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과 <보그>가 나눈 매우 사적인 대화

People

윤여정과 <보그>가 나눈 매우 사적인 대화

2021-04-29T11:12:25+00:00 2021.04.28|

솔직 담백한 수상 소감은 물론 패션, 위트와 재치까지. 배우 윤여정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다시 봐도 인상적인 그녀와 <보그>가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2009. 07.

<보그> 화보 촬영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당대 최고 여배우들의 소동극, <여배우들> 개봉을 앞두고.   

“여배우의 가장 큰 매력은 자기 성격이에요. 난 배우가 돼서는 잘한다,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근데 나는 그것보다 순간순간 연예계에서 ‘딜’ 해야 하는 상황이 견딜 수 없었고, 시집을 갔던 게 그런 이유가 컸어요. 그때는 결혼해서 미국에 가면 영영 못 올 것같이 그러던 시절이라, 애 낳고 자연적으로 연기를 못했어요. 파경 맞으면서(조영남과의 이혼) 다시 하게 됐을 때, 그때부터 철이 들었던 것 같애. 나는 행복이란 것도 잘 못 느꼈는데, 첫아이 낳고 병원에서 퇴원해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면서 ‘참 행복하다’ 그렇게 말했었나 봐. 생각해보면 배우로 사는 게 행복하다, 그렇게 느낀 건 60이 넘어서야. 늙으니까 이제 진짜 나로 가는 거 같고, 심술 맞지 않게 곱게 늙고 싶어.”

 

 

“이재용 감독이랑 현정이랑 셋이서 와인 먹다가 프랑수아 오종의 <8인의 여인들>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스타일로 한번 가보자,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지. 요즘엔 인터넷이 모든 걸 까발리잖아. 신비주의도 웃기는 거지.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리얼한 여배우의 모습을 보여주자 이거였지. 난, 원래 여배우답게 조신하질 못해서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어요. 그냥 늙었지만 젊고 예쁜 후배들하고 하는 게 재밌잖아.”

 

2013. 09.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촬영을 마치고 이재용 감독과 함께 <보그> 뷰파인더 앞에  윤여정.

“여배우한테 감독은 남편과 같아. 6개월 드라마 하면 6개월 남편이지. 날 잘 표현해주면 궁합이 맞는 거고. 아니면 이혼 도장 찍기 전까지 가는 거고. 나는 영화 쪽 남편을 보면 행복한 경우지. 임상수, 홍상수, 이재용 다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니까. 그중에서 내가 임상수한테 사랑을 좀 받았나?”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쨌든 늘그막에 남자 하나 잘 만나서(임상수 감독) 인생 폈지 뭘 그래요? 칸에도 다녀오고.”

 

2014. 01.

꽃보다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함께한 크로아티아 여행기 <꽃보다 누나>. 김희애, 이미연, 이승기와 함께 1 만에 다시 <보그> 촬영장을 찾았죠.

<힐링캠프> 때 신은 윤여정의 샤넬 스니커즈가 지금까지도 화제라는 기자의 질문에…

“진짜예요? 영광이죠. 난 협찬 받은 건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 편한 걸 찾지만, 젊을 땐 옷을 참 좋아했어요. 지금도 모 감독이 놀리죠. 옷만 안 사 입었으면 집을 두 채 더 샀을 거라고.”

 

연기 변신을 고민하는 20년 후배 김희애에게…

“아직까지 넌 창창하니까 빨리 깨질수록 좋아. 넌 연기자야. 유리관 속에서 ‘아, 김희애는 저런 여자구나’를 보여주는 건 다 굴레 아냐? 너 편할 대로 하는 게 좋지 않아? 이게 꼭 장애물 경기 같아. TV고 영화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김희애가 있어. 그 김희애를 뛰어넘어야 박수를 받지, 그렇지 않으면 매너리즘일 뿐. 또 다 팽개쳐, 사람들이. 우리 직업이 그런 게 참 냉정하고 무서운 거 같아.”

 

2016. 10.

창녀와 루저가 성과 죽음, 삶과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 <죽여주는 여자> 개봉을 앞두고 윤계상과 함께.

“‘내가 잘해서 상 받았다’ 그런 생각은 안 한 지 오래됐어요. 언젠가 힘든 드라마를 하고는 ‘이번에는 상을 주겠지’ 했는데 안 주더라고(웃음). 다 소용없는 거더라고. 이제는 모르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흥분도 안 되고, 화도 많이 안 나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어떤 의미로는 이들은 한 생을 그렇게 산 사람들인데, 나는 고작 며칠 찍는 거잖아요? 오만했던 거죠. 바람이 있다면 할머니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는 데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거예요.”

 

“환갑 때쯤이었나, 결심한 게 있어요. 이제 아이들도 나름대로 잘 키웠고, 미션을 완성했으니 이제부터는 나 하고 싶은 작품 하고, 좋아하는 감독 거 하고, 하기 싫은 거 안 하면서 살리라. 물론 여전히 돈은 없어요. 하지만 오히려 여유로워요. 꼭 빌딩 가진 사람들이 밥값을 안 내(웃음). 어쨌든 그렇게 노년을 보내고 싶었어요. 나는 행복하다, 혼자서도 정리 잘하고 있다, 하면서. <죽여주는 여자>도 모르는 감독이 갖고 왔으면 안 했겠죠. 이재용이고, 믿는 감독이니까. 그게 나의 유일한 사치니까.”

 

2021. 02.

화제작 <미나리> 국내 상영을 앞두고 다시 만난 <보그> 윤여정.

“상을 받는 순간은 행복하지 나쁘진 않죠. 하지만 연기를 비교하는 건… 이 사람이 저 역할을 했고, 나는 이 역할을 했을 뿐이에요. 노미네이트되는 사람들 모두 상 받을 만하고, 어떤 사람이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의 문제지 점수를 매겨선 안 돼요. 이런 수상 시스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증조할머니한테 못되게 했어요. 한국전쟁 때니까 동네에 몇 시간 동안 수도가 안 나와서 할머니가 쓰던 물을 또 썼거든요. 어린 마음에 더럽다고 싫어했어요. 지금까지도 죄송하다고 기도해요. 60대가 되어서야 증조할머니 얘기를 들었어요. 부잣집에서 시집온 어린 처녀가 집에 곧 다시 갈 수 있을 줄 알았대요. 근데 우리를 다 먹이고 살림하느라 무진 애를 썼죠. 그런 할머니한테 더럽다고 말한 생각을 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