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K-패션을 세계에 전파하는 이들의 토크

2020.12.24

by 손은영

    K-패션을 세계에 전파하는 이들의 토크

    정윤기는 아시아를 뛰어넘은 아이콘이다. K-패션을 세계에 전파하는 이 파워풀한 남자와 <보그> 패션 디렉터가 나눈 패션 토크.

    평소 여러 장의 셔츠와 니트로 믹스 매치를 즐기는 정윤기는 인터뷰 때 영국 패션 홍보대사답게 영국의 패션 유산인 체크로 멋을 냈다. 묵직한 하운즈투스 울 코트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제 일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가 압구정동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나를 보며 말했다. “처음엔 스타일리스트로서 내가 뭘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도 많았죠.” 대한민국 제일의 패션 홍보 대행사 ‘인트렌드’ 대표이자 1세대 패션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의 말투는 늘 수줍은 듯 당당하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셀러브리티 군단만큼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별에서 온 그대 전지현’의 천송이 패션, ‘부부의 세계 김희애’의 똑 부러지는 지선우 스타일,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의 공블리 룩 등등 “정윤기!” 하면 자연스럽게 슈퍼스타의 이름과 그들의 상징적인 옷차림이 떠오른다. 또 레드 카펫 스타일링이 전무하던 시절, 김혜수와 함께 2000년대 ‘레드 카펫 패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치면 ‘스타일 스페셜리스트’, ‘올해의 스타일리스트상’, ‘패션대상 국무총리 표창’처럼 화려한 이력이 쭉 열거된다.

    그리고 지난해 9월부터는 ‘영국패션협회 런던 패션 위크 홍보대사’라는 이력이 추가됐다.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의 패션계와 정치계 인사, 셀러브리티로만 구성되던 홍보대사 명단 가운데 한국인 이름이 추가된 건 그가 처음이다. “K-팝, K-뷰티, K-드라마 유행 덕분에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이 서양에서 기대 이상으로 높아요. 아이돌과 한류 드라마 주인공 배우 스타일링, 그리고 꾸준히 해오던 글로벌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인 것 같아요.” 셀러브리티뿐 아니라 VIP 스타일링과 패션 매거진의 화보 스타일링 등 여러 영역에서 자신만의 터치를 보여준 그는 자신의 광범위한 식견 또한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세련된 옷과 유행, 대중적 감각을 잘 버무린 그의 스타일링은 늘 호평을 얻었고 브랜드 측에는 매출로 곧장 이어질 만큼 그는 비즈니스 실력도 겸비한 보기 드문 패션 전문가다. 패션 스타일리스트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1994년 광고 스타일리스트로 패션계에 입문한 그는 바쁘고 힘든 만큼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비례했고 또 그만큼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지금처럼 협찬 시스템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남대문, 동대문 시장을 뒤지고 뒤져 고른 200벌을 빌려 촬영하고 혼자 4박 5일 동안 반납했죠. 그렇게 찍은 코트는 패션 매거진 지면에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실렸지만 첫 번째 잡지 일이기에 절대 잊히지 않아요.”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이다. <엘르> 막내 패션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협찬 때문에 바로 그 인트렌드를 내 방처럼 드나들던 시절이었다(내가 경력 기자가 된 후 들은 바로는, 그는 내가 촬영한 화보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정윤기의 실용주의 노선과 나의 실용주의 노선이 일치해서 그런 것 같다는 것이 나의 평가!). 그런데 언제 들어도 그의 ‘나 때는 말이야’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런 뒤 경험이 쌓이면서 나만의 관점으로 스타일링하게 됐어요. 스타일리스트는 옷을 새로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옷에 추가 작업을 하는 사람이에요. 초창기 코디네이터들이 촬영장에 옷만 배달했다면 저는 보석이며 구두며 가방이며 옷이 더 멋지고 근사해 보이는 소품을 찾아 룩의 디테일을 살려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죠.”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그의 감각은 이 같은 완벽주의에서 비롯됐다. 영국패션협회가 그를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정윤기는 2년 동안 영국 패션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알리고 한국 디자이너와 패션을 세계에 알리는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 “얼마 전 영국패션협회가 주관하는 ‘2020년 패션 어워즈’의 수상자 선정 작업을 마쳤어요. 신규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리뷰하는 일이 매우 큽니다. 지난해 9월에는 런던 패션 위크의 모든 쇼를 실시간으로 취재했습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패션쇼를 품평하는 리포트 작업은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그의 상징이 된 검은 뿔테 안경에 늘 포근한 인상의 정윤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이야기를 꺼낼 땐 소년처럼 얼굴이 환해진다. “우영미, 정욱준 같은 디자이너를 존경해요. 해외에 K-패션을 알린 주인공들이니까요. 그런가 하면 젊은 서울 디자이너들로부터 영감도 많이 받아요.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감각도 훌륭한 데다 참 똘똘해요.”

    하지만 패션엔 진정성과 정통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매혹적이지만 잠깐 유행하고 말 패스트 패션을 진정한 패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그의 반짝이는 눈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우리 의식주는 바뀌지 않아요. 언택트,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 요소는 필연적이죠. 멋진 패션 영상과 이미지 속에도 ‘인간’은 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니까요.”

    나는 그에게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만큼 많은 길이 열릴 거예요. ‘룩’과 ‘애티튜드’가 중요합니다. 코디네이션 방법과 트렌드를 제대로 읽어줄 전문가가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 저는 방송이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자제하고 있어요. 맛있는 요리에도 정확한 설명과 적절한 플레이팅이 필요하잖아요? 라이프스타일에 직접 영향을 주는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K-패션을 제대로 전파하고 싶어요.”

    에디터
    손은영
    포토그래퍼
    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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