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봄 조개

2016.03.17

by VOGUE

    봄 조개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조개에 맛이 든다. 산란을 앞두고 껍데기 속에 살을 꽉꽉 채우는 것이다.
    제철 맞은 조개는 봄 입맛을 밝히는 가장 화사한 꽃이다.
    봄 바다에서 나는 것 중 조개를 놓친다면 한 해 치 봄을 온전히 낭비하는 셈이다.

    뭇사람들 사이에서 어째서 겨울이 조개의 제철로 각인되었는가는 모르겠지만, 조개의 제철은 엄연히 봄이다. 산란기에 조개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조개들이 정열적인 사랑의 축제를 벌이느라 살도, 맛도 없고 독까지 품어서 먹어봐야 탈이나 나기 때문이다. 늦봄이나 여름 산란기 직전, 조개는 가장 뚱뚱하고 가장 알차다. “옛말에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조개에 맛이 든다고 했어요. 조개는 봄에 먹어야 제철이죠.”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셰프 박찬일도 말했다.

    겨울이 제철이라고 하는 굴도 봄까지 기다렸다 산란에 들어가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먹을 때가 가장 농후하다. 똑같이 늦봄부터 산란기에 드는 홍합도 사정은 같다. 봄마다 식객들을 여자만으로 불러 모으는 꼬막도 마찬가지고, 헤모글로빈 덕분에 빨간 피를 지닌 피조개도 마찬가지다. 바다에 약수터가 있다면 거기서 나는 단물을 먹고 자란 것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짠 내를 풍기는 새조개 역시 제철은 봄이다. 다만 어민들, 특히 양식 어민들은 남들이 제철이라고 하는 시기에 내다 팔아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효율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게다가 산란 직전은 아무튼 아슬아슬한 시기이므로 조개들은 제철보다 앞장서 시장에 나오게 돼 있다.

    봄을 맞아, 맛있는 조개를 수소문하기 위해 당대 음식 칼럼니스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봄 조개’라는 한마디에 먹성 좋은 입담들이 터져 나왔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노랑조개라는 게 있어요. 혀가 아릴 정도로 감칠맛이 좋은 조개죠. 어머니가 어떻게 구해오셨는지 어릴 때 딱 한 번 해주신 건데, 가볍게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은 그 맛을 잊지 못해요. 꼭 구해서 먹어보세요. 요즘은 전북 고창이 유명한 모양이더라고요.” 또 다른 사람은 갈미조개를 권했다. “부산 쪽에 가면 갈미조개라는 조개를 그렇게 먹더라고요. 바다랑 강이 만나는 데서 나는 조개예요. 그 삼각주 비옥한 모래밭에서 자라는 거예요. 제철이 한겨울이라 아직 있을지 모르겠네요.” 또 한 사람은 강원도 고성 찬물에서 건져내는 조개를 언급했다. “고성에 가면 명주조개라는 게 있어요. 이게 서해에서도 나긴 하지만 동해 맛이 또 다르죠. 거긴 바다 밑바닥에서 긁어 올리는 거라 겨울엔 조업을 안 해요. 애초에 사라졌다 돌아온 조개라 아껴 잡아야 하고요. 산란기 직전 4~5월에 아주 잠깐 시장에 나와요.” 또 누구는 일본에서 먹은 조개 맛을 얘기했다. “바보조개(바카가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참 달고 맛나더라고요. 바지락처럼 생긴 게 큰 건 주먹만 해요. 한국에도 있긴 있는 모양인데, 한국선 개량조개라고 하는 것 같아요.”

    당대 음식 칼럼니스트들이 콕 집은 맛있는 조개는 우연찮게도 다 같은 명주조개였다. 노랑조개는 고창 쪽에서 살이 노랗다고 해 부르는 이름이고, 갈미조개는 갈매기 부리를 닮았다고 해 경남 지역에서 방언으로 부르는 별명. 명주조개는 부산 낙동강 하구 명지 삼각주에서 많이 나 명주로 말이 변한 것이고, 바카가이는 항상 혀를 쭉 뽑고 기어 다니는 게 바보 같다고 해서 놀리는 이름이다. 따로 삼베백합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백합과 비슷한 크기에 껍데기의 황갈색 버버리 체크 패턴이 삼베를 엮은 것 같아 붙은 이름이다. 해방조개라는 이름은 한 지역에 어류가 사라졌다 나타나곤 하는 어종 교대 가설(멸종과 다른 개념. 한 지역에서 유사한 어종이 교대로 나타나고 사라진다는 가설)에서 연유한 것인데, 해방을 맞던 해에 한반도에 다시 나타나 많이 잡아 먹히다가 그런 이름이 붙었다. 새조개를 해방조개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맛나다고 칭송하는 이 조개는 동네마다 이름만 다르고, 동시에 이름만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조개라는 게 사실 환경의 동물이다. 펄밭에서 자란 것은 거무죽죽해지고, 모래밭에서 자란 것은 황토색을 띤다. 조개는 펄이나 모래가 아니라 바닷물(속의 작은 것들)을 먹고 자라는데, 그 지역 물맛이 어떤가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생김새도 약간씩 다른 만큼 맛도 조금씩 차이가 날 테니, 명주조개가 다른 조개처럼 불리는 사정에도 이해가 간다. 제철에 차이가 나는 것은 바다의 사정과 위도의 사정이다. 이 명불허전의 조개는 겨울부터 봄까지 노량진수산시장이나 재료에 대한 감이 좋은 프리미엄 슈퍼마켓에 기습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때그때 산지는 다르다.

    가장 흔한 조개인 바지락은 아닌 게 아니라, 호미로 땅을 파면 ‘바시락 바시락’ 소리를 내며 걸려 나온다고 해서 바지락이다. 사시사철 흔하지만, 그중에서도 봄 바지락은 유독 특별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해 바지락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서해 바지락은 그저 많을 뿐이지! 남해 바지락에 비하면 쳐주지도 않아!” 이게 남해에서 흔히 놓는 엄포다. 전국 팔도에서 바지락을 맛보지 않았을 리 없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모래 지형에서 자란 바지락은 살의 탄력도 좋고, 단맛도 월등히 뛰어나요. 확실히 서해 것과 남해 것이 차이가 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바지락은 서해에서는 펄에 자라고, 남해 통영, 거제 등에서는 모래에서 자란다. 그래서 껍데기 색도 서해는 거무스레하고 남해는 노르스름해 투명한 빛까지 돈다. 어촌의 오일장이나 수산물 전문 시장에서 바지락이 빨간 ‘다라이’에 모여 볕을 쬐며 물을 찍찍 쏘고 있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백합 역시 조개 중 대표적인 종이다. 발이 빠지지 않는 단단한 펄을 파면 백합이 모습을 드러낸다. 태안, 안면도, 무안, 강화 펄이 그렇다. 백합은 조개 중 특이하다. 해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속에 펄을 먹은 게 없다. 백합을 남자의 언어로 ‘순결한 조개’라고 부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비린내 없이 달콤한 속살은 그저 회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청량한 달콤함을 선사하는 새조개와는 또 다른 계보의 단맛이다. 관심을 둘 만한 조개로는 또 맛조개가 있다. 대나무 마디를 닮아 죽합이라고도 하는 맛조개는 과연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면도칼을 쏙 빼닮아 서양에서는 razor clam이라 부른다. 동해안 중 물이 차가운 지역에 간다면 ‘째복’도 찾아볼 만하다. 정식 명칭은 민들조개이지만, 아무튼 그쪽에서는 째복이라고 부른다. 해수욕장에만 나가도 발에 차이는 이 조개 역시 즐겨 먹는 조개다. 모래를 많이 먹어 해감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끓여놓으면 국물 맛이 찌릿한 게 일품이다. 이외에도 조개구잇집에서나 접해 이름조차 모르고 넘어갔던 그 많은 조개들, 그러니까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조개가 봄에는 일부러 맛볼 만큼 가치가 있다. 대합(개조개), 키조개, 돌조개, 우럭조개, 웅피조개, 참조개, 칼조개, 떡조개, 동죽조개, 모시조개, 비단조개, 홍조개, 살조개, 꼬막. 제철 조개 이름만으로도 봄날의 맛난 시 한 편이다.

    홍합은 왜 언급하지 않냐고? 보통 우리가 먹는 작고 매끈한 홍합은 사실 정치적, 경제적 신대륙을 찾아 흘러들어온 외국 배에 붙어 들어온 외래종인 진주담치이고, 그보다 훨씬 크고 울퉁불퉁한 토종 홍합이 따로 있다. 보통 시장에서 ‘자연산 홍합’이라고 하는 토종 홍합은 씨름 선수 주먹보다 크게도 자라는데,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기장 지역 것을 최고로 친다. 자라는 데 솔찬히 시간이 드는 이 홍합 역시 4월이 최고다. 물론 양식 진주담치라고 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식장에서 1년 만에 건지지 않고 3년까지 키운 진주담치는 토종 홍합 못지않다.

    그렇다면 이 많은 조개를 어떻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것인가. 당연하다는 듯이, 바지락 산지에서는 바지락죽이, 백합 산지에서는 백합죽이 유명해지곤 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습속이다. 조개가 전에 들어가는 것도 잘 생각해보면 잘못된 습속이다. 죽이 되고 전이 될 때까지 조개를 푹 익히는 것은 조리과학의 관점에서 조개에 대한 모욕이다. 어느 종류건, 조개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군내 하나 없이 싱싱하다는 전제하에 회로 먹는 것이다. 그다음은 뜨거운 육수에 1~2초만 살짝 흔들어 먹는 샤부샤부다. 그다음으로 치자면 찜기에 찐 조개이고, 그 뒤를 삶은 것과 오븐에 구운 것, 직화에 구운 것이 잇는다. 뒤로 갈수록 조리 시간과 강도가 길어지고 높아진다. 오버쿡하면 잘못 정형한 소고기의 힘줄이나 껌보다 질긴 떡심만큼 질깃해지는 것이 조개다. ‘쫄깃쫄깃’할 때까지 익히는 게 아니라, 야들야들한 탄력이 느껴지는 정도로만 조리하는 것이 조개의 정답이다. 대개 입을 탁 열 때가 불에서 내릴 타이밍. 그 이상 가열하면 육질의 수분도 다 빠져나가 질겨지고 크기 자체도 심하게 줄어든다. 재료에 맞는 조리는 기본 중 기본이라, 예를 들어 일반적인 양식 재료인 관자를 겉면만 재빨리 지져 속의 촉촉하고 야들야들한 탄력과 육즙을 빼앗기지 않은 상태로 주는 레스토랑은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곳이니 칭찬하자. 관자를 쫄깃쫄깃해질 때까지 가열해 퍼석퍼석하고 질기게 해서 내는 레스토랑은 ‘개론’조차 공부하지 않은 곳이니 발길을 싹 끊어도 좋다.

    황교익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음식 문화는 아직까지 음식 재료를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못 가졌어요. 재료에 맞는 조리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조리과학 관점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조리법이 횡행하죠. 조개전의 과학적인 조리법은 동래파전에서 찾을 수 있어요. 부산의 파전은 달군 팬 위에 파부터 깔죠. 그 위에 아주 묽게 반죽한 밀가루 물을 재료가 겨우 붙을 정도로만 최소한으로 붓고, 조개 등 꾸미는 그 위에 올리는 게 올바른 방법이에요. 밀가루가 익는 시간은 조개보다 더 길기 때문에, 밀가루를 최소화해야 조개의 익힘 정도와 균형을 맞출 수 있어요. 조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전을 작게 부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조갯살을 다져 넣는 경상도식 부추전에서 조갯살을 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이 익을 때까지 조개를 가열하면 질겨지니 아예 잘게 다져 씹을 필요를 더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맛있는 조개죽을 끓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조개를 넣어선 안 된다. 조개로 육수를 낼 때 조개가 입을 벌리면 곧바로 건져내 살을 추려내고 죽 따로 끓이고, 죽이 완성된 후 조개를 넣는 게 정답이다. 요리연구가 김상영은 봄의 별미인 조갯국 끓이는 정석을 알려줬다. “조개는 육즙이 많은 재료예요. 육즙을 뺏기면 그만큼 질겨지죠. 조갯국을 끓일 때는 원하는 양의 1.5배의 조개가 필요해요. 조개 육수를 0.5의 조개로 내고 건져낸 후 국을 끓이고 마지막에 나머지 조개를 넣어 슬쩍 익도록 마무리하는 게 바른 방법이죠. 조갯살만 발라내 사용할 때는 아주 얇게 전분을 묻혀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겉면이 코팅되어 건더기인 조갯살이 탱글탱글하게 유지되죠.” 어떤 조개 요리건 대원칙은 조리 시간은 어디까지나 조개를 기준으로 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들에, 물에 뛰노는 것을 잡아 먹으며 원시를 벗어나 문명을 구축했다. 하물며 조개는 가장 만만한 동물이라 인류가 해달만큼 미개했던 원시시대부터 먹었고, 이후 그 껍데기는 오죽했으면 화폐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봄 바다에 나가 조개를 잡는 것은 이미 어촌의 활달한 관광 상품이 되었다. 바닷가 땅을 파내면 귀여운 조개들이 놀라 발을 길게 빼고 꿈틀댄다. 그래봐야 굼떠서 어린아이도 쉽게 잡는다. ‘조개잡이 체험’은 퇴화된 전직 사냥꾼들의 수렵 · 채취 욕구를 현대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리자마자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 해감하길 강요당하며 짠물에 비닐 포장되는 박제된 조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생의 맛이다. 게다가 제철을 맞아 앙다문 패주 사이로 달콤한 살이 가득하니 올봄에는 조개를 캐러 바다로 가야겠다. 봄이고, 볕도 바람도 따사로운데 여행 삼아 바닷가에 나가 조개 한 소쿠리 잡아볼 여유 정도야 그리 야생적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에디터
      컨트리뷰팅 피처 에디터 / 이해림(Lee, Herim)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