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생리통 없애는 요가 자세

2020.10.22

by 이주현

    생리통 없애는 요가 자세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오는 피.
    그 고통의 침입을 요가로 대처할 수 있을까?

    나는 축복받은 삶을 살았다. 적어도 1년 전까지는. 남들은 ‘그날’의 고통으로 진통제는 기본,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는데 나의 자궁은 묵묵히 본인의 소임을 다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30대를 ‘축하’라도 하듯 극심한 생리 전 증후군(PMS)과 생리통이 손잡고 찾아왔다. 허리와 아랫배의 묵직한 통증, 고공 행진과 추락을 반복하는 기분,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 하루 종일 하품이 쏟아지는 피로와 무기력의 시간이 한 달의 절반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한 번씩 갑자기 수업을 취소하시는 이유가 생리 때문인가요?” 적당한 운동이 생리통에 도움을 준다는 친구의 권유에 필라테스 수업을 등록했지만 그마저 녹록지 않았다. 평소에는 펄펄 날아다니다가도 생리를 시작할 즈음이 되면 스트레칭조차 버거웠다. 여자만 아는 고통을 공유한 필라테스 선생님의 넓은 아량으로 수업료는 지켰지만 나의 우울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히 찾아왔다. 최신 건강 이슈를 조사하던 중 미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요가 강사 산토시마 카오리의 신간 <달의 요가>를 발견한 것이다. ‘월경 주기에 맞게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요가’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에는 산토시마가 바닥에 앉아 양손으로 턱을 괸 채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평온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체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유튜브로 세상만사를 경험할 수 있는 요즘, 엄마의 먼지 쌓인 요리책을 펼치듯 요가를 글로 배운다는 것부터 ‘연애를 글로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기적 방문이라는 암울한 사이클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까?

    <달의 요가>의 시작은 내 몸속 달의 위상을 찾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생리 주기와 배란일을 체크하는 일이다. 이를 한 달 주기로 차고 기우는 달의 모양에 빗대어 설명한다. 생리하는 약 일주일이 비우는 기간, 즉 초승달이 뜨는 시기라면 반대로 배란기는 보름달의 기운이 강한 때. 이 둘을 기준으로 에스트로겐과 황체호르몬의 농도를 고려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와 호흡법을 추천한다. 다리를 어깨 뒤로 넘기거나 양팔로 땅을 짚고 몸을 공중에 띄우는 고난도 동작은 없다. 요가가 처음인 나도 집에서 편안히 따라 할 수 있는 수준. 호흡과 손의 위치, 힘을 주는 부위를 섬세하게 표기해준 덕분에 동작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매일 시간 맞춰 운동을 했다는 성취감마저 뿌듯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PMS와 생리통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 주 2회, 8주 동안 운동을 했을 때 생리통과 전반적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담긴 링크를 한양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엄정민 교수에게 보내며 요가와 생리의 연계성을 물었다. “보내주신 논문 외에도 적절한 강도의 운동은 생리통, 복부 불편감, 감정 변화 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가 존재합니다. 심장 박동 수를 올리고 몸을 이완하는 요가도 이에 해당하죠.” 요가가 생체 신호를 안정화하여 골반 주변 장기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매일 아침 월경 요가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호흡과 명상을 수련하고 밤에는 시기별 추천 동작을 꾸준히 따라 하고 있었다. <달의 요가>를 집필한 산토시마 카오리도, 엄 교수도 요가의 긍정적 효과를 높이 사는데, 나는 대체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요가를 특정한 동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일부에 불과해요. 요가는 삶의 방식이자 태도죠. 저는 수련생들에게 한 가지만 강조합니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알고 있나요?’ 이 기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군요.” 월경 요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요가일상™ 대표 배윤정에게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부진한 증상 완화에 ‘생리통이 심한 날에 요가를 해도 괜찮은지’, ‘나에게 필요한 요가 자세는 어떻게 찾는지’, ‘월경 요가 프로그램 중 핵심 단계는 무엇이고 난도를 높이려면 어느 동작을 어떻게 변형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낸 직후였다. 저비용 고효율 현대식 셈법에 익숙해진 탓일까? 가장 소중하게 돌봐야 할 나에게조차 인색하게 굴었다. 20대 초반 자궁 내벽에 자라난 작은 용종 몇 개를 제거했고 기자가 된 후 마감이라는 불규칙한 라이프 사이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여성호르몬 불균형을 진단받은 이력도 있다. 그럼에도 성인 여성 절반 이상이 자궁 내 용종을 떼어내고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고질병이라 가볍게 넘겼다. 헬스, 러닝, 필라테스, 요가를 두루 섭렵하며 내 몸에 ‘더 강해져야 해!’라고만 외치던 과거가 샅샅이 떠오르며 스쳐 지나갔다. 불편하고 불쾌하다고 치부하던 PMS와 생리통은 자궁이 몸과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봐달라는 신호였는데, ‘방해 금지’ 모드로 매몰차게 차단한 것이다. 앞으로 50년은 더 공생해야 하는 자궁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러던 중 SNS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연을 느끼며 요가를 하는 여인의 모습을 포착했다. 120만 팔로워를 거느린 그녀는 ‘누드 요가걸(@nude_yogagirl)’이란 가명으로 활동한다. “피부에 공기가 직접 닿으면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요. 내가 우주의 일부라는 생각에 휩싸이죠. 우리 모두는 자연에서 왔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이 중요한 진리를 잊어요. 땅을 직접 밟고 공기를 마주하며 대지를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죠.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심신에 가득 채우고 완벽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 그러한 삶의 태도가 요가예요.” 그녀는 인터뷰 답변과 함께 아름답고 황홀한 자연 속 누드 요가 사진을 여러 장 <보그>에 보내주었고, 이 기사에 그보다 완벽한 이미지는 없었다(‘땡큐’, 누드 요가걸!).

    월경과 요가. 이 둘을 함께 이야기하는 나에게 엄마 혹은 이모나 여자 선배들은 우려를 보낼지도 모른다. 2010년대 미국에서는 한차례 의학계와 요가협회 간에 대립이 일었다. 몸을 거꾸로 세우는 ‘역 자세’가 자궁의 혈을 나팔관으로 역류하게 만들어 자궁내막증을 유발한다는 점이 주요 골자였다. 하지만 자궁내막증 연구를 지속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이재훈 교수가 안심해도 좋다는 의견을 보탠다. “이론적으로 타당한 이야기 같지만 지금까지 요가에 초점을 맞추고 수행한 자궁 건강 연구는 없습니다. 역류한 생리혈이 많을수록 자궁내막증 발병률이 올라간다는 내용은 학계에도 알려져 있으나, 자궁내막증은 유전적, 후성유전적, 면역학적 요인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발생하기 때문에 요가에서도 일부 동작이 주는 영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죠. 가장 공신력 있는 산부인과 서적에도 월경 기간 중 운동을 피하라는 소견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요가는 물론 수영과 등산, 보다 강도 높은 운동도 괜찮습니다. 단, 몸에 무리가 오지 않는다면요. 그 ‘신호’만 존중하면 어떤 행동의 제약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양대학교병원 엄 교수도 동의했다.

    애석하게도 나의 PMS와 생리통은 아직 호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산토시마의 월경 요가 프로그램을 따르는 중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적어도 한 달을 열심히 살아낸 나의 ‘포궁’이 모든 것을 비우는 과정을 존중하고 ‘고생했어, 잘하고 있어’라고 위로하며 함께 감내하는 마음을 얻었으니 난 만족한다. 산토시마 카오리가 <달의 요가>를 통해 전하려던 메시지도 이거였을 것이라 믿으며.

    에디터
    이주현B
    사진
    Courtesy of Nude Yoga Girl(@nude_yoga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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