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의자, 오늘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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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의자, 오늘의 의자

2021-04-01T14:54:21+00:00 2021.03.31|

역사상 많은 가구 가운데 의자에 대한 예찬은 끝날 줄을 모른다. 게다가 의자는 시대마다 미적 변화, 사회적 지위, 감성적 가치가 동반된, 인간과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구라 할 만하다. 집에 들이는 첫 번째 가구로 의자를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가구 감정사 이지은이 이러한 의자의 궤적을 좇아 중세시대 의자부터 20세기의 혁명적인 임스 체어까지 10개의 의자를 다룬 책을 내놓았다. <기억의 의자>와 <오늘의 의자>라는 명징한 제목으로 말이다.

Vitra

중세시대부터 20세기까지 10개 의자를 추적하고 두 권의 책으로 기록했는데요, 수백 년의 간극을 둔 의자를 탐험하시면서 의자라는 가구가 지닌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의자는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가구입니다. 그래서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할 때마다 수많은 의자가 탄생하고 사라지죠. 가히 별들의 전쟁과도 같은 의자는 그래서 계보도도 가계도도 굉장히 복잡해요.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생활과 역사의 변화를 증언하는 사물이라는 것이 의자가 지니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자’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모티브가 되었던 의자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이미지가 있을까요? 가구 감정사나 장식미술 사학자에게 의자는 안나푸르나 거봉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등산가들이 안나푸르나 거봉을 꿈꾸잖아요. 도저히 전체를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높지만 꼭 한 번은 오르고 싶다고 꿈꾸는 곳. 의자는 저에게 그런 의미였어요.

 

루이 14세 궁정에 존재했던 ‘타부레’라는 의자의 상징성이 흥미로워요. 등받이가 없이 스툴 형식을 띤 타부레는 일반 안락의자보다는 서열이 낮지만 그럼에도 왕에게 하사받거나 앉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에서요. 당시 타부레는 어떤 역할을 했나요? 오늘날 고급 수입차나 아파트가 경제적 위치를 나타내듯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타부레는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의자였어요. 타부레에 앉은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타부레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신분 사회에서 상류에 속하는 이였던 거죠. 타부레는 일반 귀족 저택에서도 사용되었던 흔한 가구였지만 궁정의 타부레에는 물건을 넘어서는 신분이라는 의미가 붙어 있어 모두에게 열망의 대상이었죠.

 

루이 14세 시대만 해도 의자는 가구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조연이었다고 적혀 있더군요. 루이 14세 사후 18세기 초부터 의자가 인테리어의 꽃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그리고 당시 어떤 의자가 출현했는지요?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랑스 왕가는 섭정기에 접어들게 돼요. 왕족이 베르사유를 떠나고 정치, 행정의 중심지가 파리로 옮겨지죠. 당시 파리는 요즘의 뉴욕 같은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어요. 오페라나 밤의 여흥, 화려한 패션을 좇아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호사가와 귀족들이 살롱을 중심으로 네크워크를 형성하면서 의자의 르네상스가 찾아옵니다. 모임을 가지려면 어딘가에 앉아야 하잖아요. 오늘날 우리가 소파라고 통칭하는 카나페 종류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등받이가 메달 형태인 카브리올레 등 오늘날까지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앤티크 의자 스타일은 이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19세기로 오면 의자가 장인의 작품에서 산업 생산품으로 변모합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가구 제작자 치펀데일은 카탈로그도 제작하고 본토 스타일을 발 빠르게 흡수하는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하죠. 하지만 치펀데일 의자를 오늘의 눈으로 보면 그 이전의 ‘앤티크 의자’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치펀데일의 가구가 혁신적이었던 이유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치펀데일 의자의 혁신은 미니스커트나 나일론 스타킹과 같아요. 미니스커트도 나일론 스타킹도 지금은 너무나 진부해서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죠. 하지만 미니스커트를 입은 윤복희나 나일론 스타킹에 목을 맸던 1950년대 미국 여성들을 생각해보세요. 치펀데일 의자 속에 담긴 혁신을 읽으려면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브리저튼> 같은 영국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19세기 초반의 런던 거리와 영국의 유행을 좌지우지했던 젠트리들의 시대로요.

 

의자의 두 번째 책 <오늘의 의자>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토넷의 14번 체어를 ‘19세기판 이케아’라고 표현했죠. 그만큼 혁신적이고 구매와 배송이 용이하다는 의미일 텐데요. 당시 토넷 체어가 가져온 변화는 어느 정도였나요? 토넷 체어가 가져온 변화는 신세계라고 표현할 만큼 전방위적이에요. 기술적으로는 나사만으로 간단하게 조립이 가능하고, 휨 가공을 이용해서 놀랄 만큼 능률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디자인 모델이었죠. 조각 장식이 전혀 없이 오직 의자 프레임이 정체성의 전부인 의자라는 건 디자인적으로는 혁명에 가까운 개념이었어요. 이 파격적인 의자가 베스트셀러였다는 건 동시대인들이 공감할 만한 철학과 비전, 실용성과 가격 등 모든 점에서 설득력을 발휘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토넷 체어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권을 넘어서 인도에서도 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글로벌 히트작이었어요.

 

1925년 처음 탄생한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는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갸우뚱할 만큼 혁신적인 디자인입니다. 실제로 앉아보면 그리 편안하지만도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가 디자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세요? 바실리 체어의 프레임 구조나 형태는 동시대 그 어떤 의자와도 차별화된 독보적인 외관입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나 르 코르뷔지에 등 당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바실리 체어의 팬이었던 이유는 바실리 체어의 디자인적 디테일보다 바실리 체어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현대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강관이나 전구 같은 산업 생산품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미의식, 기술이 가져다준 삶의 가능성과 속도, 형태와 기능 사이의 촘촘한 논리성, 바실리 체어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의자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을 거둔 것에 그 의미가 있어요.

Marcel Breuer Papers, Special Collections Research Center, Syracuse University Libraries

1940년대 말 찰스 임스가 최초의 플라스틱 의자를 생산합니다. 당시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플라스틱이 활발히 쓰이기 시작할 무렵이죠. 그러나 플라스틱이 편의성과 동시에 가볍고 싸구려인 데다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오명도 안고 있었죠. 그러나 예외적으로 임스의 플라스틱 의자는 오늘날까지 디자인 면에서나 소재 측면에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임스의 플라스틱 체어는 ‘저가 가구 공모전’ 당선작이에요. 저렴하면서도 좁은 공간에서 실용성을 발휘하는 똘똘한 의자를 목표로 만들었습니다. 처음 구상은 플라스틱이 아닌 금속 의자였어요. 하지만 임스의 플라스틱 체어는 플라스틱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의자입니다. 임스 체어 특유의 몰딩 시트와 부드러운 곡선, 시각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하는 색깔, 가볍고 부피가 작은 모든 특성은 바로 임스 체어의 주재료인 플라스틱에서 비롯됩니다. 더불어 임스의 의자에 쓰이는 유리섬유 강화플라스틱은 오늘날 요트, 비행기 등의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이기도 해요.

요즘 사람들은 인테리어나 가구에 입문할 때 대개 의자를 첫 번째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신중을 기하고 자기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의자 하나를 결정하죠. 의자가 기능적으로 쓰임이 좋긴 하지만 심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가구가 의자인 것 같아요. 그렇죠. 거실에 앤티크 의자를 놓아둔 사람과 바실리 체어를 놓아둔 사람은 전혀 다른 취향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크죠. 취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가구라는 점에서 의자는 현대인의 또 다른 정체성 같은 느낌입니다. 가구를 넘어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아이덴티티로 기능하는 게 의자의 오늘이자 미래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