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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 여배우 특집-한효주] 착하지만은 않아

2016.03.17

by VOGUE

    [15주년 여배우 특집-한효주] 착하지만은 않아

    한효주에게서 동이를 지워내고〈찬란한 유산〉의 은성이를 지워내면 그곳엔 우리가 짐작도 하지 못했던 여자가 서 있을지 모른다. 말간 얼굴과 미지의 내면을 가진, 스스로 자신은 좀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한효주.

    나염 프린트의 원피스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아이보리 컬러의 재킷은 도나 카란(Donna Karan), 피치 컬러의 와이드 팬츠는 모그(Mogg).

    드라마 <찬란한 유산> 끝내고 <보그>와 화보 찍은 날 기억해요? 그때 머리를 식빵처럼 부풀리고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 한효주는 패션 모델 뺨치게 멋졌어요. 마감 때 그 사진 보면서 모두가 놀라고 극찬했었죠.
    그날 정확하게 기억해요, 얼마 되지도 않았는걸요. 즐거웠어요.

    한효주에게 숨겨진 모습이 있구나, 발산하게 해줘야 하는구나 싶었죠. 하지만 <찬란한 유산>과 <동이> 이후 한효주의 캐릭터가 어느 한쪽으로만 굳혀지는 느낌이에요.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컨셉은 뭐라고 생각하죠?
    오늘 같은 느낌도 재밌어요. 광고에서도 주로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를 보여주니까, 화보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으로 변신할 때 재밌죠.

    그런데 얼굴이 안 보이도록 포즈를 취하더군요. 이렇게 예쁜 얼굴인데.
    오늘은 광고 비주얼이 아니라 여배우로 선 거니까, 그저 느낌만 전해지는 모습도 좋을 것 같았어요.

    작년 연말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 받을 때 수상 소감을 말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20대면 긴장되고 떨리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게 마련인데, 한효주는 스스로를 다잡는 성격이 보였어요.
    네. 대개는 나를 잡고 있으려고 하고, 위에 떠 있기보단 밑에 있으려고 해요. 사실 너무 큰 상이어서 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공동수상이었던 김남주의 태도와 비교됐어요. 한참 선배인 김남주는 감정에 북받쳐 계속 울먹거렸잖아요.
    그래서 안 좋게 보는 분들도 계셨어요. 너무 담담한 거 아니냐고. 사실 그때 전 담담했던 게 아니라 그저 정신이 멍했던 거예요. 정말 <동이>팀 대표로 받은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교사 어머니와 공군 출신 아버지를 부모로 둔 건 한효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를 아주 보수적으로 만들긴 했죠. 성격도 갇혀 있었고요. 원래의 저는 갇혀 살만한 아이 같진 않아요. 연기를 하면서 그걸 발견한 거죠. 그래도 제가 일찍 독립했거든요. 청주에는 연기를 가르치는 학원이 없어서 연영과 가보겠다고 분당 고모네 집에서 같이 살았어요. 대학 때는 합숙 생활도 했고요.

    가을에 개봉할 멜로 영화 <오직 그대만>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는데, 얘기 좀 해주세요.
    저는 시력을 잃어가는 여자로 나와요. 시력이 완전히 암흑 상태로 들어가기 전까지, 복서와의 사랑 이야기. 정통 멜로예요.

    상대역인 소지섭의 얼굴은 분간이 가는 정도의 암흑인가요?
    아뇨. 안 보여요.

    소지섭의 얼굴이 안 보인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데요. 참고로 소지섭, 원빈, 강동원, 이런 남자들의 상대 여배우는 많은 여자들의 질시를 받습니다.
    으하하하. 괜찮아요, 제 상대 남자 배우들도 질시 좀 받거든요.

    혹시 <오직 그대만>이 진짜 영화 배우로 서는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저 나름 영화 많이 찍었어요. <달려라 자전거>, 제가 좋아하는 <아주 특별한 손님>, 영웅재중 씨랑 <천국의 우편배달부>도 찍었고, 데뷔 초 <투사부일체>에도 나왔었고….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죠?
    요즘엔 주인공이 뭔가를 이뤄가는 성장물, 청춘물이 좋더라고요. <빌리 엘리어트>도 좋고, 어젠 인디밴드 메이트가 나오는 <플레이>를 봤는데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스물 다섯이죠? 흔히 여자들이 ‘꺾이는 나이’ 때 나이 얘길 많이 해요.
    전 사실 나이 먹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제가 지금 말 그대로 청춘이잖아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청춘인지 선이 불분명하지만, 청춘은 금방 지나가버릴 수 있겠다, 몇 년이 지나면 아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요즘 스케줄은 어떤가요?
    일단 영화 끝낸 지 얼마 안 됐고요. 끝내고 바로 영국 가서 광고 촬영하고, 오자마자 광고 찍고, 오늘은 이렇게 <보그>와 찍고, 내일은 미팅이 있고. 계속 일이 있네요, 행복하게.

    한효주는 늘 바람직한 소녀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아쉽기도 했어요. 연예인 모범납세자로도 선정됐죠?
    네, 저 G20 홍보대사도 했어요. 또 인구주택총조사 홍보대사, 국세청 홍보대사….

    부모 세대에도 효주 씨 팬이 많아요. 우리 아버지도 국내 여배우 중에 제일 예쁘대요.
    정말요? 네, 저 어머니 아버지들한테 인기 많아요!

    <찬란한 유산>과 <동이>의 영향이 크겠죠. 누가 그러던데요. 한효주라 쓰고, 캔디라 읽자.
    생각하는 성향은 은성과 동이와 비슷한 부분이 분명 있어요. 열심히 살고자 하고, 매사 긍정적이진 못해도 좋은 쪽으로 가고자 하고, 기본적으로 예의 없는 걸 굉장히 싫어하고요. 물론 그들처럼 마냥 밝게 웃고 살진 못하지만요.

    선한 캐릭터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으니 배우의 사명감 같은 게 생겼을 만해요.
    네. <찬란한 유산> 이후로요. 그때 지나가던 할머니가 갑자기 제 손을 잡더니 요즘 사는 게 너무 재밌다고, 고맙다고 하셨어요. 전 거기서 머리가 띵했어요. 아, 내가 이래서 연기를 하나? 내가 가진 뭔가로 누군가에게 훨씬 많은 것을 안겨줄 수 있구나 싶어서 감동이었어요. 어떤 분은 부인이 죽었는데 허한 마음을 제 드라마 보면서 이겨냈대요. 굳세게 헤쳐나가는 역할을 하다 보니 그런 반응 보이는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어요. 제가 긍정적인 기운을 준다는 걸 알 때마다 저 역시 자극을 받죠.

    그런 마음이 연기를 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끼치겠네요.
    사실 작품이 주어질 때마다 아등바등 낑낑거려요. 주로 즐기기보단 힘들어 하면서 했어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칭찬 받는 걸 좋아해서, 잘한다 소리 들으려고 뭐든 열심히 했어요. 최근에 깨달았는데 남들에게 사랑받으려 하기 보다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 부질없더라고요.

    언젠가 매니저가 동남아에서 한효주 난리 났다고 자랑했어요. 특히 홍콩에서 <동이> 시청률이 아주 높다면서요?
    그런가? 높으면 좋죠 뭐. 홍콩, 대만, 태국, 일본 등으로 프로모션 갔었어요.

    그런 경험을 했으니 콧대가 높아져 있을 줄 알았어요. 붕 뜨게 만드는 경험이 태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좀 신기한 정도죠. 어떻게 보면 영향력이 생기는 건데, 그걸 단순히 연기를 하는 목적으로 삼을 게 아니라 어떻게 좋은 쪽으로 쓸 건지에 대해서도 분명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저에게도 곧 그런 시기가 올 것 같아요.

    한효주도 마음속 깊은 곳엔 배우로서 야심이 있나요?
    제가 보기에 전 욕심이 없는 편은 아니에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 내려놓고 유유자적 한번 살아보고 싶단 생각도 해요. 요즘 마음속에서 계속 부딪쳐요.

    안젤리나 졸리 같은 배우는 어때요? 할리우드의 어떤 배우들은 한번 움직일 때도 보폭이 다르죠. 아이들을 살리고, 정치자금도 조달하고.
    멋지지만 제 성격상 그렇게까진 못할 거예요. 오드리 헵번은 어때요? 김혜자 선생님도 계시고.

    그럼 여배우가 작품 속에서 멋지게 나온 영화를 꼽자면요?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만, <팩토리 걸>의 시에나 밀러, <라비앙 로즈>의 마리온 꼬띠아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주인공. 모두 여배우 원톱으로 다양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작품이에요. 저도 언제 한번 터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끼가 많다고 생각해요?
    어설프게요. 제가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어서, 확 가진 않아요. 확 가는 걸 두려워하기도 해요. 그래서 끼가 있다 해도 은근하게, 혼자 소심하게 즐기는 것 같아요.

    노래하고 춤추는 건 좋아해요?
    춤은 잘 모르겠고 노래하는 건 좋아해요.

    노리플라이와 함께 부른 곡을 발표하기도 했죠? 노래하는 모습마저 한효주는 잔잔했어요. 하지만 원래의 한효주는 분명 끼가 있는 타입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아직 모르겠어요. 발굴 중이에요.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더 끄집어내고 있긴 한데, 나오려고 하진 않아요. 애들이 좀더 숨어 있고 싶은가 봐요. 하하.

    그래도 언젠간 끌어내고 싶은 거죠?
    나올 때 되면 알아서 나오겠죠 뭐.

    아까 물 한잔 갖다 주겠다고 했을 땐 왜 그렇게 어색해 했어요?
    아… 뭐 그런 건 제가 해도 되니까요. 매니저 오빠야 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얼마든지 부탁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일이 있는 거잖아요.

    음… 여배우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죠?
    특별하면서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존재.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건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남들이 보는 나는 여배우지만 제가 생각하는 나는 그냥 나잖아요. 그냥 나를 봤을 땐 살아가는 데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배우들은 일을 하지 않는 기간이 휴가인 셈인데, 그 기간을 영리하게 잘 쓰지 않으면 바보가 돼요.

    최근에 주어진 휴가는 어떻게 영리하게 보냈나요?
    요즘엔 잠을 잤어요. 잘 수 있을 때까지 한번 자보려고… 그림 그리고, 글도 쓰고 그래요. 백화점엔 잘 안 가는 편인데 백화점 식품관에 들를 때가 있어요. 한 끼를 먹더라도 압력밥솥에 밥 짓고 국 끓여 먹으려고요.

    한효주는 애매모호한 데가 있어요. 선하지만 만만한 사람은 아니고, 분명 뜨거운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주로 무심하고 차가워 보이네요.
    스윗하진 않아요. 오히려 차가운 쪽에 가깝고, 뜨겁게 달아오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이에요. 친구들도 처음엔 저를 좀 알 것 같대요. 그러다가 조금 가까워지면 진짜 모르겠대요. 더 가까워지면 그제서야 아, 그렇구나, 이런 느낌? 아, 갑자기 누가 해준 표현이 생각났어요! 옛날에 누가 저더러 “넌 니가 끓이는 된장국 맛이 나”라고 했어요.

    무슨 말이죠?
    전 된장국을 심심하게 끓이거든요. 간을 잘 안 하고 그냥 멸치 우려낸 물에 된장 조금만 넣어요.

    그 누군가는 무심히 말한 게 아니라 작정하고 말한 것 같네요.
    네, 그랬어요. 조금은 상처가 되기도 했는데 속으로 인정했어요. ‘어, 이거 좀 적절한 비유인데?’

    이제 된장국 먹을 때마다 효주 씨가 생각나겠어요. 여배우와 된장국이라… 나름 독특한 캐릭터인데, <여배우들> 같은 작품 제안 들어오면 잘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니요, 전 은근하잖아요. 그런 건 색깔이 분명해야 도드라지는데. 전 한번에 절 다 드러내지 못해요. 좋게 말하면 ‘볼매’예요,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김제원
      스탭
      스타일리스트 / 박만현, 헤어 / 김승원(르네 휘테르), 메이크업 / 원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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