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런던에서 새로이 날개를 펴는 마놀로 블라닉

2023.02.20

by VOGUE

    런던에서 새로이 날개를 펴는 마놀로 블라닉

    런던 벌링턴 아케이드에 새로 오픈한 부티크에서 만난 마놀로 블라닉과 수지 멘키스.

    런던 벌링턴 아케이드에 새로 오픈한 부티크에서 만난 마놀로 블라닉과 수지 멘키스.

    바로 지금, 런던에서 가장 우아한 아케이드에 자리한 어느 부티크에서는 쇼윈도를 가린 블라인드 가운데에 살짝 엿볼 수 있는 구멍이 나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리석 바닥을 가로질러가 그 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메탈 진열대 위로 균형을 잡고 있는 맵시 있는 하이힐이 누가 뭐래도 마놀로 블라닉임을 알 수 있다.

    마놀로 블라닉의 새 부티크를 훔쳐볼 수 있는 매혹적인 작은 창.

    마놀로 블라닉의 새 부티크를 훔쳐볼 수 있는 매혹적인 작은 창.

    이름만으로도 그 명성을 가늠할 수 있는 이 디자이너는 이번 주 런던에서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나라에서 처음으로 첼시 부티크를 연지 43년 만이었다.

    앙증맞은 3개 층은 구두뿐 아니라 오토만 의자까지 비비드한 컬러로 빛난다. 핑크색과 보라색, 그리고 피스타치오 그린색의 스웨이드 브로그 슈즈에는 아케이드 끝자락 피카딜리 서커스에 진열되어 있는 라뒤레 마카롱이 투영되어 있다.

    새 부티크의 인테리어는 벌링턴 아케이드에서 판매중인 라뒤레 마카롱의 색감을 반영해 생기 넘치는 컬러로 구성됐다.

    새 부티크의 인테리어는 벌링턴 아케이드에서 판매중인 라뒤레 마카롱의 색감을 반영해 생기 넘치는 컬러로 구성됐다.

    폴카도트 플랫슈즈는 마놀로 블라닉이 카나리아 제도의 고향을 떠나 휘둥그레진 눈으로 마주한 60년대 ‘스윙잉 런던’의 메리 퀀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는 소년시절 가족의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통해 경험했던 아프리카 정신이 반영된 소용돌이 패턴의 하이힐과 오픈 토 슈즈가 등장한다.

    이곳엔 심지어 핑크빛 장미로 꾸며진 오픈 토 부티도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극도로 아름다운 스타일을 상징하는 씨씨 황후를 흠모하는 마놀로의 어머니를 위해서다.

    로즈 부티는 마놀로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후인 엘리자베트 “씨씨”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로즈 부티는 마놀로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후인 엘리자베트 “씨씨”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마놀로는 피카딜리로 이어지는 우아한 작은 거리의 곡선을 이루는 건축물과 열린 창문을 향해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곳은 바로 변덕스러운 신사들의 소품 매장, 보석상, 그리고 펜할리곤스 같은 향수 매장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최근에 새 단장을 마치면서 샤넬과 향수전문가 프레데릭 말이 좀더 우아했던 이전 시대의 느낌이 녹아 있는 40개 매장 다음으로 이름을 더했다.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전문 부티크들로 채워진 벌링턴 아케이드에서 만난 마놀로.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전문 부티크들로 채워진 벌링턴 아케이드에서 만난 마놀로.

    마놀로 블라닉은 70년대 초에 문을 연 친근한 첼시 매장으로부터 범위를 넓혀 센트럴 런던지역에 알맞은 장소를 찾기 위해 몇 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마놀로는 1971년 당시 구두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한 첫 디자이너인 오시 클락(Ossie Clark)에 대해 이야기했다.

    새로운 마놀로 블라닉 컬렉션.

    새로운 마놀로 블라닉 컬렉션.

    로마식 목욕탕과 로열 크레센트가 있는 우아한 마을인 바스에 자리한 마놀로 블라닉의 집에 보유한 걸로 알려진 수많은 구두는 또 어떠한가?

    마놀로는 또 현재 준비중인 종합적인 전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줬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이 전시는 베니스, 체코 출신 아버지의 고향인 프라하, 상페테르부르크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리고 영화 <마놀로: 도마뱀에게 신발을 만들어주던 소년>이 있다. 30년 간 구두의 왕으로 알려진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디터인 마이클 로버츠가 감독했으며 네비전 스튜디오스 원(Nevision Studios One Limited)의 닐 자이거(Neil Zeiger)가 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섹스 앤 더 시티>를 통해 아이코닉한 지위를 획득한 마놀로는 바로 지금은 오토만 카우치가 놓인 각도와 핑크색 꽃꽂이의 신선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나는 한 잔의 커피와 마카롱 하나를 곁들여 벨벳 스툴에 앉아서는 마놀로 블라닉과 극도로 세련되고 넘치도록 로맨틱한 대화를 나누는 기쁨을 누렸다.

    Suzy: 마놀로, 이 매장 안에서 여성과 남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컬러가 쓰였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컬러란 언제나 당신이 함께해왔고 갈망해왔던 대상인가요?

    이번 시즌 마놀로 블라닉의 남성화 역시 보석 같은 색감이다.

    이번 시즌 마놀로 블라닉의 남성화 역시 보석 같은 색감이다.

    Manolo: 네, 정말 그래요. 언제나 내 작업에 포함되었던 건 컬러였던 거 같아요. 저는 컬러풀한 나라에서 왔거든요. 제 피의 절반은 스페인계이기 때문에 이런 색감에 언제나 집착하게 됩니다. 제 인생에서 컬러는 중요한 것이에요.

    Suzy: 왜 이 매장을 열기로 했나요?

    Manolo: 우리는 5년 이상 이곳에 매장을 내려고 찾아 다녔어요. 이 매장은 우리가 마지막에 본 매물 중 하나였고 우리 마음에 들었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2년 전에(조지 젠슨과 피케트가 있던 자리였어요) 우리는 모든 걸 들어내고 건축가를 불러왔죠. 결국 “그래, 여기를 계약하자.”라고 얘기하게 되었어요. 저에게 이 매장은 런던과도 같거든요. 여긴 저의 런던입니다. 깨끗하면서 제 생각처럼 단정하고 지나치게 이국적이지 않고 영국스러워요.

    Suzy: 마이클 로버츠가 당신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고 들었어요. 영화를 좋아하시죠?

    Manolo: 영화를 정말로 사랑하죠. 오래된 영화들을요. 저는 1970년대 어디쯤 멈춰 있답니다.

    Suzy: 안나 마냐니(Anna Magnani)와 그런 이태리 영화배우들에게 열광하지 않았었나요?

    1960년대 ‘스윙잉 런던’에서 영감을 얻은 정갈한 그래픽.

    1960년대 ‘스윙잉 런던’에서 영감을 얻은 정갈한 그래픽.

    Manolo: 아이고, 안나는 그 중 하나죠. 저는 수많은 것들을 사랑한답니다. 이제야 저는 프랑스 영화부터 이탈리아 영화에 이르기까지 무성 영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성들을 발견하고 있어요. 아, 이태리 여성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Suzy: 상을 받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간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스페인은 당신의 고향이고요.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영국인이 되었다고 느끼나요?

    Manolo: 아뇨, 그렇게는 이야기 못할 거에요. 왜냐하면 저는 완전히 제가 지어낸 영어를 쓰거든요. 제 발음은 정말…뭐라 말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 영국적인 개성을 끔찍이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뒤틀리기도 하고 제가 기대했던 거랑은 다르게 진화하고 있어요. 그러나 상관없어요. 저는 과거 속에 살고 제가 좋아하는 영국 속에서 삽니다. 저는 그 속에 숨어있어요.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죠.

    Suzy: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설 때 어떤 느낌을 받길 바라나요?

    메리 퀀트가 영감을 준 플랫 슈즈와 클러치.

    메리 퀀트가 영감을 준 플랫 슈즈와 클러치.

    Manolo: 뭔가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죠. 우리 매장의 존재 이유이니까요! 그러나 이에 더해 치유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매장 직원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유럽에 존재하지 않는 치유, 정말 미친 듯이 사라져버린 그 힐링 말이에요. 사람들은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어요. 구두를 고르면 우리는 조언을 해주고 나중엔 고쳐도 줄 거에요.

    Suzy: 이 브로그 슈즈는 남성용인가요 여성용인가요? 저는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당신이 늘 남성용 구두를 만들어 왔는지도 몰랐답니다.

    Manolo: 그 구두는 남성, 여성 모두 신을 수 있어요. 저는 ‘유니섹스’라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성용 구두를 만들기 시작한 건 오시를 만나기 전이네요. 제가 해석한 스타일의 새들 슈즈였고 여전히 그 구두를 만들고 있죠. 한달 내로 우리는 다시, 너무 이르다 싶은 순간에 새들 슈즈를 내놓을 거고 적당한 리넨 슈즈 같은 것들도 포함할 거에요. 오시의 로열 코트 시어터 컬렉션(Royal Court Theatre collection)은 세상에나 1971년인가에 나왔었네요.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그때가 자유라는 관점에서 저에겐 런던의 최 전성기였어요. 그 어떤 것도 기업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모든 게 자연스러웠죠. 저는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오지 같은 사람들도 그랬어요. 오시는 돈에 신경 쓰지 않았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 모든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거에요. 그러나 훌륭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빌 깁(Bill Gibb), 잔드라 로즈(Zandra Rhodes) 같은 모든 창조자들 말이에요.

    마놀로가 이번 시즌 남성화 가운데 좀더 클래식한 디자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놀로가 이번 시즌 남성화 가운데 좀더 클래식한 디자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Suzy: 자유로웠어요. 그리고 당신은 한번도 기업적인 후원을 받은 적이 없어요.

    Manolo: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해보고 싶나요?”라고 여러 번 묻고 나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라고 답합니다. 만약 제가 뭔가 잘못을 한다면, 글쎄요, 뭔가 재앙을 초래한다면 그건 그저 제 문제일 뿐이에요. 포기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제가 번 돈을 모두 이 사무실과 매장에 쏟아 붓습니다.

    Suzy: 당신은 바스에 이 환상적인 구두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몇 켤레나 가지고 있나요?

    Manolo: 아 세상에, 아마 약…우리에겐 이제 이 일을 담당하는 훌륭한 여성분이 있어요. 정말 훌륭한 분이죠. 캐나다에서 온 크리스예요. 그녀 말로는 이만 칠천, 이만 팔천,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 2만 8천 켤레 중 하나.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 2만 8천 켤레 중 하나.

    Suzy: 이만 팔천이라고요! 그 구두들을 전시하고 싶지는 않나요?

    Manolo: 우리는 1월부터 베니스에서 전시회를 열어요. 제가 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을 골랐다고 하더군요. 런던이나 뉴욕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알게 뭐랍니까! 우리는 체코 정부로부터 프라하에 초청도 받았어요. 정말 이상적이죠. 프라하는 제 아버지의 고향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춤 추고 노래하던 곳이죠.

    Suzy: 새로운 매장을 여는 당신의 모습이나 앞으로 열릴 전시회에 대해 생각했을 때, 구두와 관련한 당신의 이야기 중 어떤 부분이 돋보이면 좋을까요? 사람들이 당신의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면 하나요?

    Manolo: 전혀 준비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는 점이요. 모든 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모든 건 내 방식대로 이뤄집니다. 가끔 잘하는 일도 있고 가끔 못하는 일도 있지만 다 제 문제예요. 이 구두는 메리 퀀트로부터 영감을 얻었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에요. 도트, 폴카도트… 모든 신발은 저에게 숭고한 무엇인가에 기반하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저에게 말이에요. 저는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는 생각하죠. “세상에나!” 심지어 저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그 광기와 흩뿌려진 컬러를 사랑합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본질적으로는 영국인이지만 스페인에서는 마치 신처럼 사랑 받는다는 걸 아세요? 이렇게 말하니 허세처럼 들리네요. 그리고 저는 헨리 무어의 구멍과 모양을 가지고 또 다른 구두를 만들었죠. 저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어요. 영국, 영국의 환상적인 동화들, 세실 비튼(Cecil Beaton)… 그 모든 것들이 매우 아름답고도 거의 폭력적일 정도로 영감을 줍니다.

    Suzy: 작업할 때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던 걸 기억해요. 아프리카 음악을 들었고 가족의 플랜테이션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응시했다고 했죠.

    언제나 아프리카를 흠모하는 마놀로 블라닉은 컬렉션의 색감이나 디테일에 자신을 키운 아프리카를 투영하곤 한다.

    언제나 아프리카를 흠모하는 마놀로 블라닉은 컬렉션의 색감이나 디테일에 자신을 키운 아프리카를 투영하곤 한다.

    Manolo: 완전히요. 저는 여전히 아프리카로부터 꽤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렇게 태어났다면 거의 타고난 거에요. 저는 아프리카에 관한 모든 걸 사랑하고 아프리카에서 진흙으로 집을 짓고 사는 삶과 아름다운 것들을 꿈꿉니다. 저는 아프리카를 사랑해요. 아프리카에는 장엄한 무언가가 있죠.

    Suzy: 지금 제가 보고있는 구두 컬렉션은 아마 런던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게 맞나요?

    Manolo : 저에겐 완전히 뒤틀린 또 다른 자아가 있어요. 바로 비엔나죠. 저에게 비엔나는 제국과 궁전과 그러한 모든 것들을 의미해요. 저는 작가 스테판 쯔바이크에 완전히 미쳐있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저희 어머니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책을 천 번도 더 읽으셨죠.

    Suzy: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당신 작업에 반영되죠? 저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수많은 학생들의 작업들을 보아왔고 학생들은 “아, 비엔나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라던지 아프리카 이야기를 할 테지만 특별한 깊이가 없을 게 확실 하거든요. 그러나 당신이라면, 제가 이해하기론, 당신 안에 뭔가가 있어요. 당신의 마음 속과 피 안에 있죠. 당신은 책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아요.

    마놀로는 자신의 작업에 언제나 예술사적 자료를 포함한다.

    마놀로는 자신의 작업에 언제나 예술사적 자료를 포함한다.

    Manolo: 물론이요! 그리고 ‘무드 보드’라 불리는 것, 아 전 그걸 싫어해요! 사실, 무드 보드는 저를 헷갈리게 만들어요. 저는 정말 그렇게 일하는 걸 싫어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존 갈리아노처럼 일하는 대가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Suzy: 그래요, 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구두를 만들 듯 옷을 만들어요. 어떤 사람들은 꿈과 생각을 만들어내지만 몸이나 발에 걸칠 수는 없죠.

    Manolo: 아, 그렇죠. 저는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배웠어요. 기술적인 뒷받침이 없다면 이룰 수 없을 거란 점을 말이죠. 이를 터득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일종의 균형이죠.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해요.

    마놀로 블라닉 스토어의 현대적 디스플레이.

    마놀로 블라닉 스토어의 현대적 디스플레이.

      수지 멘키스
      사진
      COURTESY OF MANOLO BLAHNIK, SUZY MEN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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