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화보

에르메스의 장 클로드 엘레나와의 인터뷰

2016.03.17

by VOGUE

    에르메스의 장 클로드 엘레나와의 인터뷰

    마스터 조향사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전설적인 조향사로 꼽히는 에르메스의 장 끌로드 엘레나가 한국을 찾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8년 전 인도에서였다. 그 모습 그대로 장 끌로드 엘레나는 여전히 멋지고 유쾌하며 매력적이었다. 촬영 소품으로 준비한 커다란 석고상 코를 보면서 “셰익스피어의 한 장면처럼 촬영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며 포즈를 고민하는 그의 눈에는 70세라곤 믿기지 않는 활기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세계적인 향수들을 탄생시킨 전설적인 조향사, 지금은 에르메스 향수의 하우스 조향사를 맡고 있는 장 끌로드 엘레나와 향기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VOGUE 조향사가 꿈이었나?

    JEAN-CLAUDE ELLENA(이하 ELLENA) 공부에 영 흥미가 없으니까 열여섯 살에 아버지가 그라스 지방 향수 공방에서 일해 보는 건 어떠냐고 권했고, 그곳에서 일을 배우면서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도 조향사였기에 호기심도 있었다. 그렇게 조향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VOGUE 딸인 셀리느 엘레나도 조향사로 에르메스 홈 퍼퓸을 맡고 있다. 대대로 조향사 집안이라니 멋지다. 그라스 지방 얘기를 하니 8년 전 당신이 내게 해준 얘기가 생각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향으로 견습생 시절 밤새도록 술집에서 놀다가 새벽녘 공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스민밭에서 풍기던 향기를 꼽았던 이야기 말이다.

    ELLENA 하하. 덧붙이자면 그 재스민 향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다. 그 길을 항상 스쿠터를 타고 지나갔는데, 그 꽃밭이 끝나는 지점에 아마 예쁜 아가씨가 있었을 거다.

    VOGUE 작가로서도 활동 중인데, 조향사 일은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ELLENA 나는 글을 쓸 때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을 배열한 후 그걸로 문장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조향도 마찬가지다. 향 하나하나가 단어이고 그 단어들이 모여 향에 대한 이야기, 즉 향수가 된다. 내가 에르메스에서 일한 후부터 에르메스에서 이야기가 없는 향수는 나온 적이 없다. 고객의 요청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향수의 원료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향수는 문학이지 향 원료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향수 제조의 레시피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향수에 대한 애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VOGUE 다른 향수들도 스토리와 상상을 자극시키는 문구들을 내세우지만 정작 향을 맡았을 때 실망하거나 어처구니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당신이 만든 이야기와 문구들을 읽고 향을 맡으면 정말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몬순 폭풍우가 지나간 후 다시 태어나는 자연의 고요함(자르뎅 아프레라 무쏭),’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서 흙의 향을 들이마시는 듯한 느낌(떼르 데르메스),’ ‘축제의 정원, 빛의 충만하고 자유분방한 정원(자르뎅 수르 뜨와)’ 등등.

    ELLENA 마케팅을 위해 만든 얘기가 아니라 내가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만든 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자르뎅 컬렉션은 각각의 장소에 직접 가서 영감을 얻고 글을 쓰고 표현했기 때문에 내가 만든 향과 이야기가 더 일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VOGUE 이달에 출시되는 또 하나의 자르뎅 컬렉션, ‘자르뎅 무슈 리’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고요하고 상쾌한 향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을 듯하다. 특히 이전 자르뎅 컬렉션은 인도, 지중해, 나일 강, 파리 등 여행담을 듣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정원의 주인, 무슈 리가 등장한 것이 이색적이었다.

    ELLENA ‘자르뎅 무슈 리’는 중국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년 이맘때쯤 중국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자르뎅(정원)을 거닐었다. 돌도 만져보고 식물의 향도 느끼며(사천의 정원에는 후추나무가 많았다) ‘자르뎅 무슈 리’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중국의 정원은 사색을 하고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담아 ‘무슈 리’라는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무슈 리는 차를 수입하는 수입상인데 자신의 아름답고 조용한 정원으로 나를 초대한다. 그는 와인에 대해, 그리고 나는 차에 대해 잘 알아서 한참 대화를 나누다 “와인이든 차든 중요한 건 물이다. 물 없이는 둘 다 있을 수 없다”는 합일점에 이르는 상상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VOGUE 한국에서는 향을 드러내며 사용하는 것은 교태를 부리는 것으로 조신한 규수들이 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향수를 사용하는데 제한을 두거나 꺼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선입견을 지닌 이들에게 향수의 매력을 어필한다면?

    ELLENA 미술에 비교해서 얘기한다면, 동양 미술의 기본은 물과 종이, 서양은 천과 유화 물감이다. 물과 먹을 섞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면 종이가 그걸 흡수하듯, 아시아인들은 향 또한 조용히 나에게 흡수돼 드러나지 않는 향을 추구한다. 반면 서양의 향은 유화처럼 보여주고 드러내는 문화다. 그래서 조향사로서 항상 추구하며 찾는 것이 가볍지만 존재감 있는 향이다. 얘기한대로 향수의 여러 기능 중에는 ‘유혹’이란 기능도 있다. 그러나 유혹에도 종류가 있지 않나. 강렬한 유혹이냐, 기품 있는 유혹이냐. 특히 아시아 문화에서는 너무 튀면 안되지 않는가. 누군가가 내 귓가까지 바싹 다가와 ‘무슨 향이죠? 정말 멋진데요’라고 말하게 하는 향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며 ‘저 향은 뭐지, 참 멋지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향이다.

    또 다른 향수의 매력 포인트는 안정감이다. 향수를 뿌림으로써 향의 울타리가 생긴다고 할까. 향은 안심이 되고 나만의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비행기를 탈 때 십자 목걸이에 기도를 하거나 향수를 뿌리고 들어가는 두 타입의 여성들이 있다. 두 가지 행위 모두 안정감을 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뿌리더라도 그다지 개성이 강하지 않은 향을 뿌린다. 왜냐하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부끄러움이 많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사람이라면 향기는 자신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VOGUE 한국의 여름은 덥고 습하다. 이럴 때 향수를 뿌리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ELLENA 습도가 높은 나라에서 향수를 뿌리게 되면 건조한 공기 속에서 뿌리는 것보다 향이 훨씬 강하고 멀리 퍼져나간다. 왜냐하면 물이 향을 전달하는 좋은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앰버, 바닐라 같은 무거운 향보다는 오드코롱이나 자르뎅 컬렉션 같은 가벼운 향수를 살짝 뿌려주는 것이 좋다.

    VOGUE 향수를 뿌리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면?

    ELLENA 자유로움! 에르메스 향수의 60%는 남자 향수도, 여자 향수도 아니다. 그렇다고 유니섹스도 아니다. 남자가 뿌리면 남자 향수가 되고, 여자가 뿌리면 여자 향수가 된다. 향수의 성별은 마케팅 관점에서 분리를 한 것이고, 뿌리는 사람이 향수의 성을 결정하는 것이지 향수 자체가 성을 결정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르뎅 무슈 리’라고 나왔지만 ‘마담 리’가 돼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수를 뿌리는 것은 하나의 유희다. 긴 머리 아가씨가 머리카락에 향수를 뿌리고 머리칼을 찰랑거리면서 자신만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다만 옷에 뿌릴 때는 한 가지 옷에는 한 가지 향만 뿌려라. 아니면 향이 섞여 아무것도 아닌 향이 되니까. 나머지는 아주 자유롭게 즐기시길!

    VOGUE 에르메스 향수는 남다르다. 에르메스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ELLENA 에르메스 향수가 추구하는 것은 유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과 장인에 대한 클래식한 가치에 바탕을 둔 동시에 모던함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에르메스는 1951년부터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만든 모든 향수가 아직도 판매되고 있다. 대부분 스무 살이 되면 자기만의 첫 향수를 사는데, 여러 제품을 시도하다 스무 살 때 뿌렸던 향을 다시 찾고 싶을 때 그게 에르메스였다면 그 향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난 이것이 에르메스 향수가 지닌 힘이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이화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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