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의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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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의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2021-05-11T18:47:41+00:00 2021.04.07|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는 세상과 소통을 멈춘 적 없는 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이 건네는 두툼한 대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표지에는 홍대 주차장 길에서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박용만 회장은 간결하게 “사람이 많은 데서 찍고 싶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 사진은 39년간 경제적 성취를 추구해온 사업가에게 왜 사진작가, 아마추어 요리사, 얼리 어답터, SNS 활동가, 국제 봉사 단체 몰타기사단 한국지부 회장 등과 같은 수식어가 동반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믿음, 그에게 골목은 사람으로 통하는 길이다.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에는 그가 살며 웃고 울고 느낀 이야기가 시간과 상관없이 수십 개 챕터에 걸쳐 가득 차 있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어른이자 가장, 남편이자 부모, 기업인이자 자연인인 한 사람의 흥미진진한 역사가 펼쳐진다. 한국 기업의 현대사가 궁금한 사람이든 나이 들어감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든 삶에 자극이 필요한 사람이든 공감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 이는 더 깊이, 더 자주 세상에 닿고자 한 그의 태도 때문이다. 무거운 책무 가운데 놓지 않은 사유의 끈은 유머로, 성찰로, 울림으로 이어진다. 그 남자가 적은 문장은 자신을 향한 직시이고, 그 남자가 찍은 사진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다.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는 인생 2막을 앞두고 지난 삶을 반추한 산문집이라고 예상했으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프롤로그에 “생각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나누는 일”이라고 책의 성격을 정의했습니다. 자서전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회고록 같은 거 좋아하지 않거든요. 뒤돌아보는 성격도 아니고, 어떤 의미를 가진 과거로서 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과거사가 들어가긴 하는데 이야기를 끌어내는 소재로서 쓴 거예요. 나의 개인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뒷이야기가 위선이나 꾸민 이야기로 들릴 가능성이 있어서 나에 대한 설명을 조금 건드렸어요. 친구들이나 후배들과 밥 먹고 술 마실 때 이 야기를 나누잖아요. 사람들이 끄덕여주고 웃어주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독자도 그렇게 받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웃기도 했다가 공감도 하는 그런 즐거운 자리의 연장으로 글을 썼어요.

평소 독서 취향이기도 한가요. 평소 내 이야기 취향이죠. 책을 쓸 때 심오한 책을 지향하지 않았거든요. 재미있고 유익하면서 일부는 이런 건 알아두면 좋겠다 정도. 그런 요소를 충족시키려고 실제 에피소드를 대화 형식으로 넣었고, 그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을 메시지로 내놓았어요. 그 메시지에 공감하는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실 텐데 거기서부터 또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겠어요? 책도 일종의 대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대화를 한꺼번에 던지고 듣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평소 책이라는 형태에 갇혀 생각해보지 못한 정의군요. SNS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모아서 한꺼번에 내놨다고 해야 할까요. 내 페이스북을 봤던 사람이라면 페이스북에 단편으로 쓸 법한 글로 여길 수도 있어요. 평소 SNS 글을 쓸 때 세 배나 네 배를 썼다가 줄이는데 이번 책도 그랬어요. 처음에 쓴 원고는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줄이고 줄여서 436페이지가 됐어요.

“세상은 끊임없는 평가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혹은 자신이 세운 잣대에 맞추어 늘 나까지 평가를 해대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신입 사원 면접이라든가 기자와 대화, 철거촌 노인과 대화 등 에피소드가 생생합니다. 기억력이 탁월한 편인가요, 메모를 하는 편인가요. 비상한 기억력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대화를 하다가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적어놓곤 해요. “분노는 보일수록 비용이 증가하고 웃음은 보일수록 소득이 증가한다.” “착각은 과감한데 실력은 겸손하다.” 이런 문장인데 말했을 때 사람들이 웃거나 ‘맞다 맞다’ 했던 얘기예요. 그 한마디가 뭐였더라, 이런 얘기했지, 그러면서 느꼈던 것을 써 내려갔어요.

문장이 직설적이고 군더더기는 없지만 적재적소에 유머와 비유가 섞여 있어서 소리 내어 웃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평소 화법에서도 비유를 즐기는 편인가요. 그렇죠. 3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주사 부리는 친구가 있으면 “얘는 뇌는 2차에 두고 몸만 3차에 왔네” 그래요(웃음). 책을 읽은 주변 평이 “딱 박용만이다”예요.

글을 쓰며 지향한 태도와 경계한 태도가 궁금합니다. 동떨어진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고 내 이야기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장 경계한 건 ‘과연 내가 솔직한가’였어요. 내 책을 읽고 거짓말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가장 듣기 싫었어요. 오물이 묻은 것과 재가 묻은 건 다르잖아요. 하지만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재가 묻었다고 이야기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심리가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고 실패한 건 실패했다고 하고. 기간제 사원 이야기도 사실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나 자신을 봤을 때 비겁하고 소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썼어요. 솔직함이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동경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박완서 씨. 너무 이야기를 쉽게 쓰시잖아요, 술술술. 이 책을 쓰면서 술술술 읽히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완서 씨 글은 심오하고 어려운 표현이 없는데 읽고 나면 ‘맞아 맞아’ 하게 돼요. 정말 대단한 재능인데 되게 부럽더라고요.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기쁨은 글을 썼을 때 나도 마음에 들고 독자들도 마음에 들었을 때죠. 슬픔은 쓰기 싫은 글을 쓸 때죠. 나를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연설문 쓸 때 정말 슬프죠.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정시에 규칙적으로 정량의 원고를 집필했나요, 아니면 몰아치듯 집중해서 써 내려갔나요. 책의 80%를 밤낮없이 앉아서 보름 만에 썼어요. 그런데 회사나 상공회의소에서 써달라고 하면 보름을 앉아 있어도 첫 단어 하나 생각 안 나는 경우도 있어요.

집필실 풍경도 궁금합니다. 집필 장소는 작가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단서가 되거든요. 책상 있는 방이 따로 있는데 잠옷 바람에 앉아 있기가 좀 그랬어요. 추리닝이라도 입어야 하는데 문득 침대 발치에 선반이 보였어요. 평소에 외출해서 돌아오면 시계 던져놓는 선반인데 거기에 사무실 의자 가져다놓고 모니터 연결해서 썼어요.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서재에는 어떤 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요. 서가의 3분의 2가 사진집이에요. 나머지 3분의 1 중 3분의 1이 요리책이에요. 그리고 나머지 3분의 2가 삶의 이야기가 담긴 가벼운 에세이고요. 신앙에 관한 책, 인간의 감정과 대화에 관한 책도 많고요. 통독한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공저의 <인생 수업> 그런 책? 요즘 유행하는 책을 바로바로 따라가진 않는 편이에요.

평소 어떤 순간에 책을 꺼내 읽나요. 주로 사진집을 많이 봐요. 시력을 많이 잃어서 활자를 보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화면으로 보면 잘 보이는데 책으로 보려면 대낮처럼 밝아야 해요. 그래서 책 읽는 양이 점점 줄긴 하는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을 때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책장을 가득 채운 사진집의 저자, 애호하는 사진가에 대해 청해 듣고 싶습니다. 흑백사진은 로버트 프랭크 같은 현대적인 작가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같은 사람도 좋아해요. 컬러사진은 알렉스 웹, 데이비드 앨런 하비.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는 1960년대에 활동한 사울 레이터예요. 희한한 건 사진을 스트레이트로 찍었는데 아주 회화적이에요. 좋아하는 사진가를 모두 꼽으려면 밤새워야 해요.

인스타그램 @yongmaanpark은 사진가 박용만의 사적 갤러리로 보입니다. 소개 글 ‘Monochrome World’처럼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색깔을 걷어냄으로써 선명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치장이 다 없어지죠. 치장이 없어지기 때문에 아주 진실한 형태와 빛이 보이죠. 가감 없는 사실을 보는 사진이기도 하고요. 물론 컬러도 좋아해요.

평소 카메라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차 타고 가다 찍기도 하고 양해를 구하고 찍기도 하고 정해져 있지 않아요. 내 머릿속에는 훈련된 프레임이 있어요. 난 남의 사진을 많이 보는 걸로 사진을 배웠어요. 남의 사진을 무수하게 많이 보고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골라내고 그런 사진을 또 보고 또 봤어요. 그렇게 내 머릿속에 훈련이 되어서 좋아하는 프레임이 보이면 딱 찍는 거예요.

처음 사진을 찍은 계기가 된 아버지 사진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찍기도 하나요. 그럼요. 가족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주로 찍어요. 내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담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예쁜 사진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보통 집에 앉아 있다가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럽거나 집사람이 웃기거나 그런 걸 찍는데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찍는 것 같아요.

술자리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에는 사회의 어려운 모습이 많이 담기는데 그것을 취미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가”라는 얘길 듣고 10년 동안 찍은 사진을 파기해버린 에피소드를 읽었습니다. 그 일로 사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별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땐 술 취해서 그 말이 맞고 내가 교만한 것 같아서 디스크를 부숴버렸는데 다음 날 술 깨고 나니 그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하게 찍은 사진이고 사진에 드러나는데 거기 왜 내 처지가 개입되어야 하는가 싶었고 나중에는 그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그때 꼭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인스타그램 @yongmaanpark에는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잠시 불러 세운 듯한 순간이 가득합니다. 대비되는 요소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화학작용이 있고요. 엄청난 행운과 우연, 기민한 순발력이 빚어낸 절묘한 순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죠. 그 우연의 순간이 자주 보이지 않거든요. 또 하나는 기다림이에요. 만약 어떤 장면 안에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면 수백 명이라도 내가 원하는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둘 다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지요. 몇 시간씩 발품 팔아서 돌아다니든지 끊임없이 한자리에서 기다리든지 둘 중 하나니까. 연출하는 사진은 극도로 싫어해요.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대면 찍는 사람의 시선만 남을 뿐 나머지는 사라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평화로워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시간 관념도 잊어요. 몇 시간이 지나도 모르니까.

해시태그 역시 절묘한 제목처럼 작품 세계의 일부를 담당합니다. 해시태그를 달 때 고심하나요, 즉흥적으로 붙이나요. 고심하면 솔직하지 않은 거예요. 사진에 설명을 적으면 보는 사람도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해서 쓰지 않아요. 그리고 주제를 꼭 표현하지도 않아요. 봄에 찍었으니까 봄이라고 써놓기도 해요.

최근 업로드한 사진에 ‘Spring’이란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습니다. 몸이 좀 아팠다가 회복기에 들어가는 사람이랑 갤러리에서 만나서 얘기하던 날이에요. 올해 들어 가장 따뜻한 날이었어요. 날씨가 따뜻하니까 봄이구나 느끼기도 했고, 그 사람도 회복기에 들어가니 봄이구나 했어요. 창에서 빛이 쭉 들어오길래 찍었어요. 겨울에도 그 빛이 들어오는데 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빛도 따뜻해 보여요.

사진에 골목길이 자주 보입니다. 우리 삶에 계속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골목의 어떤 정서를 사랑하나요. 어릴 때 골목에 살았어요. 그런 향수가 있는 데다가 삶 본연의 모습이 보이잖아요. 옛 동네에 가면 다양한 삶이 보여요. 사람 때문에 골목에 가는 거예요. 산책도 경치 좋은 데 가지 않아요. 골목길로 가요.

사진가 박용만에게 좋은 사진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구도나 빛 얘긴 할 필요가 없어요. 좋은 사진은 진실한 사진이죠. 사진만큼 진실하고 솔직한 게 없어요. 사물을 그대로 기록하는 게 사진이지만 보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에 따라 다 달라져요. 사진을 찍을 때 상대를 봐주기를 원하며 찍으면 상대방이 돋보여요. 똑같은 앵글이라도 공간감을 전하고 싶으면 아주 미세하게 담겨요. 현장을 그대로 기록해도 찍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서 사진이 좋아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이 좋고요. 사진가의 눈과 보는 사람의 눈이 일치했을 때 사진가는 희열을 느껴요. 혹자는 사진은 열 개의 시각이 있으면 열 개의 시각으로 따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난 내가 보고 느낀 걸 남도 보고 느껴줬으면 좋겠어요.

글을 쓰는 이유와 다르지 않게 들립니다. 맞아요. 사진도 소통 방식이에요.

올해 <보그 코리아>가 창간 25주년을 맞았습니다. 1996년에 직접 <보그>의 한국 발행 라이선스를 따온 초대 발행인입니다. 당시 왜 패션지여야 했나요. 참고서 출판을 하면서 1년 내내 고르게 매출이 나오는 출판물을 찾고 있었어요. 88 서울 올림픽 이후 컨슈머리즘이 도래해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어요. 패션에 관한 글이라면 자신 없었지만 패션 사진을 보는 눈은 있지 않을까 싶었죠. 당시에 얼마나 무지했냐면 <보그> 본사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처음에 파리로 연락했어요. 파리에서 우린 본사가 아니니 미국으로 연락하라고 하더라고요. 미국에 연락하니 런던에서 담당한다고 하고, 런던에서는 아시아는 호주로 연락하라고 했죠. 마침내 연락이 닿았는데 마침 담당자가 한국판 때문에 서울에 있다는 거예요. 수소문해서 호텔 방으로 찾아갔더니 이미 10개 업체가 PT를 마쳤고 사흘 후에 떠난다고, 너무 늦었다더군요. 딱 1시간만 내달라고 간청했어요. 그리고 이틀 밤을 홀랑 새워서 준비해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그러고 한참 있다 연락이 왔는데 우리랑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몇 년 지난 다음에 왜 우리와 했냐고 물었더니 “잡지사 운영 경험이 없고 패션도 모르지만 가지지 않은 걸 가졌다고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우리 프레젠테이션이 가장 솔직했다고요. 막차 타서 한 방에 간 셈이죠.

창간 당시 “엄마와 딸이 정겹게 머리를 모으고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 출장차 방문한 뉴욕 지하철에서 <보그>를 펼쳐 보는 주름투성이 할머니의 모습, 가판대에서 <보그>를 가볍게 챙겨 들고 나가는 젊은 여자들의 모습에서 <보그>의 미래를 상상했다”고 했죠. <보그>다운 <보그>를 읽는 독자들이 얻는 판타지의 환희를 생각하면 즐거웠어요. 거기 충실하고자 노력했고요. 그래서 고수한 원칙도 있었어요.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이슈는 다루지 않았고 아름답되 옷이 정확히 보이는 사진을 싣고자 했어요. 색깔과 디자인은 물론 입었을 때 목에 닿는 촉감까지 짐작이 가는 사진이어야 했어요. 판타지를 파는 작업이기 때문에 판타지 속에 독자가 자신을 구체적으로 넣을 수 있길 바랐어요.

터치 한 번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아름답고 창의적인 사진과 글에 닿을 수 있는 지금, <보그>에 대한 이미지는 함께 변화했나요. <보그>를 든 여인, 이른바 독자의 이미지가 많이 변했지요. 요즘엔 <보그>를 든다가 아니라 아이패드에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를 들어야 어울리죠. 그렇지만 아이패드로 보든 프린트된 <보그>를 보든 ‘보그’라는 로고와 패션은 똑같아요. 다른 건 전달 수단일 뿐 콘텐츠의 진실성은 항상 똑같아야 해요.

젊은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원석 같은 젊은 예술가를 <보그>에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날을 생각하는 성격이에요. 젊은이들은 그 자체로 미래니 얼마나 좋아요. 생리적으로 아주 싫어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내일의 길을 닦아놓겠다’ 같은 말이죠. 젊은이의 오늘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겠어요. 대부분의 어른들은 다르기 때문에 열등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반대예요. 그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우리보다 그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신기하고 재미있잖아요. 호기심의 대상이죠.

위 세대를 원망하던 젊은 시절은 없나요. 물론 나도 그랬어요. 또한 그때도 어른들이 요새 것들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어요. 지금과 다른 점은 그땐 적어도 어른들과 우리 사이에 도구는 같았어요. 그런데 우리와 젊은 세대는 아예 도구가 달라요. 도구가 달라지면서 삶의 방식이 달라졌어요. 우리가 재래시장에 가서 채소를 샀다면 우리 아이들은 검색해서 가장 좋은 채소를 사요. 새치기가 안 되고 선점도 통하지 않아요. 기다린다는 것도 합리적이고, 기다리는 대신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요. 우리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해요. 젊은이들 미래는 그들이 열어가야 해요. 우리는 빨리 물러서야죠.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친분이 화제가 되곤 합니다. 직업, 성별, 사고 등 공통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눕니다. 마음을 나누는 태도가 궁금합니다. 재미있잖아요. 내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으면 가까워지지 않아요. 너무나도 예측 가능한 내 또래 똑같은 아저씨들하곤 친해지지 않아요. 연령은 상관없어요. 나이가 더 많아도 상관없고요. 뭔가 좀 달라야 나도 재미있고 그 사람도 재미있지 않나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대라면 찾아내서 직접 연락도 해요. 물론 소개를 받기도 하고요. 대체로 거부감 없이 만나주고 거부감이 있어도 만나고 나면 편안해해요.

사람과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전혀 마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삶의 에너지의 원천이니까요.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고 궁금해요. 호기심의 강도는 나이가 들어도 완전 똑같아요. 그래서 똑같은 걸 계속하는 데 굉장히 약하기도 해요.

에필로그 “자유롭지 않아도 자유롭다”로 끝을 맺었습니다. 내 삶을 보면 자유롭지 않아 보여요. 비서 셋이 붙어야 할 정도로 일정이 바쁘니까요. 그래도 난 머릿속이 자유로워요. 사람들은 타의, 직업, 환경, 관습 등에 의해서 짜인 틀 속으로 자꾸 들어가요. 불만을 갖지만 자세히 보면 스스로 틀에 넣기도 해요. 나는 틀에 나를 넣지 않아요. 끊임없이 답답해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낙담하지 않아요. 내가 해서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해요. 능력의 이야기가 아니라 금기가 없다는 거죠. 오늘 아침에도 봉사 활동을 하는데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어요. 가면 항상 비트가 강한 댄스 음악을 들어요. 칼질하고 있는데 방송사 피디가 날 카메라로 찍고 있더라고요. 왜 찍는지 생각해보니까 혼자 춤을 추면서 칼질을 하고 있더라고요. 남을 의식하지 않아요. 그냥 자유로워요.

<보그> 창간 1주년 기념호 발행인의 글 제목은 ‘여자로 사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직과 결별을 앞둔 지금 ‘박용만으로 사는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모르겠어요. 이제부터고 답이 없거든요. 아무리 자유로워도 명함에 써 있는 이름 석 자 말고 그 주변에 써 있던 걸로 평가받고 설명되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주변에 써 있던 게 끝난 후부턴 백지 명함을 쓰려고 해요. 박용만으로 사는 거니까.

그때를 상상하면 어떤 기분인가요. 즐거워요. 나를 가두는 프레임이 싹 없어지잖아요. 그때부터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간들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버린 과거의 수식어와 비교일 텐데 나는 상관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