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흔들리는 패션 위크 스케줄

2017.07.13

by VOGUE

    흔들리는 패션 위크 스케줄

    무언가 이상하다. 12월에 뉴욕과 도쿄, 1월에 런던, 2월에 LA에서 패션쇼라니?
    주요 패션 하우스들이 굳건한 패션 위크 스케줄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디로, 왜 떠나고 있나?

    21세 때 런던을 방문한 무슈 디올은 이렇게 말했다. “예쁜 영국 여자는 다른 어느 나라 여자보다도 예쁩니다. 딱 맞는 트위드 수트뿐 아니라 아니라 게인즈버러(18세기 영국 풍경 화가) 시대 이후로 누구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오묘한 색감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까지, 전 모든 영국 여자들을 흠모하죠.” 그의 절대적인 영국 취향이 반영된 의상은 영국 왕가와 귀족 여인들을 사로잡았고, 1954년 10월 말보로 공작부인의 주최로 영국 옥스퍼드셔 주 블레넘 궁에서 역사적인 ‘H-라인’ 컬렉션 쇼가 진행됐다. 프랑스에서 공수한 10여 명의 모델과 100여 벌의 옷, 1,600여 명의 영국 귀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이 쇼(당시에는 매우 성대한 규모!)는 요즘 패션 하우스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원정 패션쇼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큰 이벤트였던 샤넬, 루이 비통, 디올의 3대 크루즈쇼를 시발점으로, 지금 발렌티노,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톰 포드 등 주요 브랜드들이 울타리를 뛰어넘는 모험심 강한 양처럼 기존 패션쇼 스케줄을 벗어나는 데 합세하고 있다!

    패션 저널리스트들은 지난 12월 매디슨 애비뉴의 구 휘트니 미술관에서 발렌티노의 ‘살라 비앙카 945(구 휘트니 미술관 주소가 매디슨 애비뉴 954번지)’ 컬렉션이 치러질 거란 소식을 듣자마자 새로운 트렌드의 조짐을 감지했다. 뉴욕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기념하기 위해 한 달이나 앞당겨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선보인 스페셜 꾸뛰르 컬렉션이었다. 기존 파리 오뜨 꾸뛰르 기간에 선보일 컬렉션과 별도로 완성한(‘엑스트라’ 또는 ‘스페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아이코닉한 1962년 ‘살라 비앙카’와 1968년 ‘스필라타 비앙카’ 컬렉션을 오마주한 47벌의 새하얀 의상들. “기성복의 도시인 뉴욕에서 하지 않던 걸 해보고 싶었고, 일종의 도전이었기 때문에 셀러브리티뿐 아니라 동료 디자이너들(캘빈 클라인, 타미 힐피거, 프라발 구룽, 데릭 램, 피터 던다스, 피터 코팽 등) 또한 많이 참석했다고 생각합니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유명 스타와 패션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쇼에 대해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패션계에서 이 이벤트성 행사를 마치 신종 무기 시험 발사 정도로 떠들썩하게 다루는 이유는, 쇼 한 달 전 발렌티노 하우스가 2015 F/W 오뜨 꾸뛰르 컬렉션은 또 다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에 맞춰 로마에서 선보일 것이라는 소식을 발표했기 때문. 이들은 가능한 많은 이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첫 시즌부터 쭉 로마에서 선보여 온 돌체앤가바나 알타모다 쇼와 날짜를 맞추는 중이다.

    발렌티노의 스페셜 꾸뛰르쇼와 겨우 몇 시간 간격으로, 도쿄 스모 경기장 료고쿠 국기관에서는 디올의 눈 내리는 프리폴쇼가 치러졌다. 뉴욕 브루클린의 리조트쇼에 이은 도쿄의 프리폴 쇼는 샤넬 버금가는 세계 유람 쇼를 만들겠다는 디올 하우스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한 달 간격으로 오모테산도 플래그십 스토어 리뉴얼 오픈과 패트릭 드마쉴리에의 ‘에스프리트 디올’ 사진전도 도쿄에서 진행됐다). 일본 전통 의상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블레이드 러너>풍 의상에 대해 라프 시몬스는 일본의 동시대적이고 미래적인 특징으로 설명했다. “부드러운 표면 아래 감춰진 무슈 디올의 작업은 매우 건축적이죠. 일본과 강한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요지 야마모토, 레이 카와쿠보, 이세이 미야케처럼요. 디올 아카이브를 연구하면서 그토록 여성적인 옷이 건축적인 구조 또한 갖고 있다는 점에 놀랐죠.”

    그리고 이제 2015 F/W 컬렉션 기간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오자, 에디터와 바이어들은 손톱을 깨물며 고민에 휩싸였다. 뉴욕 컬렉션을 마치고 LA로 이동해서 톰 포드 쇼를 볼 것인가, 포기하고 런던 행을 택할 것인가? 2월 20일 톰 포드 쇼가 대체 몇 시에 시작해서 몇 시에 끝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LA에서 런던으로 가는 직항편도 빨라야 다음 날 오전에 도착하기 때문에 사실상 런던 쇼 첫째 날 전부와 둘째 날 스케줄 반 이상을 포기 해야 한다. 소규모 프레젠테이션으로 시작해 정식 쇼 형식으로 발전한 톰 포드 컬렉션은 지금까지 런던 패션 위크의 위상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엔 위협이 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이미지들이 LA를 통해 걸러지죠. 음악, 텔레비전, 영화, 그리고 유사하고도 깊이 있는 방식으로 전 세계 패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한테는 패션만큼이나 영화도 매우 중요한 창의적인 작업이죠. LA에서 쇼를 진행하면서 내 삶의 중요한 두 가지를 함께 아우를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이건 그의 쇼가 영화 같은 형태를 띨 거라는 힌트?) 어쨌거나 다행스러운 건 이번 ‘일탈’이 일회성에 그칠 거라는 사실이다. “런던을 사랑해요. 남성 컬렉션은 계속해서 런던에서 진행할 거고, 9월엔 런던 패션위크로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톰 포드를 잃은 런던엔 돌아온 탕아 존 갈리아노가 행운처럼 찾아왔다. 런던 남성복 쇼 기간에 여성복 오뜨 꾸뛰르라니! 조금 난데없긴 하지만, 어쨌든 존 갈리아노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데뷔쇼가 될 2015 S/S 아티저널 컬렉션을 파리가 아닌 런던에서 처음 선보이기로 마음먹었다. 갈리아노에겐 “중요한 시간을 보낸 곳이자 패션계 경력을 시작한 곳, 전통적인 테일러링의 역사와 유산을 간직한 도시”라는 게 런던을 선택한 이유다. 오뜨 꾸뛰르 의상조합 대표 스테팡 바르니에는 첫 꾸뛰르는 무조건 파리에서 첫선을 보이는 게 원칙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쇼는 전 세계 주요 패션 기자와 갈리아노의 측근 100여 명만 초대된 가운데 런던에서 처음 공개될 예정이고, 파리 오뜨 꾸뛰르 기간에도 다시 한 번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모든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면 각각의 쇼 시간에 늦지 않도록 스케줄을 짜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쥐가 나고, 성층권 위로 복잡하게 뒤엉킨 비행 동선은 상상만으로도 눈이 뱅글뱅글 돌아갈 듯하다.

    그렇다면 착실한 모범생처럼 공식 패션 위크 스케줄에 따르던 패션 하우스들은, 왜 반항적인 독자노선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이것은 결국 ‘고객 맞춤-찾아가는 서비스’로 설명된다. 디올은 작년 5월, 브루클린에서 크루즈쇼를 선보인 후 전달 비교 수익이 13%나 상승했다. 그 다음 장소로 일본을 선택한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는 게 디올 CEO 시드니 톨레다노의 설명. “도쿄에서 프리폴쇼가 열릴 거라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현지 시장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죠.” 경기 불황과 높은 국채에도 불구, 여전히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개인 명품 소비 시장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보다 국외에서 세 배나 많은 돈을 쓰는 중국 소비자들이 엔화 하락을 기점으로 일본을 향해 몰리고 있다. “중국은 액세서리 판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미국은 의류 쪽에 집중돼 있다면 일본은 그 둘의 완벽한 조합입니다. 올해 일본 내에 더 많은 투자를 기획하고 있죠. 22개 매장과 5개 플래그십 스토어를 더 오픈할 계획입니다.” 1위 시장 미국으로 향한 발렌티노 듀오의 컬렉션은 사실상 뉴욕에 잘 보이려는 의도가 듬뿍 담겨 있었다. 이들이 오마주한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컬렉션은 재키 케네디가 아리스토텔 오나시스와 재혼할 때 웨딩 드레스를 골랐던 걸로 유명해진 컬렉션. 게다가 기둥 형태의 피날레 드레스에는 아주 우아한 방식(거의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보일 듯 말듯한)으로 ‘I Love NY’의 알파벳을 전체에 수놓았다. 이들이 기대했던 대로, 새로 오픈한 매장에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한 올 화이트 캡슐 컬렉션(새하얀 바탕에 뉴욕의 아이콘 빨간 하트가 장식된)은 두 시간 만에 완판됐다. 홈런! 로마에서 열릴 다음 오뜨 꾸뛰르쇼까지, 이제 발렌티노 쇼는 매장 오픈용 끼워 넣기 행사냐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을 정도다.

    톰 포드의 LA 쇼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미스터 포드는 스타들의 오스카 시상식 드레스 피팅을 위해 미리 LA에 도착해 있곤 하는데, 올해 시상식 날짜가 런던 패션 위크와 겹치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 항의에 대해 “오스카 시상식 때문에 뉴욕과 런던 패션 위크 스케줄도 줄줄이 미뤄지지 않았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누가 누구의 드레스를 입었는지는 여우주연상만큼이나 중요한 이슈고,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건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톱 여배우가 바로 이틀 전 쇼에서 선보였던 의상을 입고 레드 카펫을 밟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시상식과 같은 지역에서 쇼를 치를 수밖에!

    “우리는 15년 전 칼 라거펠트와 함께 크루즈 시즌을 위해 특별한 컬렉션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멋진 무대를 설치한 쇼장으로 프레스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샤넬 CEO 브루노 파블로브스키는 샤넬 간절기 쇼가 본격적인 ‘패션쇼 여행’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시작은 11월경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북미와 유럽 지역 상류층의 ‘크루즈’ 여행지를 겨냥한 컨셉이었지만, 충분히 우려먹은 아카이브에 독특함을 더하는 방법으로 이국적인 지역색을 택한 라거펠트의 영리한 판단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자연스럽게 상하이와 모스크바(모두 2009년), 두바이(2014년) 등 명품 시장이 성장하는 도시를 향하고 있다. 다른 패션 하우스들은 가장 최신 경향을 따라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을 목적지로 정하는 것뿐. 영국 <가디언>지의 패션 저널리스트 제스 카트너 몰리는 “파리의 패션 하우스들이 경제 위기로 하락세인 프랑스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브랜드로 재조정하는 동시에 소셜 미디어로 민주화된 패션에서 ‘귀족적인 위치’를 지키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SNS를 통해 공짜로 PR을 하는 소규모 브랜드들, 1년에 두 번 큰맘먹고 패션 위크를 떠나는 블로거와 스트리트 사진가들에게 거만한 고갯짓을 한다는 것. 어디 따라 올 테면 따라 와봐!

    존 갈리아노의 케이스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위기감을 느낀 영국 패션협회의 읍소라고 짐작되지만, 결과는 그가 어떤 컬렉션을 선보일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 패션계의 일대 지각변동처럼 위태롭게 느껴지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중요한 쇼를 놓쳐야 한다는 게 몹시도 아쉬울 테지만, 결국엔 모두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패션쇼를 꼭 봐야 하는 사람들은 늘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란 사람들이니까. 국제선 비행기를 타가며 일일이 쇼를 찾아다니기엔 그들은 바빠도 너무 바쁜 사람들이니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사진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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