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No More Christmas

2017.12.14

by VOGUE

    No More Christmas

    무엇을 위해 크리스마스는 이토록 소란스러운지 여전히 의문을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크리스마스를 가장 크리스마스답지 않게 보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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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내 재봉틀과 프리스타일 재봉 우 바(Woo Bar)의 파티를 좋아했다.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고, 먼 도시에서 온 DJ가 절정의 순간에 레이저를 쏘고, 다 끝나고 난 새벽엔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려 맥모닝을 먹는 그런 파티 말이다.

    지금도 파티를 좋아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취향이란 점점 좁아지기 마련이고, 최근 몇 년간의 관심사는 줄기차게 쓰레기에 머물고 있다. 왜 하필 쓰레기냐면, 스노클링을 좋아하게 되면서 환경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추석에도, 할로윈에도, 크리스마스에도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생긴다. 개인이 만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업이 발생시키는데 70억 인구의 쓰레기가 대책 없이 쌓이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득해져버리는 것이다. 지구는 끝났어,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환경주의자이므로 몇 년 전 어느 날 나는 중고 재봉틀을 한 대 구해서 내 쓰레기라도 줄여보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휴일과 특별한 날의 동반자는 주로 재봉틀이 되었고 말이다.

    타고난 손재주도 없고, 시간 여유도 없는 사람에게 재봉틀은 딱 좋은 취미다. 서너 번만 강습을 들으면 웬만한 ‘네모네모’는 다 만들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친구의 아기를 위한 손수건, 자투리 천으로 만드는 리본, 각종 커버, 컵 받침, 스카프, 쿠션, 에코 백, 커튼 등 한계가 없다. 특히 좋아하는 건 입지 않는 셔츠의 단추 부분을 그대로 활용하며 만드는 쿠션 커버다. 쿠션은 집에 많을수록 좋다는 게 평소의 생각인데, 체형에 맞춰 허리 쿠션 겸 다리 베개를 만들어둔 건 정말이지 매일 사용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수업도 들었는데, 실력이 나쁘다 보니 내가 만든 치마도 바지도 무척 불편했지만 옷을 고치는 데는 아주 큰 도움을 받았다. 바짓단도 곧잘 줄이게 되었고, 아주 비싼 옷이 아니라면 용기 있게 손대고 있다. 길이와 형태, 옷깃이나 소매를 바꾸는 것만으로 느낌이 아예 달라지는 게 재밌다. 도저히 입을 수 없이 망가지면 해체해서 인형을 만든다. 만든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블랙 진으로 만든 까마귀 인형이다. 하지 않는 와이어 머리띠를 넣어 부리랑 날개도 움직일 수 있다. 친구들은 기괴한 인형이라고 놀리거나 펭귄이라고 오해했지만 나의 자랑스러운 할로윈 센터 피스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초록과 빨강 자투리들을 모아 뭔가 못생긴 걸 만들어볼까 싶은데, 완벽하지 않아도 느슨하게 계속하는 이 취미를 프리스타일 재봉이라고 농담 삼아 부르곤 한다.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오히려 심란해지는 타입이라면, 그 소란스러운 마음에도 재봉틀은 효과가 있다고 증언해본다. 누군가에게는 원예가, 설거지가, 다림질이 명상의 효과를 낸다는 데 재봉틀도 그렇다. 바늘이 직선으로 나아가고 기계가 반복적으로 듣기 좋은 소리를 내고 손가락이 천을 조금씩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나아진다. 어떤 고민은 멀리 떠나거나 큰 스피커로 음악을 듣거나 사람을 만나면서 해결되고, 또 어떤 고민은 내 공간에 머물며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사라지는 것 같다. 정세랑(소설가)

    고요하고 운명적인 시시함 크리스마스를 시시하게 보내는 방법이라면 나도 일가견이 있다. 어릴 때 잠깐 다니던 동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기념극을 올렸을때 동방박사들의 주위를 돌며 노래를 부르는 천사들 열두 명 가운데 한 명을 맡았던 것을 제외하면 지난 약 30년의 세월 동안 인상적인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딱 세개뿐이다. 하나는 고딩 첫해에 절친과 함께 가출을 감행한 것이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크리스마스 날 신나게 놀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께 엄청나게 혼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몇 년 전 아는 사람이 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음악을 튼 것이다. 마지막은 작년의 크리스마스인데, 남자 친구와 뉴욕 첼시에 있는 스페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술에 취한 채 유니언 스퀘어에 있는 극장까지 걸어가서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를 본 것이다. 스페인 식당은 비슷하게 크리스마스를 커플 기념일로 간주하는 동북아시아 젊은이들로 가득했고, 스콜세지 영화 속 리암 니슨과 앤드류 가필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본까지 기어들어간 광기 어린 기독교인들이라기보다는 향수에 시달리는, 어쩌다가 일본 땅에 눌러앉아버린 의욕을 잃은 영어 선생님들처럼 보였다.

    저 예외적인 세 경우를 제외하면 나의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고요했다. 누가 올해의 크리스마스 계획을 물으면 “24일에 잠들어서 26일에 깨는 것이죠”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는 항상 감기에 걸려 있거나, 인간관계에 대한 엄청난 회의에 빠져 있거나, 혹은 아무 데이트 상대도 없었다. 어려서는 친구들과 인터넷 채팅을 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동적으로 그날에는 모두와 연락을 피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차라리 12월 31일을 낭만적으로 끝내고 동시에 1월 1일을 보람차게 시작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31일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끝내면 1월 1일은 숙취 속에서 만신창이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31일도 별일 없이 보내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나의 연말은 1월 1일 이른 아침부터 텅 빈 시내를 배회하다가 서점을 기웃거리거나 커피나 한 잔 마신 다음 문을 연 동네 마트에서 식빵이나 사서 돌아오는 것이 하이라이트인 영 재미없는 뭔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최근 뉴욕에서 지내게 되면서 약간의 기대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바니스 뉴욕에서 출발하여 할로윈 즈음부터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5번가를 따라 걷다가 록펠러 센터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도착하면 아, 여기서라면 뭔가 정말로 재밌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명절이었다. 미국에 지낼수록 느끼는 것은, 특히 미국 동부는 매우 보수적인 동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올해부터는 다시 운명적으로 시시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것 같다. 그래도 사람 일 모르니까 조금은 사치스러운 소망을 말해보자면 살짝 비싼 샴페인 한 병에 러스 앤 도터스(Russ & Daughters)의 캐비아를 안주 삼아 안토니오니의 영화 <밤(La Notte)>을 보다가 적당히 늦게 잠들면 좋겠다. 김사과(소설가)

    우주의 기운이 당신을 돕는다면 만약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틀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를 가장 크리스마스답지 않게 보내는 방법’에 호기심을 갖는 당신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가장 크리스마스답게 보낼 준비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신이 여전히 심드렁한 상태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자 한다면 이런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크리스마스에는 자주 사랑의 결실에 관하여 생각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는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그래서 한 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11년째 교제 중이며 3년째 동거 중인 남자에게 물었다. 섹스 할까. 하자. 그래서 두 사람은 하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은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피로를 잠시 극복하는 듯했으나, 한 사람이 먼저, 그러니까 아래에 있던 사람에게 먼저 잠이 찾아오고 곧이어 위에 있던 사람의 오른쪽 다리에도 쥐가 나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그와 나는 발가벗은 채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뒤를 보았다. 곤하게 잠든 그의 얼굴이 어딘가 안온하게 느껴져서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성탄절 아침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치 영원히 그러할 것처럼 바라보고 있던 셈인데, 그러고 있자니 “참, 크리스마스네, 크리스마스야”라는 말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랑은 가라앉는 것일까, 떠오르는 것일까. 평일 아침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정신 나간 짓이지만, 성탄절 아침에 이런 생각은 어딘가 유익해 보인다. 가령, 당신의 인생에. 잠든 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시간 속에서, 침묵의 수면 위에 떠올라 있는 사랑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오필리아의 얼굴.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사랑 때문에 실성한 오필리아는 강물에 빠져 떠내려가면서도 계속 노래를 부르고 서서히 가라앉아 죽음을 맞는다. 사랑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시작된 목소리에서 발생하나, 침묵의 가장 얇은 표면에 자리 잡은 채 전개된다. 그때 침묵은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사랑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마치 수면이 계속해서 잔물결을 만들어내듯.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이브에 삶의 피로에 승복하고 만 연인은 얼마나 시끄러웠던 것일까.

    만약 당신이 아직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틀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섹스 하다 잠이 드는 두 남자와 오필리아와 셰익스피어(!)까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는 당신은 이미 크리스마스를 가장 크리스마스답게 보낼 준비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가장 크리스마스답지 않게 보낼 방법은 간단하다. 남들 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대량 생산된 영화를 보고 요리를 맛보고 케이크를 사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으로 가 그곳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 당신이 더욱더 심심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면, 기도하자.

    크리스마스에 눈이 온다면 누구에게도 크리스마스답지 않은 크리스마스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은 그 자체로 이미 그날을 통째로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눈을 맞으며 걷다가 지폐라도 한 장 줍게 될지. 그 지폐를 구세군함에 넣게 될지. 그 돈이 간절한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그이가 그 돈으로 자신의 생을 바꾸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이지 힘들이지 않고도 신과 함께 크리스마스에 아주 특별한 일을 도모한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낭만적이어도 되는가. 나는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당신 먼저 가… 크리스마스 따위. 메리 크리스마스. 김현(시인)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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