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남의 가족 이야기

2017.09.06

by VOGUE

    남의 가족 이야기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 24시간 우리 안방을 점령해버린 연예인 가족 예능. 내 것도 아닌 관계들은 피로감을 넘어서 그릇된 가족관을 재생산하는 데 암암리에 기여한다. 연예인을 평범한 이웃이라 착각하며 형성되는 참견 문화는 보너스다.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가족의 일이 TV에서 재미를 위한 소재로 남용되자 타인의 삶에 대해 마땅히 지녀야 할 거리감이 사라지고 있다.

    AS

    지금 당장 TV를 켜보자. 어딘가에서는 스타의 가족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영화배우, 장가 못 간 가수 아들의 일상을 모니터 하며 안타까워하는 엄마, 딸의 데이트를 지켜보며 전전긍긍하는 뮤지션, 독박 육아에서 벗어나 혼자 여행을 떠나는 여성 방송인과 그런 아내의 일탈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남편, 친엄마의 소개팅을 응원하는 코미디언, 자신의 혹독한 결혼 생활을 근거 삼아 연하의 기혼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노년의 연예인까지. 내 가족과는 일주일에 한 번 통화하는 게 고작인데 연예인 가족은 24시간 내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가족 예능’은 방송국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좋은 장사다. 육아 예능 <아빠! 어디가?>(MBC)와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의 성공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반인이라 개런티 적게 들고 신선하면서 화제성은 보장된 인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연예인 가족의 방송 데뷔 러시를 보며 일각에서는 ‘명성의 대물림’ ‘방송의 사유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최민수, 박미선 등 유명인의 자녀들이 네팔 여행을 떠나는 <둥지탈출>(tvN) 제작 소식에 쏟아진 반응이 그랬다. 하지만 <둥지탈출>은 첫 방송 시청률 4%로 성공적인 론칭을 했고, 막상 보고 난 시청자들은 “누구 아들이 잘생겼더라” “누구 딸이 의젓하더라”라는 소감을 내놓았다. 제 손으로 버스 카드 한 번 사본 적 없는 청춘들이 집 나가 고생하는 얘기라면 물론 일반인들 데리고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열렬한 리액션을 보내주는 유명한 부모가 없다면 ‘첫방’ 4%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 것이며, 아무리 재미난들 그게 다큐지 무슨 예능이겠는가. 그러니 청춘 성장담이건 싱글 라이프건 노년 로맨스건 제작비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이제는 잊힌 연예인과 그 사돈의 팔촌이라도 캐스팅하려는 방송국의 전략은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그 허다한 가족 예능이, 진부하다 못해 그릇된 가족관을 재생산하는 데 암암리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동상이몽 시즌 2-너는 내 운명>(SBS)에 출연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주택을 공동 명의로 해달라는 아내의 요구를 거부했다. “나는 내 명의로 된 집도 없다. 20년째 살고 있는 이 집도 내 이름으로 안 돼 있다”는 부인 김혜경씨의 설득에 이 시장은 “대신 내가 당신 것이잖아” “트렌드가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며 전형적인 ‘눙치기 전략’을 들고 나왔다. 노동자 출신이라는 배경을 내세워 대통령 경선까지 출마했던 남성 정치인이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전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묵살하는 이중성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교양이 아니라 예능이므로, 그의 이중 잣대는 평범한 중년 남성의 귀여운 반항쯤으로 포장돼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KBS2)는 소설가 이외수에게 ‘햇병아리 살림남’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그는 1946년생, 칠순이 넘은 사람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파파돌’이란 별명을 붙여준 일라이는 기저귀에 똥을 싸고 우는 아기를 한참 동안 유모차에 앉혀둔 채 맥주를 마시며 놀다가 아내에게 혼이 났다. 방송에서 웃으며 넘어가니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명백한 방임이다. 살림과 육아에 서툰 남자가 아내 없이 고군분투하거나 나태하게 구는 장면은 가족 관찰 예능의 클리셰다. 그것을 귀엽다고, 엉뚱하다고, 철딱서니 없다고 깔깔대는 시선에는 ‘살림과 육아는 원래 여자의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살림남 2>는 이외수의 혼외자 스캔들을 정면으로 건드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외수의 부인 전양자 씨는 “내 목숨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은 “애(자식)가 계모 손에 크는 게 싫어”서 이혼을 하지 않고 “끝까지견뎠”으며, “결국 남편이 돌아왔”으니 자신이 “이겼다”고 인터뷰를 했다. 20세기 한국 남성 문학 속 여자의 일생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 대사 같기도 하고, ‘엄앵란 시즌 2’ 같기도 하다. 결코 전승되어선 안 될 구시대 여성 희생
    서사와 모성 신화의 재탕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성인들끼리 간섭하는 모습을 당연시하는 것도 문제다. 도대체 아빠들이 딸의 소개팅과 스킨십을 왜 들여다보고 있나(<내 딸의 남자들: 아빠가 보고 있다>(E채널))? 이미 중년이 된 아들의 일상을 혀를 끌끌 차며 지켜보는 걸로 모자라 걸핏하면 이상적인 며느릿감에 대한 바람을 털어놓는 <미운 우리 새끼>(SBS)의 엄마들에게는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는 이상적인 며느릿감을 묻는 질문에 “그걸 왜 내가(정하나)?”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별거가 별거냐 시즌 2>(E 채널)의 남편들은 아내들끼리 클럽에 가는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며 “(저들이) 들어가면 저긴 장사가 안 되는 덴가 보다”라고 숙덕거린다. 애인이나 배우자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짝짓기 시장의 등가교환 원리를 교란시킴으로써 과분한 권력을 차지하고 경쟁자를 물리치려는 남성들의 유구한 전술이다. 문제는 그런 전술이 필연적으로 여성의 자존감 하락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깔깔깔, 방송은 역시 웃지 말아야 할 일을 웃어넘긴다.

    가족 예능의 또 다른 문제는 타인의 삶에 대해 마땅히 지녀야 할 거리감을 희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송혜교·송중기의 결혼 소식을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설전은 기가 차다. 누구 가정환경이 나빠서 나는 반대라는 둥, 누가 밑지는 장사라는 둥 진짜 친인척이 한대도 과하다고 연을 끊을 추정과 심판이 난무했다. 가족 예능을 둘러싼 시청자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엄마, 아빠, 딸, 아들, 시부모, 며느리, 언니, 형, 동생이 되어 오지랖 대잔치를 벌인다. 한국 대중은 연예인을 평범한 이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 속 이미지를 실재와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엄연히 대본에 따라 연출되고 선별 공개되는 장면임에도 ‘진정성’이니 ‘리얼리티’니 하는 수식을 달고 관찰 카메라 형식과 결합한 가족 예능은 이런 혼란을 가중시킨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관음증, 실적을 위해 그것을 부추기는 방송, 명성을 위해 서민의 눈높이로 몸을 낮춘 스타 가족, 삼박자가 맞물려 내 가족이 네 가족 같고, 네 가족이 내 가족 같으며, 가족끼리니까 격의 없이 굴어도 된다는 참견 문화가 형성된다.

    올해 2월, 보건사회연구원의 황당한 저출생 연구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저출생은 젊은 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풍조 때문이고, 결혼율이 떨어지는 건 스펙 좋은 여자들이 짝을 못 찾기 때문이며, 그 대책으로 여자들이 스펙을 높일 수 없도록 치밀하게 방해하는 한편 고학력, 고소득 여성의 배우자 하향 선택을 유도하자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거론된 것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홍보가 아니라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콘텐츠를 만들어서 여자들이 저보다 못난 남자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잘못된 것일지언정 문화 콘텐츠의 프로파간다 효과에 대한 진단은 정확했다. 예컨대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효리네 민박>(JTBC), 추자현·우효광의 <동상이몽>은 “신혼이니까 그렇지, 네깟 것들의 행복이 얼마나 가나 보자”라는 사촌 배앓이 소리를 낳긴 했지만 한쪽에선 “(저런 생활이 가능하다면) 결혼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정부가 80조를 쏟아부은 저출생 대책 중 무엇도 이런 프로그램만큼 비혼자들을 흔들지 못했다. 하지만 한 발만 벗어나면 우리는 ‘원래 다 그런 거다’라는 체념의 자갈밭을 맞닥뜨린다. 의도된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해도 그것들이 대중의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지대하다. 가족의 일이란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다. 지금의 방송인들이 이 민감한 도구를 제대로 다룰 자격이나 의지가 있는지, 그게 의심스럽다.

      이숙명 (칼럼니스트)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LEE HYUN SEOK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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