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문소리와 백은하의 ‘대사’

2023.02.12

by 조소현

    문소리와 백은하의 ‘대사’

    배우는 시대를 함축한다. ‘여자 배우’를 통해 한국 영화 100년을 회고한 문소리와 배우 연구자 백은하의 대사.

    문소리가 입은 빨간색 재킷, 이너로 입은 실크 셔츠와 팬츠는 보스(Boss).

    백은하 한국 영화사 100년을 돌아보며 여배우 역사를 찾아보니 의외로 기록이 너무 없었다. 연예 뉴스식 기사를 제외하고 여배우의 성취를 다룬 자료가 진짜 부족하다. 그렇기에 여배우의 계보를 돌아보며 한국 영화 역사를 복기하는 작업은 큰 의의를 가지리라 생각한다.

    문소리 나는 배우라서 그런지 작품 속 그들의 모습보다 그들의 삶에 관심이 생긴다. 당시 배우의 업적이 아니라 어떻게 그들이 배우를 시작하게 됐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그 직업이 어떻게 비쳤는지, 그 속에서 어떻게 배우의 삶을 이어갔는지. 개인의 삶의 흔적을 보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훨씬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백은하 1919년 <의리적 구투>로 한국 영화 100년을 이야기하지만 1926년 <아리랑>에서 여동생으로 나왔던 배우 신일선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신일선은 1934년 <청춘의 십자로>에도 출연했는데 일제강점기 여배우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해방 전에 일제강점기는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지 않던 시기다. 그때 여자들이 배우가 된다는 건 말 그대로 얼굴에 분칠하는 일이었다. 연극 운동이 시작된 시점에는 연극을 실제로 배우는 게 아니라 재능이 있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편씩 찍다가 결혼하거나 상황이 안 되어 연기를 그만두며 기억에서 사라졌다.

    문소리 맞다. 처음에는 연극에서 시작한 배우가 대부분이었다. 옛날 자료를 보니 이분들이 영화를 하게 된 지점이 있었다. 예전에 도금봉 선생님의 말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때 사람들이야말로 과감한 신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은하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여러 방식으로 여배우가 억압을 받아서인지 그전에는 더 과감하고 센 여성 캐릭터도 많았다. 할리우드는 50년대에 악녀나 팜므 파탈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 이전을 살펴보면 이상하고 기괴한 캐릭터도 많았다.

    문소리 우리나라도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섹시하거나 아주 참한 캐릭터로 좁혀졌다.

    백은하 요조숙녀가 아니면 요부가 되어버렸다.

    문소리 그 시대에 그렇게 과감했다면 그 배우들은 얼마나 강한 베이스를 가지고 시작한 걸까. 지금은 많은 사람이 배우를 꿈꾸지만 당시에 배우는 분명히 접근성이 떨어지는 직업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원래 캐릭터가 강한, 배우라는 본질에 가까운 사람들이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내 추측이다. 그리고 얼굴도 더 다양했다. 요즘 다양한 외모의 배우들이 활동하긴 하지만 그 당시 배우들의 얼굴이 훨씬 더 다양하다.

    통찰력 있는 관점과 따뜻한 시선을 가진 영화 저널리스트 백은하는 얼마 전 ‘백은하 배우연구소’를 시작, 본격적으로 배우라는 존재를 탐구 중이다. <씨네21> 기자, <매거진t>, <텐아시아>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올레TV 프로그램 <무비스타소셜클럽>, <백은하의 배우보고서>를 진행했다. 백은하가 입은 화려한 플라워 패턴의 셔츠 원피스는 포츠 1961(Ports 1961).

    백은하 지금은 배우로 진입하는 출입문에서 외모적으로 걸러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요즘 생각하면 엔터테이너였던 기생 출신이라든지, 연극이라든지 여러 유입을 통해 배우가 됐기 때문에 다양한 얼굴을 가질수 있었다. 무성영화 시대에도 문예봉, 김신재, 김소영 트로이카가 있었다. <임자 없는 나룻배>가 1932년 작품인데 문예봉은 ‘조선의 마를렌 디트리히’로 불렸다. 유성영화로 넘어오는 시기에 할리우드의 이미지를 비슷하게 차용하는 배우가 있긴 했지만 계보가 끊긴 느낌이 있다. 한국 영화 100주년이라고 하지만 영화가 산업적으로 만들어진 건 50년대 해방 이후부터다. 일본도 50년대 이후에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페르소나 하라 세츠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페르소나 다카미네 히데코로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님이 사랑하시는그 배우 말이다.

    문소리 <아가씨> 찍을 때 다카미네 히데코 영화를 많이 봤는데 진짜 어마어마하더라.

    백은하 확실히 모던한 얼굴이고 연기였다.

    문소리 20대부터 80대까지 연기하는데 진짜 힘이 있었다. 내가 오히려 일본 옛날 여배우보다 한국 여배우에 대해 아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은하 한국에서는 광복 전부터 활약하던 배우들이 있고 원래는 연극 무대에 있다가 광복을 기점으로 영화로 넘어온 배우들이 있다. 광복 전부터 연기했던 배우는 복혜숙, 전옥, 주증녀, 극단 출신은 최은희 그리고 조미령이 있다. 조미령은 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최은희와 쌍두마차였다. 이때 다양하고 진보적인 캐릭터가 많았다. 조미령은 <여사장>에서 여성 잡지사 사장이자 페미니스트였고, 최은희는 <지옥화>에서 애인 남동생을 유혹하는 양공주였다. 남자들을 지옥에 빠뜨리는 센 캐릭터가 많이 나오던 시대다. 박빙의 ‘춘향전’ 시대이기도 했다. 결국 누구의 춘향이 이기느냐가 관건이었다.

    문소리 당시 영화를 보면 여배우들이 정말 아름답다. 고전 영화는 클로즈업도 많고 배우의 얼굴이 주는 힘이 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얼굴의 힘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주는 기개와 아름다움이 대단했다. 그때는 필라테스도 안 했을 텐데(웃음). 게다가 그 클래식한 발음이라니.

    백은하 기개가 있다, 기개. 작년에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신상옥 감독의 <효녀 심청>을 봤는데 최은희가 용왕인데 여성 용왕이다. “용왕님 나오십니다” 하고 딱 돌았는데 최은희다! 정말 깜짝 놀랐다. 관객들이 환호를 보냈다. 수중 세계에 여자들밖에 없다. 계급적으로 봤을 때 아래인데 엄청 멋있는 세계, 즐거운 세계다. 심청이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오히려 힐링돼서 올라온다. 72년에 나온 영화인데 진짜 재미있다.

    문소리 여배우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뭔지, 매력이 라는 게 뭔지 그 시절의 배우를 보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백은하 신상옥이 그리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 중 청순가련한 여성은 없다. 최은희의 영향이겠지만 적극적이고 기개가 넘친다. 최은희와 신상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정확하게 알 길은 없으나 북에 계신 분들이 최은희를 매우 사랑했던 것 같다. 신상옥이라는 인물이 지닌 영화의 스케일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최은희 같은 국민 배우가 없었던 거다. 그런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이 제약과 검열이 많아지는 시기를 맞이하기 전에 등장한 배우가 김지미다. 61년에 김지미가 <춘향전>을, 같은 해에 최은희가 <성춘향>에 나온다. 김수용 감독이 68년에 또 <춘향>을 만들었다. 왜 이토록 많은 감독이 각기 다른 배우와 ‘춘향전’을 만들었을까. 성춘향은 남자가 구해주는 신데렐라 같은 면도 있지만 절개를 지킨 가장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였다. 확실히 백설 공주는 아니었다. 그리고 60년대에 또 한 번 문희, 남정임, 윤정희 트로이카 시대가 열렸다. 김지미는 김지미고 트로이카는 트로이카다. 또한 청춘 영화가 많이 나오면서 사랑을 받을 법한, 애교를 장착한 ‘귀염상’ 배우들이 등장했다. 애교의 시대가 열렸다.

    문소리 시대적 정치적 상황과 문화가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캐릭터까지도.

    백은하 그 여성상에 맞는 여배우들이 등장하는 거다.

    문소리 나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90년대 후반 박광수, 장선우, 이창동으로 이어지는 사실주의적 변화가 없었다면 배우 못했겠구나 싶다.

    백은하 결국 문소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이었던 거다. 문소리가 50~60년대에 나왔으면 그 시대를 쥐고 흔들었을 거 같다.

    문소리 애교의 시대라면 어려웠다(웃음).

    백은하 70~80년대에는 검열이 많고 수위가 정해지다 보니 하이틴 스타들이 등장하는 청춘 영화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최은희가 지닌 얼굴과 굉장히 다른 임예진 같은 배우들이 나왔다. 그러다가 70년대 후반 TV가 등장한다. 60년대 말부터 배우들이 영화와 TV를 오고 가긴 했다. <화녀> 찍을 때 윤여정도 드라마 찍던 배우가 영화 찍는다고 욕먹었다고 했다. 또 영화 찍는 배우들은 드라마 찍는 배우들 부러워했다고 하고. 70년대 말 TV와 영화를 왔다 갔다 하는 신 트로이카 시대의 주인공은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광고가 시작됐다. 여배우는 광고의 꽃이 되어야 했다.

    문소리 배우가 광고에 묶이면 이미지가 고착화된다.

    백은하 맞다. 라면도 먹고 사이다도 먹어야 하고 어쨌든 팔려야 하는데 누구 죽이고 그럴 순 없으니까. 이미지가 너무 세면 안 됐다.

    문소리 지금도 광고를 많이 찍는 배우들은 캐릭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생긴다.

    백은하 개인의 선택도 있지만 스타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연기뿐 아니라 이미지 싸움이 시작되면서 착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문소리 배우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에 스타로, 어떤 이미지가 있는 상품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트로이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로 칭송받았지만 노동환경이 너무 힘들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한 해에 수많은 편수의 영화와 광고를 찍어야 했다. 인기 때문에 또 힘들었을 것이다. 한 할리우드 여배우의 은퇴하기 전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더라. 잘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 못 가서 병 생기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 정말 끔찍한 노동환경이었다.

    백은하 할리우드뿐 아니라 한국도 그랬다. 실제로 한국 영화 제작 편수가 제일 많았던 시기였다. 남자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고 돈을 투자 받으면 그다음에 조폭 같은 분들이 배우들을 촬영장에 데리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었다.

    문소리 여배우들 심정은 어땠겠나.

    백은하 여배우들은 어느 시기를 지나면 어머니 역할만 해야 했으니 불안감도 심했을 거 같다. 왜냐하면 그런 롤모델이 없으니까. 검열이 심해지면서 동시에 섹스를 장려했고 ‘애마부인’의 시대가 열렸다. 빨간 영화들이 나오면서 원미경, 이미숙, 이보희, 안소영 같은 육체파 배우들이 등장했다. 그때 영화를 보면 여자들이 매번 겁탈을 당한다. 폭력의 시대였다.

    문소리 폭력은 영화에서 여성한테 가장 먼저, 제일 쉽게 가해졌다.

    백은하 문예 영화가 문학적 성취는 있겠지만 <감자> 같은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라. 여배우들은 노출을 해야 했고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그래서 미치거나, 청승맞게 살아가거나.

    문소리 시대가 어려워질수록 그 시대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의 가장 아래 있는 계층이 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임금을 삭감당하고 퇴출당한다. 영화에서도 여성들의 캐릭터가 다 그렇게 돼버린다.

    백은하 우리가 살펴본 여배우들이 배우가 된 데는 개인적 역사도 분명 있지만 시대가 그녀들을 골랐다는 생각도 든다. 시대가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고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 대중 안으로 들어오고 사랑받는다. 80년대를 홀로 지킨 사람은 강수연이다. 69년에 처음 아역으로 등장해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로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다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국제 영화제에 여배우들이 나가는 시작점이 됐다. 월드 스타라는 말도 처음 생겼다.

    문소리 아역에서 시작해 청춘스타를 거쳤는데 <처녀들의 저녁식사>까지 이어졌으니 더 대단했다. <경마장 가는 길>은 지금도 나오기 힘든 진짜 아트워크다. 어떤 여배우가 그런 걸 해낼 수 있을까.

    백은하 90년대 말에 이창동 감독이 등장하기 전까지 현실적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박광수 감독이나 장선우 감독 같은 분들이 살짝 낀 세대다. 이장호도 아니고 배창호도 아닌, 굉장히 실험적인 것들을 해내던 시대가 있었는데 강수연은 항상 그들의 근사한 파트너가 되어줬다.

    문소리 급격한 산업의 변화를 겪었을 때 배우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해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백은하 생각해보면 86년 열여섯 살에 연기를 시작한 김혜수 배우는 정말 많은 세상을 겪었다. 김혜수가 누구도 자기 연기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그래서 감독들이 자기를 자꾸 쓰는 게 아니겠냐는 겸손한 얘기를 한 적 있다. 실제로 김혜수는 하이틴 스타였을 때도 노주현과 부부 역할을 하고 대학생 때도 이영범과 신혼부부로 나오고 티코 광고를 하지 않았나. <닥터 봉> 같은 영화를 떠올려보면 당시 김혜수의 이미지는 지금과 달랐다. 그러다가 김인식 감독과 <얼굴 없는 미녀>를 찍고, <YMCA 야구단>에서 송강호 배우를 만나고 이 사람들이 자신과 연기를 다르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차이나타운> 목소리까지 높이가 내려가는데 시간이 진짜 오래 걸렸다. 김혜수는 시대에 맞춰가면서 언젠가 최고의 작품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에너지를 계속 가지고 간다.

    문소리 배우들의 이야기에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영화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 같이 엮여 있다. 그래서 나는 배우들 자서전이 참 재미있다. 그냥 성공담이 아니고 그 사람이 시대와 어떻게 만났는지 알 수 있는 글을 보면 무척 흥미롭다. 그것보다 큰 연기 공부가 없다. 제라르 드빠르디유 자서전이 굉장하다고 하던데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어봤다. 엉망으로 살았던 시절이 다이내믹하게 담겨 있고 연기에 대해 핵심을 찌르는 내용이 가득하다고 들었다.

    백은하 메릴 스트립에 대해서는 글이 많은데 한국에는 개별의 배우에 대해 쓰인 글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계속 배우를 기록하고 싶다.

    문소리 최은희, 김지미, 문정숙 같은 배우들에 대한 자료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여배우가 나오겠나. 이런 자료가 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백은하 한국 영화 100년사 동안 여배우 누가 나왔는지도 중요하지만 역시 모든 배우들이 다 다르다. 이 시대의 문소리, 전도연, 김혜수가 다 다르듯이. 개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버전으로 있을 때 어느 순간 시대가 보일 것이다.

    문소리 그 사람의 삶이 연기에 다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통합적으로 볼 수 있다.

    백은하 90년대 말에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과 함께 등장했다. 문소리, 이영애, 배두나, 전도연, 이런 배우들이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과 함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감독들이 자신들의 비전을 투영시킬 수 있는 최상의 여성들을 찾았다. 문소리는 나이가 많은 감독의 가장 미더운 여동생처럼 시작했다가 지금 가장 큰언니가 되어 있는 상황인데, 나이가 아니라 영화계에서 해내고 있는 역할이 그렇다. 문소리는 지금도 <메기> 같은 독립 영화에 들어가 이옥섭이라는 여성 감독과 함께 작업한다.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전여빈의 매력을 문소리가 보여주지 못했다면 <죄 많은 소녀>가 나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문소리 나는 정말 재미있는 걸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 같다. 이옥섭 영화가 아주 재미있어서 팬처럼 좋아했고 구교환도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고 그 사람이 작품을 많이 하길 바란다. 내가 거기에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 친구들이 몹시 고맙고 그런 동료들이 내 삶에 있어서 아주 큰 힘이 된다.

    백은하 그런 부분에서 문소리가 스마트하다. 이타적인 게 아니라 좋은 동료를 만나 좋은 배우가 된다.

    문소리 언제까지 이창동의 딸로 살 수 없지 않나.

    백은하 이창동의 딸에서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형제화시켜 함께 가겠다는 동료 의식으로 나아갔다. 나이가 들면 누군가를 응원하는 방식이 제작비를 대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들의 판에 끼지는 않지만 후원한다. 그런데 그 기괴한 이옥섭의 세계에 들어가서 문소리가 정말 이상한 연기를 하는데 너무 놀랐고 너무 좋았다.

    문소리 20년간 배우를 했고 앞으로도 몇십 년 더 하고 싶은데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나오는 좋은 감독이 분명히 있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시장도 커지고 파워풀한데 그 힘은 젊은 감독으로부터 더 나올 것이다. 나는 그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웃음).

    백은하 건강한 욕심이 배우 개인 욕심을 채우는 게 아니라 산업을 변화시키는 거다.

    문소리 이번에 <사랑의 끝>도 “이런 연극이 세상에 나왔어? 나랑 같이 해보자”였다. 나는 창작의 과정에 같이 끼어 있을 때 더 많은 자극을 받고 배운다. 그 과정이 즐겁고 계속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배운 것도 얼마 안 되지만 그걸 누르고 평생을 살기에는 너무 지루하다.

    백은하 한국 여배우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여자 선배들이 나이 마흔이 넘어 무엇을 실험해보는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문소리 최초의 여성 감독이었던 박남옥의 스틸 사진이 남아 있는데 정말 인상적이다. 아기를 업고 큐 사인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아기를 업고 <미망인> 연출을 했다. 나도 <여배우는 오늘도> 때 딸 연두를 데리고 무대 인사 다녔다. 그때 “애 데리고 다니면서 무대 인사 하는 남자 감독은 아무도 없지?” 그런 얘기를 했다. 또 한 장 남아 있는 박남옥 감독의 스틸은 완전 반대다. 파티에서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담배를 물고 있는데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여성 감독으로서 대조적인 두 사진을 보면서 나는 진짜 새 발의 피구나 싶었다. 이번에 <배심원들> 하면서 <여판사>를 봤는데 당시 스틸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홍은원 감독은 우리 나라 두 번째 여자 감독이다. <여판사>는 한국 최초의 여판사 타살 얘기가 바탕이 됐다. 아이를 더 낳으라는 시댁과 갈등을 빚다가 어느 날 약을 먹고 사망했다.

    백은하 이번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본 코스타리카 영화 <오미가스(Hormigas)>가 기억난다. 영화 전체가 더 이상 애를 낳기 싫다고 남편에게 얘기하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문소리 홍은원 감독님도 그 사건에 너무 충격을 받아 <여판사>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비참한 얘기를 하지 않고 시할머니 사건을 승리로 이끄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바꿨다.

    백은하 여자 감독이니까 그렇게 바꿨을 거다. 남자였다면 희생당한 여자의 처절함만 담고 끝냈을 것이다. 배우들이 더 많은 여성 감독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절대 남성 감독은 헤아리지 못하고 대변할 수 없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가 김지운, 봉준호, 박찬욱 감독과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보냈지만 그 이후에 선택한 작품을 보면 신인 감독을 키워내고 있는 부분이 있다. 요즘 여배우들이 그걸 하고 있다. 윤가은, 김보라, 이옥섭, 이지원, 이경미…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임순례, 변영주 감독 세대와 또 다르다. 이 감독들은 남성 감독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여자 배우들을 원하지 않는다. 여자 감독이 많아지면 여배우들이 할 일이 많아진다. 예를 들면, 한지민은 한 방식으로 연기하고 그 톤을 잃지 않는 배우였다. 15년 가까이 영화와 드라마 작업을 해왔지만 <미쓰백>에서 비로소 달라졌다. 여성 감독이 배우의 다른 면을 끌어냈던 것이다. 감독이 어떤 인물상을 바라면 배우는 그걸 따라가주는 게 맞다.

    문소리 감독의 세계 안에 들어가는 거니까. 그 세계가 어떤지 선택하고 파악하는 게 배우의 의무다.

    백은하 이제 인력시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여자 감독들이다. 딱 2020년부터 상생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리라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봉준호 감독이 <우리들>에서 장혜진을 보고 <기생충>에 캐스팅하지 않았나. 눈에 띄는 여성 감독들이 많다. 김보라 감독은 세계 영화제 안에서 네트워킹도 잘해냈다.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올리는 데 너무 필요한 능력이다. <벌새>는 여자들은 모든 면에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우리집>과 <벌새>가 일주일 차이로 개봉했는데 두 영화 모두 관객 수 4만 명을 넘겼다.

    문소리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 얘기 안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 많다고 무시하는 시대가 아니다.

    백은하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을 보면서 본인의 사용 설명서를 확장시켜서 보여줬다는 생각을 했다. 지질한 남편 역할에 누가 김윤석을 캐스팅하겠나. 스스로 캐스팅하는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코믹함이 나왔다.

    문소리 김윤석과 이정은의 방파제 신이 그 영화의 백미다. 자랑하자면 이정은은 내가 <여배우는 오늘도>에 캐스팅한 배우다. <미성년>에서 이정은이 트림하는 장면에 반해서 집에서 따라 해보고 그랬다. 내가 연기를 따라 하는 배우가 딱 둘 있는데 김선영과 이정은이다. PB팀장으로 나왔던 오민애도 이번에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연기부문을 받았다. 내가 시상을 해서 둘이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백은하 아줌마 캐릭터로 카테고리화됐던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중년 여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해내고 있다. 김선영도 <미쓰백>에 잠깐 나오는데 진짜 압도적이다. 신 스틸러 같은 표현조차 쓰고 싶지 않다.

    문소리 <소통과 거짓말>에서 처음 김선영을 봤다. 처음 8분 동안 어떤 여자애 뒷모습을 따라가서 김선영만 계속 보이는데 2~3분 보다가, 이렇게 된 거야? 스톱, 다시 처음부터 보다가 또 스톱. 영화 보면서 빨리 보기나 돌려 보기 절대 안 하는데 몇 번을 다시 봤다. 영화제 배우 심사를 하느라 본 영화였는데 주인공에게 시상하면서 주조연을 넘어서 너무나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김선영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얘기했다. 김선영 배우는 서울에서 TV로 보다가 그 멘션 듣고 혼자 소주 마시며 울었다고 했다.

    백은하 정말 귀한 말이었을 것 같다.

    문소리 김선영, 이정은, 장혜진, 이런 사람들 연기는 클래스가 다르다. 이 배우들의 활약이 정말 기대된다. 남자 배우들은 연극판에서 잘한다 소리 듣고 오래 버티면 기어이 잘되더라. 40대부터 새로운 운이 트이니까 기다려보라고 말하곤 했는데 여배우들에게는 차마 그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사례가 없었으니까. 30대 초반까지 잘 안 되면 연극에서 이런저런 역할만 전전할 뿐 가능성이 없었다. 그런데 롤모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연극 무대에서 내공 깊은 분들이 잘되는 게 얼마나 많은 여배우들에게 큰 희망이 되겠나. 황석정도 그렇고.


    백은하 역시 산업적인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은 배우도 윤성호 감독 웹드라마에 많이 나왔다. 큰 상업 영화에서는 검증받지 못한 조연 여배우 캐스팅은 무리다. 너무 실험이니까 감독들이 과감한 선택을 못했다. 그러다가 케이블 드라마, 장르 드라마가 많아지다 보니 과거에 일일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 연기가 안 맞는 거다. 결국 시대의 흐름이면서 동시에 이 사람들이 30년 동안 해오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변화였다.

    문소리 어제 김선영 배우가 연극 보러 왔다. 드라마 <라이프> 했던 우미화, 이상희도 왔다. <배심원들> 팀도 다 같이 왔고. 염혜란도 그렇고 이런 동료들이 든든하게 내 주위에 포진하고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백은하 노년 혹은 중장년 여배우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할리우드에서는 <빅 리틀 라이즈>가 보여줬다. 시즌 2에서 메릴 스트립이 힘을 보태며 더 강력해졌다. 독주하는 여자 배우 한 명으로는 불가능한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김혜자, 윤여정이 드라마 속에서 보여줬던 정말 다른 여성상이 있었다. 양옥집에서 서울 사투리 쓰는 남자와 사는 윤여정과 이순재의 김혜자. 미국에서 이혼하고 돌아온, 슬립 입고 잘 것 같은 윤여정과 <전원일기> 첫째 며느리와 대발이 엄마 김혜자의 이미지는 상징적인 중년 여성상이었다.

    문소리 윤여정 배우는 진짜 대단하다. 내가 이옥섭 감독과 작업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윤여정은 그 나이에 임상수 감독과 하지 않았나. 그때는 몰랐지만 그런 영향이 나에게도 끼쳤을 것이다.

    백은하 윤여정은 돌출된 사람이었다. <바람난 가족>이 윤여정의 13년 만의 영화 컴백이었다.

    문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용감한 선택이었다. 진짜 진보적인 마인드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 본보기를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항상 하고 싶었다. 대조적으로 김혜자가 <마더>에서 보여준 연기는 다른 태도지만 평생 자기 연기를 쌓아왔기에 할 수 있었던 협업이었다. 나는 과연 그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백은하 남자 배우들로부터는 그런 과감한 선택을 찾을수 없다. 과감할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문소리 내가 왜 과감한지 이해가 가지 않나. 나보고 용감하다 그러는데 그냥 절실할 뿐이다(웃음).

    백은하 <바람난 가족> 촬영 당시 취재차 현장에 여러 번 갔는데 당신이 물 한 잔 안 먹고 연기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문소리도 정말 힘든 선택을 했다. 이창동의 장녀 같은 문소리가 다리를 쩍 벌린 채 포스터에 나온다고? 나한테는 엄청 충격이었다.

    문소리 나한테도 충격이었다. 감당하느라 힘들었다.

    백은하 그게 아니었으면 <오아시스>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문소리 그럼에도 오랫동안 이창동의 딸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내 아버지를 부정할 수 있겠어요, 거기서 태어났는데”라고 했지만 독립의 길이 험하고 어렵다는 걸 많이 깨닫기도 했다. 옛날에는 감독의 세계관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이해하는 데만 해도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거기에서 느끼는 게 너무 많고 배우는 게 많았다.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알지만 이제는 “세상에는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빠가 말한 게 다는 아니다” 한다(웃음).

    백은하 이 아빠에서 다른 아빠로 입양되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살 수는 없다(웃음). 어쨌든 딸들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건강하게 모색하며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다.

    문소리 배우는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관습처럼 여자들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전제로 말한다. 이런 인식이 합쳐져 여배우들을 더욱 수동적으로 가두는 것 같다. 예전에 40~60년대 여배우들은 그러지 않았다. 최은희, 김지미까지만 해도 자기만의 창작 세계가 있었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그런 여배우들이 존재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도 이번 기회에 한국 고전 영화 몇 편 찾아봤다.

    백은하 오랜만에 <하녀>를 다시 봤는데 아역 시절 안성기가 귀엽더라(웃음). 지금 얼굴이 그대로 있었다.

    문소리 <하녀>의 엔딩은 정말 강렬했다. 공간과 인물을 보여주는 미장센 하나하나가 정말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아름답기도 했다. <지구를 지켜라!> 엔딩만큼 충격적이었는데 당시에 남자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궁금하다.

    백은하 김기영 감독은 여자를 무서워하고 자기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어서 희대의 캐릭터들이 나왔다. 윤여정이 <화녀>를 찍을 때도 기괴하게 웃으라고 요구했다고 들었다.

    문소리 예전 영화를 보면 오히려 지금의 카메라 워크가 너무 지루하다. <미망인>도 첫 인트로가 진짜 재미있다. 음악만으로도 스피드와 템포를 만든다. 고등학교 때는 왜 그렇게 역사를 외우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 알 것 같다. 고전 영화를 통해 종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면 훨씬 더 통합적으로 우리 세계관의 기원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에도 충분히 영향을 받을 것 같다.

    백은하 김지미는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타이틀에 집중되어 있고 남아 있는 자료 역시 결혼 기사, 이혼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분이 당시에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했는지 찾기 힘들다. 분명히 유의미한 방식으로 자기 일을 해왔고 연기에서도 기능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배우임에도, 누구도 그것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현대에 그 배우들의 상황을 떠나서 만약 20년 동안 전성기를 누렸다면 그 20년에 대한 기록이라도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 집대성하고 모아줘야 한다.

    문소리 그 작업이 어마어마하고 개인이 하기 힘드니 어디서 후원을 받아서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백은하 앞으로 그런 자료 속에서 여배우들의 비중이 커지지 않을까. 전도연도 마찬가지다. 전도연도 TV 조연부터 시작했지 않나. 김혜수 친구로 나왔던 모습이 기억난다. 인터넷 시대의 시작과 함께 <접속>이 개봉했고 전도연 시대가 열렸다.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손잡는 다양한 감독에 따라 전도연이 보여준 변화 역시 기록되어야 할 역사다.

    문소리 비슷한 또래라고 비슷한 세대의 배우로 취급해주지만 내가 데뷔할 때 그분들은 어마어마한 스타였다. 마음으로는 내가 까마득한 후배처럼 느껴진다.

    백은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같은 데서 김혜수 배우가 후배 여배우들 안아주는 장면이 연출되지 않나. 나는 그냥 그런 풍경이 너무 좋다.

    문소리 전도연 배우는 <밀양> 찍으면서 “소리야. 네 생각이 너무 많이 났어. 너라면 어땠을까.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아니까”라고 말을 건네줬다. 하늘 같은 선배들이었는데 동료로 인정해주고 같이 동료로 살아가는 게 참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나저나 김혜수는 너무 섹시하고 전도연은 애교가 엄청났다. 여배우라면 주 무기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두 배우를 보면 나는 아무것도 없다.

    백은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오드리 헵번이 있으면 메릴 스트립도 있다. 모두 다양하게 오래가야 한다.

    문소리 나는 샤를리즈 테론으로(웃음). 요즘 연극에서 몸을 써보니 더 망가지기 전에 더 적극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은하 여배우들이 강요받지 않고 육체를 아름답게 활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 관음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몸을 잘 쓰는 모습이다.

    문소리 사람의 몸은 추하기도 하지만 아름답다. 언젠가 정말 큰 뱀을 가까이에서 봤는데 그 무늬가 완벽한 텍스타일 같았다. 진한 갈색과 달걀빛이 도는 연한 색이 섞여 있는데 뱀이란 생각을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몸은 얼마나 추한가. 그런데 인간은 움직일 수 있기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진다. 배우로서 인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계속 목격하고 있다. 나에게는 끝나지 않는 숙제다.

    백은하 다양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하는데 너무 좁은 판에서 악녀 하기도 바쁘면 안 된다.

    문소리 미투운동 이후 많은 영화인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고민을 시작했고 고민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어떤 신을 쓸 때도 젠더 감수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만드는 사람들이 여성에게 캐릭터나 장면이 어떻게 다가갈지 많은 얘기를 나눈다.

    백은하 대한민국 마초 캐릭터의 상징이었던 김윤석의 연출작 <미성년>의 모든 주인공이 모두 여자 아닌가. 오랫동안 만들었던 시나리오라고 하지만 이 타이밍에 개봉한 것도 신기했다. 어쨌든 2020년을 희망적으로 본다. 미투운동 이후 한국 영화 내에서 여성을 다루는 텍스트가 변했다. <배심원들> 같은 시나리오도 옛날 같으면 남자 판사 시키지 않았을까.

    문소리 시대가 김영란 대법관, 이정미 재판관 같은 분들을 보여줬고 그 영향도 컸던 것 같다.

    백은하 얼마 전에 5년 전 영화를 보면서 ‘저런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저런 장면을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봤다고?’ 깜짝 놀랐다. 여자들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 이 변화 속에서 여배우들이 깨어서 함께해나간다면 파이가 커질 것이다. 없던 파이도 커질 것이라 믿는다. 한국 영화 100년 동안 여배우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존재처럼 보이지만 연쇄 작용이 분명히 존재한다. 100년 후에 한국 영화사가 문소리를 어떻게 기록할까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문소리 예능 프로그램 단골 패널로만 등장해서는 안될 텐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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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백은하), 수경@순수(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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