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영화 <화이>의 김윤석과 여진구 2

2016.03.17

by VOGUE

    영화 <화이>의 김윤석과 여진구 2

    소년 여진구는 좀더 자랐고, 중년 김윤석은 여전히 스크린을 압도하는 기운을 풍긴다. 그들이 아들과 아버지로 대립한다.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는 스릴러 영화, <화이>는 악의 끝까지 치닫는 비극이다.

    가죽 블루종은 아이러니 포르노(Irony Porno).

    “저는 마초가 아닙니다. 대화해 보면 꽤 재밌는 사람이고요. 실제 모습은 <완득이>나 <즐거운 인생>의 역할과 좀더 비슷해요.” 게다가 그는 충무로에 남자들의 스릴러 붐을 일으킨 <추격자>나 <황해>의 하정우, <완득이>의 유아인, <전우치>의 강동원 등 유독 젊은 남자 배우들과 자주 작품을 했다. 40대에 본격적으로 자기 인장을 새긴 ‘성인 남자’의 카리스마와 안정감은 지금 그를 영화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몇 명 중 하나로 이끌었다. 영화사 직원은 김윤석이 출연한 작품들의 총 스코어를 더하면 5,300만 명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래도 최근 <도둑들>에서 전지현, 김혜수와 함께했죠. 그 동안의 세월을 다 보상받았다고 생각합니다.(웃음)”

    <황해>의 조선족, ‘면가’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에서 악인을 기록하자면 한 줄을 장식할 캐릭터다. 1,000만원이면 사람의 목숨을 거둘수 있었던 그는 소리내지 않고도 으르렁거리는 듯한 야생의 상태 그대로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몸이 아플 정도로 인물들의 지독한 현실이 관객에게 전이된 작품. 그러나 김윤석은 ‘면가’나 <타짜>의 ‘아귀’를 표현할 때도 연기에 쉽게 힘을 주지 않는다. 최근 <개그 콘서트>를 살린 코너 ‘황해’의 개그맨은 눈을 부라리는 법 없이 흐르는 말투로 김윤석의 특징을 흉내 내기도 했다(그 코너를 한 번 봤다는 김윤석은 ‘조선족들이 보면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시무시하게 보이려고 연기하는 배우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구미호를 연기해야 한다면 몰라도요. ‘면가’는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자체가 일반인과 너무 다른 사람이라 그 자체로 무시무시했어요.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주는, 확고한 비즈니스 맨이죠. <화이>도 어떤 극단으로 치닫지만, 제가 연기한 리더는 자기가 이끄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가는 인물이에요. <화이>의 아버지들은 정체성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자기 살을 도려내는 슬픈 인물들입니다. 그런 점에선 ‘면가’ 식의 악인과 정반대라고도 볼 수 있어요.” 스턴트 배우를 제외한 40대 배우 중에서 가장 와이어를 많이 탔을(<도둑들>과 <전우치>에서 신나게 탔다) 김윤석은 덧붙였다. “예산이 큰 블록버스터급의 영화에만 혹하지 않습니다. <완득이>가 작은 이야기 같지만, 그 작은 것 속에도 다 우주가 있죠.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영화를 해볼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이에요. 앞으로도 그렇게 가길 원하고요.”

    가죽 재킷은 자라 맨(Zara Man), 흰색 셔츠는 길 옴므(Gil Homme).

    여진구 역시 제법 자신의 작품 수를 세볼 만한 경력이다. 그는 ‘가끔 나도 연기를 꽤 오랫동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 자기도 민망한지 대화 중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 애기 때 나온 작품을 다시 보고 있으면… 저 그때보다 얼굴이 너무 늙은 것 같아요.” 또래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드라마를 찍느라 그게 뭔지도 모르고 흘려 보냈던 여진구는 김윤석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슬럼프’를 언급했다. 변성기 때문이었다. “사극을 찍을 때였는데, 마침 할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게 돼서 막 소리 지르는 장면이 있었어요. 근데 목소리가 맘대로 안 나오는 거예요. 촬영도 중단됐고, 힘들었죠. 누군가 변성기 때 말 많이 하고 소리를 지르면 목소리가 안 좋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한동안 사는 데 꼭 필요한 말만 했어요. ‘다녀왔습니다’ ‘다녀올게요’ ‘배고파’ 이런 말들이요.(웃음)”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놀랍다는 말도 했다. “말수가 없다 보니 제 목소리가 정확히 어떤지도 몰랐어요.음, 그저 낮기만 한 목소리 아닌가요?” 김윤석과 여진구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울림’과 ‘진동’의 주고받음 같다. 김윤석은 <보그> 촬영 다음날, 첫 번째 팬 미팅을 위해 일본으로 간다던 여진구에게 말했다. “잘 놀지도 못했을 텐데 방학 다 끝나가서 어쩌니. 일본 맛집들에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와라.” 김윤석에 따르면 어떤 이는 ‘참 멋진 목소리’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지옥에서 온 듯 한 목소리’라고 한다는 그의 음성이 친절하게 말했다.

    김윤석이 입은 십자가 패턴 재킷과 흰색 베스트는 길 옴므(Gil Homme), 데님 셔츠는 브리오니(Brioni), 여진구가 입은 재킷, 흰 칼라가 달린 검정 톱은 장광효(Chang Kwang Hyo Caruso).

    여진구는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감자별 2013 QR3>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추석이 지나면 김윤석은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는 대작 <해무> 촬영에 들어간다. 김윤석이 말했다. “배우로서 안정감은 없어요. 늘 부족하고 허기짐이 있죠. 나이가 웬만큼 들고, 주연작을 몇 편 하고, 흥행작을 어느 정도 내놨으면 뭔가 안정되겠지, 하는 건 착각이에요. 작품에 임할 땐 언제나 다시 ‘0’으로 내려가야 하는 게 배우입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때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순간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거다. 그럼 그땐 뭘 해야 하나? “<꽃보다 할배> 같은 방송에 나갈까요?(웃음) 그거 보니까 부럽고 멋지던데요. 나이 들어서 가장 행복한 건 돈이 많은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라고 해요. 일을 하면,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살 수 있다는 거죠.” 순간 그가 말한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때’와 그가 <화이>를 한 단어로 정리한 ‘생자필멸’의 의미가 맞물렸다. 그건 회의주의와는 다른, 인생의 근원적인 법칙에 대한 얘기다. 어쨌든 현실의 김윤석과 어린 여진구에겐 머나먼 얘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는 남성미 넘치는 이 배우들이 만들어낸 스크린 속의 비극을 즐기기만 해도 충분하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권은경
      포토그래퍼
      Hyea W.Kang
      스탭
      스타일리스트 / 김하늘, 헤어/ 김환, 메이크업 / 현윤수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