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심야의 주방

2016.03.17

by VOGUE

    심야의 주방

    심야의 주방엔 비밀스러운 맛이 있다. 라스트 오더 후 잘 정돈된 테이블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깔스러운 향기가 주방에서 새 나온다. 마감 후 시작되는 셰프들의 야식 시간, 여덟 명의 셰프가 그 비밀스러운 의식의 메뉴를 보내왔다.

    중국식 닭 날개볶음-이연복 셰프, 목란

    9월 말 장소를 옮겨 연희동에서 목란을 다시 오픈한다. 서대문에서 한 것과 같이, 반가공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유지할 것이다. 이렇게 식당에서 닭을 부위별로 사들이지 않고 통째로 사들여 손질해 쓸 때는 메뉴에서 사용되지 않아 어딘가 꼭 남는 부위가 생긴다. 목란에선 닭 날개가 그렇다. 간장 양념에 20~30분간 재놨다가 물기를 짜내고 밀가루를 살짝 입히면 그대로 준‘ 득준득’한 상태가 된다. 이걸 기름에 후루룩 중국식으로 튀겨내면 이연복식 닭 날개볶음이 완성된다. 야식 메뉴를 단골손님에게 선보여 진실되게 맛나 하는 표정이 보이면 때로 메뉴에 올리기도 한다. 메뉴판에 오르지 않아 아는 사람만 먹던 비밀 한정 메뉴인 목란 동파육이 딱 그 과정을 거쳐 나온 인기 메뉴였다. 자투리 돼지고기도 제법 생기는데, 이걸 동파육처럼 만들어서 오가다 간식처럼 먹곤 했다.

    주방 출신 파스타-최현석 셰프, 엘본 더 테이블

    엘본 더 테이블의 야식은 주로 파스타. 하지만 그 파스타는 비범한 파스타다. 우선 주방에서 야식으로 먹다가 메뉴에까지 올리게 된 짬뽕 파스타. 매콤한 조개 육수 맛이 돋보이는 이탤리언 짬뽕이다. 해산물 수프를 넣고 매콤하게 마무리한 짬뽕 파스타는 정식 메뉴에 등극한 후 두터운 팬층을 갖게 됐다. 그리고 매콤한 새우 커리 파스타도 있다. 그저 조개 육수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페페론치노로 만든 새우 파스타에 ‘마법의 가루’인 커리 가루를 살짝 첨가했을 뿐인 이 파스타는 라 쿠치나에 있던 시절부터 장수한 주방 야식 메뉴다. 짬뽕 파스타와 마찬가지로 당당히 정규 메뉴 자리를 꿰차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기도 하다.

    족발 샌드위치―이유석 셰프, 루이쌍끄

    나중에 따로 길거리 음식으로 팔면 대박 날 아이템인데, 특별히 공개하겠다. 바로 족발 샌드위치다. 요리 유학 시절 파리 차이나타운을 오가다 맛본 족발 샌드위치가 그 원형이다. 야식을 위해 일부러 족발을 삶아야 하지만, 나는 물론 스태프들도 가장 좋아하는 야식 메뉴라 기꺼이 준비해둔다. 야채 스톡에 족발을 서너 시간 삶아 그대로 냉장 보관하면 4~5일간 먹을 수 있다. 이걸 차가운 채로 꺼내 샌드위치에 넣을 때는 얇은 두께로 듬성듬성 다지는 것이 흐르지도 않고 먹기 편하다. 굴소스와 두반장 아주 조금에 스리라차 칠리소스를 적당히 넣고 만든 특제 소스와 시금치, 양상추 등 온갖 샐러드 야채에 할라피뇨나 피클까지 곁들여 살짝 구운 바게트나 식빵 안쪽 면에 마요네즈를 아주 조금만 발라 끼워 먹는다. 돼지 머리나 혀를 삶아 족발 대신 넣어도 특별한 맛이 난다.

    무엇이든 후토마키-초지훈 셰프, 스시선수

    스시집 재료의 수명은 짧다. 특히 1군 스시집에서는 재료가 더 빨리 수명을 다한다. 요리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지미’를 하며 손님에게 낼 수 있는 상태인지 예민하게 체크한다. 그러다보면 먹을 수는 있는데, 팔 수는 없는 상태의 애매한 재료가 남는다. 그것은 온몸에 맛이 꽉 찬 덩치 큰 도미의 껍질 붙은 흰 살일 때도, 맛이 제대로 든 아카가이일 때도, 손수 발라낸 두툼한 게살일 때도, 고소하게 입에서 녹는 우니일 때도 있다. 스시선수에서는 이 재료들을 스태프들의 야식으로 둘둘 말아버린다. 주방에는 언제나 스시용으로 준비한 샤리가 있고, 도톰하지만 억세지 않은 김이 넘쳐나니 자연스레 결정되는 메뉴는 후토마키다. 어쩌다 재료가 남지 않아 스텝밀 야식용 후토마키에 넣을 재료가 모자랄 때는 ‘굳이’ 새우튀김을 해서 만족스러운 볼륨감을 만들어낸다.

    돈장구이 고등어 샌드위치-김건 셰프, 이치에

    저녁 영업만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저녁 식사를 거를 때가 많아 10시 전후로 간단한 간식처럼 먹을 수 있는 야식을 선호한다. 바쁠 때 편한 건 아무래도 샌드위치. 일본에서 유명한 고등어 샌드위치를 벤치마킹한 이치에식 된장구이 고등어 샌드위치가 이치에 스태프들의 인기 메뉴다. 이치에에서는 제주도산 자연산 고등어와 통영산 양식 고등어를 정기적으로 주문해 쓰고 있는데, 고등어는 선도가 오래 유지되지 않아 그때그때 바로 소진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안성맞춤인 야식 재료다. 일본 된장과 사케, 설탕 양념에 재워둔 고등어에 전분을 묻혀 굽고, 남은 야채를 채 썰어 마요네즈에 버무려 토스트기에 구운 식빵에 끼워 먹는 간편한 야식이다. 자투리 고기와 감자, 토란, 연근, 우엉을 잘게 깍둑썰기해 간장 육수에 푹 끓여 만드는 덮밥도 종종 해먹는다.

    크레용 볼 빠빠빠빠 -임정식 셰프, 정식&정식당

    크레용팝에 중독됐다. 뉴욕의 정식(Jungsik)과 서울의 정식당을 몇 달 주기로 오가곤 하는데, 요즘 뉴욕에 머무는 동안에도 매일매일 크레용팝의 영상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다보니 ‘빠빠빠빠’ ‘호’ 같은 감탄사가 입에 붙었다. 그래서인지 손수 만드는 스텝밀 야식도 모두 크레용팝 시리즈가 됐다. 한식 파인다이닝은 재료가 남는 경우가 많은 분야다. 그때그때 남는 재료로 뭐든 만든다. 요즘 새끼 돼지고기를 연구 중이라 주로 돼지고기가 등장하고 있다. 고기가 남을 때는 그릴에 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크레용 찜’이 될 때가 더 많다. ‘크레용 볼’도 단골 메뉴다. 진한 토마토소스에 미트볼과 잔뜩 삶은 스파게티 면을 함께 먹는다. 잔뜩 만드는 건 때로 스파게티가 아니라 불 맛을 제대로 넣은 볶음밥이 되기도 한다. 토요일에는 마감 후 야식 타임마다 얼음 버킷에 담긴 병맥주도 자연스레 등장한다. 야식처럼 건전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주는 크레용팝이 흥하길 바란다!

    No MSG 토마모 마파두부-정지연 셰프, 메르삐꽁

    메르삐꽁의 ‘오늘의 메뉴’는 요리 욕구를 분출하는 메뉴다. 예전에 몸담은 서승호 셰프의 라미띠에는 파인다이닝이었기 때문에, 요리사로서 지금의 비스트로에서는 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다. 오늘의 메뉴는 미트볼이나 햄버그스테이크, 혹은 햄버거일 때도, 폭립일 때도, 프랑스식 쇠고기 육수에 만 쌀국수일 때도 있다. 그중 미트볼, 햄버그스테이크, 햄버거를 오늘의 메뉴로 낼 때면 등장하는 스텝밀 야식이 마파두부다. 스태프 중 가장 배고픈 사람이 두부를 사 오면 작게 다져서 팬에 튀기듯 굽고, 고기 반죽을 잘 으깨 토마토소스와 스톡, 구워둔 두부를 넣고 기름과 고춧가루에 약하게 볶아 간장, 소금으로 간을 해 완성하는 간단한 메뉴다. 마파두부의 매콤함이 당기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는 양념인 두반장과 조미료 맛 나는 중국 음식을 배달시키고 싶지는 않을 때 한 번씩 꼭 해먹곤 한다.

    1,000% 라죽 -장진우 셰프, 장진우 식장, 장진우 다방, 방범포차, 문오리

    운영 중인 식당 네 곳의 스태프들은 밤이 깊어 동네가 잠들고 나면 그중 한 곳에 모여 라죽을 먹는다. 폼 좀 잡으면 프랑스식으로 ‘la 죽’, 한국식으로는 단지 ‘라면 죽’이다. 물에 고기를 풍덩풍덩 넣고 끓인다. 다진 마늘,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긴 해도 평범한 라면인 척하며 이 물에 라면을 끓여 스태프들이 둘러앉아 면을 건져 먹으면 그래도 허기가 남는다. 이때 고기 기름과 라면 수프가 혼탕이 된 냄비 안에 밥과 김치, 달걀, 참기름을 기본으로 넣고 스팸, 콩나물, 깻잎 등 그때그때 남는 재료를 넣고 푹 끓이는 것이 라죽이다. 메뉴에 올려도 손색없을 만큼 자신 있는 맛이지만 판매하지 못하는 건 1,000% 꿀꿀이죽 비주얼 탓이다. 분명 손님들도 일단 맛보면 미칠 듯한 메뉴인데!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해림(프리랜스 기자)
      포토그래퍼
      강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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