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아이템

빨강 립스틱 이야기

2016.03.17

by VOGUE

    빨강 립스틱 이야기

    빨강이라고 다 같은 빨강이 아니다. 무슈 디올에 의해 탄생해 이제는 전설이 된 그 붉은빛! 지금도 달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빨강 립스틱 이야기.

    빨강 립스틱은 여자들에게 속삭인다. 달라지라고, 자신을 드러내라고. 그렇게 립스틱 짙게 바르고 여자들은 새로운 ‘나’를 입는다. 강렬하며 그 어떤 빛깔보다 감성적인 컬러, 언제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컬러, 레드. 그래서 이번 시즌 또다시 빨강 입술이 트렌드로 도래했을 때 갑자기 궁금해졌다. 빨강이 담고 있는 전설적인 이야기들 말이다. ‘태양’을 숭배한 이집트에서 빨강은 곧 신을 상징했다. 게르만족 전쟁의 신 보탄의 붉은 머리카락, 번개의 신 토르의 붉은 수염은 힘을 나타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녀 자신이 빨강의 상징이었다. 또 19세기 말 뭉크의 그림, 보들레르의 시 속에 등장하는 빨강은 악마와 광기, 물랭루주 포스터의 빨강은 환락, 마릴린 먼로의 붉은 입술은 유혹이었다.

    그리고 이런 빨강의 전설에서 빠질 수 없는, 패션 필드에서 ‘빨강’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무슈 디올이다. “저는 빨강을 사랑해요. 삶을 표현하는 컬러죠.” 무슈 디올은 노련한 무대 연출가처럼 패션쇼장이 활기를 잃고 게스트들이 지루함을 느낄 때쯤, 화려하고 선명한 빨강 드레스를 등장시켜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가였다. 이 방법은 “연극적인 무대의 극적인 빨강, 쿠 드 트라팔가르(Coup de Trafalgar)”라 불리며 알려졌고, 무슈 디올 자신도 “매거진 커버 혹은 주요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은 바로 트라팔가르다”라며 빨강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그렇게 그는 검붉은 색에서부터 반짝이는 양귀비 빨강 등 다양한 톤의 붉은빛으로 사람들이 열망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디올의 쿠 드 트라팔가르 레드 군단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면, 그 유명한 ‘이스파한 드레스’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르네 그뤼오(René Gruau)의 일러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르네 그뤼오는 빨강 드레스를 입은 늘씬한 여자를 그리기 좋아했는데, 그는 빨강 드레스와 붉은 립스틱과 함께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 여인들을 통해 모든 것을 정복해버리고 마는 치명적인 여성성의 컬러, 레드를 표현했다.

    또한 무슈 디올은 예로부터 왕과 귀족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진홍빛 빨강을 재해석해 셀 수 없이 많은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파리의 화려한 밤을 상징하는 레드 컬러의 토파즈(1951〜52), 아뚜 도에흐(1955), 콘체르토(1957) 디자인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48년 F/W 시즌에 선보여 전설이 된 애리조나 트래블 코트 덕분에 레드는 낮에도 사랑받는 색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음 해 봄 그가 양귀비꽃과 제라늄 레드로 그의 레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트롱프뢰유(Trompe-l’oeil)’ 컬렉션이 호평을 받은 바로 그해, 아브뉘 몽테뉴 30번가에 위치한 부티크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제작한 디올 최초의 립스틱이 공개됐다. 그리고 3년 후, “당신의 미소에는 그에 맞는 컬러가 필요합니다. 디올이 여러분의 피부에 걸맞은 드레스를 선사합니다(Dior dresses your skin!)”란 캐치프레이즈로 드디어 ‘루즈 디올(콩코르드광장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 모양의 뚜껑으로 제작됐다)’을 출시, 순식간에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따라서 루즈 디올의 스타 프로덕트는 당연히 레드 립!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는 그녀가 무대에 선 시간 동안 오직 화려한 ‘루즈 디올 N°5’ 와 ‘루즈 디올 N°28’ 셰이드만을 사용했다. 또 우아함의 대명사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는 디올 하우스가 그녀에게 선물한 작은 중국풍 앤티크 상자에 오벨리스크 모양의 루즈 디올과 리필을 담아두곤 했다.

    디올 레드의 전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3년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티엔이 만든 ‘루즈 디올 아레아 레드 999호’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레드 립스틱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한 것. 묵직하고 신비로운 암적색 레드는 디올 하우스의 시그니처 레드가 됐고, 이후 톰 포드,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에서 기념비적인 레드 립스틱을 내놓을 때마다 ‘이제 999는 잊어라’라고 언급될 정도로 전설적인 아이템이 됐다. 당당한 아름다움을 향한 무슈 디올의 사랑을 담은 이 빨강 립스틱은 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사랑하는 ‘셀러브리티 레드’로도 유명하다. 2011년 봄, ‘루즈 디올 999호’를 디올 꾸뛰르 쇼에서 르네 그뤼오의 일러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립 메이크업으로 다시 선보였고, 루즈 디올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루즈 디올 999’로 재탄생했다. 999호를 재탄생시킨 주인공 티엔에게 직접 레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Vogue(이하 V)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레드 컬러는?
    Tien(이하 T) 디올 블러셔 266 모브 미스터리와 ‘루즈 디올 567 달링’. 하나의 레드 색상 안에 얼마나 많은 레드가 숨어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V 티엔의 레드를 대표하는 컬러들을 꼽자면?
    T 푸시아 레드. 나는 립스틱에 항상 제5 원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심홍색 레드를 만든다고 하면, 기본적인 붉은색에 따스함을 주기 위해 옐로, 풍성함을 위해 블랙, 밝음을 표현하기 위해 화이트를 더하는 식이다. 나의 제5 요소는 푸시아. 여기에 얼마만큼 레드를 섞느냐는 나만의 비밀이다!

    V 본인이 만든 가장 성공적인 레드 컬러는?
    T 물론 ‘루즈 디올 999’! 정말 디올다운 레드다.

    V새로운 색상의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
    T 패브릭과 재료, 그것들의 촉감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리치한 레드는 벨벳에서, 루미너스 레드는 실크에서, 소프트 베이지는 태피터(비단 광택의 얇은 평직)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행에서의 추억도 빠뜨릴 수 없다. 여행 갈 때마다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는데, 예를 들어 베이징 뮤지엄에서는 히말라야와 티베트에서 온 멋진 고대 패브릭을 만날 수 있었고, 베니스에 갔을 때는 귀한 포추니(fortuny) 패브릭을 볼 기회가 있었다. 플리티드 실크(pleated silks)와 크러시드 벨벳(crushed velvets) 등 전혀 유행을 타지 않는 것들이었다. 물론 수많은 디올 꾸뛰르 자료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순간을 내 아이폰에 가득 담아놓는다.

    V 작업 중인 앞으로의 레드는?
    T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라이팅-컬러스(writingcolours)’,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같은 ‘인-무브먼트-컬러스(in-movement-colours)’, 또는 스테판킹 스타일의 무브먼트 레드나 서스펜스 레드를 구상 중이다. 기대하시라!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이화진
      기타
      PHOTO / COURTESY OF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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