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큰언니, 박세리!

2020.10.27

by 손은영

    큰언니, 박세리!

    우리가 기다린 바로 그 큰언니!

    빨간색 트렌치 코트는 뮈글러(Mugler), 팬츠는 프라다 우오모(Prada Uomo), 베이지색 스틸레토는 버버리(Burberry).

    9월 28일 생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 촬영하고, 저녁에 기차 타고 부랴부랴 대전 집으로 갔어요. 이틀도 못 있고 통영 가서 촬영하고, 서울에서 광고 찍고, 추석도 어찌 갔는지 모르겠어요.

    평소 생일은 어떻게 치르나요?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근 한 달 동안 여러 번 생일을 치르죠. 축하해주는 지인들, 후배들이 많거든요.

    요즘 박세리를 두고 ‘우리가 기다린 큰언니’란 평이 많아요. 어떤 점이 그런가요?

    일단 보고 있으면 속 시원해요. <노는 언니>만 해도 어록이 많아요. “오래 사귄다고 결혼해야 돼?” “생리를 생리라고 하지 뭐라고 해?” 남들은 차마 방송에서 못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거든요. 으하하! 없는 말 한 것도 아닌걸요.

    여러 방송에 출연하지만 <노는 언니>에 유독 애착을 갖는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방송에서 남자 운동선수들 활약이 많잖아요. 종목도 인기 종목에 치우쳐 있고요. 그에 비해 여성 선수, 비인기 종목 선수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들을 노출해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오고 싶어요. <노는 언니>를 통해 우리 선수들의 매력과 열심히 사는 모습이 드러나면 좋겠다 싶었죠. 사실 고정 예능 프로그램에 투입되기 부담스러웠어요. 회사도 운영해야 하는데 지속적으로 시간을 빼기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출연을 결정했죠.

    비인기 종목 선수, 여성 선수가 대중에게 더 드러나도록 도와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건가요? 사명감이라기보다 저 역시 운동으로 성장했던 사람이기에, 선수들에게 애착이 갈 수밖에 없어요. 골프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선수들에게 관심 있죠. 그들이 겪는 안타까운 상황이 마음 쓰이고요. 골프만 해도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 어려운 일이 많아요. 선수들은 경기 모습, 성적으로만 평가되고 안의 속사정은 묻히니까요. 이면을 보여드려서 선수들이 더 이해받고 힘도 얻었으면 좋겠어요.

    몇몇 스타 선수 아니면,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이야기죠. 성공하는 선수는 정말 소수예요. 그들이 나와서 성공 스토리를 압축해서 풀잖아요. 일부 표면적인 이야기만 전달되고, 정말 선수들의 고충은 우리들만의 비밀이 되죠. <노는 언니>에서 우리끼리 은퇴 이후의 삶, 체중 조절, 훈련 중 연애 같은 대화가 계속 나오잖아요. 그런 얘기가 민낯으로 드러난 적 있나 싶어요. 다들 비연예인이다 보니 카메라가 있어도 인식을 못하고 필터 없이 말해요.

    블랙 셔츠는 프라다 우오모(Prada Uomo), 가죽 바지는 우영미(Wooyoungmi), 귀고리는 진 주얼리(Jinn Jewelry), 베이지 스틸레토는 버버리(Burberry).

    멤버끼리 캠핑을 가거나 게임을 하는 등 큰 주제만 주고 대본은 없죠. 운동선수들은 꾸며서 억지로 하라면 잘 못하거든요. 다들 순수해서 편하게 내버려두면 진짜 모습을 보여줘요.

    제작진은 비연예인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려가기가 걱정됐는지 <노는 언니> 2∙3회에 장성규와 함께 유세윤, 황광희 같은 연예인을 투입하죠. 오히려 그 편이 재미없었어요. 맞아요. 아마 제작진도 놀랐을걸요. 연예인이 절대 못 끼는 곳도 있구나. 으하하. 저희한테는 기존 포맷이 통하지 않았죠.

    갑자기 방문한 연예인들에게 “필요 없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모습도 시원했어요. 불편하면 표현해야죠. 불편한 점을 표현해야 다음에 그러지 않죠. 제가 못 참는 선까지 도달하지 않게 미리 얘기해서 정리해야 서로에게 좋아요. 그런 모습을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흔히 방송에서 권력의 우위에 있는 방송국, 연예계 선배에게 기죽기는커녕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 때문에 어떤 ‘든든함’을 느껴요. 우린 왠지 모르게 억눌려 살고 있거든요. 눈치를 보고 가슴 졸이는 날이 많아요. 그렇지 않은 박세리를 보면서 위로를 받죠. 운동선수 중에 저 같은 성격이 많아요. 내가 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말하죠. 피디님이나 작가님께 ‘하지 마’, ‘싫어’, ‘이런 거 시키지 마’라고 자주 말해요. 으하하. 모든 방송을 그런 식으로 해요. 불편함을 그냥 넘기려고 해도 얼굴에 너무 표가 나고, 잘 보이려는 포장도 절대 못하고요. 그래서 방송이 쉽지만은 않아요. 이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진 않아요.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안착하고, 약간의 어긋남은 그 자리가 어색해지지 않게 넘어가죠.

    은은하게 반짝이는 실버 포인트가 돋보이는 블랙 재킷은 우영미(Wooyoungmi), 구조적인 귀고리는 진 주얼리(Jinn Jewelry).

    방송에서 더 직설적으로 말해주세요. 위험해요, 위험해. 으하하.

    <노는 언니>에서 박세리와 후배들의 연대감이 느껴져서 좋아요. 말은 툭툭 내뱉어도 뒤에서는 일일이 챙겨주잖아요. 처음에 박세리를 어려워하던 후배들도 나중엔 큰언니처럼 믿고 따르죠. 선수의 마음은 선수가 아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촬영하고 단톡도 자주 해요. 제가 덜 바빠야 자주 만날 텐데 말이죠.

    ‘리치 언니’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나요? 부담스럽죠. 그렇게 불러주면 안 써도 될 걸 써야 하잖아요. 으하하!

    성공에 당당한 태도 역시 좋아요. 선수로서 이룬 명예, 그에 따라온 부를 담백하게 드러내죠. 보통 있어도 없는 척, 했어도 안 한 척, 가짜 겸손이 많거든요. 자신이 떳떳하게 일군 바를 부러 감출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척’을 제일 싫어해요. 무슨 척, 아닌 척, 그런 척. 저는 자신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에요. 어릴 적에 부유하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살았고, 흥청망청해본 적 없어요. 몸에 배어 있죠. 척은 하지 않아도 겸손은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도 늘 겸손이 가장 큰 자산이고, 네가 빛나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사람들이 저보고 골프 여왕, 영웅이라고 부르면 아직도 쑥스러워요.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던 1998년 US 여자 오픈 때부터 우리의 스타인걸요. 2007년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2016년 은퇴 뒤론 그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대표 팀 감독을 맡아, 박인비 선수의 금메달을 이끌어냈어요. 그런 호칭은 자연스럽죠. 제가 최고라 생각한 적 없어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운다잖아요. 지금도 꾸준히 배우고 최선을 다해서 살 뿐이에요.

    세리라는 한글 이름은 ‘세상을 빛내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 따라 가고 있다.
    화이트 셔츠는 우영미(Wooyoungmi).

    2016년 선수로서 은퇴식을 가졌죠. 그 후에도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1년에 한두 차례 정도였어요. 지난봄 <나 혼자 산다> 이후 예능 활동이 본격화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고요. 은퇴 후에 무엇보다 교육 사업을 하고 싶어서 관련 미팅, 일이 많았어요. 방송은 아예 관심 없었죠. 방송 하나 찍으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잖아요. 새벽부터 12시간 동안 찍은 적도 있어요. 하루하루 처리할 다른 일도 많은데 방송 출연이 부담스러웠죠. 그러다 올해 초 <집사부일체>에 오랜만에 출연했어요. 올림픽을 앞두고 감독으로서 출연했죠. 그 후로 방송국에서 제안이 계속 들어와 일에 지장이 많았어요. <나 혼자 산다> 역시 굳이 제가 집에 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잖아요. 집에서 먹고 자는 인간 박세리를 굳이 보여드려 무엇하나 싶었죠. 오랜 부탁으로 출연했는데 반응이 세더라고요. 그런데 저 너무 못생기게 나오지 않았어요? 으하하. 다들 아침에 일어날 때 머리도 예쁘고 얼굴도 안 부었던데, 저만 왜 이럴까요.

    그 출연이 후회되지 않았기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이어간 거네요. 운동선수 박세리가 아니라 지인들만 아는 제 모습을 보여드리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사실 주변에서 걱정 많이 했어요. ‘저 언니 성격 아는데, 괜찮을까’라면서요. 으하하.

    박세리가 저런 웃음소리를 내는지도 처음 알았어요. 그러니까요. 저는 평생 이렇게 웃어왔는데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어쨌든 교육 사업이란 본업에 충실하고 <노는 언니>처럼 취지가 좋은 것만 하려고 해요.

    유튜브 채널은 왜 개설했나요? 팬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선수 시절에는 팬들과 이어지기 어려웠어요. 방송에서 제 모습을 일방적으로 보여드릴 뿐이었죠. 유튜브는 팬들이랑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기에 시작했어요.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고요. 댓글을 하나하나 다 읽어요.

    기억나는 댓글이 있나요? 생일날 인스타그램에 어떤 팬이 “생일에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능력이 안 돼서 못했다. 내년엔 꼭 뭐라도 주고 싶다”는 댓글을 다셨어요. 저를 보면서 힐링된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정말 감사하고 소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블랙 셔츠는 프라다 우오모(Prada Uomo), 귀고리는 진 주얼리(Jinn Jewelry).

    SNS에는 원래 관심이 없었나요? 선수 때 다들 하는 페이스북도 안 했어요. 저는 어딜 가든 무얼 하든 기사화되잖아요. 그런데 굳이 내가 어떤 상태인지 드러내기 부담스러웠어요. 안 들어도 될 말을 들어서 마음 상하기도 싫었고요. 은퇴하고도 여전히 미디어에 노출됐기에 이 생각은 변함없었어요. 그런데 아빠와 예능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하면서 조금씩 바뀌었어요.

    <아빠를 부탁해>에서 부녀의 일상을 공개했죠. 출연을 여러 번 고사했어요. 저야 괜찮지만 우리 가족이 이렇다 저렇다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제작진이 오히려 실제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면 좋은 반응을 끌어낼 거라며 설득했죠. 아빠에 대한 오해와 루머가 많아서 기막힌 일을 많이 겪었죠. 그래서 진짜 우리 아빠를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어요. 저도 선수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마음이 편해진 상태라 한번 해보자 싶었고요. 다행히 방송을 통해 아빠나 저나 강하고 어려운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어느 정도 사라진 것 같아요.

    지난해에 스포츠 & 교육 컨텐츠 기업 ‘바즈 인터내셔널’을 설립했죠. 대표로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사회 초년생이잖아요. 운동만 했던 사람이라 경영은 많이 모르죠. 다만 선수 생활 하면서 겪었던 고충, 습득한 노하우를 활용해서 스포츠 꿈나무들, 후배들을 돕고 싶어요. 회사를 세운 주목적도 교육 컨텐츠예요. 스포츠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게 해 잠재력을 깨워주고 싶어요. 예를 들면 스포츠 돔을 설계하고 싶어요. 수영 선수들이 수영장이 없어서, 피겨 선수가 아이스링크가 없어서 훈련을 못하기도 하잖아요. 또 선수들의 미래도 코치하고 싶고요. 그중 하나가 선수와 후원 업체를 연결해주는 거겠죠. 한마디로 제가 운동하면서 안타까웠던 부분을 보완한, 운동선수 토털 아카데미죠.

    더블 버튼 체크 울 재킷은 토가(Toga), 검정 팬츠는 프라다 우오모(Prada Uomo), 베이지색 스틸레토는 버버리(Burberry).

    한국에서는 최초 아닌가요? 박세리는 뭐든 최초군요. 그러네요. 으하하. 제가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구상은 다른 분이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이 선배를 보고 힘을 받겠어요. 후배들이 도움을 청할 때가 많아요. 세리 키즈들이 성장해 지금 잘해주고 있잖아요. 이제 내 이름이 아니라, 그 후배들 이름으로 다음 키즈가 계속 나오고, 스포츠 자체가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선수로서 꿈을 이룬 뒤에 제2의 인생은 잠깐이나마 쉬고 싶었어요. 하지만 후배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교육 컨텐츠 사업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거죠. 아직 결과물은 없지만 후배들에게 꼭 돌려줄 거예요.

    카멜 울 코트와 프린트 셔츠는 우영미(Wooyoungmi), 팬츠는 프라다 우오모(Prada Uomo).

    사업에 대한 포부를 얘기할 때 표정이 달라지네요. 오래 꿈꾸던 사업이니까요.

    제3의 인생은 어떻게 맞이하고 싶나요? 가정이죠. 으하하. 어떻게 평생 혼자 살겠어요. 자신의 일을 가진, 친구 같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이렇게 멋진 싱글로 있어달라는 팬도 있어요. 솔직히 당장 결혼 생각은 없어요. 지금이 아주 좋거든요. 혼자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기에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데 익숙해요. 벌여놓은 일, 새로 생긴 목표를 단계별로 이뤄가는 과정이 즐겁고, 열심히 사는 제가 자랑스러워요.

    지금 삶에 만족하는 사람 오랜만에 봅니다. 힘들긴 힘들죠. 하루에 열두 번씩 ‘정말 바쁘네’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일에 집중할 땐 다 잊고 즐기게 되고,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면 굉장한 만족감이 들어요.

    박세리를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가족이죠. 선수 생활 하는 동안 가족이 희생을 많이 했어요. 운동하려면 가족의 서포트가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가족에게 힘을 얻고, 그들이 있기에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비대칭 블루 하이넥 니트 톱은 우영미(Wooyoungmi).

    패션 에디터
    손은영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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