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현대적이고 세련된 여성의 상징, 셀린의 피비 파일로

2016.03.17

by VOGUE

    현대적이고 세련된 여성의 상징, 셀린의 피비 파일로

    2008년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순간부터 피비 파일로는 동시대를 사는 모던하고 세련된 여성의 상징이 됐다. 그녀가 창조한 ‘셀린다움의 일반화’는 성공을 거뒀고, 성공을 거둘수록 이 아름다운 영국 여성은 점점 신비스러운 존재가 돼가고 있다.

    모델 에디 캠벨이 이번 시즌 최고의 트렌드, 타탄체크 차림으로 포즈를 취했다. 울과 실크 소재 코트, 깃을 세운 실크 터틀넥, 캐시미어 양면 스커트는 모두 셀린(Céline).

    성글고 두툼하게 짠 니트와 날렵한 코트가 잘 어울리는 피비 파일로.

    셀린만의 스타일이 있다. 광범위한 아이템들을 다루는 패션 하우스들이 중노동 수준의 1일 근무시간을 유지한 채 미친 듯이 공장을 돌리던 그때, 셀린의 피비 파일로(Pheobe Philo)는 정반대 노선을 택했다. 엄마인 그녀는 근무시간에는 ‘자연적 제한선’이 있다고 선언했다. 셀린 패션쇼는 오래전부터 일요일 오후 1시에 열린다. 그날 오전 9시부터 스태프들은 전장에 나설 채비를 한다. 흰색 장갑, 단화 한두 켤레, 벨트 한두 개면 준비 완료. 물론 셀린 스튜디오 스태프들도 긴장을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강제 노역자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캣워크 뒤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짧은 쇼츠를 입은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가 분위기에 취해 사진을 찍어댈 뿐. 공식 포토그래퍼는 단 한 명이며, 셀린 하우스의 동영상 보관 자료를 남기기 위한 카메라가 두 대 있다. 오디오 엔지니어는 한 명도 없다. 예전에는 벽에 이렇게 쓰인 흰 종이를 붙여놨었다. “Keep it clean(청결을 유지할 것)”. 그건 케이터링 테이블에 대한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반적인 분위기를 묘사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매너리즘은 존재하지 않으며, 140자 내로 메시지를 작성하는 일을 맡은 이도 없다. 아니, 필요치 않다. 단지, 안나 윈투어가 쇼 시작 30분 전에 요란한 키스를 날리며 들른다는 것뿐. 편안한 모습의 피비 파일로는 심지어는 미소까지 지으며 마지막 점검을 한다. 캣워크 직전에 모델들의 메이크업을 수정해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그녀는 엄격한 눈빛으로 쇼를 끝까지 지켜본다. 패션쇼 구성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촘촘히 짜인다. 며칠동안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 가봉 과정에서 이미 모든 게 확실하게 결정된다. 스태프 이외의 외부인은 절대 이 시간에 참여할 수 없다. 유일하게 알려진 사실이라면, 피비와 그녀의 스태프들이 작업한 의상들 중 단지 30%만이 캣워크 무대에 오른다는 것 정도다.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는 부유한 여인들을 위해 1945년 설립된 패션 하우스인 셀린은 1996년 LVMH 그룹이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하던 시기에 루이 비통, 지방시, 디올, 로에베와 동시에 매각되고 재조정됐다. 피비 파일로는 2008년 셀린에 정착하자마자 셀린의 전면 재조직에 나섰다. 2009년 10월 그녀의 셀린 최초 컬렉션이 발표되고, 언론은 이렇게 평했다. “그녀는 모든 급한 불을 껐다.” 그다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들이다. 투톤 컬러 가방과 코트는 정신없이 카피됐고, 그건 단정하면서 자유롭게 흐르는 모순적인 다른 아이템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일반화된 셀린다움(Célinisation)’이라 부르는 것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2013년 가을 · 겨울 패션쇼가 열리는 동안 백스테이지에는 최종 점검과 수정을 담당하는 헤어 디자이너와 피비 파일로만 있다. 하얀 장갑을 낀 피비는 매의 눈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정하고 강조해야 할 부분은 부각시키며 최종 마무리를 한다. 성실한 동료가 재떨이와 담배를 들고이를 지켜본다. 컬렉션은 바닐라와 회색 펠트로 시작됐다. 편안한 크루즈 선을 타고 있는 듯한 속도로 그다음 옷이 등장했다. 진한 비취색, 검붉은 와인색, 심해 1000m의 바다색, 모헤어 모직 코트…. 피비는 보편적인 대중성을 그녀의 엘리트주의에 통합시키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그녀는 가을 시즌 셀린 코트에 극단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사용한 체크 자카드무늬를 선택했다. 그녀는 스스로 즐기면서 스매시를 날리고, 상대의 허를 찌르며 네트에 바짝 붙는 등 놀라움의 연속이다. 날실을 많이 꼰 무광택 크레이프 천이나 가자르 소재에 대한 취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사무실에서 스타일을 되새기며 연구하기 때문도 아니다. 역사적 아이콘의 스케이트 구두지만 타조가죽으로 만든다거나, 핸드백인데 중국식 대형 포춘 쿠키 형태를 띠는 것처럼 단지 눈속임, 놀이, 역발상의 클래식을 보여줄 뿐이다.

    에디 캠벨의 동생 올림피아 캠벨이 소매를 묶은 듯한 디자인이 독특한 연회색 울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울과 실크 소재 케이프, 울 캐시미어 라운드 니트, 울 플란넬 스커트, 가죽 부츠는 모두 셀린(Céline).

    셀린의 고객들은 강요한다는 느낌을 원치 않을뿐더러, 똑같은 것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동일성의 향연에 참여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피비는 자신의 고객들을 셀린 의상과 함께 이상적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긍지를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몽테뉴 거리에서, 피겨스케이트 선수인지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사람인지 태가 나지 않는 거리에서, 서로가 패션 첨단에 있음을 알아보는 데서 느끼는 전율! 남성복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간결함과 환상의 기이한 결합! 피비는 그녀가 원하는 실용적인 컬렉션을 위해 때로 이 범주를 부각시킨다. 여기에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힐, 고대 바빌로니아식 벨트 버클을 첨가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셀린의 기원은 가죽 하우스였기 때문에 가죽 소재는 늘 등장하는데, 탈착 가능한 폭스 칼라, 한꺼번에 단추를 풀 수 있는 밍크 드레스, 에메랄드빛 악어가죽 백, 버클을 채운 양가죽 등이다. 그러나 스텔라 맥카트니처럼 피비 역시 인조가죽이나 베지터블 송아지 가죽을 사용한다. 쇼가 끝날 무렵이면 피비는 보통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리고 인사를 하러 서둘러 무대로 나간다. 운동화를 신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신중하지만 신속하다. 그 후에는 스튜디오의 기둥과도 같은 사람들과 포옹한다. 아무리 경쟁 업체에서 이들을 스카우트하려 하고 때로 스카우트에 성공한다 해도, 새로운 시즌이 돼도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다. 자, 이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려는 프레스들의 차례다.

    셀린에 왔을 때 피비는 ‘말’을 했다. 비록 인터뷰를 준비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한숨을 쉬며 끈기 있게 설명했다. 그러다 다시 임신을 했고 이 새로운 위급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언론과 스스로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더 이상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는 일은 없었다. 1년 전, 개선문 뒤 개인 주택에서 전대미문의 컬렉션을 열 때, 기자들이 와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세 가지 질문에 답했다(TV 카메라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노란색 모피로 힐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녀는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생각이 났어요.” 자, 다른 것은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녀가 언론과 거리를 두겠다는 결정은 자신의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 아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의 크리에이티브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더 이상 학습이 필요한 단계에 있지 않을 뿐이다. 굳이 생각해보면, 그녀가 임신 중이며, 차분한 실루엣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만큼 정겹고 유쾌한 것들이 분명히 매력적으로 그녀에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몸매를 드러내던 코트들은 폭이 넓고 풍성해졌고, 부드러운 코트 위에 걸치는 망토는 몸을 감싸는 듯 거대하다. 여성들은 당연히 이 컬렉션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고 매 시즌마다 셀린 팬들은 점점 늘어난다. 피비는 수녀가 아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미니멀리스트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녀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사무실 벽에는 다이아몬드 가루로 된 워홀 작품을 걸어놨다. 그녀가 비교적 조용한 것이 벅찬 고행을 하고 있는 신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항상 웃음을 띤 채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매우 솔직하다.

    혹자는 그녀가 가상의 지적인 이야기를 의상에 부여하고, 다음과 같은 화제성 일화에 만족한다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녀는 14세에 재봉틀을 갖게 됐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옷을 고치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패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자라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감정을 조절하는 자아가 더해졌다. 그녀는 스튜디오 팀과의 관계를 완벽히 잘 유지하고 있다는 뜻에서 종종 ‘우리’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녀의 눈 속에는 여전히 억제할 수 없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지만, 클로에에서 보냈던 열광적인 몇 해들은 이미 지난 일이다. 그리고 셀린 백스테이지에서는 그 시절 함께 동거하던 프랑스인 남성을 아직도 마주칠 수 있다.

    막 40대에 접어든 피비는 주목받는 디자이너 중 가장 젊다. 그녀는 규율을 준수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녀의 이력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수십억 유로의 이익을 내고 톱 5 안에 드는 날,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2년간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생체시계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씩 지워가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며,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빈틈없는 표가 아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창조하는, 강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다. 같은 맥락에서 셀린 부티크는 구조와 자유의 상징처럼 보인다. 피팅 룸의 예술 작품도, 푹 꺼지는 소파도, 요란한 쇼윈도도 없다. 한마디로 장식이 거의 없다. 단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바로 거울이다.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는 사람의 기분을 우쭐하게 해주듯 거울은 살짝 위로 기울어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거울 앞에는 셀린 옷에 열광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에디터
      글 / 로익 프리장(loic prigent)
      포토그래퍼
      데이빗 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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