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엔젤’들
갈리아노, 맥퀸, 샬라얀 등 패션 천재들이 만든 충격적인 옷의 발원지로서 패션 위크 이단아로 불리던 런던. 그러나 패션 전문가들의 체계적 지원은 물론 기업과 국가 차원의 후원 덕분에 런던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창의성과 상업성 사이에 균형을 찾으며 톱 디자이너 반열에 오르고 있다. <보그 코리아>가 런던에서 신인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후원하는 ‘엔젤’들을 직접 만났다.
Sarah Mower 사라 무어는 슈퍼 디자이너도 긴장시키는 ‘보그 월드’의 날카로운 패션 비평가지만, 신인 디자이너 육성을 위해서라면 정부 고위 관계자를 동행하고 직접 발로 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런던은 어떻게 신인들을 육성할 수 있었는지, 또 런던 패션 위크가 안정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사라 무어가 런던 패션의 현재를 정의한다.
“제 소개를 간단히 하라고요?” 사라 무어의 입김은 대단하다. 그녀는 10년 동안 미국 스타일닷컴에 패션쇼 리뷰를 썼고, 그보다 더 오래 미국 <보그>에 굵직한 패션 칼럼을 쓰는 중이다(최근에는 ‘보그닷컴’에 신랄한 패션쇼 리뷰와 기획 기사를 올리고 있다). 패션계가 존경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파워는 신인 디자이너들을 육성할 때 여과 없이 드러난다. 그만큼 다가서기 어려운 이 패션계 거물이 인터뷰 기획 단계에서 통상적으로 보내는 질문지(일명 섭외용 질문지로 참고하라고 보내는 것)에 예기치 않게 답변을 보내왔다. 이메일을 타고 날아온 글에는 익히 봐온 필력 안에 그녀가 패션 세상에 입문한 후의 이야기들이 소개돼 있었다. “새로 구입한 아이패드로 글 쓰는 건 정말 별로예요!” 아이패드 덕분에 그녀의 글은 중간에 끊겼고, “제발 이어서 쓰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답장을 부랴부랴 보냈다.
사라는 한국 디자이너 이정선의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촬영하면 어떻겠느냐고 <보그 코리아>에 제안했다. 그녀와 이정선은 뉴젠(‘뉴 제너레이션 어워드’의 약자로, 영국 패션 협회가 신인 디자이너에게 시상하며, 상금과 쇼 후원이 뒤따른다) 심사위원장과 수상자의 관계를 몇 년간 잇고 있는 특별한 사이다. 이정선은 흔쾌히 동의했고, 그녀의 도움으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2014 S/S 컬렉션 작업이 한창이던 이정선의 스튜디오는 사진가와 헤어&메이크업을 비롯해 취재 팀으로 구성된 <보그 코리아> 팀이 북적거리는 현장으로 돌변했다.
잠시 후 사라 무어가 도착했다. “오후에는 스텔라 맥카트니 브랜드의 머천다이징 디렉터인 예다 윤(그녀는 멀티숍 브라운스의 바이어와 미우미우의 머천다이징 디렉터를 거쳐 맥카트니 팀에 합류한 한국인이다)과 JS(디자이너 이정선)의 미팅이 예정돼 있어요.” 자신을 위해 <보그> 팀이 점령한 이정선의 스튜디오를 둘러보며 그녀는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뉴젠 심사위원장으로서 사라는 패션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에게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직접 현장에서 조언해달라고 부탁한다. 디자이너에게 후원금만큼 값진 패션 전문가들의 조언이야말로 컬렉션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하고 실질적인 도움이라는 것. 사라 무어가 비공식적으로 부탁하던 그 일이 올해부터는 아예 프로그램의 일부로 공식화됐다. 사라의 부탁을 받고 뉴젠 패널인 예다 윤이 스튜디오를 방문할 예정이다. “예다가 JS 컬렉션을 보고 머천다이징 과정을 도울 겁니다. 디자이너에게는 컬렉션과 세일즈에 관해 아주 귀한 정보를 얻는 지름길이 열리는 거예요.” 뉴젠 심사위원장 사라가 이끄는 패널은 패션 에디터, 예다 윤과 같은 브랜드 측 전문가는 물론, 백화점과 편집 매장, 리테일러, 온라인 에디터 등 다양한 전문가군으로 구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모두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들 철저히 ‘지원군’을 자청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부터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후세인 샬라얀이 신인 디자이너로 막 이름을 알리던 당시, 사라는 제인 셰퍼드슨(지금의 톱숍과 뉴젠을 만든 당시 매니징 디렉터로 현재 ‘휘슬스(Whistles)’ 대표)과 함께 톱숍을 위한 디자이너 협업 라인을 시작했다. “후세인에게 제 명예를 걸고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거물이 그의 컬렉션을 약탈(‘rape’라는 강한 표현을 썼다)하지 않을거라고 안심시켜야 했죠.” 우여곡절 끝에 후세인을 비롯한 런던 신인들은 톱숍과 협업을 통해 재정적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톱숍은 뉴젠 어워드의 메인 스폰서가 됐고(영국 패션 협회의 뉴젠 어워드는 1993년부터 시작, 톱숍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후원하고 있다), 톱숍 후원으로 디자이너들은 쇼장은 물론 재정 지원도 함께 받을 수 있게 다. 그러나 신인으로 이름을 알리던 런던 디자이너들은 하나둘 재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밀라노, 뉴욕, 파리 패션 위크로 건너가 자리 잡거나 빅 하우스 수장을 거치기도 했다. 15년 전 런던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영국 학생들이 보고 배울 패션 산업 자체가 없었어요. 아니, 시장이 아주 작았죠. 디자이너들은 어려움에 처해 허우적댔고, 서로 배울 점이나 도움을 줄 멘토마저 없는 상태였어요.”
어떤 조직도 나서지 않고 누구도 야망을 품지 않았지만, 사라와 제인은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해 런던 패션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두 사람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고 맹세했다. 때마침 새로운 디자이너 그룹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케인! 컬렉션을 보고 그의 뛰어난 재능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어요.” 케인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석사 과정 전임 교수인 루이즈 윌슨의 사사를 받은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조나단 선더스, 록산다 일린칙에 이어, 매리 카트란주, 이정선과 시몬 로샤, 토마스 테이트 등도 포함돼 있다. 루이즈가 배출한 디자이너들은 세계의 이목을 런던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인터넷을 통해 작은 디자이너들도 빅 브랜드와 동일하게 자신을 알릴 수 있었고, 덕분에 많은 리테일러들과 고객들이 참신하고 덜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스타일닷컴 패션 평론가로 활동하던 당시 사라 무어도 그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런던은 패션 부문에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반응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었다. “토니 블레어의 부인 셰리는 패션을 싫어했어요.” 사라는 당시 정부의 태도를 생생히 기억한다. 고든 브라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의 부인이 ‘지적인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정부도 패션이 인력을 고용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다음 정권의 안주인 사만다 카메론(스테이셔너리로 유명한 영국 브랜드 ‘스마이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은 본격적으로 영국 패션 협회를 위해 나서며 리셉션 디너를 주최했다. 이렇듯 런던 패션 위크가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당시 정부 각료이던 에드 바이지를 설득해 택시를 타고 이스트 런던에 있는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일일이 소개하고, 디자이너들이 런던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직접 눈으로 보여줬어요.” 이후 그는 문화부 장관이 됐고, 지금까지 런던 디자이너들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런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서울의 현실이 떠올랐다. 정부나 협회, 디자이너, 패션 기업 등이 각자의 주장만 펼치는 가운데, 젊은 디자이너들은 계속 배출되고 있지만 누구도 나서서 조직적으로 그들을 이끌 수 없는 현실. 그 점에 대해 그녀가 조언했다.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정치적이거나 완전히 분열된 상황에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조직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복잡한 서류 절차를 없애고 디자이너들의 현장을 봐야 해요.” 뉴젠 프로그램은 사라가 젊은 기자 시절, 막 시작되었다.
사라 무어는 영국 바스 지방에서 태어나 패션을 사랑하는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열네 살에 <보그> 정기 구독권을 선물 받았다. 그 후 올해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MBE(대영제국 훈장 제5등급) 작위를 받기까지 오로지 패션에 대한 열정만으로 지금까지 살았다고 덧붙인다. 그녀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권위 있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영국 패션 협회의 ‘신인 디자이너 홍보 대사’다. 그녀는 1979년 영국 <보그> 탤런트 콘테스트(지금도 매년 열리며 25세 미만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한다) 수상자로 뽑히며 패션계에 입문해 영국 <보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상사이자 편집장이었던 리즈 틸버리스와 함께 미국 <하퍼스 바자>로 건너가 경력을 쌓았다. 리즈 사망 후엔 안나 윈투어의 제안으로 미국 <보그> 객원 에디터가 되어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패션 에디터로 막 이름을 알리던 시절, 사라는 뉴젠 패널로 선정됐다. 뉴젠 수상자를 가리기 위해 모인 패널은 점심과 함께 배달된 와인만 기다렸고, 이에 대해 흥분했다. 그들 앞에는 단한 명의 디자이너, 디자이너 컬렉션도 없었다. 젊은 사라는 디자이너들은 어디 있느냐고 그들에게 외쳤다. 결국 자신이 직접 디자이너들을 찾아 나섰으며, 보드 룸에 앉은 패널과 디자이너들 간의 연결 고리 역할을 자처했다.
바야흐로 런던은 이전보다 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또 패션 전문가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신인들을 이끌고 돕는다. “네타포르테 같은 온라인 리테일러를 통해 디자이너들에게는 국제시장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영국 패션 협회가 주최하는 ‘런던 쇼룸’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곳곳에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이 팔리기 시작했죠.” 바이어들은 4대 패션 위크의 대미를 장식하는 파리에 가서야 최종 바잉 셀렉션을 결정한다. 이 점에 착안해 시작된 ‘런던 쇼룸’은 런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갖고 직접 여러 도시를 도는 프로젝트다. 파리에 이어 뉴욕, LA, 홍콩까지 섭렵한 ‘런던 쇼룸’의 다음 목적지로는 서울도 거론 중이다. “디자이너들이 시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정부도 알아야 합니다!” LA에 다녀온 피터 필로토가 가슴확대 수술이 유행인 LA 고객들에게 맞춰 드레스 가슴 부분을 모조리 다시 디자인한 일, 다양한 도시에 맞춰 사이즈를 제작하고 라벨링한다는 매리 카트란주의 사례 등등 ‘런던 쇼룸’의 교훈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은 놀라울 정도다.
그렇다면 안정 궤도에 진입한 런던 패션 위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협회 차원에서 주목하는 것은 교육입니다.” 2013년 초 영국 패션 협회장을 맡은 네타포르테 설립자 나탈리 매스넷이 5개년 계획의 주요 골자로 교육을 선정했다고 사라는 귀띔한다. 아울러 그녀는 자신은 무료로 학교에 다녔으며, 오히려 정부가 생활비를 보조해주었다고 덧붙인다. 다만 매년 치솟는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장학금을 통한 재정적 지원은 물론, 학생들에게 패션 비즈니스 분야에서 필요한 여러 역할도 알려야 합니다.” 사라가 이정선의 스튜디오에서 다음 컬렉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팀을 가리키며 말했다. 디자인 작업을 위한 팀은 물론, 디자이너가 브랜드로 온전히 일어서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꾸려갈 팀이 구성돼야 한다는 것. 아울러 협회는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MBA 학생들과 디자이너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팀워크을 맞춰볼 기회도 마련 중이다.
약속 시간에 맞춰 예다 윤이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시 뉴젠 심사위원장으로 돌아가 사라가 패널인 예다와 수상자인 디자이너 이정선을 소개했고, 세 사람은 그녀의 다음 컬렉션을 놓고 심층 분석에 들어갔다. 사라는 체크 패턴 위에 열을 가하는 기법으로 새로운 패턴을 구성하는 패브릭 개발 과정을 흥미로워했지만 예다는 판매가 힘들 거라고 제동을 걸었다. 디자이너에게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건 ‘정체성’이라며 디자인 방향과 시각에 대해 설명하던 사라도 바이어들에게 좌지우지되지 않되 제품 제작에 대한 타협의 선을 정확히 하라는 예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세 여자는 컬렉션을 다각도로 살피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정선은 예다를 비롯한 모든 패널과 직접 대면을 거쳐 컬렉션은 물론,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 성장을 위해서만 노력하면 된다. 패널의 멘토링 시스템은 지금도 뉴젠 디자이너들의 성장을 끊임없이 후원하는 중이다.
Yasm in Sewell 20대 초반에 자기 이름을 건 편집 매장으로 패션계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멀티숍 브라운스의 바잉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전 세계 패션 비즈니스 인력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야스민 스웰. 신인 디자이너 육성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야스민을 만나기 위해 가족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그녀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다른 엄마와 다를 바 없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는 야스민 스웰. 평소 같으면 사무실에서 팀원들과 함께 일에 파묻혀 있거나 얼마 전 오픈한 팝업 숍 ‘Beach in the East’에서 고객이자 친구들과 웃고 마시느라 바쁠 테지만, <보그 코리아> 팀을 만나기 위해 일찍 집으로 향한 것이다. 야스민의 집은 런던 동부 쇼디치에 있다. 패션계에서는 이미 선배 디자이너들과 후배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가 나란히 들어선, 핫하기로 유명한 이곳으로 최근 패션스쿨들이 캠퍼스를 옮기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개성 만점 상권이 들어서는 등 새바람이 부는 중이다.
무릎까지 오는 팬츠에 편안한 스웨트셔츠를 매치한 야스민은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 ‘Beach in the East’ 팝업 숍의 테마인 70년대 캘리포니아 스케이터들에게 꽂혀 있다. “18년간 패션계에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상품에 제 이름을 새긴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여러 브랜드와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이 팝업 숍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었는데 아주 즐거웠죠.” 그녀의 사무실 옆에 들어선 팝업 숍은 수영장을 연상시키는 각종 프롭(수영장에 달린 철제 계단과 물이 내려가는 하수구 장치, 시멘트로 만든 곡선형의 수영장 벽면)으로 장식됐다. 방치된 수영장을 스케이터들이 그래피티로 뒤덮고, 각종 묘기를 선보이며 즐긴 데서 영감을 얻은 것(어디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어느 보더가 “수영장 어디 있나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묻는 통에 난감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야스민에게 팝업 숍 프로젝트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이었다. 전체 테마를 잡는 일부터 매장을 채울 제품까지 모두 야스민과 그녀의 팀이 세세히 챙겼다. 토마스 테이트의 디지털 프린트 사이클링 톱이나 조 듀크의 핸드 페인팅한 리바이스 데님 재킷처럼 모두가 그녀와 팀원들의 ‘디렉션’을 참고해 완성한 단독 콜레보레이션 제품들이다.
패션 컨설턴트로서 야스민의 주요 업무는 역시 디렉션할 대상을 찾는 것. 특히 신인 디자이너들을 육성하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드러낸다. “신인 디자이너 중엔 분명히 눈에 띄는 독특한 인물들이 있어요. 그들은 발굴한다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죠.” 물론 남들과 다른 것이 독특함의 정의는 아니다. 야스민이 찾는 건 바로 진정성이 담긴 독창적 디자인과 당대에 적합한 컬렉션이다. 수많은 디자이너를 접하다보면 누가 누구를 흉내 내는 중인지, 누가 자기만의 세계를 고민하며 정체성을 찾는 중인지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디자이너들의 진위가 확인되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그들이 현재 어울리는(relevant) 컬렉션 의상을 만드는지 보는 것. 디자인이 아무리 멋지고 훌륭해도 그것이 지금 입고 싶지 않은 옷, 현재에 맞지 않는 옷이라면 곤란하다. 지금 그녀를 흥분시키는 디자이너로 꼽힌 사람들은 루카스 나시멘토, 토마스 테이트, 시몬 로샤, 그리고 한국 디자이너 이정선이다.
신인을 찾는 데 그녀의 숙련된 감각이 동원된다면 클라이언트인 브랜드에게는 전 방위적인 모든 것이 요구된다. “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스타일리스트가 아니고, 그렇다고 숫자만 들여다보는 파이낸셜 디렉터도 아닙니다. 독창성과 상업상 사이, 그 종이 한 장 차이의 간극을 이해하는 사람이죠.” 리버티 백화점의 2008년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야스민의 능력을 대변하는 가장 적절한 예다. 십수 년간 적자를 보여 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던 백화점 임원들에게(게다가 불경기였다) 야스민은 지금이야말로 돈을 쓸 때라고 주장했다. 프로젝트가 자신에게 떨어지자마자 야스민은 패션 3개 층을 뒤엎어 재구성한 뒤, 에르메스, 타깃, 나이키 등 외부 브랜드와 협업을 선보였다. 또 남성복 층을 재정비하고 그 유명한 스카프 룸을 새로 만드는 등 리버티만의 새로운 이미지를 위해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모든 방향을 점검해 실천에 옮겼다. “비즈니스는 모든 부분을 다 염두에 둬야 해요. 소셜 미디어, 고객 서비스 프로그램, 리테일 환경, 고객의 동선, 서빙하는 음식 등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죠.” 야스민이 손을 댄 이후, 리버티 백화점은 12년 만에 첫 매출에 이익 창출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
불경기라는 난제 앞에 런던 디자이너들도 한바탕 풍파를 겪었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비즈니스를 접어야 했지만, 최근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야스민이 바라보는 런던 디자이너들의 현주소는 어디이며 그들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세상은 더 많은 브랜드를 필요로 합니다. 시장이 더 커졌기 때문이죠. 더 많은 사람이 있고 더 많은 것을 원하죠. 크리스토퍼 케인 같은 디자이너가 가방이나 액세서리 단독 매장(retail concept)을 더 보여줬으면 합니다. 지금은 더 깊은 것을 꺼낼 때죠.” 야스민은 런던 디자이너들의 다음 단계는 ‘커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변화의 중심에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15년 전에는 누구도 스타일닷컴을 통해 전 세계 컬렉션을 실시간으로 볼 수 없었고, 온라인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샅샅이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요즘 세대에겐 자기 의견을 표출할 다양한 소셜 미디어가 있고, 온라인은 그들을 더 배고프게 한다.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더는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은 지 오래다. 캣워크에 어떤 옷이 나오느냐 하는 문제는 이제 디자이너들이 다스리는 큰 영역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케인의 첫 컬렉션을 전 세계 독점으로 1년간 판매한(멀티숍 브라운스의 바잉 디렉터 시절) 야스민에게 케인은 완벽한 디자이너였다. “그의 컬렉션은 저를 한 방에 보냈어요. 슈퍼 환상적이고, 슈퍼 새로웠으며, 슈퍼 완벽했어요! 그냥 단번에 알았어요”라며 케인의 졸업작품쇼 당시를 회상했다. 야스민이 바라보는 케인의 다음 단계는 브랜드를 국제 규모로 건설하는 것. 물론 외형만 확대되는 게 답은 아니다. 구체적인 방향과 디테일은 각자가 다르다. “일반적인 성장이 아닌, 글로벌 단위여야 한다는 게 포인트예요. 향수나 액세서리, 리테일 컨셉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한 과정이 따라야 하죠.” 야스민은 더이상 옷만 만들어 매장에 거는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최근 케어링(PPR 그룹의 새 이름)의 투자 발표로 알렉산더 맥퀸과 스텔라 맥카트니의 계보를 잇게 된(케어링 그룹은 두 디자이너 브랜드 이후, 12년 만에 케인에게 투자했다) 크리스토퍼 케인이든, 야스민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시몬 로샤 같은 신인이든, 우리 시대 패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시각은 어떤 걸까?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이해하고, 고객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며,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디자이너이든 리테일러이든 상관없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도 긍정적 성격 덕분에 실패해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야스민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야스민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그녀의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브랜드가 있었고, 같은 곳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거쳐야 했으며, 그녀가 확신하는 결과를 의심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그래도 야스민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고 여긴 채 그저 할 일만 묵묵히 해나갔다.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고 누구는 좌절한다. 모두가 크리스토퍼 케인이 될 순 없다. “맞아요. 모두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모두가 성공할 순 없어요.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건설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고, 무척 흥분되는 여정입니다.” 빅 패션 하우스의 수장 자리를 마다하고(그의 향방을 놓고 늘 소문이 끊이지 않았으니) 자기 브랜드를 끝까지 고집한 케인의 여정을 지켜보는 일은 분명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런던 패션 위크는 지금 잘 성장하고 있다. 볼거리도 풍성해졌지만, 전 세계 바이어들이 런던 디자이너들을 향해 러브콜을 날리고 있어 영업에서도 성과가 좋다. 그러니 런던 패션 위크 본연의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즈니스’ 전략에 치중한 런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이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식상해졌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런던 디자이너들은 아주 현실적입니다. 비즈니스에 신경 써야 합니다. 90년대를 떠올려보세요. 제 매장에서 옷을 팔던 디자이너 중 릭 오웬스와 피에르 하디를 제외하곤 40명쯤 되는 디자이너들이 지금은 다 사라졌어요.” 야스민은 런던 패션 위크에 우호적이다. “한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고객을 만나는 현장에서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런던은 분명 흥미로워요. 다른 도시보다 한층 더 정확한 방향성을 갖고 있고, 동시에 좀더 현실적이죠. 런던은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요.” 변질보다 발전이라는 시각이 런던 디자이너들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패션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파격적이고 실험적 디자인이 전부이던 과거의 런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패션계의 이단아로 언제까지 머물 순 없지 않나!
야스민은 아직 서울 패션 위크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서울은 무척 좋아한다고 전한다. 아울러 작년에 서울에 들렀을 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분더숍을 통해 한국 고객의 성향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한국 시장은 최근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발전 중입니다. 그러니 고객들은 더 많은 것을 갈구하고, 시장 안에서 경쟁 구도가 심화되는 것을 볼 수 있죠.” 야스민 팀으로부터 컨설팅을 받는 분더숍은 대대적인 공사를 마치고 내년 하반기에 재탄생한다. “변화는 좋은 겁니다. 대공사 후 분더숍은 더 많은 여성과 남성 고객에게 어필하고, 또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곳이 될 겁니다.” 야스민은 이를 위해 디자이너 브랜드의 편집 구성은 물론, 리테일 환경, 고객 서비스 프로그램, 고객 동선, 마케팅 프로젝트 등 매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재편성을 논의하고 시행했다. 각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할지 규정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야스민은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런던 패션 위크 뉴 제너레이션 어워드의 패널석에 앉아 신인 디자이너 선정에 가담한다. 이미 몇 시즌째 상을 받는 디자이너도 있고, 새로 등극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일부는 뉴 제너레이션 어워드에서 더 큰 후원금이 따르는 ‘Fashion Forward’로 업그레이드되기도 한다. “디자이너들은 정말 돈이 없어요. 그들에게는 후원이 전부예요.” 야스민은 무대 뒤에 머무는 것이 행복하기에 어떤 작업이든 굳이 앞에 나서서 알리고 싶어하진 않는다. “패널은 후원을 위한 선정은 물론, 디자이너들이 비즈니스로 온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컨설팅을 도맡는 자리입니다.”
Judd Crane 최고라는 수식에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영국은 물론 글로벌 고객을 사로잡는 셀프리지 백화점. 이곳을 이끄는 주역들은 예상을 뒤엎는 일을 벌이기 위해 미지의 패션 도시 나이지리아의 라고스까지 날아간다. 셀프리지 백화점의 핵이자 여성복 바잉 팀의 디렉터, 저드 크레인으로부터 신인 디자이너 발굴과 양육에 대한 비전을 들었다.
백화점 오픈을 30분 앞둔 오전 9시. 노란색 셀프리지 이름표를 단 수백 명 직원들이 냄비 뚜껑과 냄비를 이용해 만든 아슬아슬한 킬힐 조각상은 의식하지 않은 채 직원 출입구를 향해 신속히 걸어 들어왔다. 9시 출근 시간과 함께 셀프리지 전체가 정상 가동되고, 직원들은 고객맞이로 바짝 긴장하는 모습. 특정 인물 취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백화점 방침 때문에 섭외 과정이 까다로웠지만, 결국 <보그> 취재 팀을 향해 셀프리지 사무실의 빗장이 활짝 열렸다. “백화점의 구성 과정을 설명해줄게요.” 인사를 나누자마자, 저드 크레인이 셀프리지의 운영 방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새 프로젝트를 앞두고 상업적 관점이 아닌, 하나의 컨셉을 놓고 브레인스토밍을 하죠. 여러 팀이 모여 소통을 시작하는 거예요.” 백화점 플로어에는 이제 막 2013년 가을 컬렉션이 도착하는데, 저드의 뒤로 2014년 봄 컬렉션에 대한 무드 보드가 눈에 띄었다. 지난 시즌과 다음 시즌을 오가며 컬렉션을 살피는 사이사이, 또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소통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셀프리지에는 크리에이티브, 바잉, 머천다이징, 윈도, 리서치 등 여러 팀이 있는데, 프로젝트를 위해 모두가 한자리에 모입니다.”
저드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제 막 론칭한 BYT(Bright Young Things, 2011년부터 시작된 신인 디자이너 육성 프로젝트) 2013으로 이어졌다. 이틀 전, 쇼윈도 팀과 디자이너들이 협력해 만든 윈도 디스플레이가 공개되고, 몇 달 동안 멘토와 디자이너가 논의해 완성한 결과물이 매장에 배달되어 행어에 걸린 상태다. 백화점 1층 ‘원더룸’이라는 럭셔리 섹션 안에 마련한 팝업 숍에서는 제품에 태그를 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프로젝트마다 전체 팀이 모여 첫 단계부터 밟아나가는데, BYT 2013의 경우 크리에이티브 팀이 작성한 100명이 넘는 디자이너 목록에서부터 시작했어요.” 크리에이티브 팀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라나 웨스턴(셀프리지 백화점 오너의 딸)의 직속 부서로 1년 내내 (혹은 그 이상) 현장을 누비며(팀장인 에마는 DJ도 겸한다) 직접 보고 듣고 조사한 따끈따끈한 자료(디자이너 100여 명 리스트)를 전체 팀과 공유한다. 그러고 나면 각 팀은 필터링 작업에 돌입한다. BYT 리스트에는 제품을 팔아본 적 없는 완전 ‘초짜’ 디자이너가 다수 포함되는데, 올해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영역의 인물들도 투입됐다. 졸업작품전에 의존하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셀프리지 백화점의 신인 육성 프로젝트는 다양한 크리에이티브군을 두루두루 관찰하고 연구한다(이번 시즌에는 여성복, 남성복, 액세서리, 아트&디자인, 음식 등에서 뽑혔다).
“가장 중요한 건 대담한 컬렉션입니다. 그런 다음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는지, 판매는 가능한지 등을 고려하죠.” 최종 선정을 위해 저드와 팀원들은 각 디자인에 대한 심층 분석에 들어가고 선택의 기로에서 아주 미세한 차이가 결정의 기준이 된다. 시작부터 결정까지 프로젝트는 모든 팀 간의 의견 조율을 통해 이뤄지기에 많은 대화를 나누고 여러 차례 회의를 치른다. “이번 경우에는 15명으로 의견이 좁혀졌고, 그게 최종 결정된 숫자입니다.” 그야말로 웬만한 영화제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과정이다. 선정에 가담하는 심사위원단은 셀프리지 현장에서 직접 뛰는 주요 인력과 정보 팀을 통해 후보자 명단을 1차 선출하고, 2~3차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 15명을 결정한다. “우리는 이 일을 아주 진지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 열정을 들여 제품을 구성하고, 그것을 위한 하나의 환경을 조성하죠.”
저드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의 팀이 이끄는 여성복 층이 떠오른다. 셀프리지의 여성복 섹션은 다른 백화점과 구성이 다르다. 어디부터 백화점 직영 공간이고, 또 어디가 브랜드가 운영하는 대여 공간(일명 컨세션)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된다. 일반적으로는 직접 사들인 디자이너 컬렉션을 진열하고 브랜드 제품은 인테리어를 갖춘 매장 형태로 구성되는데, 셀프리지는 하나의 통일된 환경으로 고객들을 맞는다. 저드는 이것이 여성복뿐 아니라 남성복에도 적용되는 ‘갤러리 시리즈’의 구성이라고 정의한다. 갤러리마다 다른 독특한 체험이 제공되고 독특한 감정이 전달되어, 서로 취향이 다른 고객들을 배려하기 위한 작업. 여기서 핵심은 각 공간마다 셀프리지 팀의 손길을 거친다는 것. 가령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톰 포드 매장에는 저드가 지난 시즌 최고의 황홀한 룩으로 꼽는 ‘목에서부터 등줄기를 따라 갈기를 표현한, 털이 달린 얼룩말 무늬 비즈 드레스’를 마네킹에 입혀놓았다. 셀프리지는 패션쇼 의상을 구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잉할 때마다 이 옷들은 판매되니까. 저드는 그 쇼를 봤고, 이 옷에 대한 바잉 결정도 그가 직접 내렸다.
톰 포드를 지나 조금 걸어가면 피터 필로토 컬렉션이 보인다. 백드롭엔 이 듀오 디자이너가 피렌체에서 매 시즌 열리는 피티 우오모 박람회에서 선보인 뒤 아카이브에 묻혀 있던 패션 필름을 상영 중이다. 저드 팀이 듀오 디자이너와 얘기하다 패션 필름의 존재를 알고 밀어붙인 결과다. 좀더 가면 디자이너 에덤이 저드에게 난데없이 피아노 예찬을 늘여놓는 통에 에덤의 프린트 장식을 입고 백화점에 진열된 피아노와 의자 세트를 볼 수 있다. 물론 피아노 옆에는 에덤의 2013 F/W 컬렉션이 마련됐다. “작년부터 셀프리지는 백화점 차원에서 영국 디자이너들의 전체 컬렉션을 사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디자이너마다 모든 컬렉션이 진열돼 있죠.” 저드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영국 디자이너 컬렉션의 일부만 바잉하는 영국 리테일러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셀프리지는 전 컬렉션 바잉을 통해 영국 디자이너를 지지하겠다며 의식 있는 결정을 내린 것. 디자이너들을 브랜드로 각인시키고, 그들의 이야기로 고객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 것이다. 물론 전체 컬렉션을 바잉하기 전부터 영국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은 거의 완판에 가까운 놀라운 매출 실적을 보였다. 그것은 런던 신인 디자이너들을 신뢰하는 고객들의 보이지 않는 지지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은 발렌티노가 들어서 있지만, 이전에 또 다른 프로젝트 공간이었던 에스컬레이터 옆 ‘갤러리’에 대한 일화는 듣는 것만으로 흥분된다. “브루노(<보그> 취재를 성사시킨 인터내셔널 PR 매니저)의 제안으로 나이지리아 라고스 패션 위크에 다녀왔어요. 우리 팀의 디자이너 바잉 매니저, 보사가 함께 가서 현지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바잉했죠.” 고객들은 열광했고, 컬렉션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 프로젝트는 백화점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케이스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1년에 한 번, 10월 말 열리는 라고스 패션 위크에는 올해도 참석할 예정이다.
백화점에 이런 예기치 못한 요소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은 다름 아닌 아시아권 백화점을 통해 얻었다. “아시아 백화점의 일반적인 컬렉션 전개 방식은 절충적이에요. 전 세계 통틀어, 아시아를 제외하고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 곳곳엔 놀라운 요소가 있었고, 그게 도리어 우리에게 큰 영감이 됐죠.” 개성이 평준화된다고 여겼던 우리의 절충적인 성향이 저드의 눈에 남다르게 와 닿은 것 같다. 유럽에서는 어두운 느낌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로 통하는 릭 오웬스나 기하학적이고 난해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사실에 대해 그는 놀라는 눈치였다(릭 오웬스의 커머셜 디렉터가 한국이 그들에게 가장 큰 시장이라고 저드에게 직접 말했단다). “릭 오웬스, 가레스 퓨, 꼼데가르쏭은 물론 마르지엘라가 우아한 룩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마르지엘라가 칵테일파티를 위한 룩이 되다니!” 저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드는 서울 패션 위크도 곧 방문하길 원한다며, 한국 컬렉션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덧붙인다. 어쩌면 다음 시즌에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셀프리지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저드는 요즘 홍콩 그룹 IT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고객들에게 아시아의 하이패션 스트리트에서 일어나는 일을 노출시키는 재미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서울과 도쿄에서 일어나는 스트리트 패션 룩을 가져오는 거죠. 한국, 중국, 홍콩, 일본 고객, 그 중 패션 고객들은 굉장한 엘리트들이죠. 패션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패션을 향한 그들의 창의적 관심은 무척 흥미로워요.” 저드는 이 현상을 셀프리지 고객들에게 선보이길 원한다. 그렇게 성사된 이번 프로젝트는 홍콩에서 날아온 IT그룹의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 7개가 1층 팝업 공간으로 할애된 모든 장소에(통상 한 프로젝트에 2~3개 공간을 내주는 전례를 깬 것) 두 달간 들어선다.
아시아 시장에 대한 유럽의 관심이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런던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부러움과 시샘이 섞여 있다. 런던을 현재 가장 핫한 도시로 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런던 신인 디자이너들이 보여주던 과감함과 실험성은 과연 사라진 걸까? “상업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 자체가 바뀌었어요. 지금 런던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실험적입니다. 15년 전 갈리아노나 맥퀸의 컬렉션을 지금 본다면 그것이 실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우린 훨씬 더 파격적인 것을 실험적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그의 이야기에 일리가 있다. “생각나요? 프린트가 현 위치에 이르기 전, 사람들은 피터 필로토와 매리 카트란주로 대변되는 그 세대 디자이너들을 보고 컴퓨터로 디자인한 디지털 프린트로 모든 컬렉션을 장식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흥분했죠.” 저드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아시아 바이어들만 프린트 드레스 앞에서 손사래를 친 게 아니다. 전 세계가 이런 경향이 과연 성공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과는 대성공! 이 디자이너 그룹은 런던을 대표하는 세력의 중심에 있고, 프린트는 크고 작은 브랜드의 주요 라인으로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신인 디자이너 육성 프로젝트 BYT로 다시 돌아가보자. 처음에는 2층 여성복 매장 안에 작은 공간에서 시작됐고, 다음 해에는 슈즈 디자이너 케이 카가미 라인이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 이어 BYT에 포함돼 블로거들의 적극적 지지를 얻었다. 셀프리지의 후원 범위는 쇼윈도를 내주고 제품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제품이 다 잘 팔렸어요. 모두 품절되어 추가 주문에 들어가기도 했죠. 가장 뿌듯한 케이스는 시몬 로샤의 성장이에요. 이번 시즌부터 셀프리지에서 브랜드로 판매하기 시작할 겁니다.” 저드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전 세계 독점권이 이제야 풀려 백화점으로는 처음 셀프리지가 단독 판매권을 갖게 됐다며 기뻐했다. 레이스로 장식된 시몬의 아름다운 컬렉션을 처음 상품으로 선보인 곳이 바로 셀프리지의 BYT 프로젝트다.
신인 디자이너의 배출이 첫 단계라면, 성장을 위한 다음 단계는 뭘까? “디자이너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디자인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아주 영리하게 앞서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몬 로샤와 매리 카트란주는 프리 컬렉션을 선보이지 않는데, 대형 브랜드들이 프리 컬렉션을 배송하는 시점에 벌써 본 컬렉션 제품을 완성해 매장에 선보이죠.” 저드는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길수록 디자이너도 리테일러도 유리하다고 덧붙인다. 아울러 이 논리를 시몬과 매리가 일찌감치 파악한 것 같다며 그들을 성공적인 디자이너의 표본으로 꼽았다. “이런 머천다이징 흐름에 대한 기본 상식을 빨리 깨닫는 디자이너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어요.” 놀랍고 획기적인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신인 디자이너들에게는 상업성 역시 아주 중요한 과제다. 셀프리지는 BYT라는 플랫폼을 통해 신인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저드 크레인이 이끄는 셀프리지 백화점의 여성복 바잉 팀은 2015년 달력을 내다보는 중이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신광호
- 포토그래퍼
- Won Ki Seo, Rex
- 스탭
- 취재 / 여인해(패션 칼럼니스트)
- 기타
- PHOTO / Muiltibits, Courtesy of B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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