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크리스챤 라크로와와 나눈 인터뷰 1

2016.03.17

by VOGUE

    크리스챤 라크로와와 나눈 인터뷰 1

    초현실주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부활!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첫 번째 컬렉션을 위해 크리스챤 라크로와가 4년 만에 패션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60여 년 만에 부활한 스키아파렐리와 돌아온 꾸뛰리에 라크로와의 랑데부 순간을〈보그 코리아〉가 함께했다.

    지난 7월 초, 파리 오뜨 꾸뛰르 기간 동안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은 새로운 부활에 들뜬 분위기였다. 30년대 초 코코 샤넬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패션의 여인천하 시대를 누렸고, 후대에 파격적인 미술사조로 기억될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뮤즈로 일생을 보낸 이탈리아 여인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가 그 주인공. 엘자가 관여한 미술품을 구입하거나 소장품을 모아 그녀의 아파트를 다시 꾸미던 메종이 드디어 첫 컬렉션을 공개했다. 판매나 룩북 따위는 필요 없었다. 토즈 그룹과 메종 스키아파렐리는 오직 엘자를 위한 헌사를 보내는 것에 충실하기로 했다. 토즈 그룹에 의해 부활한 메종 스키아파렐리는 한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내세워 운영하지 않기로 선언했다(존 갈리아노부터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까지 여러 패션 천재들이 후보로 거론됐었다).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낙점된 첫 번째 인물은, 4년 전 패션계에서 은퇴한 크리스챤 라크로와(Christian Lacroix)!

    스키아파렐리와 라크로와의 만남을 축하하기 위해 오프닝 전날 칵테일 파티가 열렸고, <보그 코리아>도 초대받았다. 토즈 그룹이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뮤즈라고 발표한 모델 출신의 여배우 파리다 켈파의 호스트로 열린 파티에는 전 세계 패션 별들이 죄다 입장했다. 전날 밤, 마네킹들을 일일이 손보고, 모자를 바꿔 씌우고, 액세서리를 놓고 고민하기도 하는 등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겨우 잠을 청하러 간 라크로와는 파티 내내 예의 그 낙천적인 미소로 가득했다(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미소인가!). 진짜 대나무를 엮어 만든 새장 작업을 끝낸 뒤 그의 작업 일지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나는 ‘끝’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밀스러운 퇴장’이나 오‘ 르간의 고음’ 같은 클라이맥스와 관련된 표현을 더 좋아한다.”

    행사장 입구에는 한때 방돔 광장에 있던 엘자 스키아파렐리 매장 입구를 그대로 모방한 거대한 새장과 벚나무,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아이패드 화면 속)이 다음날 예약 손님들을 1:1로 맞을 준비를 마쳤다. 파티 초대장을 장식한 라크로와 특유의 회화적 패션 일러스트는 그가 스키아파렐리 자료실을 참고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대로 앉은 자리에서 신나게 그린 99벌 가운데 한 장. 이 한 장을 포함한 18개 룩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부활을 위한 라크로와의 18벌 작업은 두 사람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완벽한 하모니였다.

    지저귀는 새들의 영상이 상영되는 아이패드, 거대한 벚나무, 시공을 초월한 느낌의 새장으로 장식된 행사장 입구.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첫 번째 부활을 위해 라크로와는 그 유명한 랍스터 오브제, 사리 등 엘자의 상징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이튿날, <보그 코리아>는 컬렉션을 좀더 꼼꼼히 감상하기 위해 약속 시간에 장식 미술 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새장 속에는 모델 두 명이 스키아파렐리 옷을 입고 초대된 사람들을 맞았고, 마네킹은 만화경 속 회전목마처럼 둥글게 진열돼 있었다. 스키아파렐리, 하면 떠오르는 쇼킹 핑크를 악센트로 한, 스키아파렐리의 서‘ 커스’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의상들! 스커트와 팬츠는 더치스 새틴의 풍성하고 빳빳한 질감이 느껴졌고, 비즈 자수의 붉은색 재킷은 몸에 맞게 재단됐으며, 스키아파렐리의 상징인 지퍼(옷에 지퍼를 단 건 그녀가 최초다)로 여미게 된 쇼킹 핑크 코트는 블랙 자수로 뒤덮인 뒤 리본 주얼리로 마무리됐다. “자수에서 비롯된 영감을 다양한 문화로 혼합한 뒤 만화경 속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처럼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라크로와는 첫 컬렉션에 대해 설명했다. 스키아파렐리의 또 다른 상징인 랍스터도 빠질 수 없다. 그것은 모자 뒤에서 슬며시 기어 나오거나 모피 스커트 위를 장식한 치렁치렁한 실버 주얼리, 허리를 조이는 블랙 재킷 벨트 위 은 장신구로 표현됐다. 물론 가장 압권은 전체가 비즈로 완성된 붉은색 랍스터!

    서양인들이 아시아를 잘 모르던 시절, 인도의 터번을 종종 쓰고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했던 엘자, 곤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주얼리로 재해석한 엘자 등도 라크로와 터치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컬렉션 일지에서 라크로와는 이렇게 회상했다. “스키압(Schip, 그는 엘자를 이렇듯 다정한 친구처럼 불렀다)을 향한 진정한 헌사를 위한 마지막 룩. 그녀가 사랑했던 스트라이프에 1880년대적인 바이어디어(Bayadere, 인도 무용수들이 입은 데서 유래한 스트라이프 무늬) 드레스를 접목했다. 그런 뒤 코케이드(Cockade) 리본을 가슴은 물론, 과장된 엉덩이를 연출하기 위해 뒤에도 달아 반전을 주었다.” 꾸뛰르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웨딩 드레스가 모두를 황홀경에 빠뜨리듯,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 룩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토즈 그룹 회장은 컬렉션을 접한 VIP 고객들이 판매용이 아닌데 도 불구하고 꼭 구입하고 싶다고 애원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판매를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1:1 관람이 끝난 뒤 <보그 코리아>는 비로소 크리스챤 라크로와와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만의 패션계 외출에 긴장했는지, 전날 파티 때에 비해 살짝 지친 모습이었다. 컬렉션이 전시된 두 개의 방 사이에 자리한 긴 복도에서 취재팀은 그의 인물사진을 촬영했다(예술계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된 경이로운 장소!). 촬영 중 땀을 흘리며 힘든 내색을 감추지 못 했지만, 대화를 나누는 중에는 큰 소리로 웃거나 열정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갖고 싶은 것을 손에 쥔 소년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심오한 철학과 인생관 속에서 풍부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의 표정을 보여주며 말이다.

    Vogue Korea(이하 VOGUE) 무슈 라크로와! 당신이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첫 컬렉션을 디자인한다는 소식을 듣고 설렜다. 당신의 디자인을 다시 볼 수 있어 반갑다. 보도자료를 보니 여러 장인들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는데, 이번 컬렉션을 위해 직접 팀을 구성한 건가?

    Christian Lacroix(이하 LACROIX) 그들은 모두 파리 꾸뛰르 하우스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자수를 맡은 메종 르사주는 물론, 오렐리 라누와젤레는 수상 경력이 있는 장인으로, 오래전 그녀가 학교를 갓 졸업하던 해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 붉은색 재킷 위에 놓은 자수가 그녀 솜씨다. 메종 미셸 역시 모자로 유명하고, 샤넬 하우스가 인수한 메종 가운데 하나다. 한때 내 팀에 소속됐던 아델린 새핀 역시 모자 장인이다. 주얼리 장인 메종 그리포는 아주 오래된 보석 하우스로 스키아파렐리와 작업한 이력이 있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메탈 작업을 도맡았다. 랍스터 주얼리와 그 외 소소한 보석들은 베로니크 나르시 담당으로 그녀는 내가 꾸뛰르 컬렉션을 진행할 때 함께했었다. 메종 레게롱은 기회가 되면 꼭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18세기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곳으로, 작업실에 들르면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묘한 곳이다.

    VOGUE 스키아파렐리의 부활에 의기투합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뭔가? 토즈 그룹 관계자들은 당신이 무려 99룩을 스케치했다고 설명했다. 아닌게아니라, 전시된 스케치 15개만 봐도 당신이 얼마나 즐겁게 작업했는지 충분히 느껴진다.

    LACROIX 아기와 같은 마음으로 99개 이상을 스케치했다! 토즈 그룹의 디에고 회장은 예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막역한 정도는 아니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기억해줬고, 그의 제안에 난 아주 행복했다. 2009년을 끝으로 내 컬렉션을 접었다. 지금은 패션 중심에서 벗어나 박물관과 오페라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니 스키아파렐리 컬렉션 디자인이라는 제안에 숙고할 수밖에. 그녀는 패션계에 엄청난 영감을 준 인물이고 아주 용감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 스타일 역시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녀를 위한 단발성 컬렉션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그녀가 주인공이 되는 오페라 무대를 상상했고, 그녀의 옷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생각하며 작업했다. 물론 모든 것은 엘자 스키아파렐리 그 자체로부터 비롯됐지만, 나만의 감각을 담기 위해 아카이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기억하는 그녀의 컬렉션, 가령 자수 디테일의 쇼킹 핑크 케이프 같은 뻔한 디자인이 아닌 뭔가를 하기 위해 감정을 가라앉힌 뒤 스케치를 시작했다.

    VOGUE 그래서 컬렉션이 온통 블랙 위주였나?

    LACROIX 엘자는 생전에 블랙으로 많은 작업을 완성했던 디자이너다. 당신도 알다시피 블랙은 슬픔을 상징하는 색이자,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들이 입었다. 스키아파렐리는 시대를 앞서 이미 모던한 컬러로 블랙을 지목했고, 추모가 아닌 축하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했다. 내게도 이번 컬렉션은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

    VOGUE 무엇에 대한 축하인가? 부활한 엘자 스키아파렐리를 향한 축하와 경배인가?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건 이번 컬렉션을 완성하는 데 땀흘린 파리의 장인들을 위한 축하인가?

    LACROIX 물론이다. 메종 스카아파렐리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번 컬렉션을 완성한 모든 것들에 대한 축하다. 이번 컬렉션은 하나하나가 독특하다. 모두 까다롭고,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갔다. 그것이 꾸뛰르다. 메종 스키아파렐리가 꾸뛰르인 것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포토그래퍼
      Won Ki Seo
      스탭
      취재/여인해(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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