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디자이너의 취향을 담은 매장

2016.03.17

by VOGUE

    디자이너의 취향을 담은 매장

    여우 모피로 만든 해먹? 캘리포니아 햇살이 쏟아지는 수영장?
    단순히 옷과 가방, 구두를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온전히 담은 공간을 완성했다.

    “어서 오세요. 옷부터 보실래요? 아님 시원하게 자유형 한판 하실래요?” 이건 분명 평범한 패션 매장의 환영 인사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5월 중순 LA 멜로즈 거리에 자리 잡은 ‘더 로우’ 매장에 가면 수영을 권유하는 인사를 받을지도 모를 일. 전 세계에서 첫 번째로 문을 연 더 로우의 플래그십 스토어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모던한 풀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 존 프리다의 미용실이었던 이 공간은 올슨 자매가 어릴 때부터 제집 드나들듯 찾아오던 곳.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준비하던 자매는 마침 새로운 주인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재빨리 이곳을 선택했다.

    “저희는 이곳을 집처럼 꾸미고 싶었습니다. 옷과 액세서리는 공간의 일부일 뿐이죠.” 매장 오픈에 맞춰 <WWD>와 인터뷰한 애슐리 올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기에 매장의 왼쪽은 다이닝룸처럼 꾸며졌고, 오른쪽은 거실, 중앙 공간은 서재로 불리게 됐다. 가구와 인테리어 역시 이 컨셉에 맞추어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수영장은? “더 로우의 컨셉을 완성하기 위한 완벽한 액세서리인 셈이죠. LA 집에 수영장이 빠질 수는 없잖아요.” 실제로 더 로우의 풀에서 수영을 즐기고자 하는 고객들을 위해 반듯하게 말아 정리된 커다란 타월이 가죽 바구니에 담겨 있다.

    더 로우의 수영장처럼 꼭 필요하진 않지만 디자이너들의 감각과 취향을 뽐낼 수 있는 플러스알파 장식들은 요즘 잘나가는 브랜드에겐 꼭 필요하다. 루이 비통과 샤넬, 디올 등의 메가 브랜드들이 매장 속에 레스토랑과 콘서트홀, 갤러리까지 마련하는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비전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뉴욕 소호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던 알렉산더 왕이 바로 그 시초였다. 친구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라이언 코반(Ryan Korban)이 디자인한 매장 중앙에는 거대한 창살 장식이 있었고, 그 앞엔 여우 모피로 만든 해먹이 걸려 있었다. “저희 쇼룸에는 염소 털로 장식한 모피 가구들이 많았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모피 해먹으로 표현한 거죠.” 매장을 오픈할 당시 왕은 고객들이 자신의 공간을 떠올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이상할 정도로 럭셔리하죠. 그 점이 좋았어요.” 유리벽, 칼라와 백합, 아프리카산 흑난 등 매장을 장식한 아이디어 중에서도 모피 해먹은 알렉산더 왕이란 브랜드의 정체성을 단번에 표현하고 있었다. “크레이지, 섹시, 쿨!”

    대담함보다는 보다 은근한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드러낸 디자이너들도 있다. 이자벨 마랑이 좋은 예. 파리, LA, 뉴욕, 그리고 서울에 있는 이자벨 마랑 매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선인장 정원(“마랑 걸의 캘리포니아 스타일을 대변합니다!”)과 아티스트인 아놀드 고론의 작품들, 그리고 최근의 컬러풀한 모빌. 특히 프랑스 조각가인 고론은 세라믹 소재의 거대한 새를 제작하거나 알루미늄 접시로 쇼윈도를 장식했다. “패션과 예술에 어렵게 접근하긴 싫었습니다. 대신 좀더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죠.” 고론의 설명이다.

    아티스트의 힘을 빌린 디자이너는 또 있다. 최근 LA 다운타운에 세계 최대 매장을 선보인 아크네 스튜디오의 조니 요한슨. 그는 벨기에 아티스트인 카스텐 횔러(Carsten Höller)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그 결과 알루미늄을 사용한 차갑고 모던한 매장엔 새빨간 버섯 조각품이 자리 잡았다. “단순히 옷을 사는 곳이 아니라, 아크네 스튜디오의 미학을 담고 싶었습니다.” 요한슨은 이렇게 설명했다. 뉴욕의 뉴 뮤지엄과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만날 수 있던 아티스트의 작품을 쇼핑하면서 만난다는 건 분명 큰 즐거움. 오프닝 파티를 위해 요한슨은 이 버섯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슈퍼 마리오> 테마의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들에 대한 한없는 동경을 놓고 보자면, 셀린의 피비 파일로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디자이너. 갤러리스트 남편이 맡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들로 런던 사무실을 도배한 그녀는 최근 오픈한 런던 셀린 매장을 위해서도 특별한 작품을 준비했다. 덴마크 아티스트인 FOS(실명은 토마스 폴슨, Thomas Poulsen)에게 주철 소재 문 손잡이, 데이 베드, 중앙 테이블과 놋쇠 소재 조명을 의뢰한 것. “셀린과 피비와 함께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말수 없는 디자이너를 대신해 아티스트가 소감을 대신 전했다. “디자인은 제게 있어 언제나 중요한 카테고리였고, 패션만큼 중요한 디자인은 또 없으니까요.” 바닥을 장식한 6,000여 개 대리석 타일만큼이나 특별한 조명과 가구들은 셀린의 트라페즈 핸드백만큼이나 매장에서 눈길을 끌었다.

    해볼 만한 건 다 해봤을 법한 디자이너들이 이제 새로운 매장 장식법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말 뉴욕에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오픈한 꼼데가르쏭의 레이 카와쿠보는 전 세계 아티스트들에게 공간 장식을 부탁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기둥은 런던의 건축 회사 ‘런던 필드워크(London Fieldworks)’의 몫, 계단은 건축가인 ‘아라카와 앤 진스(Arakawa and Gins)’ 담당이었다. 여기에 사운드 아티스트인 칼스 비브(Calx Vive)가 카와쿠보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음악을 만들었고, 니트 아티스트인 마그다사예그(Magda Sayeg)는 여덟 명의 장인들과 함께 매장 내 기둥을 감쌀 니트 작품을 제작했다. 결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 카오스! 그것이야말로 레이 카와쿠보가 원하던 바였다. “아름다운 카오스입니다.” 카와쿠보의 남편이자 대변인인 아드리안 조프가 이렇게 전했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쏟아낸 카오스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야말로, 사람들을 패션으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죠!”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포토그래퍼
      GRANT CORNETT
      기타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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