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헤비듀티당 선언

2019.02.14

by VOGUE

    헤비듀티당 선언

    목적에 부합하고 필요한 물건만 사용하며, 누군가 만들어낸 스타일과 강박에서 벗어난 ‘헤비듀티’에 입당을 신청하다.

    책장이 두 칸을 넘겨본 적 없다. 읽은 책은 중고로 팔거나 지인에게 선물한다. 이사를 좀 다녀봤다면, 책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짐 덩어리인지 알 것이다. 그 와중에 책장에서 살아남은 책은 산악문학, 모험 문학류다.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추천해 읽은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로 산악문학에 입문했다. 1996년,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열두 명이 숨진 사건의 목격자인 존 크라카우어의 힘겨운 회고록이다. 희박한 공기로 정신병까지 오는 사투,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지만 눈보라 때문에 어찌할 도리 없는 무력함 등… 읽고 나면, 나 따위는 평생 히말라야 최고봉에 오를 수 없겠구나란 자괴감과, 산악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든다. 그 외에도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극지방 생존기인 <모험학교>, 4,285km 트레일을 걸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 초콜릿을 갖고 있으면 곰에게 뺏긴(죽는)다는 애팔래치아 산길을 걸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전 세계를 서핑한 저널리스트 윌리엄 피네건의 자서전 <바바리안 데이즈>(오바마의 여름휴가 도서라서 읽기도 했지만) 등이 꽂혀 있다. 특히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의 이 구절 때문에 실제 파타고니아로 떠났다. “파타고니아에서의 고립과 절연 상태는 사람의 자기다움을 한층 강화시켜주는 경향이 있다. 술꾼은 술을 마시고, 경건한 사람은 기도를 하고,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워지며…”

    서점에서 <헤비듀티>를 집어 든 이유도 뒤표지의 여우 때문이다. 여우를 만나는 모험이겠지 싶었고, 제목이 뭔가 강해 보였다. 내용은 예상과 맞지도 틀리지도 않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거다. 1977년 일본에서 출간한 <헤비듀티의 책>을 복각한 2013년 버전을 한국어로 옮긴 것인데, 2019년에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맞아떨어진다. (책에서 브룩스와 뉴발란스는 새롭게 뜨는 미국 브랜드이며, 일본에서 나이키란 운동화를 왜 살 수 없느냐고 항의한다는 대목에서야 70년대 책임을 실감했다.)

    우선 ‘헤비듀티(Heavy-duty)’는 무엇인가. 영어 사전에는 튼튼한(예문으론 튼튼한 카펫), 중대한(예문으론 중대한 어드바이스)의 뜻으로 나온다. 70년대 카탈로그 쇼핑이 유행하던 미국에서 튼튼하고 기능적인 옷을 소개할 때 헤비듀티라는 이름을 붙이곤 했는데, 그것을 저자인 고바야시 야스히코가 가져와 확장했다. 이는 70~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하지만, 사실 패션계에서는 낯선 단어였다. 고바야시는 “<현대용어 기초지식>에 실렸을 때 장난을 들킨 아이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그는 이렇게 확장했다. “헤비듀티의 배경에는 ‘튼튼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중략) 첫째, ‘헤비듀티는 진짜’라는 것이다. 헤비듀티는 물건의 본질을 근거로 하는 것, 목적을 만족시키는 것, 필요하면서 충분한 것, 기능적인 것, 한마디로 ‘진짜’다. 헤비듀티의 훌륭함과 아름다움은 본모습에 있다. 여기에 다른 건 필요 없다. 본모습 그대로라서 거짓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진짜 취향이 파고들 수 있다.”

    헤비듀티는 따지자면 북미발이다. 개척 시대 사냥꾼, 카우보이들에서 시작되었고, 대량생산과 전쟁 등 인간 소외를 경험한 60년대 젊은이들, 히피들이 자연 회귀를 소망하면서 발전한다. 그들은 직접 지은 통나무집, 농사, 건강식, 조깅, 자전거, 스키, 백패킹, 낚시 등에 매료되었다. 파타고니아의 이본 취나드와 노스페이스의 더글러스 톰킨스가 요세미티 암벽에서 만난 뒤로 한창 백패킹에 나선 시절이다. 둘은 피츠로이로 함께 등반을 떠났고, 그 산은 파타고니아의 로고가 되었다.(노스페이스의 로고는 요세미티의 암벽인 하프돔이다). 자신 외에는 의지할 게 없는 백패킹에서 생존용품(따뜻한 옷과 작아질 수 있는 침낭, 가벼운 코펠)이 자연스레 발전한다. 옷은 장비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옷을 입는 즐거움은 도구를 사용하는 즐거움이다.

    재미있게도 헤비듀티 패션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고바야시는 상황별로 그림까지 그려 설명한다. 예를 들어 숲에서 생활한다면 “귀마개가 달린 필드 캡에 구스다운을 잔뜩 넣은 파카, 라인드 퀼팅 바지에 신발은 소렐 다운 부츠나 스노 슈즈로. 여기에 허드슨 베이 컴퍼니의 도끼와 톱이 있다면 숲속에서 생활하는 것도 꽤 즐겁지 않을까?” 이 정도야 자연인에게 충분히 추천 가능하지만, 도를 지나치기도 한다. 겨울에 자전거를 탈 땐 노르웨이식 니트 캡이나 코듀로이 팬츠를 입고 추운 표정은 짓지 않아야 한다. 휴일에는 날씨가 추워도 컷오프 진으로 입어 약간 찢어진 옆트임으로 주머니가 살짝 보이고,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를 들길 추천한다. 버펄로 플래드는 빨간색과 검은색 체크무늬만 ‘진짜’다. 색의 조합, 바지 길이, 트임 정도, 소재 구성, 특정 브랜드, 옷을 입는 방식 등을 세세하게 규정한다.

    ‘헤비듀티’한 생활양식도 마찬가지다. DIY 추구까진 좋은데, 집을 짓거나 보수할 때도 재료는 건물 철거 현장에서 가져오며, 침대 매트리스 외에는 직접 만들길 바란다. 창고를 개조한 방에는 통나무를 잘라 만든 스툴, 각종 공구가 있으며, 벽에는 알래스카 지도 정도는 붙여준다. 헤비듀티의 핵심을 보여주자는 의도겠고, 잡지 연재 기사인 만큼 재미를 위해 세세하게 묘사했겠지만, 고바야시가 주창한 ‘진짜’라는 개념과 다소 멀지 않은가.

    패션 에디터로 일하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 근처로 내려간 후배가 있다. 한옥을 지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귀촌 전에 플리마켓을 열었는데, 10년 차 패션 기자의 살림살이 방출을 기대했으나, 탐내던 이름난 친구들은 없었다. 이고 지고 주왕산까지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인이 만든 것은 패션 아이템이든 뭐든 소장 가치가 있나 보다. 가끔 서울에 올라올 때는 확실히 패션이 달라졌다. 모피나 가죽 가방은 사라졌고 파타고니아를 즐겨 입었다. 주왕산 정신을 담으면서도,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선택지가 파타고니아인 모양이었다. 하루는 그레고리 백팩을 멨다. 나도 트레킹할 때 1g이라도 짐의 영향을 덜 받고자 큰맘 먹고 60리터 그레고리 백팩을 샀는데, 파우치만 들고 레스토랑에 택시 타고 온 그녀에게 그레고리 백팩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물론 패션 아이템으로야 무엇을 걸치든 상관없지만, 그녀에겐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려는 표식 정도로 보였다. 어떤 것을 사든, 어떻게 살든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헤비듀티한 삶, 자연인의 삶을 산다는 자부심에 젖는 건 과한 편집이다.

    내게 헤비듀티는 옷 입는 공식이나 드러냄이 아니라, 기능과 목적에 맞게 제품을 시용하며, 군더더기인 물건과 절차에선 자유롭고, 자기중심적 삶(좋은 의미로)을 사는 것이다. 보온성이 뛰어나고 방수가 되는 버진 울, 솜털 오리의 둥지에서 모은 보온재 ‘슈퍼다운’ 등 기능과 목적에 맞는 소재를 선택하면 되지, 그것이 어느 브랜드건, 머프 포켓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거기에 그 사람의 진짜 라이프스타일이 덧입혀져 ‘멋’이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태도다. 파타고니아 직원들에게 파도가 치면 언제든 서핑을 허한다는 이본 취나드에게 감명 받아 그의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읽었다. 그의 헤비듀티한 철학은 이렇다. “환경에 대한 깊은 경의, 환경 위기를 해소하는 데 온몸을 바치겠다는 강한 동기, 자연에 대한 뜨거운 애정, 권위주의에 대한 건강한 회의, 특별한 훈련을 요구하는 어렵고 고단한 스포츠에 대한 사랑, 눈썰매 자동차나 제트스키 같은 기계를 사용하는 스포츠에 대한 경멸, 괴짜는 아니라는 확실한 자기 정체성, 진정한 모험(살아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여행이라면 좀더 알아듣기 나을지 모르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 돌아오더라도 그전의 자신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그런 여행)에 대한 외경심, 진정한 모험을 택하는 취향, 적은 게 낫다는 신념(디자인도 그렇고 소비도 마찬가지).” 이런 철학을 갖고 움직인다면, 그것이야말로 헤비듀티한 삶이 아니겠는가.

    내가 고바야시의 스타일 강박을 뭐라 할 입장은 아니다. 나는 대체 무슨 자신감에선지 모험 강박이 있다. ‘사람의 살가죽을 벗겨낼 정도의 바람’이 부는 파타고니아를 온몸으로 체험하리라 다짐했지만, 현장에서 얼어 죽을 거 같아서 자동차 렌트를 하며 죄의식을 느꼈다. 누구나 브루스 채트윈처럼 파타고니아 원주민을 만나러 다닐 수 없고, 우에무라처럼 개 썰매를 끌고 남극을 횡단할 수 없다. 각자의 방식대로 헤비듀티를 실천하면 된다. 다만 수육도 삶을 줄 아는 요리사를 대동한 히말라야 한식 원정대에 끼기보단, 누구도 마주치지 않는 딱 하룻밤의 앞마당 야영이 더 헤비듀티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여행 말이다.

    꼭 여행이거나 모험일 필요 없다. 카우북스 대표이자 문필가인 마쓰우라 야타로는 한때 아침마다 공원에서 트럭을 타고 건축 현장으로 가는 일용직이었다. 그는 <최저 최고의 서점>에서 그 시절을 언급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난생처음 알게 된 것들도 많았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라든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회 저 밑부분이라든가.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매우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 속해 복종하는 행동 혹은 권력에 굴하는 행동에 대한 반감 같은, 지금도 내 안에 있는 이러한 것들은 이때의 경험으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헤비듀티는 어디서건 나를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그러니 강박 대신 모든 물건과 공식에서 자유를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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