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성령
연극 <미스 프랑스>를 치열하게 준비 중인 김성령이 <보그> 카메라 앞에 섰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 아름답고 세련된 여배우 안에는 그보다 더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
성실하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온 속 깊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기품 말이다.
새벽 5시 반, 경기도 광주의 한적한 등산로 입구. 아직 동이 다 트지도 않았지만 메이크업 차량 안은 대낮처럼 환하다. 차에서 내린 김성령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과감한 노출이 필요한 촬영 컨셉 때문에 몸에 자국이 나지 않는 헐렁한 니트에 납작한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미스코리아 출신다운 기품이 넘친다. 그저 예쁘기만 한 스타에 머물지 않고 더 좋은 배우가 되고자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경희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해 연기를 공부한 김성령은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방자전>의 노련한 기생 월매, <추적자>의 이기적이고 부정한 아내 서지수, 차가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야왕>의 백도경, <상속자들>의 가련한 첩 한기애, 최근 개봉한 영화 <표적>의 냉철한 야수 같은 여형사 영주와 <역린>의 무섭고 어리석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 그리고 배우 조재현이 설립한 ‘수현재 컴퍼니’의 첫 번째 제작 공연 <미스 프랑스>의 주연을 맡아 연극 무대에도 오른다. 하지만 지금, 태연한 얼굴로 과자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있는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40대 여성은 드라마나 영화 속 어떤 캐릭터와도 닮지 않았다. 우아하고 세련된 여배우의 화려한 모습 뒤엔 친근한 이웃집 언니 같은 일상의 김성령이 있다. “제가 지금껏 버틴 건 오로지 성실함 덕분이에요.” 국내에 초연되는 프랑스 코미디 연극 <미스 프랑스>에서 1인 3역을 맡은 그녀는 요즘 하루 10시간씩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와중에 <보그> 화보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사흘간은 운동의 강도를 두세 배 올려 근육을 다잡았다. 지난밤엔 온몸이 욱신거려 진통제까지 먹었다. “괜히 한다고 했어. 너무 부담돼.” 촬영을 위해 준비된 라펠라의 잠자리 날개 같은 옷들을 펼쳐 보던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보그>의 카메라 앞에 선 김성령은 어느 때보다 당당했고 아름답게 빛났다. 옷깃 사이로 군살 없이 늘씬한 몸매와 제비 날개처럼 탄탄한 근육이 드러났다. 기나긴 시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온 성실한 직업인다운 몸이었다.
40대 여배우는 호칭이 참 애매하네요. 보통 어떻게들 부르죠?
친한 후배는 “언니” “누나”하고, 안 그러면 대개 “선배님” 하죠. “선생님”은 환갑은 좀 넘겨야 되지 않겠어요? 전 선생님이라 불릴 만큼 포스 강한 여배우는 아니에요. 조금 더 저를 지켜보면 금세 알게 될거예요.
우마 서먼이 70년생, 케이트 블란쳇이 69년생, 니콜 키드먼이 67년생으로 당신과 동갑이에요. 나이뿐 아니라 이미지도 비슷해요. 모두 패셔너블하고 우아하죠.
정말 멋진 여성들이죠! 하지만 저는 그녀들만 한 패션 피플은 아니랍니다. 그저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정도예요.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시작할 때, 의상이나 헤어, 메이크업을 깐깐하게 고려하긴 해요. 이것저것 시도해보기도 하고, 평소에도 미용실에 갈 때면 잡지를 쌓아놓고 화보를 유심히 살펴봐요. 괜찮다 싶은 시안은 바로 찍어서 스타일리스트와의 단체 카톡방에 주르륵 올리는 거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패션이에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표적>에서 입은 가죽 소재 라이더 재킷도 정말 멋지던걸요? 패셔너블하다는 선입견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 라이더 재킷도 알고 보면 브랜드 제품이 아니라 제작한 옷이에요.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이죠. 멋지게 보이기 위해 그 모든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굳이 공을 돌린다면 제법 괜찮은 프로포션과 잘 관리된 몸에 감사해야겠죠.
대체 그런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요? 이렇게 많은 간식을 즐기는 모습에선 상상이 되지 않아요.
호호. 제 별명이 신생아예요. 현장에서 잘 먹고, 열심히 촬영하고, 어느 순간 잠들어 있곤 해서요. 뭐든 가리지 않고 다 잘 먹고, 먹는 자체도 좋아해요. 그 대신 먹는 양에는 주의하죠. 그리고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이제까진 스스로도 기특할 정도로 잘해왔는데, 슬슬 한계가 왔다는 생각도 들어요. 몸매 관리가 점점 힘들어져요. 더 강도 높게 운동하고, 식사 조절에도 더 신경 써야 할 때가 온 거죠. 갱년기가 시작되면 더 힘들어지겠죠? 비극이야.
말 나온 김에 노화 없는 피부의 비결도 알려주시죠.
타고났어요. 여드름이나 트러블이 생기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타고난 게 맞죠. 그래도 관리는 열심히 받아요. 마사지도 꾸준히 받고, 광고 촬영 앞두고는 고주파 레이저도 한 번씩 쏘여주고, 중요한 작품을 시작할 때는 울세라도 받아요. <추적자> 전에 처음 받고 1년에 한 번씩 받고 있죠.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어서, 어떤 시술을 해도 약하게 받긴 해요.
당신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됐어요. <표적>에선 죽지 않을 것 같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캐릭터라 놀랐고, <역린>에서는 분량이 너무 적어서 놀랐어요.
드라마에선 분량도 따지고, 캐릭터의 비중도 까다롭게 따지는데, 이상하게 영화에선 아무것도 따지지 않게 돼요. 두 영화 다 비중이 적다는 걸 알고 들어간 거예요. <표적>은 원작인 <포인트 블랭크>에서 더 일찍 죽는데 그나마 좀더 살았고, <역린>은 이재규 감독과 꼭 일해보고 싶어서 했다는 데 의의가 있어요.
<표적> 덕분에 칸 영화제에 참석하게 됐죠? 동갑내기 배우인 니콜 키드먼의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가 개막작에 선정됐어요.
아유, 칸 영화제라니! 신나요. 다른 게 아니라 제가 기대돼요. 제가 거기 가서 뭘 하고 뭘 보게 될지가. 참, 칸 영화제 분위기가 어떤지 몰라서 주변에 다녀온 이들에게 물어봤더니 “가보면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배우들의 실크 드레스 자락과 샴페인 거품이 넘실대는 바닷가 마을이죠.
어머, ‘소맥’은 역시 없군요. 배우들 구경하고, 사진도 많이 찍고, 그 모든 파티를 즐기면 되겠네요, 호호. 마리옹 코티아르 그 여자, 연기 참 잘해서 꼭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올지 모르겠네요.
레드 카펫 드레스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과감하게 입자!’를 모토로 슬슬 하나씩 입어보고 있어요. 레드 카펫에선 붉은색 드레스가 금기라던데, 며칠 전 입어본 새빨간 드레스가 너무 예뻐서 고민 중이에요. 뭐, 다른 파티에서 입으면 되긴 하지만….
준비 중인 연극 <미스 프랑스>와 칸 영화제 일정이 겹치지는 않나요?
연극 초연이 5월 15일이고, 칸 영화제는 19일부터 참석하는데 다행히 더블 캐스팅이라 일정을 조절할 수 있었어요. 칸 영화제인데, 경쟁 부문에 오르거나 수상 후보가 되지 않더라도 못 가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정말 멋진 일이죠.
<미스 프랑스>는 지금 연습이 한창이겠군요?
하루도 안 쉬고 10시간씩 연습하고 있어요. 힘들어죽겠어, 정말. 꼼꼼한 연출을 만나서 이제 열흘 남았는데 마지막 장은 리딩도 시작 못했어요. 정말 꼼꼼하게 연습하고 있어요. 공연이 문제가 아니라 이 연습을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가 문제예요.
확실히 체력적인 문제도 있겠군요.
운동도 하고, 먹기도 잘 먹어서 버텨요. 연습 시간보다 2시간씩 일찍 나가는걸요. 먼저 가 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연습실 치우고, 음악도 틀고, 향초도 켜놓고, 대본도 읽다가 정작 깜빡 잠들곤 해요.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면 얼굴이 빨갛게 눌린 채로 부스스 일어나는 거죠.
더군다나 1인 3역이니, 막상 공연에 들어가도 물리적으로도 힘들긴 하겠네요.
언어장애를 겪는 미스 프랑스 조직위원장 플레르, 스트립 댄서 사만다, 호텔 종업원 마르틴. 다 다르고, 다 매력적이고, 다 재미있는 캐릭터예요.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지만, 1인 3역은 이 작품을 선택하게 한 정말 큰 메리트였죠. 배우로서 만나기 쉽지 않은 배역이니까요. 얘기 자체도 ‘미스 프랑스 선발 대회’에 대한 얘기라 익숙하기도 하고요. 연극도 다른 작품을 고려하기도 했어요. 철학적이고 무거운 연극이었는데 ‘이런 거 말고 가볍게 가자’고 생각했어요. <미스 프랑스>는 완전 재미있는 B급 코미디로, 메이저 히트한 프랑스 연극이에요. 흔한 대학로 연극과는 또 다른 고급스러운 코미디로 열심히 만들고 있죠!
드라마 <추적자> <야왕> <상속자들>이 연달아 잘됐고, 영화도 <역린>과 <표적>이 동시에 개봉해서 ‘다작 배우’의 길로 들어서나 했는데, 연극이라 뜻밖이었어요. 드라마와 영화를 잠시 내려놓고 싶었나요?
내려놓는다기보단 연극을 통해 어떤 환기를 경험하고 싶었어요. 제게 연극은 도피가 아니라 도전이에요. 너무 쉬워서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 너무 어려워서 연극을 하는 거죠. 지금 이걸 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이걸 해야 정신 차릴 것 같은 위기감이 있긴 했어요. 들어오는 대본과 시나리오를 잠시 내려놓고, 지금은 연극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요. 이 힘든 도전의 과정을 통과하면 뭔가 달라져 있겠지, 그 변화가 내 에너지로 표현되겠지, 해요. 우마 서먼, 케이트 블란쳇, 니콜 키드먼 같은 여자들이 가진 그런 에너지를 연극을 하며 찾아보고 싶어요. 아직까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는 끄집어내지 못한 에너지죠. 아, 그러고 보니 정우가 직접 부탁해서 다음 달에 특별 출연하는 영화는 있어요.
하정우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 매혈기> 말인가요?
네, 점쟁이 역할로 이틀 촬영하기로 했어요. 딱 두 신이라 부담은 없어요. 원래 무당이라 <만신>처럼 굿도 해야 했는데 설정이 바뀌었더군요. 양장 입은 점쟁이 역할이에요. 영화 얘기를 아무리 해도 귀에 안들어오는 상태이긴 한데, “누나가 점쟁이 안 같아서요”라는 말로 정우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죠. 원작자 위화의 작품을 워낙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요. <형제>를 처음 읽고, 그다음으로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어요.
7월까지 쭉 연극을 하고 난 후엔 또 다른 드라마나 영화가 하고 싶어지겠죠?
그럼요. 연극 때문에 다 거절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뭐든지 할 수 있는 타이밍이에요. 연극을 마치면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더 좋은 연기도 할 수 있겠죠.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인가요?
배우와 나는 떨어뜨릴 수 없는 하나의 자아예요. 무슨 역할을 해도 그건 김성령이 안에 들어 있는 캐릭터죠. 그래서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잘 사는 게 더 큰 지향점이에요. 좋은 사람으로 잘 살도록 자신을 잘 만들어나가는 게 배우에겐 중요하답니다. 삶에서와 같아요. 제 두 아이에게도 좋은 사람이 돼라, 당당해져라, 자신이 당당해야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 에디터
- 스타일 에디터 / 손은영, 컨트리뷰팅 피처 에디터 / 이해림(Lee, Herim)
- 포토그래퍼
- KIM YOUNG JUN
- 스탭
- 헤어 / 한지선, 메이크업 / 이경은(브랜드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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