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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이 사는 법

2016.03.17

by VOGUE

    차태현이 사는 법

    차태현은 출연 영화의 관객수를 모두 외우고 있다. 관객들이 불편할 것이라는 이유로 결혼 이후엔 멜로를 거절하고 있으며, 휴대폰엔 아이 사진을 넣고 다닌다. 그는 아이가 나오는 가족 영화 출연을 고집한다. 〈과속스캔들〉에 이은 가족 영화 〈헬로우 고스트〉로 돌아온 차태현을 만나보자.

    블랙 페도라는 구린 브로스(Goorin Bros), 울 체크 베스트는 니나 리치(Nina Ricci), 블루와 블랙 컬러의 체크 셔츠와 벨벳 보타이, 더블 버튼 재킷과 팬츠는 모두 폴 스미스(Paul Smith), 안경은 지홀릭(G-Holic).

    블루 셔츠와 카멜 컬러의 니트는 프라다(Prada).

    실제 생활에서, 혹은 적어도 촬영장이나 인터뷰에서 차태현은 자신감에 차 있다. 지나치게 명랑하거나 가난한 엔터테이너의 모습을 갖고 있지도 않다. 조용하게 움직이지만, 자신이 표현할 최적의 포인트를 알고 있다고나 할까. 머리카락은 짧고 얼굴은 검고 키는 작은 편이지만, 적당히 균형이 잡혀 있어 조명기 앞에 서면 잘생기고 키가 커 보이기까지 한다. 공간에 대한 장악력이 있으며, 쓸데없는 너스레를 떨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송강호, 설경구 같은 연기력, 원빈, 조인성 같은 외모와 모험심을 갖지 않았으면서도 10년을 넘게 주연 배우로 활약한 차태현의 밸런스.

    10여 년 전에 류승범과 차태현을 같은 현장에서 이어서 촬영한 적이 있다. 둘 다 약간 건방져 보였고 외모는 잘생기지 않았지만, 놀랄 만큼 재능이 있었고 리얼리티가 뛰어났다. 류승범이 순간 전압이 높았다면, 차태현은 표정과 감정의 메아리가 좋았다. 초기부터 차태현은 이병헌과 박중훈의 중간 정도를 해냈다. 그가 좀더 욕심을 냈다면, 그러니까 ‘밝은 영화’ 쪽으로 고집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성취를 이뤘을지도 모른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호랑이 봉제 인형을 끌어안고도 누아르 영화를 촬영하듯 사투를 벌이고, 갈색 스웨터 목에 뻣뻣한 나뭇가지를 꽂고도 사과 같은 홍조를 띠는 배우는 흔치 않다. 고난을 당하는 당사자가 어색해 하거나 자신을 희생양 삼아 웃기려 들지 않고 직관에 따라 감정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자존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낀다. 한마디로 그의 연기는 자학적인 슬랩스틱이 아니며 세련되고 편안하다. 특히 차태현이 차태현을 바라보는 쌍둥이 연기를 할 때는 ‘덤 앤 더머’를 보는 듯 우화적이다.

    나는 그가 타고난 희극 배우라고 생각한다. 콤플렉스와 불안감이 없는 희극 배우라니! 〈연애 소설〉 〈엽기적인 그녀〉 〈파랑주의보〉 〈첫사랑사수궐기대회〉 등에서 멜로 연기를 할 때도,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복면달호〉 〈과속스캔들〉에서 코미디 연기를 할 때도, 잘나갈 때나 못나갈 때나 변함없이 그는 약간 능청스럽게 거들먹거리며 연기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불안한 자의식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다.

    항상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군요. 한때 노래를 할 땐 좀 거들먹거리는 분위기도 있었죠.
    노래할 때가 짧고 굵은 전성기였죠. 뭘 해도 될 때가 바로 그런 때입니다.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영화, 음반, 라디오MC 모든 게 다 신기할 정도로 잘됐어요. 좀 들 떠 있었을 겁니다.

    멋있는 남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타고나야죠. 성품도 연기력도 훌륭해야 합니다. 자기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람이 멋진 남자죠.

    표정을 보니 본인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애초에 성공해서 목표를 이뤘죠. 그래서 참 애매한 경우죠.

    뭐가 애매하다는 건가요?
    왜 한류가 생겨서 해외 진출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분위기를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모두들 일본에 가고 할리우드를 가면 제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한국에 충실하시죠.
    가만, 우리가 만난 적이 있습니까?

    10여 년 전이지요. 당신이 아주 잘나갈 때였어요.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을 때. 고 이은주와 손예진 사이에서 〈연애소설〉이라는 영화를 촬영하다 왔던 걸로 기억해요. 발갛게 그을린 얼굴로 흰 베일을 쓰고 파란 눈물을 흘리며 ‘연정’ 이라는 컨셉의 사진을 찍었어요. 멜로 드라마틱한 사진이었죠. 봉제 호랑이에게 물려 비명을 지르거나, 쌍둥이 형제 시늉을 하는 코미디 비주얼과는 거리가 멀었답니다. 어쨌든 〈과속스캔들〉로 다시 흥행 배우가 됐으니 우쭐하셨겠어요?
    〈엽기적인 그녀〉가 5백만이 들었고, 〈과속스캔들〉이 8백만이 들었어요. 최근 5년간 주요 흥행 순위에서 제가 9위에 랭크 됐어요.

    놀라운데요? 1위는 누구죠?
    송강호. 송강호, 설경구 형님이야 늘 최고기록을 갱신하는 분들 아닙니까?

    행복하신가요?
    행복하냐구요? 네. 행복합니다. 어릴 때부터 연예인을 하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게 3가지가 있었는데 그걸 이뤘어요. 첫째, 서른 살에 결혼하는 일. 둘째,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연기를 하는 일. 셋째, 보통 사람을 연기하는 일.

    세상에! 정말 평범한 꿈을 꿨군요!
    저는 어깨 수술을 해서 다른 남자 배우들처럼 액션을 연기할 수가 없었어요. 연기 폭이 엄청 좁은 거죠. 남자가 액션을 못한다는 건 대단한 핸디캡이거든요. 그래서 나이에 맞는 생활 연기를 잘하는 게 거창한 목표가 된 거예요.

    목표가 또 뭐였죠?
    본전만 하자. 비싸고 도전적이고 큰 작품은 꿈도 안꿨죠. 그래도 1편당 평균 2백30만 명은 들었습니다.

    화이트 셔츠는 니나 리치, 네이비 모직 코트는 엠비오(Mvio), 보타이는 골든 구즈(Golden Goose at Celebration).

    칼라만 색상이 다른 클레릭 셔츠는 아페세(A.P.C.), 쓰리피스 울 수트는 라피규라(La Figura), 니트 타이와 부토니에, 포켓치프는 갈리에니(Gallieni at La Figura), 브라운 슈즈는 알프레드 던힐(Alfred Dunhill), 백호인형은 주 커피.

    그래도 개봉 대기 중인 〈헬로우 고스트〉나 촬영 중인 〈챔프〉는 좀 진부한데요? 귀신이 들어와서 1인 5역을 하는 남자라거나, 말과 함께 풍파를 헤쳐나가는 기수 스토리는….
    하지만 대본은 좋습니다. 비슷비슷한 해피코미디지만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제가 할아버지, 아기, 우는 여자, 골초 귀신이 빙의된 연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챔프〉에서는 말과 함께 제 딸도 나오죠. 〈과속스캔들〉도 처음엔 다들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할아버지 역을 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아이에 대한 영화라는 게 특별히 더 끌렸구요.

    그런 잘 짜인 코미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과속스캔들〉의 첫 대본은 아주 진부했어요. 그 대본은 임창정에게 갔다가 저한테로 왔는걸요. 제 배역도 이전의 코미디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않습니다.

    왕년에 잘나가던 가수이자 라디오 DJ는 스스로를 패러디한 것 같더군요.
    하지만 영화적인 앙상블로는 맘에 듭니다.

    당신 생각에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은 누구죠?
    저는 코미디를 정말 좋아해요. 〈개그콘서트〉 김병만 씨의 ‘달인 연기’를 보면 저렇게 끈기 있게 육체적으로 사람들을 웃길 수도 있구나, 놀라워요. 코미디 배우로 보자면 박중훈, 안성기 선배님이 최고죠. 매번 같은 연기를 보여줘도 사람들이 계속 웃으면서 좋아하는 거, 그게 좋은 코미디인 거죠.

    당신은 좋은 코미디 배우인가요?
    만약 제 영화를 보고 관객이 단 한 번도 웃지 못하고 극장을 나온다면 큰 배신감을 느낄 것 같아요. 사람들은 밝은 영화에 출연하는 저를 원해요. 제게 출중한 연기력을 원하는 건 아니죠. 저는 관객이 사랑해주는 밝은 모습을 이어가는 데 큰 불만이 없어요.

    어쩌면 코미디 배우의 비애일 수 있겠군요.
    저는 이미 10번째 영화를 세상에 내놨는데, 한 번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어요.

    후보에도 없었다니, 짐 캐리도 그랬나요?
    짐 캐리도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없어요.

    놀라운데요? 짐 캐리가 〈덤 앤 더머〉와 〈마스크〉만 한 건 아니잖아요?
    〈라이어 라이어〉나 〈트루먼 쇼〉 같은 진지한 영화를 했는데도 그랬죠.

    오! 슬퍼지는군요. 벤 스틸러나 잭 블랙은 말할 것도 없겠네요.
    저는 짐캐리와 잭 블랙의 중간 정도예요. 벤 스틸러 같은 존재죠. 벤 스틸러와 저는 공통점이 많아요. 모험도 하지 않으면서 꿋꿋하게 감동을 주려고하죠. 특별히 연기를 잘하는 것 같지 않지만 자연스럽다고나 할까요.

    요점은 코미디 배우가 영화계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기는 힘들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과속스캔들〉 때는 영화계 전체가 불경기라 대한민국영화제와 대종상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남우주연상과 공로상을 받게 되겠죠. 원빈도 받고 조인성도 받고, 어리신 분들도 받고 있으니….

    그들은 몸을 쓰는 강한 연기를 선보였죠.
    인정합니다. 데뷔 이후로 유명해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제가 듣는 한결같은 충고가 ‘변신’입니다.

    마스크 쓰고 레슬링을 하는 〈반칙왕〉 같은 영화를 했으면 어땠을까요? 가령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 연기.
    제 스타일은 〈복면달호〉였지요. 저도 복면을 쓰고 트로트를 불렀습니다.

    그렇군요. 마스크는 희극 배우들의 통과의례 같은 셈이네요.
    어쨌든 저는 제 신념대로 가고 있어요. 스무 살 때부터 빨리 나이를 먹기를 바랐어요. 제 나이가 너무 애매하다고 생각했죠. 결혼 후엔 청춘 멜로를 안하기로 했어요. 〈엽기적인 그녀〉가 로맨스의 교본이라 더 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결혼 후에 〈복면달호〉 〈바보〉 〈과속스캔들〉에 출연했는데, 멜로 라인이 없어서 편안했어요.

    정말 내면적으로 평화로우시군요. 연기적으로 답답증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도 답답합니다. 감독이 오케이하고 우리끼리 좋다고 해도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 답답해요. 〈헬로우 고스트〉는 1인 5역을 했는데, 스스로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모르겠으니 미칠 노릇이지요. 연기는 좋았는데 언론이 반응이 없으면 그것도 답답하고, 나만 살고 영화가 죽으면 그것도 답답하지요.

    혹시 미신을 믿나요?
    아니요. 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라 담배도 피우지 않고 평생 여자를 한 명만 사귀었어요.

    첫사랑과 결혼했다는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 여자만 만났습니다. 인기가 많을 때나 없을 때나 제 곁에 있었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건은 뭐죠?
    아기가 태어난 일이죠. 참 아름다운 사건이에요. 아이가 커가는 것도 시시각각 아름다운 사건이구요.

    하나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조선희
      스탭
      스타일리스트/김누리, 헤어/한지선, 메이크업 / 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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