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SNS가 바꿔놓은 패션 사진

2016.03.17

by VOGUE

    SNS가 바꿔놓은 패션 사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우리가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놨다. 과하게 리터칭한 인공적인 사진보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 이 변화가 패션 사진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디지털로 변화를 준 이미지들은 지난 10년간 자연광 속에서 덜 꾸며진 이미지들을 실제로 오래된 사진처럼 보이게 한다.” 10년 전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스타 사진가의 탄생을 알리며 그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결과물 속에서 모델들은 미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외계인처럼 보이고, 화려함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찬양하는 동시에 전복시키고 있다.” 이토록 어려운 미학 용어와 함께 소개된 새로운 사진가는 머트 앤 마커스. 마리오 테스티노와 패트릭 드마쉴리에, 피터 린드버그와 허브 리츠 등으로 대변되던 90년대 스타 사진가들과 분명한 차별점이 있는 듀오의 드라마틱한 이미지들은 패션계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리콘으로 빚어낸 듯 모공 하나 없는 피부,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인공미는 21세기 새로운 패션 사진으로 추앙받았다.

    강산이 또 한 번 변한 10년이 흐른 지금, 2014년 현재의 패션 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대변하던 머트 앤 마커스의 파워는 여전하다. 3월호 미국 <W> 표지를 비롯, 이번 봄 시즌만 해도 베르사체, 스텔라 맥카트니, 캘빈 클라인, 디스퀘어드2, 구찌, 지방시, 살바토레 페라가모 광고를 촬영하는 등 그 인기는 여전하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사진가도 인스타그램 세계에서는 자존심이 조금 상할지 모르겠다. 듀오 중 한 명인 머트 알라스 계정의 팔로워 수는 무려 10만4,000여 명.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물담배를 즐기는 사진에는 1,910개 이상의 하트가 달렸다. 하지만 무명의 사진가 앨리스 가오(Alice Gao)의 팔로잉은 69만2,000명. 그녀가 2월 초에 찍은 매화 사진엔 모두 1만7,000명이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미국 <보그> 표지를 찍는 톱 사진가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 매거진의 포토그래퍼가 더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대체 뭘까? 대중이 사진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시대와 세대를 대표하는 사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보그> <W> 등의 하이패션지를 들춰 봐야 했다. 하지만 이제 스마트폰에서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근사한 모바일 갤러리가 펼쳐진다. “3,000달러짜리 카메라와 2,000달러짜리 렌즈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앨리스 가오는 유명세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이 훌륭할 때는 카메라가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 덕분에 환상적인 세트와 비현실적인 모델이 등장하는 패션 화보만큼, 평범한 일상을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진들이 인기다.

    이런 취향은 패션 화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차세대 스타 사진가들을 찾는 패션 에디터들은 지나치게 인공적인 사진보다 자연스러운 톤의 사진들을 선호한다. 이미 <보그 코리아>와 두 차례 작업(2012년 11월호 캐롤린 머피 커버 스토리와 2013년 10월 카렌 엘슨 커버 스토리)했던 사진가 카스 버드(Cass Bird)는 이제 영국 <보그>, <인터뷰> 등의 화보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화장기 없는 모델을 자연광 그대로 촬영하는 그녀의 사진에는 하이패션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 <보그 코리아> 작업에서도 디지털과 라이카 필름 카메라를 오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톤을 보여준 그녀다.

    미국 <보그>에서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사진가 안젤로 페네타(Angelo Pennetta) 역시 마찬가지. 일회용 카메라를 비롯해 필름 작업을 고집하는 그의 뷰포인트에서 데님 오버올을 입고 서 있는 라라, 풀장을 거니는 토리 버치의 모델은 잔뜩 치장한 사진보다 더 아름답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자연광과 순간 포착을 즐기는 그가 머트 앤 마커스의 오랜 어시스턴트 출신이라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대개 스승과 비슷한 느낌을 갖기 마련인데, 그는 자기 스승과의 차별화를 선택했다. “의도가 있는 건 전혀 아니다. 그저 필름을 좋아할 뿐이다. 자연광과 카메라에 달린 플래시를 좋아한다. 방해가 되거나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이 없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셀러브리티들이 선호하는 사진가 반열에 오른 알라스데어 맥렐란(Alasdair McLellan), 에즈라 페트로니오(Ezra Petronio), 마시에크 코비엘스키(Maciek Kobielski) 등도 과도한 조명이나 세팅 없이 최대한 자연스러운 사진을 선호한다.

    사실 자연스러운 사진 세계를 추구한 사진가들은 예전에도 많았다. 낸 골딘, 볼프강 틸먼스, 유르겐 텔러, 텔러의 파트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베네치아 스콧, 마크 보스위크, 데이비드 암스트롱 등등. 이들의 작품은 닉 나이트나 머트 앤 마커스처럼 디지털 느낌으로 가득한 이미지와 정반대다. 다만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는 새로운 사진가들이 트렌드처럼 떠오른 것은 아까 말한 대로 시대적인 현상이다. 일상을 기록하는데 익숙한 인스타그램 세대에겐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사진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라이언 맥긴리 전시가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만 봐도 이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대림미술관은 비공식적으로 매주 1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전시를 찾는다고 전했다). 라이프스타일을 담백한 시선으로 다루는 잡지 <킨포크>와 <시리얼> 등의 높은 인기 역시 이런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대중의 취향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패션계가 이런 변화를 민첩하게 캐치해 새로운 사진가들을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저 내 삶을 일정한 기준을 두고 기록하는 것뿐이다.” 3년 전 열일곱 살 나이에 <뉴욕타임스 매거진> 커버를 촬영한 소녀 사진가 올리비아 비(Olivia Bee)는 자신의 개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Flickr)에 올린 풋풋한 이미지들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소녀는 결국 컨버스,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패션 광고까지 촬영하는 사진가로 성장했다. 최근엔 에르메스와 함께 <Il est pour nous>라는 이름의 단편영화와 로저 비비에의 가을 광고 캠페인까지 촬영했다. “올리비아는 ‘진짜’ 친구들이 사진을 찍듯 촬영한다.” 로저 비비에의 디렉터인 이네즈 드 라 프레상주가 이렇게 전했다. “유쾌하고 부드럽게! 그녀 세대의 문화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다. 즐거움과 즉흥성, 그리고 캐주얼함이 사진에 넘쳐난다.” <보그> 화보에서 열아홉 살짜리 이 소녀의 이름을 발견하는 날도 머지않았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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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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