병원 건축양식이 우리가 사는 곳에까지 침투해 우리가 병원 같은 공간에 사는 꼴이 되었어요”라고 콜로미나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갑작스러운 전 세계적 유행병의 시대에 이런 디자인은 별로 유용하지 않은 듯 보인다.

    격리를 위해 필요한 공간은 통풍이 잘되고 아주 깨끗한 모더니즘 건축양식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방어적 공간이어야 한다. 테이프로 선을 표시하고 플렉시글라스로 벽을 세워 안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하도록 외부 세상을 구분 짓고 분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확 트인 넓은 공간은 피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장벽은 좋은 것이다. 가게와 사무실이 영업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구조를 변경해야 할 것이며 일상의 공간은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집에서도 우린 좀 더 많은 벽과 어두운 구석을 원할지도 모른다.

    주거 공간 격리 생활은 비핵심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과 더 친해지도록 만들고 있다. 우리는 집에 대해, 특히 우리 집의 부족한 점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어떤 방에 햇볕이 잘 들지 않는지, 어떤 방의 바닥이 더러운지, 화장실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것 등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공간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된다. 반면에 건축가에게는 이것이 자기 성찰의 경험이다. 특히 자기가 직접 꾸민 집에 살고 있는 건축가라면 더욱 그렇다.

    건축가 코레이 두만(Koray Duman)은 뉴욕 동남부 지역에서 그의 파트너와 16개월 된 그들의 아이와 함께 그가 직접 디자인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유아용품 말고는 물건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격리 생활을 하며 집에 쌓인 물건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한다. “사물을 아주 자세히 보게 돼요. 사물 때문에 제약을 받기도 하고요. 좀 이상하지만, 적게 가지고 있을수록 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라고 두만은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사물을 면밀하게 바라보는 것은 불만을 가져올 수 있어요. 지난 두 달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매우 바빴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다들 ‘난 이 공간이 너무 싫어’라고 이야기해댔으니까요.” 한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그 속에 사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도록 더 자유롭게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벽은 일반적으로 고정된 것이다. 하지만 두만은 그것이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벽에 바퀴가 달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지 상상해보세요.”

    여러 미술관, 주택단지, 프리즈 아트 페어(Frieze Art Fair)의 텐트와 같은 팝업 프로젝트 등을 디자인해온 소일(SO-IL)의 공동 설립자이자 커플인 플로리안 아이덴버그(Florian Idenburg)와 징 리우(Jing Liu)는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 근처의 집에서 어린 두 딸과 함께 지낸다. 이들의 집은 벽을 하얗게 칠한 복층 아파트로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은 칸막이 없이 넓게 쓰는 오픈 플랜식 구조로 되어 있다. “다행히 두 딸은 두꺼운 벽이 있는 방을 각자 가졌어요”라고 아이덴버그는 말한다. 이런 구조는 아이들이 동시에 온라인 영상 채팅 수업에 참여할 때 도움이 된다. 가족이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비좁게 지내야 할 때 이런 분할 구조가 더 중요해진다고 아이덴버그는 말한다. “뉴욕의 대표적인 거주 공간인 탁 트인 로프트는 현시점에서는 그다지 로맨틱하지 못한 구조라고 생각해요. 다들 줌 콜을 통해 화상 수업과 회의를 해야 하잖아요.” 가족을 피해 바나 카페, 매장 등으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다른 방으로 들어가 있을 수도 없다면 지금 이 상황을 참아내기가 더 힘들 것이다.

    본인들의 집의 한계를 알게 된 아이덴버그와 리우는 고객을 위해 공간을 디자인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것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과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아야죠”라고 아이덴버그는 말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라도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사는 집을 평가할 때 이런 부분을 고려하게 될 거예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이후, 새로운 공간을 볼 때 우리는 머릿속으로 그 공간에서 몇 달간 갇혀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격리 시기 중 소일은 브루클린에 집 30채가 있는 12층짜리 주택 건물을 설계했다. 디자인 작업을 하며 팬데믹으로 인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충분히 설계도에 반영했다. 부엌과 식당, 거실은 기존처럼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공간으로 구분하도록 했고, 침실은 서로 떨어뜨려 배치해 작업 공간으로도 활용하도록 했다. 더불어 침실에는 책상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방의 크기를 키우기도 했다. 전체 건물의 30%는 외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다양한 옵션을 제시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아이덴버그는 말한다. “의료계 종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외부 공기는 쐬어야 하니까요.”

    인테리어 디자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표적인 이상적 가정상을 반영한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트럼프 타워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으로 휘감은 바로크풍 펜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인테리어 디자인은 현시대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각 시대는 그에 걸맞은 디자인 양식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바우하우스 건축가인 하네스 마이어(Hannes Meyer)는 그의 1926년 에세이에서 말했다. “이상적으로 봤을 때나 근본적으로도, 집은 우리가 살고 생활하는 공간이에요. 하지만 20세기에는 건축이 전통적인 개념을 계승하거나 감정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대신 건축은 차갑고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같은 해 마이어는 현대 근로자를 위한 이상적인 싱글 룸을 디자인하고 이를 코업 인테리어라고 불렀다. 그는 이곳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적용해야 할 거주지 형태라고 말했다. 그가 설계한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상자 형태의 장소로 그 안에는 간이침대와 탁자, 그 위에 놓인 축음기, 작은 선반, 접어서 옮길 수 있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이 싱글 룸은 확장이 가능하고 이동성이 좋아서 마이어가 그의 에세이에서 말한 바 있는 밀려드는 기술적 세계화의 파도에 적절한 주거 형태였다. 격리 생활을 할 경우 머물기 가장 싫을 것 같은 공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건축가들은 오래전부터 ‘협소 주택’이라는 개념을 생각해왔다. 1932년에 동일한 제목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한 비평가 카렐 테이게(Karel Teige)는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성인 남성이나 여성에게 작지만 충분히 생활할 정도로 적당한 크기의 독립적인 거주 공간”에서 살 것을 제안했다. 이런 그의 주장은 1960년대에 건물을 도시의 필요에 따라 확대하고 축소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일본의 메타볼리즘 건축 운동을 통해 업데이트되었다. 메타볼리즘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구로카와 기쇼(Kurokawa Kisho)의 도쿄 나카긴 캡슐 타워는 분리 가능한 각각의 박스를 중앙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쌓아 올린 듯 보이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 각각의 박스에는 한 사람이 적어도 짧은 기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원형 창문, 텔레비전, 오디오 시스템, 책상, 침대, 공용 샤워실)이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원대한 꿈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오늘날 나카긴은 지속적으로 철거 위협을 받고 있다. 현재 이곳은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의 개념으로 더 알려진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건축과 디자인 부문 상임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도 최소한의 생존법을 생각한다. 지난 3월 13일 그녀는 다른 큐레이터와 함께 미술관에 소집되어 두 달간 필요할 것 같은 책을 모두 챙겨서 자가 격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집에서 지내며 줌 통화로 대화하고 요가 매트로 운동하며 바깥출입은 뉴욕 시티바이크를 사용하고 있다. 최소한의 생존법은 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것을 갖춘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21세기 도시인에게는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 세월의 흐름처럼 꽤 방대하다. 과거에 마이어는 침대와 의자, 축음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오늘날은 출퇴근길만 하더라도 코로나19 이전부터 우리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헤드폰, 스마트폰, 노트북, 각종 충전 코드 등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매우 많다. 아무리 공간이 작다 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것을 우리는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제 주변의 물리적 공간보다 더 큰 개인적인 형이상학적 공간이 존재해요”라고 안토넬리는 말한다. “좁은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서 가더라도 여전히 저만의 세상이 있답니다.”

    사실 최소한의 생존법과 최대한의 생존법은 모두 현 시기에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개인 공간은 사회적 거리 두기 와중에도 사실상 다른 이와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하고 육체적으로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순백의 깨끗함과 동시대의 미니멀한 모더니즘이 느껴지는 곳이 아니라, 동물의 소굴처럼 우리가 잠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되 한때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고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머지 세상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추억으로 가득한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충분히 동면할 만한 곳이어야 한다.

    사무 공간 마스크와 장갑이 제2의 피부처럼 우리 몸을 에워싸는 코로나19 시대에는 예방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감염되는 일이 없도록 2m 간격으로 원 모양을 테이프로 그려두었다. “테이프는 건축에서 가장 훌륭한 재료 중 하나예요”라고 아이덴버그는 웃으며 말한다. 많은 사업체가 영업을 재개하면서 그들만의 임시방편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레스토랑은 손님과 식당 직원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야외 테이블에 온실과 비슷하게 생긴 유리 부스를 씌웠다. 독일의 한 카페에서는 손님이 서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영장에서 사용하는 기다란 형태의 튜브인 누들 튜브를 모자에 부착해 시험 착용하도록 했으며, 플로리다주의 한 카지노에서는 포커 테이블 위 게이머의 손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아래만 뚫린 두꺼운 보호 플라스틱 막을 설치하기도 했다.

    서로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정확한 시각적 자료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던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아주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해요”라고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의 네덜란드 상무이사 예룬 로케르서(Jeroen Lokerse)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집에서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사람들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시각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에요.” 로케르서는 지난 3월 25일, 네덜란드의 경제부 장관, 국무 장관과 함께 소매업 부문의 구제책에 대해 회의했다. 회의 후 그는 텅 빈 그의 사무실로 돌아가 정부가 ‘1.5m 사회’라 부르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해낸 것은 ‘2m 사무실’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개방형 인테리어를 도입해 확 트인 구조였다. 이곳에서 그는 각 책상 아래에 지름 2m의 검정 원형 타일을 깔아 각 자리의 경계를 표시했다. 그 원 바깥에는 추가적으로 의자를 놓아 동료들끼리 대화할 수 있도록 했고, 회의실 안에 있는 의자도 줄였다. 닫힌 공간에는 들어가고 나가는 직원이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모두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여러 명의 직원이 한 책상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한 번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 종이 데스크 패드를 사용하도록 했다. 책상을 사용하는 사람이 새로운 종이 패드를 깔고 그 위에 노트북과 키보드, 마우스 등을 올려 사용하는 식이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암스테르담 지사를 시작으로 2m 사무실 운영 체계를 서서히 도입하고 있다. 이곳에는 원래 직원 275명이 상주했으나 지금은 75명씩 나누어 출근한다. 폐쇄되었던 사무실이 영업을 재개하자, 로케르서는 전 직원의 25%만 출근시킬 계획이다. 차후 더 많은 직원이 출근할 경우에는 대중교통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시차를 두고 출근 시간을 조정할 예정이다. 더불어 전보다 사무실 책상을 30% 줄일 생각이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글로벌 투자 회장인 브루스 모슬러(Bruce Mosler)는 코로나19 전부터 사무실 공간이 너무 붐볐다며 과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더 이상 사무실이 복잡해지는 것을 막는 와중이었다고 전한다. “최대한 효율을 높이려다 보니 사무실이 전반적으로 고밀집화되었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거예요.”

    격리 생활이 이어지면서 나아진 한 가지는 이제 말 많고 탈 많던 오픈 오피스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무실 공간을 가진 곳이라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서 사용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서 사용한 원형 바닥 타일은 저렴할 뿐 아니라 48시간 안에 설치가 가능하다. 로케르서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그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는지 지켜보려고 했다. 실제로 벽은 없더라도 이런 식으로 가상의 벽을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직원들의 스마트폰을 통해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면서 직원 두 명 이상이 2m 이내의 거리를 두면 앱이 신호를 보내는 프로그램의 실용화를 시험해보았으나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서 말한 누들 튜브 모자보다는 덜 뻔해 보일 것이다.) 로케르서는 만약 회사가 이 앱을 사용한다면, 직원들에게 추적 앱에 가입하기를 ‘자발적으로, 익명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보라 버크(Deborah Berke)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건축회사를 운영 중이다. 그녀의 회사는 깔끔하고 동시대적 모더니즘과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시대의 건축 디자인을 위해 버크는 워싱턴에 있는 갤로뎃대학교(Gallaudet University)의 청각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참조했다고 한다. 이곳은 수화와 독순술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밝은 조명과 누군가 방에 들어왔음을 청각 장애인이 알 수 있도록 반짝이는 불빛 장치를 갖추었다. 공간의 청결에 대해서도 극도로 신경 써야 할 거라고 그녀는 내게 말한다. “사람들이 문에서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오나요? 외투를 넣어두는 옷장은 충분한 크기인가요? 문 가까이에 손을 씻을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이 마지막 문제를 르 코르뷔지에는 1931년 그가 설계한 빌라 사부아(Villa Savoye) 입구에 독립형 세면기를 설치하며 해결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과거 방식을 따라 하는 대신 버크는 일반인이 주변에 있는 것으로 즉석에서 고안해내는 보호 장비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이를테면 가게의 계산원을 보호하기 위한 플렉시글라스로 만든 벽이나 샤워 커튼, 여러 개를 이어 붙인 쓰레기봉투 등으로 만든 보호복 같은 것으로부터 말이다.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훌라후프를 사용하고, 트레이너들은 단체 턱걸이를 할 때 건물의 비계를 손잡이로 쓰는 중이다. “일반인도 안정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장인이 되어가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저는 디자인 전문가인 우리가 코로나19 시대에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모두 잃지는 않길 원해요.” 건축 작업을 할 때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그것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디자인, 온전한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유혹을 늘 받는다.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맞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감각이 떨어진다고 여기던 일반 대중의 생각을 강요해 성공에 이르지 못한 바우하우스의 빛바랜 꿈이기도 했다. 더 나은 디자인은 어쩌면 코로나19가 사라진 후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될지 파악한 후 일반인의 필요에 의해 제기하는 보텀업 형태의 디자인일지 모른다. 마스크만 해도 벌써 미적 기준이 다양하다. 패턴이 들어간 손수건부터 재활용한 티셔츠를 이용해 만든 것 혹은 더위켄드(The Weeknd)에서 판매하는 것과 같이 유명인이 브랜드화해 내놓은 것 등 무척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그 기능은 모두 같다.

    도시 공간 격리 생활은 우리를 익숙한 것을 다른 눈으로 보는 탐험가로 만든다. 젊은 건축가인 일리아스 파파조르지우(Ilias Papageorgiou)는 뉴욕에서 생활하다 1년 전 직접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다시 그의 고향인 그리스 아테네로 돌아갔다(이전에 그는 디자인 회사 소일의 파트너였다). 18세에 처음 아테네를 떠났던 파파조르지우는 다시 돌아가 그 도시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 아들과 함께 옥상 테라스가 있는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격리 생활을 하는 터라 특히 도시가 더 새롭게 보였다고 말한다. 그와 전화 통화를 하는데 뒤에서 노래하는 새소리가 몹시 크게 들렸다. 태양과 푸른 하늘이 엽서처럼 소리로 그려졌다. “이곳을 새로 발견하는 느낌이에요”라고 그는 말했다.

    아테네는 차도를 중심으로 계획된 도시다. 하지만 현재는 출퇴근하는 무리가 없으니 도시가 그곳의 거주자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절대로 걸어 다니지 못하던 여러 곳을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달리는 차가 없으니까요”라고 파파조르지우는 말한다. “공공장소가 상업 활동과 아무 관련이 없는 곳이 되어버리니 거주자들이 그곳을 점령하게 된 거죠. 사람들이 순수하게 도심을 거닐고 있어요.” 그도 텅 빈 도로 한가운데에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한다. 새로 발견한 마을의 주민들처럼 사람들은 자기 동네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곳을 재발견하고 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서로 인사를 해요. 그런 적이 없어서 아주 어색하고 이상하죠”라고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일상적 사회생활이 레스토랑, 바, 호텔, 카페 등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아야 했던 상업 시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업 지구에서 새로운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파파조르지우는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개인 공간이거나 공공장소뿐이에요. 중간은 없어요”라고 전한다. 격리 생활로 우리가 집의 사소한 작은 흠까지 알아차리게 된 것처럼 우리는 공공장소의 한계에도 직면했다. 도로는 텅 비었지만 인도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그곳을 거닐 때 우리는 방어적이 되어야 한다. 밀집된 도시를 그나마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공원이나 수영장, 해변, 놀이터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은 문을 닫거나 설령 이용할 수 있다고 해도 방문했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기라도 할까 봐 편집증을 일으키는 곳이 되어버렸다.

    미국 전역에서는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시위를 한다. 공공장소에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국민의 행위 중 하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위험성이 더 크게 동반되는 행위로 주의가 더욱 필요하다. 최근 몇 달 사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가장 강력하게 권고하던 무렵에도 몇몇 대중은 여전히 활동을 강행했다. 파파조르지우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에서 시위대가 서로 2m의 간격을 유지하며 집회를 열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균일하게 분산된 모습이 군대 같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4월 19일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2,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라빈 광장에 모여 정부가 통과시킨 반민주주의 법안에 대한 반대 시위를 했다. 항공기에서 이 시위를 촬영한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아테네에서와 같이 시위대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두려움으로 서로 균일한 간격을 유지한 모습이었다. 미국에서는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 그리고 그처럼 경찰에게 과잉 진압당하는 과정에서 죽은 흑인을 기리는 시위가 확산되었다. 그들이 느끼는 공권력에 대한 분노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두려움보다 더 강렬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위대는 대체로 마스크를 쓰며 조심했고 아직 이런 시위로 인한 집단 감염 사례는 발표되지 않았다. 일부 비평가는 현 팬데믹 상황을 거론하며 이런 시위가 위험하거나 지나치다고 말한다. 이처럼 공공장소는 극도로 두려워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도심에 미친 코로나19의 영향은 새로운 건물을 세우거나 지역을 다시 배치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실행 가능한 작은 변화를 통해 나타났다.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에서는 통행이 금지된 거리를 레스토랑과 카페에 개방해 적정 간격을 두고 테이블을 설치하도록 했다. 뉴욕시는 65km의 도로를 보행자 전용 도로로 만들어 시민들이 공원을 벗어나 외부 활동을 할 수 있게 했고, 런던에서는 새로운 자전거도로를 대폭 신설하는 중이다. 브루클린과 디트로이트의 건축 및 도심 설계 사무소인 인터보로(Interboro)의 총장인 토비아스 암보스트(Tobias Armborst)는 이런 식의 변화가 이른바 ‘택티컬 어버니즘’이라고 말했다. “택티컬 어버니즘은 마스터플랜을 세워 장기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개발 계획을 진행하는 대신, 그곳을 이용하는 시민의 일상에 필요한 소규모 개선책을 캐치해 빨리 개발되도록 하는 보텀업 방식을 적용하는 거예요”라고 그는 설명한다. 지금까지 택티컬 어버니즘은 게릴라성 정원이나 플래시 몹 등의 진행에 특화되었지만, 이제 뉴욕 교통국 같은 주요 기관도 서서히 작고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택티컬 어버니즘을 적용하고 있다.

    “보행자 전용 도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야 하는 거였어요”라고 암보스트는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세워두는 자동차를 위해 우리는 도심의 너무 많은 공간을 내준 거죠.” 인터보로의 또 다른 총장인 조지언 시어도어(Georgeen Theodore)는 현재의 격변이 극적 변화를 꾀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속한 상황이 순간적으로 무너지면 누구나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격리 기간 동안 인터보로는 대학교 등의 기관 고객과 함께 일하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을 재개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왔다. 현재 그들은 수업을 외부에서 진행하는 전략을 검토 중인데, 이런 전략은 학교뿐 아니라 공립 박물관이나 도서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실내에서 이루어지던 행위가 옥외로 확장되는 것이다.

    미래 도시의 근본적 이슈는 인구밀도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1850년대에 조르주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은 도심 근대화의 일환으로 파리 대개혁을 진행했다. 그는 역병을 일으키는 곳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인구가 밀집한 중세 동네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넓은 도로와 공원, 광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간 파리의 도시화 정책은 이런 개혁 모델의 정반대를 실행하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의 주택, 그보다 더 작은 캡슐형 스튜디오 아파트,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계속 늘린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으로 다시 한번 사람이 밀집된 공간을 피하는 것이 상책인 상황이 되었다고 암보스트는 말한다. 도전 과제는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현재의 팬데믹과 그에 걸맞은 장기적인 건축 플랜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유럽의 요양소에서 볼 수 있었던 바우하우스 모더니즘의 특징이 뉴욕시의 오피스 건물과 나이지리아의 대학교 건물, 텔아비브의 아파트에서도 눈에 띈다(그래서 이런 건축양식을 인터내셔널 스타일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벽, 오픈 플로어 구조, 광택 나는 표면이 어느 곳에서도 살지 않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고매한 유목민, 즉 노마디즘과 같은 의미로 불렸다. 이런 건축법은 현재 모두 철수 명령을 받았거나 폐쇄된 짝퉁 스칸디나비아 에어비앤비, 휑한 동굴 같은 글로벌 공항, 대규모 공유 사무실 같은 시설 등을 떠올려보면 어떤 공간인지 이해할 21세기 미니멀리즘 건축으로 진화했다. 코로나19는 활발하던 문화 산업 또한 완전히 중단시켰다. 더 이상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체크하거나 시상 패널로 활동하기 위해 대륙을 이동하거나 집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는 등의 출장은 없다.

    여행이 줄어들자 공간의 동질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생겼다. 코로나19 이후의 건축은 접근법부터 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건축가 스티븐 홀(Steven Holl)은 말한다. “어느 도시 어떤 공간의 일부분을 바꾼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홀은 뉴욕 라인벡에서 격리 생활을 하는 중이다. 이곳에서 그는 20년에 걸쳐 왜곡된 상자 모양의 거주용 건물을 지어왔다. 그가 만든 건물의 벽은 일반적이지 않은 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사각 혹은 둥근 모양의 창문이 나 있다. 그는 리틀 테서랙트(Little Tesseract)라고 이름 지은 곳에서 살며 라운드 레이크 헛(Round Lake Hut)에서 매일 수채화를 그리면서 지낸다. 그가 “빛과 공간의 연구”라 부르는 70㎡(약 21평) 공간인 스페이스 T2(Space T2)에 임시 사무실을 차려 업무를 보기도 한다.

    홀의 건물은 주변 환경과 유기적으로 어울리며 영향을 받고 있다. 그의 건물은 태양열과 지열을 사용하고 창문은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설계했다. 겨울에는 일정 시간이 되면 내리쬐는 태양 빛이 눈에 반사되어 그가 거주하는 리틀 테서랙트의 천장에 하얀 빛을 발한다고 한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건축이 기존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좀 더 컬러풀하고 전체론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만한 길을 제시한다.

    그가 동료와 친구들에게 배포한 짧은 팬데믹 시대의 성명서에서 홀은 건축이 “우리의 상호 의존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적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경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그것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는 빌딩은 우리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되었는지 의식하게 할 수 있다. 지구의 건강과 인류의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숲속 오두막처럼 대자연 가운데 집이 자리하지 않는 도심의 대규모 아파트에도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지도록 만들 수 있다. 그 예로 홀이 설계한 베이징의 링크드 하이브리드(Linked Hybrid)를 들 수 있다. 이곳은 공공장소와 사적 공간이 상호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 건물이다.

    이곳만이 아니다. 도심 속 우리 동네를 몇 번째인지도 모를 정도로 여러 차례 산책하며 우린 전과 달리 더 집중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한 장소 혹은 공간이라 해도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이 생긴다. “우선 우리 주변 지역의 장소를 예전과 다른 방법으로 보며 인식하게 될 거예요”라고 데보라 버크는 말한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바깥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을 때, 우리의 국제 경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요.”

      에디터
      카일 체이카(Kyle Chay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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