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로베르 끌레제리의 롤랑 뮤레

2016.03.17

by VOGUE

    로베르 끌레제리의 롤랑 뮤레

    프랑스 남부의 구두 마을, 로망의 수제화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100년 전통의 슈즈 브랜드 로베르 끌레제리.
    그곳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롤랑 뮤레가 이 오래된 구두 왕국으로 <보그>를 초대했다.

    파리에서 TGV를 타고 2시간쯤 달려 도착한 남부의 평화로운 마을 로망(Romans). 론 계곡이 감싸는 이곳은 프랑스 슈즈의 고향이다. 19세기 가죽 생산과 함께 구두 마을로 자리 잡은 이곳에는 프랑스를 대표할 고급 수제화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 로베르 끌레제리(Robert Clergerie) 구두가 만들어지는 공방이다. <보그 코리아>를 이곳에 초대한 인물은 2011년부터 로베르 끌레제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롤랑 뮤레(Roland Mouret)다.

    로망 역에서 1시간쯤 차를 타고 도착한 공방에 들어서자 창립자 로베르 끌레제리와 롤랑 뮤레가 함께 찍은 사진이 맨 먼저 <보그> 팀을 반겼다. 1895년 설립된 구두 공방을 1981년 구두 디자이너 로베르 끌레제리가 인수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게 됐고, 지금은 패션 디자이너 출신 롤랑 뮤레가 디자인을 맡고 있다. CEO 에바 터브(Eva Taub)와 인사를 나눈 뒤 안내된 곳은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아틀리에. 다음 시즌 구두 디자인을 위한 아이디어 보드와 다양한 가죽 패턴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새 디자인이 탄생하면 옆에 마련된 습작실에서 구두 형태 작업이 이뤄지고, 그 후 2층 작업실로 넘겨져 구두로 제작된다. 작업실은 아주 오래된 공방, 게다가 구두 공방이기에 결코 깨끗하거나 현대적인 곳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거쳐가며 효율적으로 공간 구성이 돼 있고, 그 속에서 나이 지긋한 장인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구두 한 켤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80번, 구두에 따라 150번의 수작업이 필요합니다.” 가장 오랜 세월을 공방에서 보낸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인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각자 하는 일이 다릅니다. 구두의 종류와 모양에 따라 필요한 가죽을 선별하는 장인, 구두의 생명인 굽을 조각하는 장인, 가죽 밑창을 붙이는 장인, 그리고 가죽의 종류에 따라 색칠을 맡은 장인 등등.”

    다시 1층으로 내려오자 공사 현장처럼 굉음이 들렸다. 2층에서 만들어진 구두 재료들이 한곳에서 조합되는 곳이다. 구릿빛 피부의 건장한 중년 남자들이 힘껏 망치질해 완성품을 만드는 현장. 이 공방이 처음 시작한 ‘굿이어 웰트 공정(기계를 이용해 밑창과 신발 갑피를 하나로 재봉하는 방식)’이 이뤄지는 곳 역시 여기였다. 장인의 몸동작과 구두 기계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은 한참 바라봐도 신기한 풍경이었다. “장인들의 육체적 힘과 섬세한 손 기술이 동시에 필요합니다”라고 에바 터브는 자부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우리만의 기술과 아카이브는 100년이 넘은 공방의 역사처럼 방대합니다. 프랑스 현대사와 함께한 셈이죠.” 그녀가 공방 역사를 보관한 자료실로 안내하며 덧붙였다. “롤랑 뮤레가 디자인한 구두도 이제 이곳에 자리하게 되겠죠. 그가 디자인한 구두는 가장 프랑스적인 동시에 가장 로베르 끌레제리다워요.”

    다음 날 파리 시내 리브 고슈에 자리한 로베르 끌레제리 매장 옆 소박한 사무실에서 롤랑 뮤레를 만났다. 초가을의 온화한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뮤레는 프랑스 남자 특유의 세련된 매너와 활기찬 어투로 로베르 끌레제리의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Vogue Korea(이하 VK) 어제 로망에 있는 공방에 다녀왔다. 1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3년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을 때 그곳을 방문했을 텐데, 느낌이 어땠나?

    Roland Mouret(이하 RM) 로망의 로베르 끌레제리 공방에 간 건 80년대. 나와 로베르 끌레제리와의 인연은 훨씬 전부터였다. 1985년부터 4년간 아트 디렉터로서 브랜드 광고를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브랜드는 미국에 처음 진출해 발전을 거듭하던 때였고, 나는 비주얼 디렉션을 담당했다. 그 때문에 브랜드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VK 3년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었겠다.

    RM 2011년 20년 만에 공방을 찾았을 때,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고향 집을 방문한 느낌이었다. 코를 찌르는 가죽 냄새, 망치질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프랑스 남부 출신 장인들이 발산하는 특유의 밝은 기운까지. 모든 것이 로베르 끌레제리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VK 당신이 맡은 후 로베르 끌레제리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RM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고집스럽게 이어온 품질과 미학적인 개성을 동시대적으로 진보시키고 싶었다. 단순히 오래된 수제화가 아닌, 좀더 다양한 종류의 구두를 선보이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었다. 무슈 끌레제리가 나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목한 이유도 그것이다.

    VK 당신은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만드는 드레스로 유명하다. 그런 당신에게 구두 디자인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RM 디자인이란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일이다. 그 과정에 필요한 기술로 인해 때로는 디자인이 어려워질 때도 있다. 로베르 끌레제리처럼 견고하고 편안한 제품을 중요하게 여기는 브랜드는 기술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령 실험적 디자인이지만 발이 불편하다면 제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겐 디자인도 중요하기에 장인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밀어붙이기도 해야 한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일한 장인들과 디자이너들과 함께 브랜드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발전시켜 나가자면 나만의 해법이 필요하다. 때때로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동물을 끌고 나가는 기분이 들 정도다.

    VK 당신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갤럭시 드레스다. 그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구두를 꼽는다면 무엇인가?

    RM 로베르 끌레제리 슈즈와 롤랑 뮤레 드레스를 연결 지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두 가지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휘하는 여러 브랜드의 컬렉션이 고유의 특징을 잃어버리면서 너무 비슷해진 상황이 유감스럽다. 롤랑 뮤레 컬렉션은 철저히 내 자아를 투영하는 것이며, 로베르 끌레제리는 무슈 끌레제리가 쌓은 지난 역사가 중심이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로망에 자리 잡고 있는 로베르 클레제리의 공방 풍경. 이곳에서는 여전히 모든 구두가 장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VK 최근에 바나나 리퍼블릭, 모델 릴리 콜이 디자인하는 노스 서큘러(North Circular) 등의 브랜드와도 작업을 했다. 자신의 시그니처 라벨은 물론, 로베르 끌레제리까지 합치면 무려 네 개 브랜드를 한꺼번에 다룬 셈이다. 각각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나?

    RM 나는 처녀자리이기에 흔히 말하는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이다. 시간 분배를 하고 모든 것을 계획에 따라 철저히 움직이는 편이다. 정해진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은 없었다.

    VK 요즘 여성들의 구두는 어떻게 변하고 있나?

    RM 점점 구두 굽이 낮아지고 있다. 정말이지 다행이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대는 이제 지났다. 누구도 더 이상 발이 아픈 구두는 신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VK 그래서인지, 당신의 로베르 끌레제리 컬렉션에는 남자 구두를 닮은 로퍼 스타일 구두들이 자주 눈에 띈다.

    RM 로베르 끌레제리는 남자 구두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그렇기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긴장감 있게 공존한다. 우리 브랜드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VK 80년대부터 그런 스타일을 유지하지 않았나?

    RM 우리 브랜드는 지극히 80년대적인 브랜드다. 80년대는 여성들이 남녀평등과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로 뛰쳐나온 시대다. 무슈 끌레제리 역시 당시 그런 여성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 구두는 결코 중성적이지 않다. 남자 구두를 신어도 섹시함을 잃지 않는 여성이 우리가 원하는 고객이다.

    VK 당신의 80년대는 어땠나? 파리의 잘나가던 클럽 키드였다고 들었다.

    RM 정확히 당신이 지금 입은 옷차림으로 다녔다(벨벳과 보석으로 장식된 데님 셔츠에 닥터 마틴을 신은 <보그> 통신원을 가리키며)! 지금 당신의 룩에 스카프까지 머리에 두르면 완벽했다. 80년대 추억은 엄청나게 많다. 특히 80년대 중반엔 브로그 슈즈나 플랫폼 슈즈를 신고 클럽에 드나들었다. 당대 룩을 정의할 만한 사람은 모델 레슬리 위너(Leslie Winer)다. 파리 여성들 사이에 유행했던 찢어진 남성용 청바지와 셔츠 등을 가장 멋지게 소화해낸 여성이었다.

    VK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녀에게 로베르 끌레제리의 구두를 신겨보고 싶은가?

    RM 물론이다. 지금이라면 스칼렛 요한슨에게 내 구두를 신기고 싶다. 그녀는 사적인 자리든 공적인 자리든 어디서나 끌레제리 로퍼를 신는다. 더없이 쿨해 보인다. 또 요즘 런던에서 인기가 좋은 밴드 ‘런던 그래머(London Grammar)’ 멤버 세 명 모두에게 우리 구두를 신기고 싶다. 특히 보컬인 한나 레이드(Hannah Reid)가 끌레제리 구두를 신은 모습이 궁금하다.

    VK 이제 서울에도 로베르 끌레제리 매장이 마련됐다. 이번 시즌 한국 여성에게 구두 한 켤레를 추천한다면?

    RM 가을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모델 ‘Fille’를 권하고 싶다.

    VK 여자에게 구두란 어떤 의미인가?

    RM 여자들이 구두를 고를 때는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가격이 합리적인지, 디자인이 아름다운지 등의 여러 기준을 넘어선 어떤 이끌림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그렇게 고른 구두는 단순히 구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 구두를 신고 간 곳, 함께한 사람 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구두다. 지난 시간을 함께한 친구나 연인처럼. 여성들이 자신의 신발장에 놓인 구두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여자에게 구두는 그처럼 소중한 존재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현지 취재 / 정혜선(<보그> 파리 통신원)
      포토그래퍼
      Tristan Ba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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