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이사벨라 블로우를 추억하는 전시

2016.03.17

by VOGUE

    이사벨라 블로우를 추억하는 전시

    알렉산더 맥퀸의 절친, 필립 트리시의 뮤즈, 뛰어난 스타일리스트이자 수집가였던 패션계의 선구자, 이사벨라 블로우. 올겨울, 그녀를 추억하는 환상적 전시가 런던 서머셋 하우스에서 기다린다.

    잉글랜드 북부의 몹시 쌀쌀한 바람이 부는 아침, 우리는 들판 가장자리의 고랑에 서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승합차 문이 열리면서 하얀 가운을 입은 모델 리버티 로스가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녀는 마놀로 블라닉 스트랩 슈즈를 신고 머리에는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리시 작품인 밝은 자홍색 원판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들판 끝에 멈춰서더니 가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벌거벗은 채 부드러운 진흙 속을 걸었다. 그녀의 피부는 창백했다. 이미 초현실적인 장면에 분위기를 더하려는 듯 어시스턴트가 들판을 가로지르며 드라이아이스를 부었다. 리버티가 그 뒤를 따랐다. 걸을 때마다 그녀의 마놀로 블라닉 슈즈는 진흙 부츠가 됐다. 닉 나이트는 그녀를 따라가며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스타일리스트 아만다 할레치도 요란한 감탄사로 그녀를 북돋우며 뒤를 따랐다. 운전하던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예의 바르게 고개를 돌리며 라디오에 집중했다.

    그것은 드라마, 독특한 액세서리, 부조화, 즐거움, 약간의 개인적 감정이 뒤섞인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패션 모멘트였다. 스타일리스트이자 패션 에디터였던 고 이사벨라 블로우(Isabella Blow),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패션 모멘트였던 그녀에게 어울리는 모든 특징이 담긴 그런 순간. 그녀의 액세서리들이 리버티의 몸을 장식하고 있었다. 오늘 촬영에 영감을 준 것도 블로우다. 블로우의 옷장에 있던 주요 아이템으로 꾸민 리버티를 찍은 닉 나이트의 이 사진들은 서머셋 하우스에서 열리는 전시 <Isabella Blow: Fashion Galore!>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본명이 이사벨라 델브스 브러턴(Isabella Delves Broughton)인 블로우는 오늘의 촬영지인 도딩턴 홀이 있는 영지의 작은 오두막에서 성장했다. 직업적인 성공(그녀는 뛰어난 스타일 감각과 함께 모델 소피 달을 비롯, 필립 트리시와 알렉산더 맥퀸에 이르기까지 재능 있는 인재들을 발굴해 지원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에도 불구하고 블로우는 끔찍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2007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년 후 그녀의 대규모 컬렉션(20세기 말과 21세기 초 가장 중요한 개인 패션 컬렉션 중 하나)이 크리스티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그러나 경매는 보류되었고, 다프네 기네스가 그녀의 컬렉션을 통째로 구입했다.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2003년 모자디자이너 필립 트리시와 함께한 이사벨라 블로우. 1996년 데이비드 라샤펠의 작품을 위해 절친 알렉산더 맥퀸과 익살맞은 포즈를 취했다. 1998년 주영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파티에 독특한 전갈 목걸이 차림으로 참석한 모습. 2007년 영국  화보를 위해 강아지들과 함께 아서 엘고트의 카메라 앞에 섰다.

    오늘 다프네 기네스는 평소의 꾸뛰르 룩 대신 미니스커트와 검정 니 삭스, 러닝화, 그리고 커다란 헤드폰을 착용한 힙합 요정 같은 모습으로 촬영에 참가했다. 무너져가고 있는 도딩턴 홀의 뮤직 룸에서 그녀는 창백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하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저는 그 옷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게 그냥 아주 불공평해 보였어요. 저는 친구 둘(2010년에 맥퀸도 자살했다)을 잃었고,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모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방해한 것 같았어요. 저는 그녀의 가족이 아니라 친구니까요. 하지만 그건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의 블로우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는 치열하고 뛰어난 스타일리스트였어요.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농담을 하곤 했어요. 그녀는 ‘이렇게 여러 번 실패한 사람은 나뿐일 거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블로우의 옷들은 창고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패션 아키비스트(Archivist, 기록 보관사)인 쇼나 마샬이 그것들을 공들여 분류했다. “그녀의 옷 입는 방식을 아주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라고 마샬은 말했다. “그녀는 그 옷들을 직접 입고 생활했습니다. 바닥에 드레스들을 던져놓기도 하고, 진흙 속에서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지요. 립스틱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저녁 식사 때 촛불 위로 몸을 기울이는 바람에 모자를 태운 흔적도 있어요.” 오늘 촬영에 함께한 필립 트리시는 최근 이베이에서 자신이 그녀를 위해 만든 모자 중 하나를 발견했다. “분명 그녀가 레스토랑 같은 데 놓고 간 걸 거예요”라고 그가 말했다.

    너무나 낭만적이었던 블로우에게 오뜨 꾸뛰르는 일상복이었다.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다큐멘터리를 보러 갈 때에도 깃털 망토를 입었죠”라고 마샬이 설명했다. 촬영 현장의 밴 안에는 블로우의 옷 30벌이 더스트 백에 담긴 채 두 줄의 레일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저택이 이 옷들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녀는 최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Savage Beauty>에 전시한, 식물 가시가 프린트 된 알렉산더 맥퀸의 핑크색 실크 코트를 꺼냈다. “이건 맥퀸이 졸업 쇼에서 선보인 거예요. 그리고 이 타탄 드레스는 맥퀸의 ‘Widows of Culloden’ 컬렉션 때 선보인 거예요.” 마샬은 맥퀸의 스코틀랜드 격자무늬 칵테일 드레스를 꺼내며 말했다. 아직도 전 주인의 울림이 남아 있는 이 옷들에선 위트와 매력이 느껴졌다. “정말 흥미로운 건 그녀가 아이템들을 스타일링하는 방식이었어요”라고 마샬은 말했다. “그녀는 아주 지적이었지만 자신이 입는 옷에서 재미를 찾았습니다.” 꼼데가르쏭 드레스에는 모자처럼 생긴 코사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크 낙하산으로 만든 요시키 히시누마의 멀티 컬러 패치워크 망토도 있었다.

    “저는 ‘McQueen Isabella 2003’이란 라벨이 수놓인 벨벳 재킷을 아주 좋아해요”라고 나중에 기네스는 말했다. “그녀는 늘 맥퀸의 조랑말 가죽 뷔스티에와 멜빵이 달린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제가 구입했을 때 모든 옷에선 그녀의 향수 냄새가 났어요. 알렉산더와 필립이 ‘La Dame Bleue’ 컬렉션을 선보인 때가 기억납니다. 그것은 이사벨라에게 헌정하는 쇼였어요. 쇼가 열리기 전에 우린 함께 앉아서 울었어요. 알렉산더는 쇼장의 모든 곳에 그녀의 향수인 프라카스(Fracas)를 뿌렸습니다.”

    (위)알렉산더 맥퀸이 지방시 꾸뛰르 컬렉션을 위해 만든 자수 장식 기모노와 필립 트리시의 나비 아이피스를 착용한 리버티 로스의 모습. (아래)알렉산더 맥퀸의 1997년 봄 컬렉션 펜슬 스커트를 입고 오필리아로 변신한 모델.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이사벨라 블로우가 직접 착용하던 것들이다.

    금박을 칠한 무너질 듯한 방들은 완벽한 배경이 되었다. “약간 귀신이 나오는 느낌도 있어요. 어제 아래층 아치 천창 밑에서 <유령들>이란 책 옆에 놓인 불가사의한 유리병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닉 나이트는 말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는 그 이상한 보라색 빛도 있어요.” 아만다 할레치가 덧붙였다. “그녀가 그 보라색 빛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웃으며 ‘왜 필립은 내게 철조망 울타리로 또 다른 모자를 만들어주지 않았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곳의 정원에는 돌로 만든 작은 장식용 건물이 서 있다. 기사들이 새겨진 14세기 탑이다. 그 기사들 중 한 명이 검은 왕자(Black Prince,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데, 이사벨라의 조상들은 그의 편에서 함께 싸웠다고 전해진다. 폐허 속에서 나이트는 베일이 부착된 필립 트리시의 검정 모자를 쓴 리버티를 찍었다. 그녀 주변으로 드라이아이스가 퍼졌다. “여기에 있으면서 새, 불, 흙, 중세 기사들, 날씨, 눈, 물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라고 할레치가 설명했다.

    “전시회를 통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중요합니다”라고 마샬은 말했다. “매 사냥에 대한 이사벨라의 사랑 같은 것 말이에요. 그녀와 맥퀸은 함께 매 사냥을 하곤 했어요. 그 후 지방시를 위한 맥퀸의 컬렉션에 팔에 매를 얹은 모델이 등장했지요.”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블로우와 패션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장 배경과 영국 시골을 향한 애정을 다룬다. 전시 큐레이터인 알리스테어 오닐이 중점을 둔 것도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주는 그녀의 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필립 트리시에게 18세기 여성들은 머리에 배를 얹고 다녔다고 말했어요. 그 후 갑자기 우리는 배 모자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 체인 메일(chain mail, 작은 쇠사슬을 엮어 만든 갑옷)로 뭔가 만들어야 해요’라고 말하자 갑자기 맥퀸은 잔 다르크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블로우의 옷과 함께 그녀의 개성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만드는 것이다. 즉, 아르마딜로 가죽을 핸드백으로 들고 다녔던 여인에 대한 힌트 말이다. “그녀는 아주 재미있고 지적이었어요”라고 오닐은 회상했다. “그것이 우리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 힐의 또각거리는 소리 등등. 그녀는 아주 고음의 개성 강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어요. 어제 아만다와 함께 호숫가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물 위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니 재미있네요. 꽥꽥, 짹짹, 끼루룩, 꼭 이사벨라의 목소리 같아요.’”

      에디터
      글 / 샬롯 싱클레어(Charlotte Sinclair)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 Donald McPherson, David Lachapelle, Roxanne Lowitt, Mario Te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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