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멋쟁이 엄마를 소개합니다

2023.02.12

by 조소현

    멋쟁이 엄마를 소개합니다

    엄마의 옛날 사진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당혹감을 기억합니다. 엄마에게도 청춘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마주하고는 어쩐지 눈물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지요. 한편 나를 닮았지만 나를 모르는 엄마의 낯선 얼굴은 자유롭고 담대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옷차림은 왜 그렇게 근사하던지요. 지금 입어도 손색없는 옷을 걸친 엄마에게는 그 시절을 사랑하고 살아낸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자신답게 살고자 고군분투했던 엄마의 모험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도요.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그때 그 시절 36명의 엄마를 <보그>라는 공개 앨범에 담았습니다. 엄마를 자랑하고 싶은 우리의 연서도 함께입니다. 삶을 쥐락펴락했던 천하제일 멋쟁이, 우리 엄마를 소개합니다.

    "앨범 속 엄마를 보고 ‘우리가 친구로 만났으면 엄마보고 배우 하라고 했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엄마는 ‘다 지나간 일이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요. 늘 자신보다 자식부터 챙기는 지금의 엄마도, 사진 속 자신감 넘치는 엄마도 제게는 자랑스럽기만 하답니다.” 강미숙 딸 장혜미

    “결혼 전 친구와 코엑스에 놀러 갔다가 찍었다는 사진. 엄마의 쇼트커트에 한 번 놀라고, 바지 핏에 두 번 놀랐답니다. 엄마에게 반해 열 번만 만나달라는 아빠에게 머리부터 자르고 오라고 했다는 엄마. 다음 만남에서도 아빠의 이발소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었던 엄마는 100만원을 들고 나오라고 해서 미용실부터 백화점까지 순례하며 아빠의 옷장 속을 전부 바꿨답니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는 우리 집 코디랍니다.” 장연옥 딸 박유민

    “우리 엄마처럼 예쁜 사람을 본 적 없어요. 지금도 날씬하고 피부 좋고 옷도 잘 입으세요. 커리어 우먼 엄마가 우리 집을 지어 올렸어요. 엄마 가게는 늘 예뻤어요. 인테리어 감각 있고 손재주가 좋아서 뭐든 잘 만들어서 꾸몄거든요. 노래도 잘 부르는데 <주부가요열창>에 한번 못 나가서 제가 다 속상해요. 엄마는 날 키우면서 실수한 적 없어요.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완벽해요. 내 엄마여서 고마워요. 이제 엄마가 원하는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사세요.” 박장수 딸 김나랑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이모와 함께 살던 시절, 담벼락에 걸터앉아 흐드러진 목련꽃 앞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엄마 사진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어요. 1961년 4남매의 첫째 딸로 태어나 늘 동생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학교에 보냈던 엄마는 20대 초반이었어요. 늘 아름다웠고 평생 아름다울 엄마, 매일 즐겁게 지내자. 사랑해.” 강은숙 딸 정주원

    "노랑 블라우스를 입은 스물한 살 엄마. 여의도광장이 있던 1975년 당시 매주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고 해요.” 김미선 딸 고수민

    “엄마의 앨범에는 자유롭게 어디든 떠나는 엄마가 있었어요. 여행도,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던 엄마는 어느새 예순을 바라보고 있네요. 제가 즐겼던 히피 펌, 풀뱅 앞머리는 모두 엄마가 과거에 했던 머리 스타일이었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엄마를 따라가고 있나 봐요. 젊은 시절이든, 지금이든 엄마가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모녀가 다시 편하게 여행 다니며 사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서미경 딸 조경원

    “내 방에 꽂힌 <보그> 잡지를 보며 ‘엄마 젊었을 때 친구들이 숙영이 <보그> 모델 같다고 했어’라고 얘기했던 우리 엄마. 그때는 웃어넘겼는데 집 안을 정리하며 다시 꺼내 본 앨범 속 엄마는 미모, 분위기, 스타일까지 진짜 모델이었어요.” 이숙영 딸 정민호 & 정민정

    "'강릉여고 그레이스 켈리'였던 외할머니, 전기세를 아껴서 로로 피아나 코트 안에 이브생로랑 베스트를 받쳐 입었던 외할아버지의 첫 번째 열매가 저희 엄마입니다. 독서광이었던 엄마는 대학생 때는 야학에서 어르신들을 가르쳤고, 승무원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특기는 손 쓰는 일. 전통 공예, 가죽 공예는 물론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딴 엄마에게서는 삶에 능숙한 사람 특유의 멋이 느껴집니다. 엄마에게는 매 순간이 최고의 전성기랍니다.” 심혜라 아들 김한

    "조랑말 위에 올라탄 말괄량이 같은 엄마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네요. 골목대장이었던 엄마의 진가가 보이는 사진이에요.” 임정원 딸 강효진 & 강효빈

    “단양팔경의 아름다운 가을을 보러 갔다가 고수동굴에 들른 사진 속 엄마가 동굴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5억 년 동안 자연이 빚어낸 예술품이 고수동굴이라면 27년의 청춘을 고스란히 빚어낸 엄마 역시 예술 작품 그 자체니까요. 전혀 다른 기하학 패턴의 상의와 미디 스커트의 과감한 매치, 과한 볼륨을 넣은 짧은 앞머리와 옆으로 넘겨 고정시킨 헤어스타일, 양귀비처럼 하얀 피부 화장과 이에 대비되는 빨간색 립스틱. 엄마의 사진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스물일곱 살 자유로움의 고증이에요.” 이주연 딸 김기영

    "40여 년 전 엄마는 결혼 자금으로 의상실을 열어 스스로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쿨한 디자인과 센스 있는 스타일링으로 하루에 20~30벌씩 손님들 옷을 맞춰줄 정도로 인기가 좋았대요. 사진 속 30대 초반 엄마의 눈부신 미소와 자신감 있는 애티튜드에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블랙과 골드 스트라이프 포인트가 들어간 셔츠 블라우스와 배색이 세련된 플리츠 스커트는 훔쳐서 입고 싶을 만큼 멋져요. 지금도 엄마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세요. 70세 어느날 ‘커피 배워서 카페 할 끼다’ 하시고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다음 해에 카페 사장님이 되실 만큼요.” 이두이 딸 조윤정

    "예나 지금이나 피부 톤만 살짝 보정한 가벼운 화장과 입술에 집중한 원 포인트 메이크업. 지금은 즐겨 입지 않는 각진 블레이저와 목을 감싸는 그레이 니트. 1987년 1월 7일로 잘못 설정된 필름 카메라. 그리고 90학번 스물두 살 멋진 여성 김은희. 아름다웠고, 아름답고, 아름다울 것이며 어떤 수식어도 소화하는 멋진 그녀, 우리 엄마.” 김은희 아들 오충민

    "예전 앨범을 보다가 우리 엄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인생 첫 비행기를 타고 떠났던 제주도 여행 속 우리 엄마입니다.” 김정희 아들 이신재

    "엄마의 신혼여행 장소는 제주도였어요. 주변에서는 신부니까 화사한 분홍색으로 입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다들 그렇게 입으니까 파란색 원피스를 입기로 마음먹었죠. 5월에는 엄마와 제주도에 가보려고 합니다.” 이향순 딸 염지애

    "파워 숄더가 돋보이는 물방울무늬 회색 재킷을 입고 이화여대 동기들과 우정 스냅을 찍고 있습니다. 흘러내리는 천을 감싸주는 허리띠가 엄마의 부드러운 강인함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늘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는 엄마는 사진 속에서도 센터에 계시네요.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분이에요.” 정민영 딸 박정원

    “엄마의 패션 감각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엄마의 딸로 태어나 옷장을 공유한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라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쭉 잔소리해주세요. 사랑해요.” 박은진 딸 마수빈

    “패션을 전공하는 제게 엄마는 젊을 적에 옷을 아주 좋아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일까요. 아무리 옷을 많이 사와도 혼내지 않으셨죠. 실루엣이 멋진 레드 컬러 정장을 입은 엄마. 예나 지금이나 정장이 최고로 잘 어울려요.” 박영희 딸 신예서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탄 후 양장점에 가서 맞춘 재킷과 스커트를 입은 엄마. 1970년대 유행이었다는 니하이 삭스가 잘 어울리죠? 전남 순천에 공항이 생긴다고 해서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결국 그 공항은 여수에 생겼다고 해요.” 유혜영 딸 방지희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엄마는 늘 예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 다녔어요. 사진 속 엄마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된 지금,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니 왠지 울컥하네요.” 김정례 딸 장슬아

    "1969년 결혼식을 마친 후 신혼여행 가기 직전 엄마의 눈빛. 우연히 포착된 시선 처리라고 하지만, 만약 엄마에게 저런 유전자가 있다면 3남매 중 내가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패션 세계에서 일하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어가 바로 ‘날카로움’이니까요.” 장동순 아들 신광호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엄마는 멋쟁이 중에 멋쟁이입니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배운 엄마의 20대 청춘 시절이 이렇게 멋졌다는 걸 이번에 사진첩을 뒤지며 알게 되었어요. 최근에 제가 입원해서 회사 일, 집안일, 자식 간병까지 하시며 힘드실 텐데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하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김민정 아들 전윤수

    “젊은 시절 명동에서 패션업계에 종사했던 멋쟁이 엄마입니다. 이날의 드레스 코드는 블랙. 원피스라면 질색하는 엄마인데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힙한 원피스도 입었네요.” 권영애 딸 김지수

    “1974년 사진 속 스물두 살 엄마는 정말 아름다워요. 벨벳 트렌치 코트에 매듭 진 스카프를 늘어뜨리고 가죽 롱부츠를 신은 센스까지.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아기가 아빠 닮았나 봐요”라는 얘길 들었다는 일화는 실화였네요. 역시 엄마와 내가 닮은 건 소설 제목처럼 발가락뿐. 억울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엄마의 0순위가 나니까 넘기기로 합니다. 제 0순위도 엄마니까요.” 하두자 딸 조소현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이지만 엄마의 웃는 얼굴을 담은 적이 별로 없어요. ‘어떻게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바라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항상 카메라 뒤에 있는 저를 찍어주실 뿐입니다. 사진 속 엄마의 양 갈래 머리와 환한 미소, 정말 상큼하지 않나요?” 강마드린 딸 이수지

    “노란 양말을 신은 엄마의 대학원 시절. 선생님이 꿈이었던 엄마는 20대를 생각하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기억밖에 없다고 하세요. 30대엔 일을 하며 저와 동생을 키우느라 엄마의 낙은 뒷전이었죠. 벌써 엄마와 만난 지 27년이 되었네요. 저보다 어린 엄마의 사진을 볼 때면 항상 애틋함과 고마움을 느낍니다. 성격부터 외모까지, 엄마와 닮은 제가 자랑스러워요.” 김정미 딸 홍지은

    "어딜 가나 저를 사진에 담기 바쁜 엄마인데, 앨범 속 엄마는 풋풋하고 당당하기만 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엄마의 멋진 청춘을 보게 돼 정말 행복해요.” 손미숙 딸 이지선

    “엄마는 결혼 전부터 의류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어요. 그래서인지 저희 남매에게 옷을 만들어주고 스타일링을 해주며 기뻐하시곤 했죠. 누구보다 확실한 취향과 패션에 대한 애정을 가진 엄마입니다.” 노향숙 아들 여우성

    “경남 진주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엄마는 둘째 언니와 유독 사이가 좋았어요. 이모는 엄마를 늘 카메라로 담아주었지만, 이모가 결혼한 후 한동안 엄마는 자신의 청춘을 기록하는 것을 잊고 살았어요. 이모의 신혼집에서 찍었다는 사진에서 엄마는 쑥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동생을 향한 언니의 사랑도 가득 느껴지고요.” 이향란 딸 강영민

    “사진 오른쪽이 ‘타이뜨 스카트’에 ‘히루’만 신고 다녔다는 1939년생 엄마의 서른 살 모습입니다. 길거리에서 ‘아주 명동 멋쟁이구먼!’ 하는 말로 추파를 던지면 ‘아새끼 남남북녀라는 소리도 못 들어봤나 보아’라고 일갈했다고 해요. 나보다 열 몇 살이나 젊은 엄마에게 내게는 없는 우아한 패기가 읽힙니다.” 정영수 딸 조경아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엄마. 그때를 떠올리면서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나네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김민정 딸 조민주

    "어릴 적부터 옷을 좋아하던 우리 엄마. 결혼도 하기 전 사진 속 엄마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네요. 계속 멋을 즐기는 엄마로 살길 응원할게요. 사랑해요.” 이미영 딸 박유빈

    "사진 속 엄마는 지금 저보다 어린데 아빠를 따라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로 떠났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가 이룬 업적이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이번에 제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리면서 망설임이 많았는데, 사진 속 엄마 모습에 힘을 얻어 도전할 수 있었어요. 화이트 셔츠에 베이지 팬츠와 진주 목걸이를 매치한 모습이 지금 봐도 정말 멋스럽네요.” 김미정 딸 이재인

    "엄격한 외할머니 때문에 친구들과 놀러 가기 힘들었다는 우리 엄마. 회사 야유회 때 찍은 사진이 유일하네요. 당시 음악 하던 외삼촌의 가죽 재킷을 빌려 입고 히피 펌을 한 엄마에게 지금 제가 즐기는 스타일과 비슷한 점이 보여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네요.” 한복순 딸 김정민

    “경북 영주에서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엄마.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어요. 이 나라와 가정을 위해 격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온 58년생 베이비 붐 세대인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도 뭐든지 하셨어요. 이제는 일 그만하시고 재미있는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권영자 딸 남윤정

    "먼지 쌓인 앨범 속에 탤런트가 꿈이었던 엄마의 20대 시절이 있었어요. 언젠가 삼촌으로부터 엄마가 길거리 캐스팅 TV 프로그램에서 즉석 연기를 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외숙모는 ‘너희 엄마 젊을 때 얼마나 예뻤는데’ 하시고요. 동생이 연기를 공부하게 된 데에는 분명 엄마의 영향이 있을 거예요. 상상만 해도 힘든 시절을 잘 이겨낸 엄마는 영원한 저의 롤모델입니다.” 양유경 아들 성진욱

    "1996년 결혼식 한 달 전, 무주 덕유산 여행 사진 속 엄마는 브이넥 티셔츠에 블랙 슬랙스 차림이에요. 원래 발목까지 오는 길이인데 6~7부로 수선을 했다고 해요. 허리에 두른 브라운 가죽 재킷과 부츠는 색을 맞췄고요. 20세기에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우리 엄마는 인플루언서였을 거예요.” 강근수 딸 김은서

    피처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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