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같이 밥 먹을래요?

2016.03.17

by VOGUE

    같이 밥 먹을래요?

    “곱창전골 드실 판교 IT인 계신가요?” 하고 부르면 곱창전골을 먹고 싶은 판교 지역 IT 직장인들이 모여든다. 새로운 사회관계망인 소셜다이닝이 도시생활자들의 편리하고 따스한 새 식구가 되었다.

    오늘도 저녁 시간, 삼대가 모여 거실에 펼친 밥상에 둘러 앉은 TV 화면 속 일일 연속극의 그 화석 같은 정경 건너편에는 그런 대가족이 없다. 우두커니 앉아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말라붙은 밑반찬을 꺼내는 둥 마는 둥 대충 차려 묵묵히 밥을 삼키는 도시생활자가 있다. 혹은 가족과 함께 살지만 잠잘 때만 같은 공간을 공유할 뿐인 누군가가 덩그러니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미룬 1인 가구가 늘고, 가족은 가족대로 각자의 생활에 치여 밥상을 공유하기 어려워지면서 식구는 삼엽충보다 쓸쓸한 개념이 되었다.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대로의 식구는 이제 멸종 위기에 처했다.

    혹자는 혼자 먹는 끼니를 ‘사료’라고 표현했다. 식구 없는 고아가 된 도시생활자들의 TV 건너편 정경은 해를 반복할수록 윤기를 잃고 사료에 가까워진다. 혼자 먹는 식탁을 위한 정성에는 한계가 있다. 식당에서 먹자고 해도 1인 전용 좌석의 구차함에, ‘2인분 이상 주문’ 문구의 치사함에 속만 상한다. 그래서 식구 없는 도시생활자들은 밖으로 나가 새로운 식구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도시 싱글 여성의 선조 격인 네 여자가 사라베스에 모여 브런치를 먹으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한 것처럼, <심야식당>에서 신주쿠 뒷골목의 작은 식당 ‘밥집’에 사연 많은 쓸쓸한 사람들이 모여든 것처럼. 그리고 마스다 미리의 만화에서 혼자 사는 여자들이 친구의 시골집에 모여, 혹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함께한 것처럼.

    패션지 기자 출신인 <더 트래블러> 여하연 편집장의 책 <같이 밥 먹을래?>는 그녀만의 프라이빗한 소셜다이닝을 기록한 에세이다. 싱글인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아 푸짐한 요리를 해 먹인다.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힘들 때 부르면 달려와줄 사람을 쉽게 떠올리지 못하고, 여러 명이 의자 빼앗기 게임을 하다가 혼자만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것 같은 막막함과 불안함을 느꼈을 때, 그리고 “우리 조만간 같이 밥 먹어요!”라는 빤한 인사말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고양이 알렉스와 함께 사는 옥탑으로 주말마다 친구, 동료, 선후배들을 불러들여 밥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사회관계망인 소셜다이닝이 도시생활자들이 가진 최신 버전의 새 식구가 됐다. 집밥(zipbob.net)은 대표적인 소셜다이닝 서비스다. 메뉴나 테마를 정해 장소와 시간을 지정하면 거기에 딱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다. 계산도 사이트를 통해 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과 1/n로 주섬주섬 돈을 꺼내는 어색한 일도 없다. 집밥에서는 언제나 1,000개 넘는 모임이 식구 없는 도시생활자를 기다리고 있다. “곱창전골 드실 판교 IT인 계신가요?” 하고 집밥에 모임을 개설하면, 곱창전골을 먹고 싶은 판교 IT 직장인들이 모여든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는 일찌감치 ‘나는 추석이 싫다 파티’ ‘추석이 두려운 솔로 미혼 직장인 모여라’ 모임이 개설됐다.

    원래도 커뮤니티 형성에 재능이 있는 한국인들은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상의 ‘정모’나 ‘번개’ 모임을 통해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곤 했지만, 방점이 식사에 찍힌 소셜다이닝의 등장은 이제 도시생활자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이유가 만남 그 자체에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식사를 함께하고, 얘기를 들어줄 대안 식구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런 소셜다이닝은 집밥 같은 민간 서비스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진행할 정도로 넓게 퍼지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관할 지역의 쓸쓸한 독거인들을 보듬는 복지 수단으로 소셜다이닝을 활용하고 있다.

    전국 규모의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민간 서비스나 지자체 주관의 소셜다이닝 말고도, 아는 사람만 알고 가는 동네 베이스의 소규모 소셜다이닝도 흔해졌다. 홍대에서 살짝 벗어난 상수동 한강변 2층 주택 게스트하우스, 브이맨션(vmansion.com)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일요집밥’이라는 소셜다이닝 이벤트를 진행한다. 일요일 오후 부스스한 머리와 ‘추리닝’ 차림을 드레스 코드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주최자 문윤승 씨와 그 어머니가 만드는 평범한 집밥을 먹는 모임이다. 친구와 함께 브이맨션을 경영하는 홍보 기획자 김해경씨는 “자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삼겹살이나 치킨이 아니잖아요. 시금치나물이며 콩나물, 제육볶음, 김치찌개 같은, 집에서 먹는 밥이 위시 리스트죠. 평범한 집밥을 혼자 해 먹으려면 손도 많이 가고 나중에는 다 먹지 못해 결국 상한 채 버리게 되니까 1인 가구 싱글들이 굉장히 만족스러워해요”라고 말한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평범한 밥을 함께 먹고 반찬통을 가져와 남은 반찬을 나눠 가져가는 일요집밥의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일요집술’도 준비 중이다.

    도시생활자가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갖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이다. 어른들이 낯선 대안 식구와 밥을 먹는 것처럼, 아이들이 조부모, 부모나 형제자매 대신 학원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며 어울리는 것 역시 대안 식구의 한 형태일지 모른다. 이제 도시생활자는 밥상 앞에 식구 없는 고아가 되어 섰다. 저녁 식사의 따스함을 나눌 대안 식구는 앞으로 우리에게 가족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것이 힘들 때 무조건 달려와줄 만큼 친한 친구이건, 소셜다이닝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이건.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해림(프리랜스 기자)
      포토그래퍼
      강태훈
      스탭
      푸드 스타일리스트 / 김상영(Nod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