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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없는 청춘

2016.03.17

by VOGUE

    야심없는 청춘

    도달불능점을 향해 전진하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남극일기>의 유지태처럼,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작품이 청춘의 절정에 선 천정명에게 어떤 방식으로 ‘성장의 혼돈과 미로’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셔츠는 버버리 프로섬 (Burberry Prorsum).

    스네이크 재킷은 송혜명(Dominic’s Way), 데님 팬츠는 디젤(Diesel),슈즈는 컨버스(Converse at Dress To Kill).

    지난 한 세기 동안 수많은 청춘들이 은막의 스타를 향한 꿈과 열망을 안고 영화계로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지만 요즘은 스타가 아닌 것 같은 스타가 환영받는 시대인 듯하다. 지금 여자들의 벽을 도배하는 젊은 배우들은 앞선 배우들과 앞선 선배들이 보여준 조립식 스타 만들기를 경멸한다. 그들은 어딘가 비뚤어진 어두운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절대세상에시비를걸지않는다. 천정명이그렇다.“ 제겐 천진난만한 모습, 남자다운 모습이 함께 있어요. 오타쿠 기질도, 사이코 기질도 있죠. 전 혈액형이 AB형이거든요.”

    천정명은 지난 시대 청춘 스타들이 갖고 있는 미래가 없는 불안한 동력, 여자를 향한 유혹, 타락, 파괴 등 나쁜 남자들이 갖고 있는 마초적 근성이 없다. 오히려 그는 건실하며,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아이 같은 본성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보호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그가 탄 오토바이는 터널 안을 위험하게 질주하는 대신, 연상의 여자를 안전하게 직장까지 바래다주는 데 쓰일 뿐이다( 〈여우야 뭐하니?〉). “전, 그게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져 있어요. 제가 어릴 때 사당동 산동네에 살았는데, 그곳이 좀 거칠었죠. 그래서 큰누나, 작은누나가 등하교길에 뜨내기 아이들에게 많이 당했어요. 전 남자다 보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누나들을 지키고 싶었어요. 하루는 누나가 다른 누나들에게 둘러싸여 꿀밤을 맞고 있는 거예요. 그순간 저는 정신 없이 달려가서 다 밟아버렸어요. 전부 다.”성인이 될 때까지 그는 누나들에게 그런 식의 보호자인 동시에, 애교를 잃지 않는 남동생이었다.“ 그래서 전 저를 바라보는 누나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아요. 여자 친구도 연상이 좋아요. 예전에 연하나 동갑내기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 연하는 바람도 피우고 컨트롤이 힘들더라구요. 동갑은 누나 행세하는 게 싫었구요. 진심으로 마음을 나눈 친구는 저보다 두 살이 많았어요. 전 저를 배려해주고 챙겨주는 누나들이 좋아요.”

    우리는 그와 비슷한 연배의 청춘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조인성?“ 절제된 삶을 살아요. 무뚝뚝하면서도 사람관리를 잘하죠.”강동원?“ 말이 없어요. 한번은 공유, 여욱환과 함께 카페에서 만났는데, 그는 몬스터를 저는 듀카티를 타고 왔지요. 제가 “타봐도 돼?”라고 했더니“타!”그러더라구요. 조용하고 따뜻한 친구예요.” 이준기? 물론 그를 청춘 스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강동원은〈늑대의 유혹〉에서 빛나는 청춘의 절정을, 조인성은〈비열한 거리〉에서 한 청년이 비정한 사회에서 어떻게 소모되는가를, 천정명은〈태풍태양〉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맑은 영혼을 보여주었다면, 이준기는〈왕의 남자〉의 탐미적 여성성을‘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로 영리하게 환치시킨 이미지 시대의 야심만만한 스타다. “ 제 팬클럽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었는데….”하지만〈왕의 남자〉로 뜬 후, 시상식에서 만났을 때, 그는 천정명에게 어색하게 “안녕하세요?”하고는 지나가 버렸다.

    어쨌든 천정명은 관객들이 이 사람이 인생을 긍정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연기한다. 모든 것을 최대한 즐기면서 사는 사람처럼. 그는 고등학교 때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어‘샤니 호빵’CF에 출연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전 체대입시학원을 다니면서 운동을 계속할 생각만 했었어요.”그리고 우연히〈학교 2〉라는 드라마에 경험 삼아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현장’이라는 작은 정글의 경쟁을 경험한다.“ 재희, 고호경, 김흥수 같은 친구들이 같이 나왔는데, 현장에서 텃세가 심했어요(웃음). 전 그냥 경험 삼아 해보고 떠날 사람이었는데, 그 아이들은 달랐지요. 웃고 떠들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 제가 NG를 내면 표정이 바뀌었거든요.” 야심은 없지만 호기심은 많았던 천정명은 그 뒤〈아 유 레디〉라는〈쥬만지〉풍의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에 6명의 동년배 연기자들과 떼거지로 출연한다. 놀이공원 사파리에서 곰의 습격을 받게 된 주인공들이 환상 세계에 빠진다는 거창한 블록버스터 의도에 맞지 않게‘제작비 80억원의 돈냄새조차 맡을 수 없다’는 혹평으로 막을 내린 그 영화는, 감독과 배우 모두 영화 제목과는 달리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라는 사실만 확인시켰다. 2000년, 영화계 전체가 기술적인 준비도 없이 의욕과 돈이 앞섰던 흥분된 시대였고, 장선우 감독이〈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1백20억을 공중 분해시켰던 시기였다. “〈아 유 레디〉는 실제 1백억원 정도가 투자됐었어요. 그 영화에서 수백 마리쥐 떼들에게 쫓기던 장면을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요. 나중에〈해리포터〉시리즈가 나왔는데, 거미들에게 쫓기던 장면과 비교하면 그 CG기술이 어린아이 장난 같았죠. 연기도 그래요. 얼마 전에〈300〉메이킹 필름을 봤는데, 100% CG로 완성된 영화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감정이 놀라웠어요. 전 수백 마리의 쥐 떼에게 쫓긴다는 게 어떤 건지 감도 못 잡았거든요. 하하.”누구나 치기 어린 시절이 있다. 그렇게 영화사 사무실로 그의 표현대로라면‘찐드기처럼 찾아가서 들러붙어’따낸 첫 영화, 첫 주연을 말아먹고, 천정명은 2년을 백수로 지냈다. 그리고 재도전의 기회를 암시하듯 시트콤〈똑바로 살아라〉에서 노주현의 운전기사로, 말도 안 되는 자기 주장을 펼치는 청년을 연기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빈티지한 감각의 가죽 재킷은 갭(Gap), 라이트 블루 데님 팬츠는 디젤(Diesel),실버 슈즈는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by Bum Suk).

    2005년 마침내, 천정명에게 이 시대의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나타났다.〈 고양이를부탁해〉로 데뷔한 정재은 감독의 청춘영화, 인라인스케이터들의 삶을 다룬〈태풍태양〉.“ 처음으로 그 영화에서 자유롭게 연기를 했어요. 연기인지 생활인지가 모호했죠. 스태프들도 스케이터들로 구성됐었거든요.”카메라는 대기업 취업이나 복권 당첨이 아닌 오직 인라인 스케이트의 작은 바퀴에 완벽하게 몰두하는 천정명을보여준다. 마침내 난간 위에서 착지했다가 내려오는 기술을 습득한 후 천진난만하게 환호하는 모습은, 아르키메데스의‘유레카’보다 더한 쾌감을 준다. “공공 장소에서도, 레일 위에서도 몰래 타고 몰래 빠졌어요. 어떤 틀을, 한계를 깨고 싶어 했죠. 전 그게 맘에 들었어요. 폭주족처럼 자기를 알아달라고 외치거나, 기물을 파손하지도 않아요. 스케이터들은 십자인대가 부러지고 후방 인대가 나가고, 팔이 부러져도 오로지 자기가 좋아서 계속 도전하거든요.”

    길들여지지 않는 맑은 청춘으로서 천정명의 정신성과 육체를 이루는 대부분은 건전한 스포츠맨십에서 나왔다.“ 전 학교다닐 때 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농구, 축구, 야구, 배구, 탁구 전부 다! 워낙 성격이 조용해서 친구들의 관심을 못 받았는데, 농구, 축구를 잘 하니까 저를 슬슬 끼워주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아, 남자는 운동을 잘 해야 하는 거구나.” 그러고는 유도, 검도, 복싱 등 격투기는 자기방어와 신체 단련을 위해 꼭 해봐야 한다는 둥 (“존중, 예의, 정당한 폭력을 가르치죠”), 스노보드, MTV 자전거, 수상스키,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매력적인 레저도 남자로서 꼭 필요하다는 둥 (“스릴과자유를누릴수있거든요”), 스스로 운동에 푹 빠진건
    강한 육체를 자랑스러워 했다.

    “전 브래드 피트를 정말 좋아해요. 기네스 팰트로랑 사귀다가 집에서 나체로 찍힌 쇼킹한 사진을 보셨나요? 정말 자유분방하고, 원하는 대로 살잖아요. 키아누 리브스도 연기를 하다가, 다시 밴드를 하다가, 멋대로 살죠. 스크린에서 그 사람들의 연기를 보면 정말 제멋대로, 멋이 나요. 특히〈파이트 클럽〉에서 브래드 피트는 피범벅이 되는 격투로 자유 연기를 보여주죠.”

    그는 ‘자유분방함’ 혹은 ‘제멋대로’라는 단어를 수시로 사용했다. 그건 담배 꽁초를 물고 오른쪽 눈을 가늘게 치뜨던 제임스 딘의‘이유 없는 반항’이나 두 팔을 벌려 오토바이를 타며‘나에겐 꿈이 없다’라고 독백하던 정우성의‘니힐리즘적인 항변’과는 달랐다. 이미 천정명의 세대는 기성 세대에 도전할만큼, 그 딱딱한 체제 자체에는 관심조차 없다. 반항이나 꿈보다는 현실적인 ‘몰두’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질서를 지키며 치열하게 논다.“ 전 오다기리조, 기무라다쿠야, 치마부키사토시가 나오는 일본영화의 정서가 참 좋아요. 군더더기가 없고 드라이하잖아요.”

    천정명은 그런 정서를 TV 드라마에서〈패션 70’s〉와〈굿바이 솔로〉와 〈여우야 뭐하니?〉에서 충분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아동학대’와 ‘모친살해’를 담고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호러로 버무린 영화〈헨젤과 그레텔〉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임필성 감독은 황량한 남극의 극점과 거대하고 잔혹한 아버지와 서서히 찢어지는 폐쇄적인‘텐트의 영화’〈남극일기〉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그런 특징들은〈헨젤과 그레텔〉의 거대한 숲, 미로, 무서운 집, 아이와 부모의 이야기라는 틀로 재구성되었다. “원작에서 마녀는 아이들을 과자의 집으로 유인하지만,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마녀를 죽이고 어른을 기다려요. 저는 우연찮게 사고로 그 집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이들은 피로에 지친 제게 끝없이 과자의 진수성찬을 차려옵니다. 전 그 집에 갇혀억지로 우걱우걱 새파란 머핀, 핏빛 젤리를 삼키면서 미쳐갑니다. 이 영화는 슬픔과 아름다움과 섬뜩함이 공존하는 영화예요. 일종의 애정결핍이 부른 비극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죠.”

    동심이 훼손됐을 때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에 관한 이 잔혹한 동화는 개봉도 되기 전부터 김지운, 봉준호, 한재림 감독 등 지적인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나는 그가 그 기괴한 과자궁전에 들어갈 때의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복도를 지나가면 벽지에는 심상찮은 눈빛을 한 토끼들이 그려졌고, 벽에 걸린 가족화에는 부모 얼굴 위로만 동물 가면이 씌워져 있어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어른은 감정을 절제하고 숨깁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피곤하면 누워야 되고 졸리면 자야 되죠. 한마디로 자유분방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전 아이들에 가까워요.”“언제 스스로를 천진난만하다고 느끼나요?”“운동할 때요. 전 비가 쏟아질 때 운동장에 나가 농구하고 축구하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갸우뚱하지만, 전 땀 흘리고 몸을 부딪치는 데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껴요. 전 남자고, 지기 싫어하는 면이 강해요.”

    어쨌든 기괴한 과자궁전의 애정결핍 아이들과는 달리, 다행히도 그는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섬유회사를 운영했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패션쇼를 보러 다녔고, 외국 잡지를 탐독했으며, 당대 디자이너와의 교류도 있었다. 그의 큰누나는 패션 디자이너로, 작은 누나는 주얼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전 지금 해골에 미쳐있어요” 라고 그가 가족의 애정을 듬뿍 받고 살아온 막내동생답게 장난기 어린 동그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해골체인, 해골지포라이터, 해골티셔츠, 온통 해골로 된 것들만 모아요.”나는 그에게 스틸라이프 사진의 대가 어빙 펜의 해골 사진을 보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군대 가기 전에 완성한 마지막 프로젝트인 체육대학원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에 대한 주제예요. 운동했을 때 폐활량을 측정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동하는가를 알아보는 거죠. 실내 체육을 보면 남자는 쉬운데, 여자들은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할지 무척 어려워 하더라구요. 논문이 합격하면 전 군대로 떠나요. 갔다 오면 서른 한 살이 될 거고, 그때까지 또 열심히 살아야죠.”

    천정명은 나중에 나이가 들면 마당이 있는 멋진 집을 사서 농구 코트, 축구 코트, 골프, 헬스를 할 수 있는 실내 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잔디 그릴을 만들거라고했다. “부모님과 누나들 집도 근처에 지어서 모여 살고 싶어요. 같이 여행도 다니고 파티도 하고 근사할 것 같은데요.” 일본 젊은이들의 오타쿠 취향, 할리우드 스타들의 자유분방함, 운동으로 육체의 극한까지 가고 마는 스포츠맨십, 게다가 천진난만한 가족애를 지닌 이 청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사나이로 변해갈까? 도달불능점을 향해 전진하다 눈보라 속에서 길을잃은〈남극일기〉의 유지태처럼, < 헨젤과그레텔〉이 청춘의 절정에 선 천정명에게 어떤 방식으로 ‘성장의 미로’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에디터
      김지수, 손우창
      포토그래퍼
      OH JOONG SEOK
      스탭
      헤어/황승배, 메이크업/김수민(이희 헤어&메이크업)
      브랜드
      버버리 프로섬, 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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