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슈퍼 쇼 마스터’ 에티엔 루소와의 만남

2016.03.17

by VOGUE

    ‘슈퍼 쇼 마스터’ 에티엔 루소와의 만남

    디자이너의 환상은 캣워크에서 현실이 된다.
    그 꿈의 무대를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건 네 명의 ‘쇼 마스터’가 펼치는 마법 덕분이다.
    <보그>가 만난 우리 시대 ‘슈퍼 쇼 마스터’들!

    ETIENNE RUSSO

    1991년 ‘빌라 유진(Villa Eugenie)’을 설립한 이후 무려 1,000번 가까이 쇼를 기획한 에티엔 루소. 매 시즌 샤넬 쇼는 물론,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진공포장 모델부터 드리스 반 노튼의 이끼 런웨이까지 최근 발표된 인상적인 쇼들은 모두 그의 솜씨다. 내년 봄 패션쇼를 마친 후 모처럼 휴식을 즐기고 있는 루소와 대화를 나눴다.

    VOGUE KOREA(이하 VK) 이번 패션 위크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무대들은 모두 당신의 작품이다.

    ETIENNE RUSSO(이하 ER) 무척 신나는 시즌이었다. 빌라 유진에서 담당한 모든 쇼가 각각의 개성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순간들이 있다면, 톰 브라운과 준비한 퍼포먼스, 필립 플레인을 위해 만든 심해 런웨이, 아르헨티나 아티스트가 수작업으로 제작한 드리스 반 노튼의 50m짜리 카펫, 스케이트장을 점령한 겐조의 아바타, 라거펠트의 아이디어가 큰 역할을 한 샤넬의 시위대, 실루엣에 신경 쓴 비오네, 혹은 조명이 돋보였던 랑방 등등. 정말이지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VK 모두 환상적이었다! 처음 패션쇼를 기획한 순간을 기억하나?

    ER 돌이켜보면 아주 우연히 이 일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요리에 관심이 많아 ‘나무르 호텔 학교’에서 공부했고, 스무 살부터는 브뤼셀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동시에 모델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중, 80년대 초 파리의 클럽 팔라스와 비교될 만큼 끝내줬던 브뤼셀의 클럽 미라노에서 일하면서 모든 게 시작됐다. 클럽 5주년 기념 파티를 내가 기획했는데, 앤트워프 식스를 비롯해 당시 패션 스타들이 모두 모였다. 그런 뒤 1991년 드리스 반 노튼이 파리 쇼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VK 그 이후 당신이 하는 일을 세 단어로 정의할 수 있겠나?

    ER 해석하고, 창조하고, 지휘하는 것!

    VK 20년 넘게 지속되는 열정의 원천은 뭔가?

    ER 새로운 도전 덕분이다. 수년간 함께하는 디자이너의 무대라도 늘 새롭다. 그러니 즐기지 않을 수 없다.

    VK 혹시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쇼를 꼽을 수 있나?

    ER 1,000명 가까이 되는 자식 가운데 몇 명만 꼽으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꼭 골라야 하나? 그렇다면 41명의 모델이 50년대 사무실 분위기를 재연한 2009년 가을 톰 브라운, 그리고 150m짜리 테이블을 준비한 드리스 반 노튼 50번째 쇼! 특히 반 노튼 쇼는 디자이너와 나의 오랜 관계의 결실이었기에 더 의미 있었다. 그 밖에도 셀 수 없이 놀라운 것들을 경험했지만, 나는 회상이나 추억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미래를 향한다. 물론 내 생애 최고의 쇼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

    VK 스케일이 큰 쇼를 자주 선보이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

    ER 무엇보다 패션쇼 주기가 짧아지는 게 가장 힘들다.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쇼를 기획해야 하기에 도전 정신을 발휘하게 되지만, 가끔 광란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또 패션쇼는 무대에서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 그래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 어렵다. 첫 무대이자 유일한 무대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VK 혹시 당신의 작업이 아닌 다른 무대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들 수 있나?

    ER 실제로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었던 95년 티에리 뮈글러 쇼! 뮈글러는 그야말로 새 시대를 이끈 사람 중 한 명이다. 초기의 장 폴 고티에처럼. 패션 경계를 허무는 그의 놀라운 퍼포먼스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생전의 알렉산더 맥퀸, 또 라프 시몬스가 최근 보여주는 창의적인 작업 역시 인상적이다.

    VK 빌라 유진을 설립한 1991년의 패션계와 14년이 지난 지금의 패션계는 어떻게 다른가?

    ER 최근 10년간 정말 많은 게 변했다. 매 시즌 각 도시에서 쇼를 발표하는 브랜드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LVMH나 케어링 같은 초대형 패션 그룹들이 패션 비즈니스에 좀더 밀접하게 관여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또 실시간 패션쇼 중계가 가능해졌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SNS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하다. 최근 쇼 프로듀서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 모먼트’일 정도!

    VK 패션 위크가 끝난 뒤에는 뭘 하며 지내나?

    ER 쇼 프로듀서에게 패션 위크는 절대 끝나지 않는 일이다. 이미 디자이너들과 새 아이디어를 모색 중이다. 봄 컬렉션을 준비하며 가을 쇼장에 대해 고민할 때도 있다. 물론 다른 작업도 있다. 디올 옴므, 휴고 보스, 랑방 등의 아시아 패션쇼를 기획하거나, 멕시코의 박물관 개장을 함께하거나, 뉴욕에서 아트 쇼를 열기도 한다. 패션뿐 아니라 보석, 향수, 와인, 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한다. 흥미롭고 영감을 주는 일이라면 뭐든 도전! 현재 참여하는 프로젝트만 해도 무려 35가지. 물론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하하!

    VK 이미 많은 것을 이뤄냈지만 쇼 프로듀서로서 다음 목표는 뭔가?

    ER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내가 만든 무대가 관객의 감정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면!

    VK 그렇다면 당신의 꿈의 무대는?

    ER 패션계는 상상력의 한계를 모른다. 아직 그 끝이 어딘지, 또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부터, 연극 무대, 호텔 디자인, 영화 제작 등 내 꿈을 펼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 모든 것을 이용한다면 환상적인 패션쇼가 완성되지 않을까? 좀더 멀리 본다면, 언젠가 올림픽 개막식도 기획하고 싶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사진
      Courtesy Photo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