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존 갈리아노와 케이트 모스

2016.03.17

by VOGUE

    존 갈리아노와 케이트 모스

    크리에이터와 뮤즈로 존 갈리아노와 케이트 모스가 <보그>에 초대됐다. 그가 창조한 환상 세계 속에서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내 올가가 됐다.

    검정 실크 드레스는 빈티지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모피 트리밍 코트와 주얼리는 모두 빈티지 제품. 갈리아노의 수트는 랑방(Lanvin), 흰색 셔츠는 이드앤라벤스크로프트(Ede&Ravenscroft), 모자는 락 해터스(Lock Hatters).

    나는 작가 캐릭터에 몰입했고, 표정을 연습했고, 텅 빈 백지를 보며 씩씩거렸고, 작가의 슬럼프를 경험했다(실제론 작가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느꼈다). 나는 가능한 모든 표면에 글을 휘갈겼다. 그리고 “안돼!”라고 소리치며 종이를 뭉쳐 응접실 여기저기에 버렸다. 나중엔 지탄(Gitanes, 프랑스 담배 브랜드로 ‘집시 여인들’이란 뜻) 담배도 많이 피웠다. 당신은 담배 연기가 흰색이 아니라 잿빛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많은 변명이 이어졌다.

    게스트 에디터가 되어 화보 컨셉을 정하고 모델로 참여 해달라는 <보그>로부터의 초대. 그들이 내가 강아지 ‘집시’와 머물고 있는 이곳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국 <보그>의 케이트 펠란과 첫 대화가 시작됐다. 나는 인터넷으로 루돌프 발렌티노와 그의 아내 나타샤 램보바의 사진들을 보았고, 그 뒤를 이어 파블로바와 그녀의 가냘픈 몸을 감싸고 있는 백조, 그리고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러시아 발레단)의 가장 어린 솔리스트였던 마르코바의 사진들도 봤다. “아주 멋져요!”라고 나는 꽥꽥거렸다. 케이트 펠란은 내게 수트 사이즈를 물었고, 내 의상들과 케이트 모스를 위한 의상들을 뒤졌다. “확실해요. 사이즈 48이에요. 적어도 여름휴가 전에는 그랬어요. 사진을 위해 우리는 그런 척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여행을 많이 한 고리버들 바구니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피팅 준비가 된 그녀의 모든 의상들이 밖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내일 그녀는 그 옷들을 챙길 것이다. 백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만 볼 수 있는 그 영묘한 빛 속의 아침 이슬처럼 연약해 보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감정과 더 많은 열정을 원했다. 케이트의 연기를 보면 나는 울고 싶어질 것이다. 그녀는 크리에이터일 뿐만 아니라 뮤즈다. 그녀는 패션의 힘, 그것이 얘기하는 언어와 마법, 그리고 사진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잘 알고 있다. 쉬운 얘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검정 실크 슬립 드레스와 기모노 재킷은 빈티지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갈리아노의 수트와 셔츠, 타이는 모두 발렌티노(Valentino).

    나는 그녀에게 피카소의 첫 아내이자 강력한 자석 같은 힘을 지닌 여인인 올가 코클로바(Olga Khokhlova)에 대해 짧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식사용 나이프로 러시안룰렛을 하는 상상. 먼 곳을 응시하며 손가락들 사이로 스타카토 속도로 유쾌하게 칼을 찌르는 모습. 그녀는 자신이 잘 아는 각도로 머리를 뒤로 기울였다. 그 아름다운 골격 속의 모든 근육들이 올가처럼 느끼고 숨을 쉬고 있었다. 올가 코클로바! 나는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눈을 깜빡이는 게 두려웠다. 그녀는 올가, 그것도 나의 올가다.

    이제 피아노로 가보자. 피아노는 열정으로 폭발했다. 왜냐하면 내가 쭉 케이트의 실력을 시험해봤기 때문이다. 오늘밤엔 대역이 연기할 것이다. 우리는 바닥에 놓을 분필과 러시아 은쟁반들이 필요했다. 나는 바닥에 고인 땀도 그대로 두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고통, 즉 호된 훈련의 증거다. 아마 나중엔 눈물을 흘릴 것이다. 케이트는 이국적이고 신비로워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녀가 추는 춤을 모르지만 그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열네 살 때의 그녀가 떠올랐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케이트에게서 무용수의 단호함을 느꼈다. 그녀는 메이크업을 마치고 보물들이 가득한 알라딘의 동굴, 즉 케이트 펠란의 드레싱 룸으로 들어갔다. 셔벗 색상의 백조 솜털들, 물처럼 흐르는 벨벳, 그리고 속살이 비치는 실크.

    나는 사진작가인 팀 워커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정신 없이 바빴다. 내 눈은 내가 연주할 피아노에 멈췄다. 나는 경이롭게 그것을 응시했다. 그 신은 마법처럼 멋질 것이다. 나는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손가락 스트레칭을 했다. 우리는 어빙 펜과 리처드 아베돈, 그리고 불빛으로 그린 그림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워커는 지금도 진짜 필름을 사용한다. 이야기가 있는 작업을 사랑하는 예민한 영혼의소유자. 우리는 옛날 영화들과 데이비드 린에 대한 서로의 애정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나는 사랑에 빠졌다.

    케이트의 노란색 레이스 드레스와 모피 스톨, 인조 산호 귀고리는 모두 빈티지 제품. 갈리아노가 입은 수트는 랑방(Lanvin), 흰색 셔츠는 이드앤라벤스크로프(Ede&Ravenscroft), 모자는 락 해터스(Lock Hatters).

    그는 우리가 분위기를 잡을 수 있도록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틀었다. 아리아, 말콤 맥라렌의 ‘Duck Rock’, 그리고 푸치니와 <나비 부인>에 바치는 그의 송가인 ‘Fans’가 연이어 돌아갔다. 아주 완벽했다. 말콤을 위해 ‘Fans’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게 기억났다. 당시 나는 대학을 막 졸업한 상태였고, 그는 내게 도전 의식을 북돋웠다. 그는 스튜디오 바닥에 낡은 브이넥 스웨터를 던져주고는 “그걸로 무얼 할 수 있는지 보여줘요”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떨렸지만 그 도전에 응했다. 나는 브이넥 안으로 들어가 V자가 내 사타구니 밑에 걸쳐지게 한 다음 양 옆구리에 매달린 소매들을 잡아 그것을 버슬 스타일로 묶었다. 그리고 옆으로 섰다. 실루엣이 오리 엉덩이 같았다.

    세트가 준비됐다. 나는 케이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비밀 지켜줄 수 있어요?” 그녀의 감정이 고조됐다. 완벽한 입술에 베리색을 바른 그녀는 나비처럼 자신의 빛을 찾아 완벽한 자세로 날아가 앉았다가 주변을 맴돌았다. 멋진 포즈들! 워커가 OK를 외쳤다. 그녀는 세트에서 빠져나와 그의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세트를 가늠해보고는 머릿속으로 사진들을 편집했다. 그녀는 다시 돌아와 내게 이 방식이 더 나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는 약간 감을 잃은 상태여서 그녀를 믿었다. 왜냐하면 지난 2년 반 동안 스튜디오 근처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보다 자신이 워커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스튜디오가 나를 되찾아주었다고 느낄 정도로 이곳에 애착을 느꼈다. 그녀의 유일한 대본은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였다.

    촬영이 끝난 후 우리는 케이트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달빛을 받으며 정원의 서늘하고 무성한 잔디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었다. 완벽한 날의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리고 나는 정말 감사했다. 모두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에디터
      글 /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케이트 펠란
      포토그래퍼
      Tim Walker
      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IMG)
      스탭
      메이크업/샘 브라이언트, 헤어 / 샘 맥나이트(Sam Mc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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