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디자이너 토리 버치, 배우 김하늘과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초대했다.

2016.03.17

by VOGUE

    디자이너 토리 버치, 배우 김하늘과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초대했다.

    플랫 슈즈와 튜닉으로 여성들을 매혹시킨 토리 버치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집으로 배우 김하늘과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초대했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그루가 호스트였던 뉴욕 업타운에서의 아름다운 나날.

    드라마 〈가십 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블레이크 라이블리. 〈보그 코리아〉를 위해 그녀가 토리 버치의 드레스를 입고 특유의 미성숙한 듯 관능적인 포즈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굿모닝, 어퍼 이스트 사이더들! 가십걸이야”로 시작되는 〈가십 걸〉의 첫 장면을 머릿속에 리와인드시켜 보자. 우린 지금 드라마의 시작 부분과 비슷한 거리 풍경 속에서 일종의 데자뷔를 경험하는 중이니까. 이야기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상징하는 호텔 피에르에서부터 시작된다. 센트럴파크의 동남쪽 출입구와 마주한 피에르는 버그도프 굿맨, 프릭미술관과 더불어 업타운의 귀족 취향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고풍스럽고 유서 깊은 명소다. 1930년 ‘민주화’라는 구실을 업고 대중의 매너가 급속도로 하향 평준화되는 데 불만을 품은 한 고집스러운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가 설립한 곳이다. 루이 16세 시대의 화려한 건축법을 모방한 우아한 아이보리 파사드, 타원형연회장 로툰다에서 오후마다 열리는 품위 있는 영국식 티타임, 값비싼 객실에서 경험하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 등등. 그 중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이브 생 로랑이 머문 펜트하우스 3개 층은2006년 〈포브스〉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택 8위에 오를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맨해튼 최고의 고급 레지던스다. 여기까지의 설명으로 우리 일행이 상기된 기색을 감추려 애쓰며 정문을 찾아 헤맨 15초 정도의 시간이 용인될지 모르겠다.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불안해진 나머지 회전문 미는 방법조차 망각할 지경이지만, 이곳의 품격에 어울리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매체 중 하나인 〈보그〉를 대리해 방문한 이상 긴장한 모습을 들킬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일행을 먼저 알아본 제복차림의 도어맨에 의해 상류사회의 육중한 문이 먼저 활짝 열려준 덕에 약간의 여유와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보그〉에서 오신다는 전갈을 이미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숙녀분들, 이쪽으로 오십시오!” 컨시어지의 도움으로 일행은 즉각 호텔 맨 위층으로 안내되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현관문 앞 복도에는 트럭 한 대 분량의 작약과 수국, 장미 수천 송이가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며 손수레 위에서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모두집주인 토리 버치(Tory Burch)가 주문해둔 것으로, 이제부터 2백50여 평에 이르는 거대한 맨션 곳곳에 장식되어 오늘의 특별한 두 손님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이 참 근사하군요.” 배우 김하늘이 차분한 영어로 토리 버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여기 있는 수국 말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에요.” “정말이에요? 우리, 취향이 비슷하군요.” 친밀감을 느낀 토리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흐른다. H-A-N-E-U-L이라는 이름을 한 자 한 자 힘주어 연습하더니, 사실 그녀가 입은 옷이 자기 것인 줄 몰랐다는 깜짝 고백을 한다.“정말 몰라보겠어요!”란 말은 김하늘이 근사하게 소화해낸 크롭트 재킷에 대한 진심 어린 칭찬이었다. 샤넬 트위드처럼 정숙하면서도 어딘가 섹시하고 도발적인 느낌이 있었고, 김하늘 특유의 스모키 아이라인과도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내가 만든 옷이지만, 정말 잘 어울리네요. 시크하고 섹시한데요!”

    블레이크로부터 날씬한 팔과 다리가 패션 모델을 연상시킨다는 칭찬을 받은 김하늘. 날씬한 그녀의 몸매가 토리 버치의 블랙 의상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토리 버치는 디자이너로 데뷔하기 전 뉴욕 상류사회의 패션아이콘이자 라이프스타일의 그루였다. 그녀는 〈하우스 뷰티풀〉이나 〈타운 앤 컨트리〉 같은 리빙 매거진이 즐겨 찾는 인터뷰 대상이자, 패트릭 맥뮬런에게 자주 포착되는 피사체이며, 패션 위크에는 모든 디자이너가 경쟁적으로 맨 앞줄에 모시던 패션 피플로, 〈베니티 페어〉는 시에나 밀러 자매가 유럽으로 떠나고, 브 루크 드 오캄포가 남편을 따라 런던으로 가버린 이후, 업타운은 이제 토리 버치의 독무대가 될 거라 예고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토리 버치는 사교계를 장악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 그녀는 사교 파티보다는 여자들이 욕망하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더 유명해지는 중이니까.

    미국 동부의 명문가 출신인 토리 버치는 태생적으로 패션계와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토리의 어머니 리바 로빈슨은 젊은 시절에 소니아 리키엘, 이브 생 로랑, 발렌티노 등의 고객이었다. 그리고 스티브 맥퀸, 말론 브란도, 율 브리너 등 최고의 할리우드 스타들과도 데이트를 했던 과감하고 세련된 여성이기도 했다. 한때 그레이스 켈리와 연인 관계였던 아버지 버디 로빈슨 역시 직접 디자인해 주문한 이브닝재킷이나 다이아몬드 커프 링크스를 차고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르던 멋쟁이 신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자극적인 생활에서 떠나 자유로운 시골농장을 자녀들의 보금자리로 고른 현명한 부모이기도 했다. 덕분에 토리는 노력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멋(Effortless Chic)의 세계를 일찍부터 체험할 수 있었다. 펜실바니아 대학 시절 그녀는 전공이었던 미술사보다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넘쳐났다. 그래서 결국 졸업 후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패션계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코스를 그대로 밟기 시작했다. 잡지사 에디터와 PR 담당, 그리고 카피라이터 등을 두루 경험했으며, 드디어 2004년에 정해진 수순처럼 패션 디자이너로 화려하게 변신을 시도하게 되었다.

    미모, 재능, 매너, 인맥, 화술 등 상류 사회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덕목을 빠짐 없이 갖추었고, 이를 직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적절히 이용해 왔다는 점에서 그녀는 베라왕, 마리 샹탈, 이반카 트럼프,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 제이드 재거 등과 무척 닮아 있다. 그러나 인기와 명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그녀처럼 성공을 거두는 건 아니다. 물론 부를 바탕으로 하지도 않았다. 8개월간 아파트 한구석을 작업실 삼아 밤낮 가리지 않고 매달린 끝에 디자인, 가격, 유통, 마케팅 등이 정확하고 전략적으로 구사된 작은 독립체로 조심스러운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2004년 놀리타에 첫 스토어를 오픈한 날, 토리 버치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 이웃과 친구들,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패션계 거물들이 호기심으로 들렀다가 물건이 몽땅 팔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루 만에 8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 그래픽과 빈티지 모티브를 응용한과감한 패턴, 실용적인 소재와 스포티한 실루엣, 고급스러우면서도 합리적인 가격 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한 그녀는 이후 튜닉과 플랫 슈즈(그 중에서도 리바 슈즈!)란 한층 강력한 토리 버치 바이러스로 맨해튼을 사로잡았다. 특히 십자형 더블 T로고는 소비자에게 신뢰감과 안정감을 약속하는 효과적인 보증수표였다. 전문가들은 그녀가 잠자고 있던 수요, 누구도 깨닫지 못한 빈 시장을 개척했음을 인정했으며, 이를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라 불렀다. 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의 쇼에 그녀를 초대할 정도. 게다가 그녀가 토리 튜닉의 마니아임을 자처하며 추켜세우자‘토리 버치’란 이름은 하나의 성공적인 브랜드이자 스타일, 그리고 신드롬이 되었다.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의 랩 드레스 이후 30여 년 만의 메가 히트였다. 2007년 〈포춘〉은 그녀를‘The It Girl’이란 제목으로 소개하면서 리바 슈즈를 그 해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기록했다. 리바는 또 이듬해 열린 CFDA시상식에서 쟁쟁한 경쟁 후보들을 제치고 토리 버치에게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이란 영광까지 안겨줬다.

    80년대 멋쟁이들로 변신한 김하늘과 토리 버치. 허리선이 높은 가죽 팬츠와 버클 부츠, 그리고 견장이 달린 티셔츠는 토리 버치의 와일드한 면을 느끼게 한다. 이런 스타일 역시 김하늘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했다.

    미국 〈보그〉편집장 안나 윈투어 역시 토리의 성공을 일찌감치 예견한 사람 중 하나다.“토리는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데 뛰어나다. 그녀는 이미지의 힘, 마케팅, 그리고 브랜딩에 대한 대단한 지식을 갖고 있다.” 업타운 출신이지만 비즈니스 우먼의 근면함, 그리고 디자이너가 되기 전엔 남편과 아이들에게 충실했던 전업 주부였다는 사실도 평범한 대중과의 소통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토리는 평범한 여성들이 삶 속에서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심리적으로 그들과 매우 가까운 롤 모델로, 안나 윈투어는 “여자들이 그녀의 의상을 쉽게 받아들이고 구매했던 것처럼, 이제는 토리 버치라는 인간 자체를 사들이고 있다”는 말로 현상을 요약했다. 그런 토리 버치와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스무 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각별한 우정을 쌓고 있다. 두 사람은 연예인과 디자이너라는 공생 관계를 넘어 서로의 건강과 가족의 안부를 염려하는 절친한 친구사이다. 블레이크로 말하자면, 온 가족이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 순간부터 ‘예비 스타’로 키워진 아가씨. 그러나 그녀는 밝고 건강한 천성으로 자신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를 즐겁게 받아들이며, 펜 배즐리(〈가십 걸〉의 ‘댄 험프리’역)와의 연인 관계에서부터 다른 출연자들과의 불화설에 이르기까지 솔직하고 스스럼없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들이 대중의 입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십 걸〉속 일련의 에피소드는 실제 업타운에서 주목 받는 삶을 살고 있는 블레이크나 토리의 일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다행히 〈가십 걸〉의 세레나가 가십을 극복하고 자기 삶을 꿋꿋이 이어 가는 것처럼, 블레이크나 토리 역시 소문이나 편견, 지역 사회의 구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블레이크는 원래 LA토박이 출신이었지만 세레나 역을 통해 이제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 소녀들을 대표하는 ‘업타운 걸’이 됐다. 그러나 세레나는 지금껏 업타운 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고정화된 이미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부잣집의 예쁜 외동딸이지만 특권 의식이 없고 자유롭고 낭만적이며 상냥한 10대 소녀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연출해내는 게 관건. 블레이크는 시즌 1의 첫 회, 브루클린 출신 남자 친구와 첫 데이트를 하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부터 토리 버치의 골드 세퀸 드레스를 입었다. 오스카 드 라 렌타부터 포에버 21까지 두루 섭렵하는 세레나 스타일의 일관된 원칙은 고급스럽되 편안하고 시크하며, 트렌디하지만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스타일로, 토리 버치는 세레나 스타일을 연출하기에 그만이었다. 블레이크는 이후 〈가십 걸〉의 여러 장면에서 토리 버치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소화해냈으며, 토리 버치는 주인공들이 자주 쇼핑하는 장소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에피소드 안에서 자주 등장하게 됐다. 물론 그녀는 패리스 힐튼과 함께 드라마 밖 실생활에서 도토리 버치의 의상을 즐겨 입기로 손꼽히는 배우. 토리 버치의 튜닉, 가죽 재킷, 토트백, 플랫 슈즈 등은 그녀로 인해 더 유명세를 타게 됐다.“저는 토리 버치를 정말 좋아해요. 제 옷장 속엔 토리 버치의 거의 모든 컬렉션이 다 걸려 있는 걸요.”

    자연스럽게 물결치는 블론드 헤어, 그리고 토리 버치의 스트라이프 티셔츠로 꾸민 블레이크 라이블리. 이런 내추럴한 모습이 블레이크를 차세대 패셔니스타의 반열에 올려놨다.

    한편, 단정한 외모만큼이나 깔끔한 자기 관리로 소문난 김하늘은 성형이나 피부 시술 대신 적절한 시점에 캐릭터와 스타일을 바꿔줌으로써 오랫동안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해온 대표적인 패셔니스타. ‘김하늘의 재발견’이었던 〈온 에어〉속 오승아 캐릭터의 성공은 운동으로 단련된 날씬한 몸매와 이를 잘 표현해주는 수준 높은 패션 감각 덕분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뉴욕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젊은 스타블레이크 라이블리를 만나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토리 버치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경험한다는 건 분명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자, 다시 토리 버치의 맨션으로 돌아가 보자. 김하늘보다 조금 늦게 토리의 맨션에 도착한 블레이크는 일행이 토리의 드레스룸에 들어서자 이렇게 외쳤다. “와우, 이번 가을 옷도 정말 예쁘네요. 이 세퀸 드레스 좀 보세요! 그리고 이 스트라이프와 가죽 팬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죠!”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분주하게 옷걸이 사이를 훑어갈 때마다 연신 감탄이 쏟아졌다. 분위기 메이커인 블레이크는 아파트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커피를 부탁하고, 토리의 쌍둥이 아들 헨리와 니콜라스의 근황을 확인하고, 레이튼 미스터와 에드 웨스트윅 등 함께 〈가십 걸〉에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의 휴가에 대해서 재잘대더니(마침 〈가십 걸〉시즌 3 촬영 직전의 휴가 기간이었다), 화제가 김하늘로 넘어가자 그녀의 배우 생활과 필모그래피, 한국에 관해 물어 보느라 꽤 부산스러웠다. 두 배우는 처음 소개 받았을 때는 정중히 악수를 주고받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블레이크는 김하늘의 양 어깨를 와락 껴안고 친언니를 만난 것처럼 잔뜩 애교를 부렸다.

    <보그> 촬영을 위해 긴 금발머리를 늘어뜨린 블레이크가 먼저 검정 이브닝 가운 차림으로 거실에 들어서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의 입에서 “멋져요!”란 말이 일제히 쏟아졌다. 전형적인 레드 카펫의상으로 보통은 다이아몬드나 진주 목걸이, 새틴 클러치백을 매치하겠지만, 역시 블레이크답게 대담한 벨트를 허리에 걸치자 느낌이 전혀 달라졌다.“〈가십 걸〉은 틴에이저들의 이야기지만 저도 매회 놓치지 않고 보았죠. 고등학생들의 로맨스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는 교복과 섞여 묘하게 섹시한 느낌을 주던 스쿨 걸 룩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스타일을 만들어낸 블레이크는 여자인 제가 봐도 참 예쁘고 사랑스럽네요.” 날씬한 허벅지에 어울리는 레깅스와 레이스업 부츠, 짧은 재킷 차림의 김하늘이 블레이크를 여유롭게 칭찬하자 그녀는 “고마워요. 하지만 당신은 너무 날씬하고 세련돼 보여요. 패션 모델처럼 다리가 가늘군요”라고 응수했다. 배우에게 ‘스타일’이란 퍼스낼리티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 〈가십 걸〉에 대한 정확한 패션 식견을 자랑하는 김하늘은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옷을 보는 훈련을 하고 여러 가지 스타일을 탐구하는 데 한창 재미가 붙었거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흰 꽃잎으로 뒤덮인 듯한 재킷과 골드 주얼리가 김하늘만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번엔 김하늘이 재킷을 벗고 주름이 층층으로 장식된 미니 드레스에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목걸이를 걸쳤다. ‘심플한 의상과 큼직한 액세서리’는 토리 버치 스타일의 특징 중 하나로, 특히 상의를 만들 때 자주 활용되는 공식. 블레이크 또한 라인스톤과 깃털로 네크라인을 장식한 톱을 입고 바이커 재킷을 걸치자 금발머리 여신은 어느새 사라지고 반항적인 이지 라이더가 나타났다. 김하늘과 블레이크가 옷장에서 연신 옷을 꺼내 입어보며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토리는 틈틈이 두 사람이 궁금해하는 장식품이나 인테리어에 관해 설명했다. 풍부한 색감과 패턴으로 가득한 벽지와 패브릭은 빈티지와 컨템포러리를 즐겨 혼용하던 영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이비드 힉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토리 버치 숍 인테리어나 그녀의 패션 코드를 이해하는 중요한 참고 자료다. 그녀는 건축, 인테리어, 여행, 60~70년대,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받는 자신만의 영감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탁자 위에는 테니스와 승마를 즐기던 말괄량이 꼬마 토리의 흑백 사진, 이스트 햄튼 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배우 출신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가득 진열되어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를 한껏 연출하고 있었다.

    뉴욕 상류사회의 새로운 패션 크루로 칭송 받는 토리 버치. 호피무늬 쿠션과 메론 향 마카롱빛 커튼으로 꾸며진 거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토리 버치와 블레이크 라이블리, 그리고 김하늘이 멋진 드레스룸과 잘 정돈된 서재를 오가며 흥미진진한 탐색을 계속하는 동안, 응접실 옆 식당에서는 식탁을 둘러싼 작고 유쾌한 소란이 벌어졌다. 테이블보와 식기, 은수저와 화병의 역학 관계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수십 가지의 집기들을 놓고 바꾸기를 반복하는 여성은 다름 아닌 토리의 친어머니이자 그 유명한 ‘리바 슈즈’의 실제 뮤즈인 리바 여사. 젊은 시절 굉장한 미모와 패션 센스를 자랑했을 듯한 70대의 리바 여사는 실제로 토리의 인생과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스승이자 뮤즈다. 토리는 리바의 오래된 옷장으로부터 60년대 보헤미안 감성을 학습했고, 유년의 행복한 경험을 통해 여섯 아이와 강아지 헤라클레스의 엄마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활동성과 우아함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발레리나 플랫을 어머니 이름 앞에 헌정한 것은 토리로서는 당연한 일. “구두 덕분에 지금은 내 이름이 나 자신보다 더 유명해졌다우!”쾌활하게 웃으면서도 분주한 손놀림만은 멈추지 않던 리바 여사는 결국 식탁보를 치워버리고 딸이 가장 좋아하는 진홍빛 작약을 센터피스로 두고 은 세공 장식품, 앤티크 촛대, 벨기에산 레이스,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한 쌍을 이루는 무라노풍 물잔을 조심스럽게 배치한 뒤, 마침내 준비된 음식을 날랐다.

    손님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햇살이 창 틈으로 비스듬히 비치며 실내를 부드럽게 감싸는 나른한 오후가 되었다. 마티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따사롭고 평화로운 실내 풍경 그 자체! 그림 속 세 여자는 식탁 앞에서 가족처럼 친밀해 보였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유명인으로 살아야 하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받아들이고, 대중의 시선에 의연하게 대처하면서도 로맨스를 포기하지 않는 용감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이라는 것. 식사가 끝나면 또 빡빡하게 정해진 다른 일정을 위해 바삐 떠나야 하지만, 지금 이곳은 업타운 사교계의 여왕 토리의 집이 아닌가(그녀가 이 타이틀을 싫어하더라도 말이다)! 그녀의 따뜻한 배려와 환대 앞에서 손님들은 잠시 시간 따위는 잊어버렸다. 호스트 토리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건배를 제안했다.“하늘과 블레이크, 토리 버치의 성에 온 것을 환영해요!”

    P.S.이날 김하늘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홍보하기 위해 인사동에서 직접 고른 자개 장식 보석함을 선물로 준비했다. 토리 버치는 나중에 김하늘에게 이메일을 보내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따뜻한 안부 인사와 함께 전했다.

      포토그래퍼
      Derek Kettela
      스탭
      캐스팅 디렉터 / 최진우 , 스타일리스트/윤애리
      기타
      글 / 조혜자 헤어 / Kevin Lee for Kenneth Salon(Tory Burch & Kim Ha-Neul), Harry Josh(Blake Lively) 메이크업 / Keiko Hiramoto(Tory Burch & Kim Ha-Neul), Angela Levin(Blake Lively) 매니큐어 / Elle Gerstein 프로덕션 / J&Y Production, Inc.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