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피들의 재능 나눔

2016.03.17

by VOGUE

    패피들의 재능 나눔

    재능에 약간의 시간을 투자한다면 행복의 파이는 훨씬 커질 수 있다. 좀더 살 만한 세상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헌납하는 패션 피플들의 재능 나눔 운동에 대해.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정희경의 어린이용 패딩 머플러 플라이브릭(Flybrik)과 홍보대행사 커뮤니크의 블로그 ‘이태원 나우’, 스타일리스트 채한석이 디자인하는 안경, 트리티(Trity).

    선물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즐겁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어쩌면 스스로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물질 만능주의의 상징 같은 패션계에서도 소외 계층에게 시선을 돌려 남몰래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업의 대규모 사회공헌 활동이나 봉사 단체의 조직화된 시스템 속에서가 아니라면 개인이 남을 돕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에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소외 계층을 돕는 재능 나눔은 시쳇말로 ‘속물적인’ 패션계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진가 조선희는 오래전부터 ‘사진’이라는 특화된 재능을 주변과 함께 나눌 방법을 찾았고 이미 실행 중이다. “최근에는 싱글맘을 위한 전시회를 개최했지요. 태평양과 함께한 행사였는데 싱글맘들이 좀더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에서 기획했어요.” 싱글맘, 독거노인, 구직자, 다문화 가정, 섬마을 어린이, 해외 빈민층까지 8년 전부터 시작된 그녀의 재능 나눔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지속됐다. “아들이 생기면서 좋을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시작은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였죠. 하루에 고작 1달러씩 벌며 쓰레기 더미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는데 그곳 냄새가 어찌나 지독하던지….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어요.” 그 후 그녀는 아름다운재단, 나눔의 집 등 여러 단체와 함께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돈으로 돕는 건 한계가 있어요. 사진 찍는 일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사진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알려 돕는 일에 앞장설 수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한 가지는 스타일리스트 채한석,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선호와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정 사진을 찍어 드린 일, 그리고 그녀가 꾸준히 활동해온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가게(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창업 도움 활동)’가 100호 점을 열었을 때다. “주변에 참여하길 원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땐 참 흐뭇하죠.”

    그런가 하면 헤어 스타일리스트 유다는 미용 기술을 통해 기독교 정신을 실천 중이다. “사적인 모임을 통해 봉사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를 통해 해외 빈민가 아이들을 돕게 되었죠.” 기부로 시작한 그의 봉사 활동은 어린이와 노인들의 이발 봉사로 이어졌다. “봉사를 하다보니 내가 더 잘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시작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지만, 내 기술과 능력을 정말 필요한 곳에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그는 봉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목적의식도 바뀌게 된다고 덧붙였다. “내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 인해 내가 더 힘을 얻게 돼요. 나 자신이 쉴 곳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2007년부터 시작한 그의 재능 나눔은 목욕 봉사, 행사 주차 관리까지 다양한 봉사 활동으로 확대됐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남을 돕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디자인을 통한 기부 활동도 눈에 띈다. 패션 기자 출신으로 패딩 머플러를 디자인하는 정희경은 그녀의 스카프 브랜드 ‘플라이브릭(Flybrik)를 통해 불우 이웃을 돕고 있다. 플라이브릭의 론칭 역시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 “사실 머플러가 겨울 한 철 장사라 아직 기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어요. 일단 올겨울에는 현물 기부를 생각 중이에요.” 그런데 기부 활동만큼 어려운게 기부 대상을 찾는 일이라고 그녀는 전한다. “요즘은 해외를 통해 기부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해외 기부도 물론 의미 있지만 국내는 오히려 소외되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국내 불우 이웃을 연결해주는 단체도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여건이 좀더 마련되면 좋겠어요.”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는 더 애틋할 수밖에 없는 그녀는 주변의 불쌍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 중이다. “2003년 작고하신 이오덕 선생이 제 롤모델입니다. 한평생 시골 학교 교사로 사셨는데, 그분이 가르친 아이들의 그림이 화집으로 출판되기도 했어요. 이왕이면 재미있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스타일리스트 채한석 역시 자신의 안경 브랜드 ‘트리티’의 수익금 일부를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각막 이식수술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는 데 쓰고 있다. 물론 ‘재능 나눔’이라는 것이 꼭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홍보대행사 커뮤니크 직원들은 재능 기부를 통한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블로그 ‘이태원 나우(itaewonnow.com)’를 열었다. ‘이태원 나우’는 이태원 일대의 ‘핫’한 장소를 트렌드에 민감한 홍보 전문가의 눈과 입으로 소개하는 블로그. 맛집뿐 아니라 카페와 클럽, 패션 · 스포츠 · 뷰티 매장 정보가 보기 쉽게 펼쳐진다. 커뮤니크 전 직원이 지난 1년간 본인의 관심 분야에 따라 발로 뛰면서 찾아낸 귀한 정보들이다. “기업은 회사의 규모에 상관없이 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규모는 작지만 우리 회사에 맞는 커뮤니티 서비스 차원의 사회공헌 활동을 찾다보니, 임직원의 자발적 재능 기부를 통한 블로그를 운영하게 됐어요(커뮤니크 역시 8년째 이태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태원 나우’를 위해 커뮤니크의 신명 대표는 적잖은 비용와 시간을 들였고, 직접 촬영까지 하는 수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벌써 많은 분이 애용하고 있어요. 이태원 맛집을 쉽고 재밌게 이용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이태원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럼으로써 이태원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는 것을 느낄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듯 가볍게 시작해도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롭고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헤어 스타일리스트 유다의 말처럼 ‘생각’이 아닌 ‘액션’이다. “물론 남을 돕는게 자랑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의 일부를 나눴을 뿐인데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이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요?”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은영
      포토그래퍼
      강태훈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