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안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 개관 이야기

2016.03.17

by VOGUE

    ‘안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 개관 이야기

    나엠 칸(Naeem khan)의 초록색 식물무늬로 도배된 원피스 차림의 미국 대통령 영부인이 패션 행사를 위해 납시었다(이만, 베버리 존슨 등 80년대를 풍미한 흑인 모델 같은 카리스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개관한 ‘안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를 기념하기 위해. 안나 윈투어? 맞다. 여러분이 익히 잘 아는 ‘악마’이자 미국 <보그> 편집장. 95년부터 메트 갈라 파티와 전시 주최자의 혁혁한 공로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박물관 내 복식 기념관이 그녀의 이름을 걸고 재개관한 것.

    “안나는 주목 대상이 되는 걸 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아마 그녀를 죽이는 일일 겁니다. 하하!” 축사를 시작하기 앞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영부인이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저는 오늘 안나를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며 안나를 ‘프렌드’라고 여러 번 지칭한 데 이어 “이곳은 패션에 대해, 그리고 패션이 어떻게 우리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영부인은 패션이 단지 입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도 전했다. “비즈니스인 동시에 예술입니다. 패션의 성과에는 과학, 엔지니어링 등 훨씬 많은 게 포함돼 있죠.” 그런가 하면 그녀가 오랫동안 버락 오바마의 주요 지지자 겸 모금가라는 사실. 또 자신과 윈투어는 백악관에 패션 워크숍을 마련해 학생들을 초대한다는 비밀 프로젝트까지 공개했다.

    연설을 마친 뒤 오프닝 세리머니를 위해 영부인은 커다란 가위를 들어 대형 리본을 싹둑싹둑 잘랐다. 철의 여인이자 얼음 여왕으로 불리는 천하의 안나 윈투어조차 영광스러운 대목이 궁금했는지, 마지막 가위질쯤엔 고개를 삐죽 내밀어 역사적 순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이를 중계한 메트 웹사이트의 영상을 보면, 패션쇼에서 시선이 어디에 오래 머무는지 들키지 않으려고 검은 샤넬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다던 안나 윈투어의 눈동자가 촉촉히 젖은 게 보인다. 그러니 어느 매체가 “얼음 여왕이 완전히 녹아버렸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테이프 커팅을 마친 뒤 오바마와 윈투어는 여러 차례 허그하며 이마를 마주 대는 등 친밀함을 과시했다(수줍게 기뻐하던 그녀가 키가 훌쩍 큰 영부인에게 살포시 안길 때쯤엔 영락없이 학교에서 우등상을 타고 졸업한 여학생!).

    한편 윈투어는 틈틈이 관객석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충성 맹세한 인물들과도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쳤다.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도나 카란, 캘빈 클라인, 캐롤리나 헤레라, 오스카 드 라 렌타, 랄프 로렌,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베라 왕, 토리 버치, 리드 크라코프, 프로엔자 스쿨러, 알렉산더 왕, 프라발 구룽, 잭 포즌, 타미 힐피거, 타쿤, 멀리비 자매, 올슨 자매, 빅토리아 베컴 등등. 뉴욕 톱 디자이너들은 거의 100% 참석 완료! 또 알버 엘바즈, 도나텔라 베르사체, 발렌티노의 듀오 디자이너, 마리오 테스티노, 프랑카 소짜니 등등. 두 여인을 기다리는 동안 사라 제시카 파커, 스텔라 맥카트니, 해미시 보울스 등은 셋이서 셀카를 찍고 노는 등 패션 친교를 다지느라 바빴다. 패피들이 죄다 모인 드문 기회로 일종의 친목 도모회? 사실 전세계 패션 번영회 회장님의 이름을 건 기념관 개관식이니 누가 참석을 마다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 자리에 없었던 디자이너들은 ‘불참 사유서’ 같은 걸 작성해 윈투어 비서실로 보내야 했을지도 모를 일.

    이곳은 보수비 4,000만 달러(한화로 약 410억원)가 투입돼 2년간의 공사를 거쳐 ‘안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라는 이름을 새겨 재개관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볼 때 윈투어라는 인물이 당대 패션의 위신을 높인 건 사실이다. 후대의 위인전에 패션 피플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도록 공을 세웠다는 면에서도. 하긴 지구 위에 자기 이름으로 된 대형 홀이나 기념관을 지닌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나? 그러니 수십 년 후엔 ‘안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에서 그녀의 옷장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가 기획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듯. 소문엔 샤넬 의상만 모아두는 집이 따로 있다고 할 정도니까. 게다가 슈퍼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이렇게 찬미하는 인물이니까. “안나는 우리의 퍼스트레이디죠!”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스탭
      Illustration / Snow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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