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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우림을 모함했나

2016.03.17

by VOGUE

    누가 자우림을 모함했나

    늘 수상한 구석이 있었던 밴드답게〈음모론〉이라 명명한 8집을 들고 돌아온 자우림. 세상의 무성한 말들이 자우림이라는 무성한 숲을 덮어버릴 듯한 지금, 여전히 유쾌하고도 염세적이며 명백한 그들.

    이선규의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팬츠는 L.B.M. 1911(L.B.M.1911 at San Fransisco Market), 슈즈는 쉐 에보카(Che Evoca), 김윤아의 드레스는 브리오니(Brioni), 재킷과 웨지 힐은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구태훈의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팬츠는 장광효(Caruso by Jang Kwang Hyo), 스니커즈는 아디다스(Adidas), 김진만의 팬츠와 재킷은 장광효,셔츠는 라 피규라(La Figura), 니트와 타이는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East Harbour Surplus at San Fransisco Market), 워커는 발리(Bally).

    “이번엔 잘 하셨어요?” 3년 만에 앨범을 낸 자우림과 만나면서 첫 화두로 예능 프로그램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선규(기타)는 흠칫하며 물었다. “‘이번엔’ 잘 하셨냐구요?” <나는 가수다>가 아니었다면 대화는 다른 데서 시작했을 것이다. 8집을 낸 15년 차 밴드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도 있고, 2010년에 나온 김윤아의 솔로 3집으로 운을 뗄 수도 있었다. 혹은 초등학교 3학년 2반의 반장이 된 이선규의 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김윤아의 다섯살 된 아이, 긴 연애 끝에 결혼한 구태훈(드러머)의 신혼 얘기라든지 아직도 장가를 안 가서 멤버들에게 짐짝 같은 존재인 김진만(베이스)의 ‘허세로 여자 꼬시는 법’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로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 출연 가수들 중 가장 의외의 인물들인 자우림 앞에서, 결국 이야기의 시작은 그 방송이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꼬박 하루 종일 진행되는 강도 높은 녹화의 여파로 녹화 전날과 다음날은 웬만하면 스케줄표를 비워두는 상황. 이날은 자우림이 신해철의 ‘재즈카페’로 본경연을 치르기 이틀 전이었다.

    이들은 김윤아가 <위대한 탄생>에 출연하고 있을 때 때부터 <나는 가수다> 연출진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러니 고민하고 승낙하기까지 수 개월이 걸린 셈이다. 자우림에게 어떤 마음으로 출연을 결심했는지 4지 선다형의 보기를 줬다. 1. 재밌겠는데? 2. 이왕 섭외 들어온 거, 우리 음악을 보편적인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한데? 3. 우리에게 좋은 기회 아닌가? 4. 주류 프로그램? 우리가 공략해주겠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은 빨리 보기 5번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 네 가지가 모두 해당돼요’라고 답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의 지향점과 프로그램이 선호하는 지향점이 상극 관계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고사했죠. 그런데 소속사에서는 계속 하자고 졸랐어요. 결정 짓기 전날 밤까지 계속 갈등했어요. 소속사 사장이 우리 멤버이기도 해서 승낙한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절대 안 했을 거예요. 저 사람, 뼛속까지 사장이에요.” 김윤아의 지목에 모두 구태훈을 쳐다봤다. 나머지 멤버들이 거들었다. “이중인격자.” “이중인격 아니고 그냥 ‘사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 시청자들도 그 무대 위에서만큼은 가수가 어떤 패턴의 모습을 보여줘야 감동이 솟는지 조금 안다. ‘고래사냥’을 부르며 등장과 함께 1위에 올라섰으나 이후 계속 하위권의 ‘성적표’를 쥔 자우림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나는 가수다>에서 이기는 법, 이선규의 묘사에 따르면 이렇다. “팍! 터뜨리고 꽉! 내지르고 윽! 하다가 마지막엔 확!…” 하지만 이 프로의 한 자문위원이 표현한 것처럼 ‘청중 평가단에게 가장 아부 떨지 않는 팀’인 자우림은 공연이 끝나면 함께 여운을 누리는 제스처 없이 그냥 퇴장해버린다. 하위권을 맴돌 때도 별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실 자우림의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지만, 예능은 이들에게 부담감을 요구한다. “그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가요계에서 쉽게 상위 1% 안에 드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럼 그것만으로 대박 아니에요?(이선규)”

    김윤아의 미니 드레스와 워커는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벌키한 니트는 미쏘니(Missoni), 스카프는 쟈니 헤잇 재즈(Johnny Hates Jazz), 김진만의 옐로와 그린 레인코트는 장광효(Caruso by Jang Kwang Hyo).

    가수들에게 주어지는 찬란한 순위와 상관없이, 소개된 곡들은 방송 바로 다음날이면 각종 음원차트의 상위권에 올라 있다. 자우림이 부른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과 패닉의 ‘왼손잡이’도 그랬다. 문제의 ‘꼴찌’를 한 곡이라도 어쨌든 사람들은 그 곡을 소비한다. 그 점에 대해 이선규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혈을 기울여 라이브 연주를 해도 그 음원은 가수들이 공들여 만든 앨범만큼 질이 좋진 못해요. 그런데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음악은 외면 받고, 꼴랑 일주일 준비해서 선보인 음악이 방송 바로 다음날 음원 차트의 저 위에 있는 건 기분이 좀 그렇죠.” 김윤아는 단지 부담스러운 게 있다면 방송 내부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말보다 세간의 말이 너무 무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 재미 있어서 나오는 웃음과 헛웃음이 섞인 듯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재밌고 웃기지 않나요? 처음에 순위에는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 우리가 정말 계속 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니, 그게 뭔가 나쁜 그림인 것처럼 돼버렸잖아요. 만화에서 누군가 함정에 빠지는 개그 상황 같기도 하고….”

    사실 자우림과의 만남은 두세 달 전에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김윤아에게 바이러스성 안면신경마비 증세가 찾아왔다. 그즈음이 바로 <나는 가수다>의 출연을 확정했을 때다. 김윤아가 <위대한 탄생>과 앨범 작업을 병행하는 동안 얻은 병들은 목디스크, 신종플루,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안면신경마비다. 이제 재발의 위험은 없지만, 무리하면 체력은 금방 고갈된다. 방송을 보면 어느 시점부터 김윤아의 얼굴은 그녀의 표현대로 이미 자고 있다. 어느 날은 카메라 앞에 앉은 자신의 얼굴 한쪽이 점점 딱딱해지는 걸 느낄 정도였다. 저녁부터 시작되는 경연이 끝난 후에도 녹화는 밤 12시, 1시까지 계속된다. “바이러스성 마비 증세라는 건 스트레스도 한 요인이겠지만 체력이 바닥을 칠 경우 올 수 있대요. 솔직히 제 상태 때문에 <나는 가수다>를 못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혹시라도 앨범 홍보에 차질을 빚었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 책임을 지기 싫었어요. 이런 얘길 우리끼리 구체적으로 입에 올린 적은 없지만 아마 멤버들 각자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예요. 나는 아티스트니까 엇나가겠다는 식의 태도는 회사에 무책임한 행동이기도 하고요.”

    작곡가가 곧 그 곡의 프로듀서가 되는 구조에서는 곡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 가장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퇴근’하면 집에서 다음날 작업할 음원을 만지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아침 8시 30분(대다수 뮤지션들에겐 새벽 같은 시각)에는 일어나야 했던 김윤아는 이번 앨범을 피 같은 앨범이라고 했다. 8집의 앨범명은 <음모론>. 늘 수상한 구석이 있었던 자우림과 더없이 어울리는 제목이다. 이름 모를 공모자들에 의해 숨겨진 세상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는데, 별로 무게를 잡지 않는다. 녹색성장 시대에 제격인 전기자동차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생산이 중단된 EV1에 대한 노래는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편안히 흐르고, 미디어의 진실에 물음표를 달 때도 호전적이기보다는 유쾌하다.

    자우림이라는 숲에서 빠져 나와도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김윤아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싣는 타입이 아니라 많은 곡들마다 하나의 연극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컨셉추얼한 단편들을 완성하는 식이다. 결혼한 해에 나온 자우림 6집 앨범에서 사람들은 쉽게 그녀의 밝은 기운을 기대했지만, 그 앨범은 작정한 듯 음울했다. “내놓은 결과물과 그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건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음악이든 영화이든 문학이든, 기본적으로 다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 장르라고 생각해요. 슬픈 사랑 이야기만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정말 그런 사랑만 하고 사나요? 그건 대중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판타지예요.” 자우림에게 설득 당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엔 김윤아가 좀더 ‘자기 이야기’를 하길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김윤아는 매번 음악을 통해 배설하고 치유한다. 토해버려서 없애야 할 것들을 뱉어내는 음악들. 김윤아는 그런 행위를 통해 나온 음악을 공감해주는 이들이 자신처럼 치유 받을 거라고 믿으면서, 누군가가 들어줄 음악이 자신의 배설물이라는 죄의식을 조금 덜어낸다.

    구태훈의 집업 후드 티셔츠는 장광효, 팬츠와 티셔츠는 쿠드(Kud), 코트는 로리앳(Roliat by San Fransisco Market), 슈즈는 쉐 에보카(Che Evoca), 김윤아의 니트는 DKNY, 튀튀 스커트는 레페토(Repetto), 펌프스는 더 슈(The Shoe), 이선규의 니트는 장광효, 스니커즈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그 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이번 앨범에서도 그렇듯, 목소리만으로 여러 얼굴을 오가는 보컬리스트의 모습이다. 김윤아의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얇지만, 노래할 땐 고풍스러운 목소리와 아이의 목소리, 강함과 가녀림을 마녀처럼 넘나든다. 마음먹은 대로 연출 가능한 김윤아의 보컬이 가장 빛났을 때는 담백하면서도 호소력 있었던 ‘봄날은 간다’를 불렀을 때 아닐까? 세 남자 멤버들은 노래 부르는 김윤아의 모든 목소리를 좋아한다. 이 남자들은 저희끼리 술을 마시다가 술 기운이 오르면 김윤아의 솔로 앨범을 찾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그때면 “대박!” “윤아 불러!” 하는 추임새가 곁들여진다. “그건 좀 소름 끼치는데요?” 김윤아는 쑥스러워서 내뱉었지만 이런 에피소드만으로 자우림이 얼마나 축복 받은 밴드인지 알 수 있다. 남자 냄새 나는 끈끈한 동지애와는 조금 다른 인상이다. 팀의 주축이자 유일한 여성 멤버에 대한 믿음이 밑바탕 된 관계가 이 밴드의 큰 동력일 것이다.

    자우림은 처음부터 ‘팬들을 배신하는 밴드가 되겠다’고 말해왔다. 그건 지향점이 타인에게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숲을 울창하게 키워왔던 이들은 밴드 생활의 정점을 찍고 잘 유지하는 중일까? 아니라면, 정점을 찍는 때는 언제쯤일까? “정점 찍을 마음이 없는데. 왜 찍어야돼요? 잘 살고 있어요 우리는. 한 길을 오래 팠다는 얘길 하려면 아직 25년이 모자란 것 같아요.(김윤아)” “지금 적당히 터진 것 같습니다.(이선규)” 아마 이선규가 지금 적당히 터진 것 같다고 느낀 데는 <나는 가수다&gt가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주말 프라임 타임 때 라이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판은 밴드에게 자주 깔리는 기회가 아니다. 스트레스나 세간의 무성한 말과는 별개로, 그 기회는 자우림에게 확실히 리프레시 되는 기분을 안겨줬다. “이 방송을 하면서 즐거운 순간은 새 곡을 받아 들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할 때예요. 편곡하고 합주하면서 의논하는 시간은 즐겁죠.(구태훈)”

    <나는 가수다&gt로 인한 득과 실을 묻는 질문에 김진만이 대답했다. “유명해졌습니다.”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이 김윤아를 알아보고 사인해달라고 하는 상황은 멤버들이 10년 만에 보는 풍경이다. 데뷔 15년 차 밴드의 ‘유명세’라니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번거로움이자 기쁨이다. 어쨌든 이왕 시작한 거 어떻게든 오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슬슬 올라오지 않을까? “김윤아도 몸 조심해야 하고 저도 좀 피곤해서….(이선규)”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장에게 맨날 징징댑니다.(김진만)” “아, 다음 앨범 낼 때는 활동량을 최대한 줄일 거예요.(구태훈)” “저런 얘기 매번 해요. 우리 또 속았어요.(김윤아)”

    도발적이고 위험한 방송에 뛰어든, 가요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 중 하나. 추석 연휴 때 방송된 <나는 가수다&gt에서 자우림은 ‘재즈카페’로 1위에 호명됐다. 그 무대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김윤아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아마 별 미련 없이 장렬하게 전사하려던 자우림은 지금쯤 다시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히도 이들의 신보 제목은 ‘음모론’이다. 혹시 청중 평가단이 그들을 희망고문 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 ‘탈락 위기론’을 제기하며 무성한 말을 하는 사이, 자우림은 예측 불가능한 ‘성적표’를 들이민다. 그리고 그와 상관없이 지극히 자우림적인 앨범과 함께 순항 중이다. 자우림식으로 말하자면 한 예능 프로에서의 탈락과 생존 여부가 밴드의 체면에 누를 끼칠 거라는 우려는 넌센스다. 누가, 자우림을 모함하고 있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안지섭
      스탭
      스타일리스트/오영주, 세트 스타일링/ 다락, 악기 협찬/코스모스 악기, 헤어&메이크업 / 김활란, 양선영,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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