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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 여배우 특집-이미숙] 그냥 이미숙

2016.03.17

by VOGUE

    [15주년 여배우 특집-이미숙] 그냥 이미숙

    여러분들이 기대하던 커튼 뒤의 여배우를 이미숙이 살고 있다. 정숙한 고전의 여배우가 아니라 농염한 현존의 여배우로.

    레오파드 프린트 수영복과 스커트는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나 또 그레타 가르보 시킬거야?

    고전적인 여배우, 싫으세요? 배우 이미숙에게 딱인데요.
    왜? 왜 내가 고전적이야? 난 러블리한 게 좋단 말이야.

    등장부터가 여배우답잖아요.
    그래? 여배우다운 등장은뭔데?

    일단 선글라스! 선글라스 안 쓴 여배우는 앙꼬 없는 찐빵이죠. 집안에서도 선글라스 쓰잖아요.
    암튼 난 나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거 싫어. 과장된 거 너무 싫어. 날 또 승무원처럼 만들고 자기들끼리 박수 치려고 그러는 거잖아? 난 있는 그대로 하고 싶어. 흐트러진 섹시함….

    정교하게 꽉 조이는 거 말구요?
    그래요. <트렌스포머>에 나온 여자 애처럼, 그런 흐트러진 아름다움이 좋아.

    알았어요, 그럼 모니카 벨루치처럼 하지요.
    발리 여자처럼 하지는 말라구.

    역시나 강력한 비비탄을 발사하시네요. 하하. 드라마 <웃어요, 엄마>의 엄마 역할은 저희 어머니 세대들도 굉장히 좋아하셔요.
    엄마 역할은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엄마답다고 생각 안 해요. 내 위치가 엄마 위치지만 엄마에 어울리지는 않아. 우리 애들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고정적으로 만들어진 엄마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만든 모습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이미숙이 만든 엄마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제부터 만들어 가는 거지. 난 엄마가 아니고 그냥 이미숙이에요. 누구 부인도 아니고 그냥 나인 거죠. 영화배우 이미숙인 거죠.

    예전에 제게 그러셨잖아요. 현장 나갈 때마다 장총을 준비할까, 비비탄을 준비할까, 하신다구.
    장전해서 스태프들을 닦달해야지.

    하하. 오늘은 뭐하셨어요?
    딸하고 요가 갔다가 골프 연습 갔다가 여기 왔어요.

    딸이 이제 엄마 친구죠?
    우리 딸이 나를 ‘엄마’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거야. 걔는 열심히 사는 모범적인 선배를 하나 얻은 거지. 내가 관리하고 활동하는 거 보고 배워서, 그 애도 스스로를 아끼고 엄청 독립적이라구.

    잘 자랐네요.
    파슨스에서 장학금 받고 다녀요.

    이제 성인으로 서로 조언을 주고받겠어요?
    기왕이면 겪어야 할 걸 다 겪어봐라, 그래요. 어느 분야든 고통의 맛을 알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구. 이 직업도 사람들이 허상만 보지 배우가 되는 과정을 안 보잖아. 나는 내 딸을 내 동생이라 그래요.

    하하. 엄마가 아니라 언니인 거네요.
    난 내 동생 유진이가 너무 좋아요. 그 애가 속에 질투도 많은데, 그걸 표현도 안 하고 무뚝뚝하게 최선을 다해. 예뻐.

    딸은 배우로서의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까도 요가 끝나고 그래요. 다른 엄마들은 아파할 나이인데 나는 바지런하게 움직여서 좋대.

    작품 얘기는 안 하나요?
    중고등학교를 외국에서 다녀서 그런 걸 잘 몰라요. 거기선 엄마가 여배우라고 해도 실감을 못하니까. 오히려 파슨스 가서 한국 애들 만나니까 엄마가 이미숙인 게 대단한 거라는 걸 알았대. 엄마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나? 엄마를 능력자라고 생각하니까 돈을 뜯는 거지. 사치가 극에 달하셔서는.

    좋은 옷 가지고 같이 다투세요?
    하하. 동대문 가서 옷 사서 같이 연출해보고 그래요. 나보고 엄마 옷 버리지 말래. 다 자기가 입을거래.

    태닝 하셨어요? 가무잡잡해서 더 섹시해 보여요.
    태닝 했어요. 딸은 날더러 같이 타투하재요. 엄마는 배역 때문에 안 된다고 했지.

    이미숙은 아무래도 러닝머신 위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 같아요.
    어쩌면. 아흔 살쯤에. 나도 내 미래가 궁금해요. 내가 30대 후반에 <정사>를 했는데, 40대가 돼서 50대 모습을 그렸을 때, 딱 지금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60을 기다린다구. 별로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목주름만 조금 더 늘겠지. 난 오십 둘인데 갱년기도 안 겪었어요. 노년으로 가면 60에 심하게 겪을 수도 있겠지. 경미하게 지나갈 수도 있고. 방법은 운동밖에 없어. 기름 지고 맵고 짠 것 절대 피하고. 50대부터는 음식 관리를 시작했어요.

    영화 <여배우들> 이후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보지 않나요? 성격적인 매력이 잘 드러났어요.
    저는 주위 이야기에 별로 귀를 안 기울여요.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배우로 늙어가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이 있다구. 배우가 연기로 존재하는 거지만, 그래도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싶어. 친근하면서도 멋스러운. 자기 세계에 갇히지도 않고 대중들에게 휩쓸리지도 않고 대중이 원하는 연기의 폭도 다 가져가면서. 연기의 장르도 없어. 배우 이미숙이라는 이미지 타이틀, 그것만큼은 타협하지 않고 어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도 않고 가져가고 싶어요.

    언젠간 할머니 역할도 하시겠죠.
    할머니 역할도 할 거예요. 그건 역할이에요. 역할 연기지.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바빠요. 배우로 산다는 게 그렇게 바쁜 거라구요.

    어찌 보면 두 가지 연기를 하시는 거네요. 드라마 속에서의 역할 연기, 배우로서의 이미지 연기.
    그런 거 같아요. 엄마 역할은 잘 못하지만, 배우 이미숙을 위해서는 할게 많아요. 하루 일과가 그 안에서 움직여요. 저녁을 뭐하나, 우리 애가 공부를 어떻게 하나, 그런 건 잘 못해요.

    여배우의 가족들은 각오가 필요하겠어요.
    가족에게는 좋지 않죠. 희생을 당하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커가죠.
    그 아이들 커가는 걸 장기적으로 보니까 아이들도 부담 없는 부모가 좋은 듯해요.

    오랜 세월 여배우를 연기하시는 데 중요한 건 뭐죠?
    관리요. 체력이 뒷받침돼야죠. 액티브한 에너지가넘쳐야 해요. 그냥 몸매 예쁜 거랑은 달라. 나는 혼자 씩씩하게 다니면서 에너지를 비축해요. 그러니까 불면증, 우울증도 없고 와인 한 잔 마시면 딱 잠을 자.

    스트레스는요?
    누굴 하나 잡아서 끝까지 풀어야지. 호호. 장총이나 비비탄을 준비해서.

    좋은 배역도 하셔야죠. 좋은 감독 만나서.
    좋은 감독 나쁜 감독은 없어요. 인생에서 결국은 좋은 감독 나쁜 감독을 떠나 이 사회에서 내가 양면을 보여줘야 하는 위치예요. 나도 좋은 감독들하고 일을 하며 잘나갈 때가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들과 일을 안 해도 내가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는 거야. 얼마나 행복하냐구.

    결국 여배우 인생의 감독도 자기 자신이라는 얘기네요.
    그렇지. 배우 욕심은 좋은 감독 좋은 작품 만나 인지도 쌓는 거지만, 자꾸 거기 갇히면 작아져. 내가 좋게 만들 수도 있잖아. 아니면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줄 수도 있고.

    시야가 트이신 것 같네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1년 전부터. 천주교 성당에 들어가서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어요. 죽을 때까지 할 건데,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대신 가지고 계신 여배우 에너지는 <보그>와 화보로 풀면 되겠네요.
    난다 긴다 하는 패션 스태프들이 붙어서 이런 걸 함께해주면 좋지.

    그걸 대단히 기뻐하셔야 해요. 패션 스태프들도 최고의 여배우와 함께하고 싶어 하거든요.
    나는 그들이 나를 원해서 계속 화보 찍고 싶어 하도록 관리를 해줘야겠지. 60대가 돼도 아마 <보그>와 촬영할 거예요. 나이 들어서도 이 스태프들이 나를 부려먹을 거라구. 대신 모자, 그물 이런 거 씌우고 승무원처럼 뻔하게 연기하라고 하면 못해. 나는 계산이 아니라 감성으로 움직이는 배우라구.

    역시 최고의 역작은 <정사>겠죠?
    저는 원래 <정사> 같은 영화를 좋아해요. 남녀 간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해요. 여자 감성이 뛰어난 편이야.

    <여배우들>에서는 어떠셨어요?
    여배우의 뒷이야기는 다 궁금해 하지 않아요? 배우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나도 궁금해요.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마약하고 다이어트 약만 먹을까? 그들의 생각은 뭘까? 처음으로 그걸 보여줬잖아. 작품보다는 이야깃거리지만, 실사 같은 거짓말을 보여준 거지.

    이미숙을 연기하는 기분은 괜찮았나요?
    뭐 있는 그대로. 거침없이 했어요.

    여배우들과 와인을 마시던 장면에서는 가장 먼저 눈물을 터뜨리셨어요.
    나이가 많든 적든, 인기가 있든 없든 간에 여배우들이 안고 가는 고통은 똑같다구. 촬영 안 된 것 중에 더 솔직한 이야기가 많았을 거예요.

    배우가 아닌 직업을 생각해본 적은 없으시죠?
    한 번도 없어요. 저 같은 성격에 조직 생활을 하겠어요, 장사를 하겠어요. 배우 생활하면서 후회 없이 하려고 일부러 최면을 걸고 했어요. 다른 건 못한다.

    <정사 2>가 나온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래요? 그건 더 나이 들어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유아인이 이미숙 선배와 격정 멜로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적이 있어요.
    정말? 나 또 벗어야 돼? <성균관 스캔들>에 나온 그 남자 배우지?

    상대역으로 어떠세요?
    금상첨화지.

    요즘 여배우들 나온 영화는 어떻게 보셨어요? 글쎄.
    글쎄. 여배우들이 많이 안 나오던데…

    <만추>는 보셨어요? 탕 웨이 나온 거요.
    탕 웨이 것은 못 보고, 김혜자 선생님이 하신 <만추>는 봤지. 난 요즘 영화보다 옛날 영화가 좋아. <졸업>에서 더스틴 호프만을 유혹하는 미세스 로빈슨이 정말 멋지지. <언페이스풀>도 너무 좋아. 다이안 레인이 뉴욕에서 프랑스 남자 처음 만날 때 바람이 불잖아요.

    그 장면은 모든 여배우들의 판타지인 듯해요. 애드리언 라인 감독이 정말 여자를 잘 그렸어요.
    아! 진짜 머리털 한 올까지 에로틱하던걸.

    여전히 자연 미인이시죠?
    그럼요. 관리는 좀 해요. 그걸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고. 성형으로 얼굴 틀을 바꾸는 짓은 싫어요. 대신 나이에 맞게 늙기는 싫어.

    죽을 때 어떤 유언을 남기고 싶으세요?
    난 나 없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까가 더 궁금해. 아, 이 푸르른 산천초목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아. 그래서 내가 자살은 생각 안 해. 지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나만 늙어서 사라지는 게 견딜 수 없어. 그래도 여름엔 비가 오고 겨울엔 눈이 내리고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엔 바람이 불 거 아냐. 거기서 나만 없어지는 거잖아. 그런 생각하면 살짝 센치해져. 더 내려놔야 하는 건가?

    하하.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그래요. 한 30년은 너끈히 여배우 이미숙으로 갈 수 있겠어. 맑은 정신에 건강까지 가졌으니까!

    가죽 소재가 트리밍된 원피스는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벨벳 슈즈는 발리(Bally), 골드 수갑 팔찌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포토그래퍼
      홍장현
      스탭
      스타일리스트 / 김성일, 이경원, 메이크업/ 박태윤, 헤어 / 박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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