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서울에서 만난 미로슬라바 두마

2016.05.02

by VOGUE

    서울에서 만난 미로슬라바 두마

    스트리트 스타일 스타, 러시안 패션 마피아, 뷰로 24/7의 설립자. 미로슬라바 두마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면 그녀가 서울에 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트리트 스타일 스타, 러시안 패션 마피아, 뷰로 24/7의 설립자. 미로슬라바 두마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면 그녀가 서울에 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미로슬라바 두마(Miroslava Duma)에 대해 스트리트 사진가가 찍은 사진 속 인물로 익숙하다면, 값비싼 신상 옷과 가방으로 치장하길 즐기는 전직 패션 에디터나 패셔니스타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과거에는 그 이미지가 사실에 가까웠을지 모르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의 디지털 플랫폼을 관리하고, 디지털 벤처에 투자하고,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관련 콘퍼런스에서 연설할 뿐 아니라, 자선 단체까지 운영하느라 24시간도 모자란다. 게다가 집에는 오매불망 그녀를 기다리는 40개월 된 아들 조지까지.

    세상에서 제일 바쁜 듯한 그녀는 이번 주만 해도 벌써 베를린과 도쿄를 거쳐 서울까지 모두 3개국을 이동한 상태다. “안녕하세요, 미라예요.” 애칭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동그란 안경에 보이프렌드 핏 청바지와 회색 니트 톱, 흰색 스탠 스미스 차림. 스트리트 사진으로 익숙한 모습(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차려입은)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에 도착한 지 채 24시간도 안 된 그녀에게 서울에 대해 묻는 게 조금 미안해졌다. “어젯밤에 도착했고 오늘 낮에 몇 군데 방문했어요. 자동차 유리창 너머로본 풍경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쿨해 보이고 끊임없이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인상을 받았어요.” 조금 피곤해 보이는 그녀는 입안에서 초콜릿을 녹이며 온라인 매체로 시작해 지금은 하나의 기업이 된 ‘뷰로 24/7’에서 하는 일들을 술술 풀어냈다. 재작년부터는 뷰로 24/7이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에서 신예 디자이너를 선정하고 후원하는 ‘패션 포워드 이니셔티브’도 진행하고 있다. “패션 위크 때 파리에서 행사를 주최합니다. 지난해에는 나탈리아 알라버딘의 브랜드 ‘어웨이크’가 뽑혔죠.” 신중하게 대답하는 사이에도 아이폰 메시지를 확인하는 CEO 버전의 모습은 기대했던 멋쟁이-패셔니스타-셀럽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지만, 결코 그녀의 사적인 패션사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를 순 없다. “할머니가 아주 옛날에 디자이너였고 어머니에게 옷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대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진 모두 비슷비슷한 옷을 입어야 했기에 어머니가 직접 만든 옷은 늘 눈에 띄었죠.” 그렇지만 어머니도 그녀에게 어떤 옷을 입으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어릴 땐 남자가 되고 싶어서 늘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말괄량이처럼 ‘쌈박질’만 하고 다녔답니다!” 그녀는 왜 남자가 되고 싶었는지, 남자와 여자의 삶이 얼마나 불평등한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는다. 일곱 살이 되자 그녀는 더는 사내아이처럼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갑자기 숙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기르고. 패션이 시대에 따라 변하듯, 제 스타일에도 변화의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3~4년 전만 해도 화려한 프린트와 밝은 색상, 믹스매치를 즐겼는데, 요즘엔 미니멀하고 절제된, 편안한 스타일로 입었을 때 좀더 나답다고 느끼는 중이죠.”

    한때 미라는 비카 가진스카야, 율리아나 세르젠코, 엘레나 페르미노바 등과 함께 ‘러시안 패션 마피아’로 불리며 스트리트 패션을 휩쓸었다. 러시아 여자들에게 ‘잘 차려입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게 바로 러시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죠. 오랫동안 럭셔리와 뷰티, 패션에 허기져 있었기 때문에 90년대부터 꾸미는 데 열중했습니다. 때론 정도가 심해서 로고 마니아처럼 과도한 수준에 이르기도 했지만요.” 러시아 여자들의 스타일에 대한 그녀의 설명은 꽤 명쾌하다. “프랑스 여자들에게 시크하다는 건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맨 얼굴, 전날 밤에 감고 빗지 않아 헝클어진 머리, 물 빠진 데님, 낡은 바이커 재킷을 의미하죠. 러시아 여자들에겐 하이힐이 꼭 있어야 해요. 드레스와 완벽한 메이크업까지.”

    미라는 자신의 패션 페티시를 코트라고 고백했지만(“러시아는 1년 중 여덟 달이 추워요. 그건 옷장에서 코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는 뜻이죠.”) 그보다 미니 백을 유행시킨 공이 가장 크다. 그녀는 가방 브랜드 ‘더본론’ 론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고 인터뷰하는 동안 그녀 옆에는 최상급 포르수스 악어가죽으로 만든 검은색 큐브 백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사진 속 책장을 채운 가방도 모두 더본론 컬렉션). “가방을 선택하는 취향이오? 형태, 제작 방식, 소재에 따라 달라요. 색깔과 디테일, 마감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하죠. 완성된 퍼즐처럼.” 그녀는 자신의 큐브 백을 요리조리 돌려 보며 선물 상자 같은 형태와 우아하게 바닥에 숨은 금속 로고 장식, 가늘고 긴 스트랩까지 모든 게 완벽한 조합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비싼 대가를 치르고 물건을 사는 건 순전히 감정 때문입니다. 그 대상을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요. 아름다운 것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리고 따로 완벽한 대상을 만나면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두세 개를 산다고 덧붙였다.

    사실이다. 그녀는 모스코바로 돌아갔다가 뎀나 바잘리아와 함께 트빌리시 패션 위크에 참석하기 위해 곧장 조지아로 떠나야 해서 쇼핑할 시간이 없다. “러시아 패션 신은 활기를 띠고 있어요. 올가 빌셴코(Olga Vilshenko), 알렉산더 테레코프(Alexander Terekhov) 등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가 속속 등장하고 있죠.” 미로슬라바 두마는 사진 속 작은 체구의 예쁘장한 잇 걸이 아닌, 현실을 사는 잇 우먼이다.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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