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을 적셔줄 전시 <언어 깃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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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적셔줄 전시 <언어 깃털>

2021-03-25T19:17:38+00:00 2021.03.25|

얇은 카디건 하나만 어깨에 두르고 걷기 좋은 계절. 본격적으로 감성 전시를 즐겨보시죠.

 

<보그 코리아>가 추천하는 전시는 런던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박주연 작가의 개인전 <언어 깃털(Other Feathers)>입니다. 언어와 숫자의 추상성과 허구성에 관한 생각을 담은 전시인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6채널 사운드 설치 작품을 비롯해 드로잉과 글쓰기의 경계에 있는 평면 작업, 조각 오브제 등 작가의 신작 다섯 점을 만날 수 있죠.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처음 느껴지는 인상은 ‘고요함’입니다. 한쪽 벽면엔 작은 액자가 즐비하고 바닥엔 커다란 색종이를 오리다 만 것 같은 오브제가 놓여 있거든요. 각각의 작품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는 느낌보다는 공간 속에 가볍게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선 ‘언어 깃털’이라는 전시 타이틀이 매우 인상적이죠?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크의 짧은 이야기 중 나이팅게일의 깃털과 목소리에 관한 일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랍니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하나의 알레고리로 차용하여 잠재한 폭력성을 지닌 언어의 의미를 제거하고 남는 목소리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럼 작품에 녹아 있는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볼까요?

 

‘그녀가 노래를 말할 때(When a Nightingale Speaks of a Song)’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에 귀 기울여보세요. 여섯 개의 다중 채널로 구성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작품이랍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런던에서 작가가 발코니에서 들은 새소리와 멀리 아테네에 사는 성악가 네 명이 영어, 그리스어, 한국어로 작가의 글을 낭독하는 소리, 미세하게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리, 침묵이 어우러져 감성을 적시는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열셋 챕터의 시간(Time in Thirteen Chapters)’

200자 원고지 260매 분량으로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관객은 격자라는 한계 내에서 특정 구문에 의해 쓴 듯한 띄어쓰기를 언뜻 읽어보려고 시도하지만 읽는 것도 해석도 전혀 불가능합니다. 작가의 몸에 기입된 쓰기의 기억이 투영된 것일 뿐, 의미는 소진되었기 때문이죠.

 

‘곡선의 길이(Measuring Curves)’

모두 여섯 개의 조각 오브제로서 흰색과 다홍색으로 채색된 자유로운 곡선 형태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이는 재료의 물성(철)을 가뿐히 뛰어넘은 듯, 색종이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양태로 존재하는데요. 오브제 각각의 길이는 2m로 동일하지만 그것이 휜 상태에 따라 길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숨은 의미를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새롭게 생겨난 사회적 규칙의 임의성과 모순을 드러낸 것이거든요.

 

‘눈먼 눈(Blindness)’

실제로는 거울이지만 흰색 칠로 인해 읽을 수 없는 오래된 책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직접적으로는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Essay on the Blindness)>(1995)를 인용할 수 있을 텐데요. 눈앞이 우윳빛으로 변하는 백색 실명이 전염병으로 유포되는 소설의 상황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불안과 교묘하게 교차됩니다.

이번 주말엔 아뜰리에 에르메스로 미술관 나들이 어떠세요? 전시는 6월 6일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